[Strategy]동부그룹 품에 안긴 대우일렉,‘탱크주의’ 옛 명성 이어 가전 판도 흔들까
입력 : 2013.04.08 15:14:04
수정 : 2013.04.26 09:27:06
“탱크주의 부활하나?”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드디어 진검승부를 뽑아들었다. 지난 2월 15일 2750억원에 대우일렉트로닉스(이하 대우일렉)를 인수하며 가전시장 진출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LG전자로 양분된 국내 전자업계의 판도에 큰 변화가 불어 닥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일단 동부그룹에 인수된 대우일렉이 삼성과 LG가 양분하고 있는 프리미엄 백색가전 시장에는 섣불리 진출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백색가전의 꽃이라 불리는 TV부문이 지난 2009년 대우 출신의 종업원 지주회사인 대우디스플레이에 매각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우일렉이 집중했던 중저가 시장과 틈새상품 전략을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동부그룹이 이미 시스템반도체를 비롯해 LED(발광다이오드), 로봇, 전자재료 등 전자소재 및 부품산업에 진출해 있다는 점이 변수다. 이번 대우일렉 인수를 통해 전자산업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하게 되는 만큼 과거 ‘탱크주의’로 불렸던 대우일렉의 명성을 되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동부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아 삼성과 LG가 장악한 국내 전자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는 대우일렉의 행보에 대해 살펴봤다.
종합가전회사로 성장시키나
국내 전자업계는 사실상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양분하고 있다. 두 회사는 냉장고, 세탁기, TV와 에어컨에 이르기까지 주요 전자제품 시장을 최소 90% 이상 점유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프리미엄 백색가전 분야에 집중하면서 고가의 럭셔리 제품에 집중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런 이유로 국내 가전시장이 이원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프리미엄 백색가전에 집중하는 사이 하이얼을 비롯한 대우일렉과 외국계 전자업체들이 중저가 시장을 집중 공략할 것이란 예상이다.
이와 관련 김병열 하이얼 대표는 “프리미엄 제품이 전체 가전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면서 “품질이 뒷받침되는 중저가 제품이 다양해지면 앞으로 중저가 가전시장의 규모가 급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부그룹은 일단 대우일렉의 중저가 전략을 유지하면서 전자계열사에서 생산하는 완제품을 대우일렉의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킬 방침이다. 동부라이텍의 LED조명이나 동부로봇의 로봇청소기 등을 대우일렉의 브랜드와 네트워크를 통해 판매할 계획이다. 또 동부건설과 함께 빌트인 가전에 진출해 생활가전 시장까지 시장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대우일렉은 현재 판매 중인 냉장고와 세탁기, 전자레인지 외에 에어컨과 청소기, TV, 식기세척기, 가스오븐, 의료기기, 소형가전까지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가전기기들을 판매하는 종합전자업체로 변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대우일렉은 우선 내년까지를 기초체력을 강화하는 기간으로 삼고 1500억원 가량을 투자키로 했다. 주로 생산 설비와 신제품 연구개발 분야에 집중적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경쟁업체의 한 관계자는 “단시간에 이뤄지기는 어렵겠지만 대우일렉이 중저가 시장에서 확실한 기반을 잡고 프리미엄 시장에 진출할 경우, 강자였던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대우 일렉트로닉스가 출시한 벽걸이형 ‘미니’ 드럼세탁기
텅텅 빈 곳간과 부실한 상품군
그러나 대우일렉의 앞날은 여전히 ‘흐림’이다. 재계순위 16위인 동부그룹에 인수됐지만, 정작 인수주체인 동부그룹의 자금 사정이 그리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계에 따르면 대우일렉의 인수 주체인 동부하이텍은 여전히 적자를 기록 중이고, 그룹의 주력사라 할 수 있는 동부건설과 동부제철이 업황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대우일렉 인수 과정에 동부그룹과 같이 참여한 재무적 투자자들(FI) 역시 앞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이유로 그룹의 전 계열사가 대우일렉 인수전에 참여했다. 인수자금 중 51%를 김준기 회장과 동부그룹 계열사들이 부담하고, 나머지 49%를 FI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FI로는 KTB사모펀드와 SBI 등이 참여했는데, 금융권은 동부그룹이 FI들에게 ▲대우일렉 5년 내 상장 ▲9% 수익률 ▲드래그 어롱(어느 한쪽이 매각을 원하면 다른 쪽도 동참해야 하는 조항) 등을 약속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시급한 부분은 TV 부문이다. 가전 시장에서 입지와 브랜드를 알리려면 ‘대우일렉’의 브랜드가 박힌 TV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대우일렉은 지난 2009년 TV 사업을 대우 출신 직원들이 설립한 대우디스플레이에 매각한 상태다. 이런 이유로 대우일렉은 올해 안에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의 ‘대우TV’를 내놓을 계획이다. 디자인과 제품 개발은 본사에서 맡고, 생산은 아웃소싱하는 방식이다.
전자업체 관계자는 “대우일렉이 경쟁력 있는 보급형 제품을 내놓을 경우 국내보다 해외에서 높은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TV를 내놓는다고 해도 대우일렉의 상품 포트폴리오는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동부그룹과 대우일렉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2015년부터 청소 로봇, LED 조명, 소형 가전을 선보이고 2017년까지 가정 의료기기, 스마트 가전으로 제품군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해외 네트워크와 브랜드는 강점
여러 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동부그룹은 대우일렉 인수가 결국은 높은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일렉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브랜드가 특별한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일렉은 유럽과 북미가 아닌 동남아와 남미 등의 신흥시장에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 실제 베트남에서는 냉장고, 베네수엘라에서는 전자레인지, 칠레에서는 세탁기, 페루에서는 양문형 냉장고가 각각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자 2강인 삼성과 LG가 유럽발 금융위기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일찍이 신흥시장에 진출한 대우일렉은 수출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새롭게 출시한 제품들이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동부그룹이라는 새 주인을 얻은 대우일렉. 대우일렉을 통해 종합전자회사로 발돋움을 시작한 동부그룹. 두 기업의 인수합병이 어떤 시너지를 낼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Key point
대우일렉은 올해 안에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의 ‘대우TV’를 내놓을 계획이다. 디자인과 제품 개발은 본사에서 맡고 생산은 아웃소싱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