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월가를 호령하던 ‘기업 사냥꾼(Corporate Raider)’의 시대는 한동안 저무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자본시장은 다시 한번 적대적 M&A(Hostile Take over)의 거센 파고와 마주하고 있다. 과거 칼 아이칸(Carl Icahn), KKR, T.분 피컨스 같은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었던 적대적 인수 전략은 이제 행동주의 펀드, 플랫폼 기업, 사모펀드, 심지어 개인투자자 기반 기업으로까지 확장되며 그 양상이 훨씬 복잡해지고 있다.
최근 미국 게임스톱(GameStop)의 이베이(eBay) 인수 시도와 한국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그리고 브로드컴(Broadcom)의 퀄컴(Qualcomm) 인수 실패 사례는 이런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들이다.
산업도, 시장도, 참여 주체도 다르지만 세 사례는 공통된 특징을 지닌다. 대상 회사 이사회와 경영진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공개매수와 지분 확보를 통해 경영권 장악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적대적 M&A 논쟁이 단순한 기업 간 거래를 넘어 국가안보와 핵심 산업 보호 이슈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반도체와 5G 기술이, 한국에서는 2차전지와 전략광물 공급망이 적대적 인수 논란의 핵심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
결국 적대적 M&A의 핵심은 단순한 ‘합병(Merger)’ 여부가 아니라, 이사회 승인 없이 진행되는 경영권 확보 시도에 있다는 자본시장 원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아가 논쟁은 국가 전략산업 리스크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최근 게임스톱은 이베이에 560억달러 규모의 인수 제안을 던졌다. 현금과 주식을 절반씩 섞은 방식이었고, 제안가는 주당 125달러로 지분 매입 시작 시점 대비 약 46%의 프리미엄이 붙은 금액이었다.
그러나 이베이 이사회는 이를 즉각 거부했다. 회사 측은 게임스톱의 제안을 두고 “신뢰할 수 없고 매력적이지 않은 제안”이라고 평가하며 자금조달 불확실성과 차입 부담, 통합 리스크 등을 문제 삼았다.
주목할 점은 이사회 거부 이후 게임스톱의 태도였다. 라이언 코언 게임스톱 CEO는 CNBC 인터뷰에서 “필요하다면 주주들을 직접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사회 승인을 거치지 않고 공개매수(Tender Offer)나 위임장 대결(Proxy Fight)을 통해 주주들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시장 역시 즉각 반응했다. 미국 금융시장과 언론은 해당 거래를 단순한 인수 제안이 아니라 사실상 ‘Hostile Bid(적대적 인수 시도)’의 단계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핵심은 명확하다. 이베이와 게임스톱 사이에 법률상 합병 절차가 개시된 것은 아니었지만, 대상 회사 이사회가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인수자가 이를 우회해 주주 설득 가능성을 시사한 순간부터 시장은 이를 적대적 인수의 영역으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적대적 M&A 시도의 또 다른 대표적 사례는 2017~2018년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시도다.
당시 브로드컴은 약 1170억달러 규모의 인수 제안을 내놓으며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가운데 하나인 퀄컴 인수에 나섰다. 그러나 퀄컴 이사회는 이를 즉각 거부했다. 회사 측은 브로드컴의 제안이 기업가치를 심각하게 저평가하고 있으며 장기 성장 가능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브로드컴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사회를 교체하기 위한 위임장 대결(proxy fight)에 돌입하며 주주들을 직접 설득하기 시작했다. 시장은 이를 전형적인 hostile takeover 사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거래는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제동이 걸렸다. 미국 정부가 국가안보 문제를 이유로 개입한 것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퀄컴의 5G 기술 경쟁력이 약화될 경우 중국 반도체 산업에 전략적 우위를 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기업 경영권 확보 시도가 국가 전략산업의 통제권 문제로 직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대목이다.
결국 미국 정부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거래를 공식 차단했고, 브로드컴의 인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이 사건은 적대적 M&A가 단순히 “기업을 누가 소유하느냐”의 문제를 넘어, 기술 패권과 국가 전략산업 문제로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동시에 “이사회 반대 → 주주 직접 설득 → 국가 개입”이라는 현대 hostile takeover의 전형적 확장 흐름을 보여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자본시장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온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역시 구조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MBK파트너스와 영풍은 2024년 9월 고려아연 경영진과 사전 협의 없이 공개매수를 발표했다. 이후 경영권 확보를 위한 지분 경쟁과 위임장 대결이 이어졌다.
이에 고려아연 경영진은 해당 시도를 즉각 “적대적 M&A”로 규정하며 반발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더욱 중요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이사회의 공식 반응이었다.
당시 고려아연 사외이사 7명 전원은 공동 성명을 통해 공개매수 반대 입장을 밝혔다. 사외이사들은 해당 거래가 “국가 기간산업인 고려아연에 대한 사모펀드의 적대적 M&A에 해당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단순히 현 경영진 개인의 경영권 방어 논리를 넘어선다. 독립성을 전제로 하는 사외이사 전원이 거래에 반대했다는 점에서, 이사회가 해당 거래를 회사와 전체 주주의 장기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노조와 임직원 반발도 이어졌다. 고려아연 노조는 서울과 대전 등지에서 공개매수 반대 집회를 열었고, 국회를 방문해 적대적 M&A 중단 촉구 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내부 설문조사에서는 임직원 90% 이상이 적대적 M&A 성공 시 브랜드 신뢰도와 협력관계 훼손을 우려한다고 답했다.
