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2000년 이후 부처 존속기간 평균 4년 ‘즉흥적’ 정부조직개편 이번엔…
입력 : 2012.11.12 11:24:26
수정 : 2012.11.28 15:27:41
1994년 12월 6일. 김영삼 정부는 재정경제원 설립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3일 만에 개정안 심사를 다룬 행정경제위원회가 열렸고, 23일 본회의에서 재적 259명에 찬성 171명, 반대 79명, 기권 9명으로 전격 통과됐다.
20일도 채 안 걸린 졸속 처리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초대형 공룡부처였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했고 장관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장까지 겸했다. 예산, 조세, 금융은 물론 통화 정책권한까지 한손에 지녔다. 하지만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하태수 경기대 교수의 연구 논문에 따르면 신설된 재경원 정원은 787명으로 종전 재무부(538명)와 경제기획원(554명) 인원 보다 305명이나 적었다.
특히 재무부에서 재무정책국, 금융국, 증권보험국, 국제금융국 4국이 금융정책실(4과)로 통합 축소됐다. 4개국에서 152명에 달하는 인력이 감축됐을 것으로 하 교수는 추산하고 있다. 이는 곧 금융권과 재계에 대한 관리 감독 부실로 이어졌다. 1994부터 1997년까지 30대 대기업 평균 부채비율은 355.7%에서 518.9%로 수직 상승했다. 하 교수는 “감독 기능 축소가 훗날 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다각화와 종금사들의 고위험 외환영업을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1997년 성급한 정부 조직 개편은 위환 위기를 초래한 첫 시발점이었다.
대통령 선거가 2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정치권과 관가는 또 다시 조직 개편 논의에 빠져 있다. 안철수 후보 진영에서는 경제민주화를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체계를 손질하고 강화하겠다는 의견이 흘러나오고 있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는 단일화를 고려한 책임총리제를 주장했다. 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은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가 대체로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이 표심을 의식하고 있다면 부처와 협회 학계에선 집단 이익을 무엇보다 고려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ICT(정보통신기술)와 과학기술 부문이다. 지난 9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선 IT, 통신, 방송 등 관련 협회와 학회에서 무려 33개 단체 관계자들이 집결했다. 차기 정부에 ICT를 총괄하는 전담 부처 신설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앞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는 정보매체혁신부를 설립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과학기술 부문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7월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최고기술경영자와 연구소장 약 530명이 참석해 과학 기술 담당 조직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특정 산업 육성도 중요하나 시대정신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국정 사각지대를 막아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조직 개편은 어느 정도 정부 업무를 이해하고 있는 공무원이라면 자신의 뜻대로 두 시간이면 그릴 수 있다”면서 “진정 중요한 것은 개편에 따른 국정 공백이 없도록 빈틈없이 사각지대를 커버하며 준비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는 우리나라 정부 조직 개편이 얼마나 즉흥적으로 이뤄졌는지를 알아보고자 국가기록원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1948년 7월 정부 수립부터 2012년 9월 현재까지 64년2개월간 중앙정부 부처(청·원·위원회 포함) 설립 현황을 분석했다. 그 결과 지금껏 명칭과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은 국방부, 대검찰청, 법무부 단 세 곳이었다.
특히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집권하면서 부처 평균 존속 기간은 빠른 속도로 감소했다. 1970년대까지는 평균 존속기간이 20년 이상을 유지했다. 1940년대 29년5개월, 1950년대 22년1개월, 1960년대 27년, 1970년대 21년3개월 수준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14년8개월로 줄어들더니 1990년대 9년11개월로 크게 단축됐다. 2000년 이후 설립된 부처들은 현재까지 존속하는 기관도 많아 일률적 판단은 어렵지만 4년1개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합집산이 심했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여성부다.
2001년 1월 29일. 1997년 대선에서 여성부 신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4년차에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를 여성부로 승격했다.
총원 49명이었던 여성특별위원회에 타 부처 공무원 등을 추가 배치해 102명으로 늘렸다. 하지만 이는 일반 부처 규모에 비해 5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초 미니급이었다. 여성부는 그 후 12년간 부처명이 여성부→여성가족부(2005년)→여성부(2008년)→여성가족부(2010년)로 급 변경됐다.
보건복지부와 중복 업무가 상당하지만 표심과 상징성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정치 지형에 따라 우여곡절이 그만큼 컸던 셈이다.
또 다른 사례는 체육부다. 1982년 2월 16일. 강인원 총무처 대변인은 “문교부 체육 기능과 정무제2장관실의 올림픽 지원 기능을 흡수해 체육부를 설립하는 정부조직법개정안을 임시국회에 제출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정부는 1년 전 9월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서울이 나고야를 52대 27로 누르고 88올림픽을 유치했기 때문에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는 체육부 설립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첫 체육부장관에는 노태우 정무제2장관(전 대통령)이 임명됐다. 앞서 대통령특사로 바티칸을 방문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을 성사시킨 데 이어 또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셈이다.
6년 뒤 그는 13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지만 체육부는 공교롭게도 노 전 대통령 4년 차에 체육청소년부로 개편됐다. 30년간 체육 정책 조직은 문교부→체육부(1982년)→체육청소년부(1991년)→문화체육부(1993년)→문화관광부(1998년)→문화체육관광부(2008년)로 다섯 차례나 굴곡을 겪었다.
물론 정부부처 개편이 적다고 무조건 국정 운영이 안정된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법을 무시한 채 인사를 단행한 적이 종종 있었다. 전두환 정부는 임기 7년간 정부 조직을 크게 바꾸지 않았다. 환경청, 공정거래위원회, 노동부 정도만 신설됐을 뿐이다. 하지만 하태수 교수 연구 등에 따르면 행정부 공무원 5044명을 부패했다는 이유로 정당한 절차 없이 숙청했다.
따라서 즉흥적인 개편을 자제하고 한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에 맞게 철저한 준비를 통해 정부 조직을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 주장이다. 박재창 숙명여대 행정학 교수는 ‘차기 정부의 국정기조’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시대가 당면한 사회 성격을 무엇으로 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면서 “차기 정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치사회적 지형 속에서 국정운영 책임을 져야하는 만큼, 얼마나 적합한 국정기조를 새롭게 개발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앞서 <매일경제신문>은 국민보고대회를 통해 대통령 선거직후 민·관·정이 함께 하는 비상국정위원회(가칭)를 설립한 뒤 이를 미래성장동력부(가칭)로 격상하자고 제언한 바 있다. 한국 사회는 저출산 고령화, 일자리 부족,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3대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레임덕을 막는 동시에 위기에 대비하자는 두 가지 목표를 위한 제언이었다.
이승종 서울대 행정학 교수는 “작은 정부, 큰 정부 등 이념적 원리에 기초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점을 해소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면서 “특히 안정된 정부 정책수행과 공무원의 공직몰입에 장애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개편안이 마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정부 조직을 일자리 창출형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늦었지만 지금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 교수는 앞서 ‘차기 정부 조직 개편과 정부 개혁’ 세미나에서 “새 정부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정의를 확보하는 선순환 틀을 만들어야 한다”며 “특히 조직 개편은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고용창출형 복지국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대정신을 반영하면서도 정부 조직 개편에 따른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차기 정부와 이를 감시하는 국민의 몫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