결국 고려아연 사례 역시 경영진, 이사회, 노조, 임직원이 모두 공개적으로 반대한 거래였다는 점에서 글로벌 자본시장이 말하는 전형적인 ‘비우호적(non-friendly) 거래’의 특성을 보여준다는 평가와 함께 국내 자본시장에서 대표적인 적대적 M&A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나아가 이 사건이 주목받은 점은 단순한 적대적M&A를 넘어 ‘국가기간산업과 핵심기술 유출’ 등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고려아연은 세계 최대 비철금속 제련 기업 가운데 하나로 기술력과 공급망 안정성이 흔들릴 경우 국가 산업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고려아연이 2차전지 핵심 소재와 희소금속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 부각됐다. 실제로 업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핵심 기술 유출 가능성 △단기 수익 중심 구조조정 우려 △국내 전략광물 공급망 불안정 △장기 투자 축소 가능성 등이 거론됐다.
특히 한국은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포이즌 필 같은 경영권 방어 기제가 미비하여, 이러한 적대적 시도가 국가 기간산업의 안정성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더해졌다.
이는 미국이 퀄컴 사례에서 제기했던 “국가안보와 핵심 기술 경쟁력 약화” 우려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단순한 경영권 이동을 넘어 국가 전략산업 통제력 문제로 논쟁이 확장됐다는 점에서다.
적대적 M&A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합병 절차가 없는데 왜 M&A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러나 현대 자본시장 실무에서 M&A는 단순한 법률상 합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개매수(TOB), 지분 인수, 자산 인수, 경영권 확보(Takeover)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국내외 학계와 시장의 정의 역시 일관된다.
미국 코넬대 로스쿨(Cornell Law School)은 hostile takeover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대상 회사 이사회의 승인이나 동의 없이 경영권을 장악하는 인수 방식”
글로벌 금융정보 플랫폼 인베스토피디아(Investopedia) 역시 적대적 인수를
“경영진의 의사에 반하여 회사를 지배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국내 학계도 다르지 않다.
송승준 충북대 교수는 『적대적 M&A의 법리』에서 적대적 M&A를 “대상 기업의 경영진이나 이사회의 동의 없이 진행되는 기업 인수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박한성 한국외대 법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역시 『회사법제와 M&A』에서 적대적 M&A를 “대상회사의 현 경영진의 의사에 반하여 그 경영진을 교체하려는 목적으로 대상회사의 경영권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또한 적대적 M&A의 핵심을 “대상 회사 이사회나 경영진의 동의 없이 시장에서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 장악을 시도하는 거래”라고 분석하며, 공개매수와 위임장 대결을 대표적 수단으로 꼽는다.
결국 적대적 M&A 여부를 가르는 핵심은 법률상 합병 계약서의 유무가 아닌 대상 회사 이사회나 경영진의 동의 여부라는 것이 학계와 자본시장, 법조계의 공통된 기준이다.
최근 적대적 M&A 움직임이 다시 활발해지는 배경으로는 크게 세 가지 변화가 꼽힌다.
첫째는 행동주의 자본의 진화다. 과거 행동주의 펀드들은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요구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이사회 구성 자체를 바꾸거나 경영권에 직접 도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둘째는 지배구조 환경 변화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가 강화되며 전통적인 경영진 중심 지배구조가 약화되고 있다. 한국 역시 국민연금과 글로벌 투자자 영향력이 커지면서 대주주 중심 경영 체제가 과거처럼 절대적이지 않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셋째는 인수 주체의 다양화다. 과거 적대적 M&A는 거대 투자은행이나 사모펀드의 영역이었지만, 최근에는 게임스톱처럼 개인투자자 기반 플랫폼 기업도 막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대형 인수전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적대적 M&A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과거보다 훨씬 복합적이라는 점이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적대적 인수가 약탈적 금융과 대규모 구조조정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동시에 비효율적 경영진과 폐쇄적 지배구조를 시장이 교체하는 기능을 수행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오늘날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자신들의 개입과 적대적M&A가 비효율적 경영 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가치와 거버넌스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대상 회사 측은 단기 수익 중심 자본이 연구개발 축소와 고용 불안, 장기 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고려아연 사례에서 국가기간산업과 핵심기술 유출 문제가 제기된 것도 이러한 맥락과 연결된다.
결국 적대적 M&A는 단순히 ‘좋다’ 혹은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거래 이후 기업가치와 주주이익, 산업 경쟁력이 어떻게 변화하느냐다.
적대적 M&A는 자본시장의 역동성과 긴장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이사회는 단순히 경영진을 방어하는 방패가 아니다. 법적으로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해 판단해야 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이사회가 특정 인수 제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한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적 충돌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반대로 인수자가 이사회를 우회해 주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순간, 시장은 이를 적대적 인수로 받아들인다. 게임스톱과 이베이, 브로드컴과 퀄컴, 그리고 고려아연 사례가 공통적으로 보여준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다만 오늘날 적대적 M&A는 더 이상 단순한 경영권 분쟁에 머물지 않는다. 반도체와 전략광물, 공급망과 첨단기술 경쟁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면서 적대적 인수는 곧 국가안보 논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결국 현대 자본주의에서 적대적 M&A의 본질은 단순히 ‘누가 회사를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경영권을 둘러싼 시장의 힘, 이사회 입장, 국가 전략산업 보호 논리, 그리고 주주들의 선택이 충돌하는 가장 첨예한 전쟁에 가까워지고 있다.
[김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