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왕’ 포스코가 돈이 없어 난리다.
2010년 당시 7조원대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던 포스코는 현재 1.5~2조원대의 현금만을 갖고 있다. 단 2년 사이에 보유 현금액이 3분의 1토막이 난 것이다. 대체 5년 사이에 포스코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재계에서는 포스코의 지갑이 얇아진 이유로 정준양 회장이 강력하게 추진했던 인수합병(M&A)을 지목한다. 철강회사였던 포스코가 5년 만에 재벌그룹과 같은 사업구조를 같게 된 것이 포스코 재무위기의 직접적인 이유라는 것이다. 반면 포스코의 재무위기는 일종의 ‘성장통’이라는 해석도 있다. 정 회장의 인수합병 역시 포스코의 글로벌화라는 목표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다는 분석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포스코는 얇아질 대로 얇아진 지갑으로 인해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과 함께 재무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진심 어린 해명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위기설’이 터져 나오는 포스코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5년 만에 계열사 70개, 3배로 증가
포스코는 지난해 말 기준 6개의 상장사와 64개의 비상장 회사 등 모두 70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손자회사를 포함해 연결재무제표 작성 대상 종속회사는 국내 59개사, 해외 162개사 등 221개다.
그러나 시계를 거꾸로 돌려 5년 전인 2007년으로 돌아가면 포스코의 계열사는 23개사에 불과했다. 단 5년 만에 계열사가 3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이는 삼성 현대차 LG SK 롯데 등 국내 5대 재벌의 증가율보다 최소 2배에서 최대 5배 높은 수치다.
계열사가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자금을 소비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 포스코는 2009년 이후에만 약 5조원이 넘는 자금을 사용했다.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전에 약 3조4000억원을 투입했고, 지난해에는 동남아 최대 규모의 스테인리스 업체인 태국의 타이녹스를 인수하면서 6100억원을 썼다.
또한 지난해에는 인도네시아·브라질 등 2개국에 일관제철소 건설, 터키·인도·중국·멕시코 등 4개국에 냉연공장 등 신설 및 증설, 그리고 원자재 확보를 위한 호주 등의 해외광산 지분 확보에도 약 2조3000억원을 투자했다.
사실 포스코는 지난 2010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당시 7조원대에 달하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준양 회장은 사상 최대 규모의 M&A 딜이었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경쟁자였던 GS그룹과 손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은 결국 실패했고, 이후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또 지난해 6월에는 삼성SDS와 컨소시엄을 이뤄 2조원대의 대한통운 인수전에 참여했지만, CJ컨소시엄에 밀리며 다시 한 번 눈물을 삼켜야 했다. 이후 포스코는 대한통운 인수를 위해 준비했던 2조원대의 자금을 풀어 계열사 중심의 M&A와 생산시설 확대 및 신사업 추진에 활용했다.
포스코의 무한 확장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포스코 ICT는 원전 사업 확대를 위해 지난해 9월 포뉴텍을 새로 설립하고, 삼창기업의 원전사업을 인수했다. 또 포스코피앤에스(구 포스틸)는 알루미늄 후판·박판 제조업체였던 대창알텍(현 뉴알텍)을 사들였다. 이밖에도 포스코건설과 포스코에너지, 포스코엠텍 등이 2010년 9개사, 2011년에 9개사를 신규로 계열 편입시켰다.
무리한 확장으로 재무건전성 악화
축구계 용어인 ‘닥공(닥치고 공격)’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공격적인 확장에 나섰던 포스코는 결국 지난해부터 재무구조에 경고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소규모 M&A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포스코그룹 내의 내부 유보자금이 급격하게 유출됐고, 차입금과 부채 역시 늘어나는 등 풍요로웠던 자금창고가 비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새롭게 편입시킨 신규 계열사들의 재무구조 역시 포스코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2011년 재무제표를 보면 성진지오텍을 포함해 23개사는 적자를 기록했고, 리코금속 등 15개사는 자본잠식 상태로 드러나면서 포스코의 위기를 부채질했다.
호재는 하나씩 오고, 악재는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급격한 인수합병으로 몸살기를 앓았던 포스코에 글로벌 경기침체와 경쟁격화, 철강제품의 공급과잉이라는 세 가지 악재가 동시에 들이닥쳤다. 유럽발 금융위기로 인해 글로벌적인 경기둔화와 중국 등 신흥국들의 제철소 건립에 따른 경쟁격화, 그로 인한 철강재의 공급과잉은 강철 같던 포스코의 명성을 흠집내기에 충분했다.
결국 무디스, S&P, 피치 등 해외 3대 신용평가사들은 포스코를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보기 시작했고, 포스코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경고했다. 특히 포스코의 재무건전성이 갈수록 악화될 것이란 신용평가사들의 전망이 나오면서 현금왕 포스코의 위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S&P는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A-로 낮췄으며 10월22일에는 BBB+로 다시 끌어내렸다.
사실 포스코는 이미 과거의 포스코가 아니었다. 2007년에 비해 매출과 총자산은 각각 2.1배 성장했지만, 순차입금이 8000억원에 20조4350억원으로 25배 급증했기 때문이다. 부채비율 역시 2.1배 증가했다. 그나마 매출이 늘어났지만 영업이익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영업이익률은 2007년 15.6%에서 2011년 7.8%로 반토막이 나기도 했다.
올해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포스코는 올 1~6월까지 33조297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보다 1.5%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3조1020억원에서 1조8520억원으로 추락했다.
위기가 심각해지자 정준양 회장은 지난 7월 포스코의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했다. 지난 9월에는 전자공시를 통해 “공정거래법상 포스코 기업집단에 속한 국내 계열사를 대상으로 구조개편을 검토 중”이라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포스코 정준양 회장
두 차례 신용강등… 포스코 “우려할 수준 아니다”
위기가 목전에 닥치자 포스코는 일단 ‘계열사 정리’를 통해 시장의 우려를 씻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포스코의 계열사 및 손자회사 등을 포함해 16~19개사 정도가 흡수 또는 매각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구조조정 대상 계열사 중 일부는 삼일PwC와 딜로이트안진, 언스트앤영 한영 등과 자문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외의 우려 섞인 시각에 포스코는 “아직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고 자신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그동안 포스코가 인수한 기업들은 소재, 에너지, 철강 등 미래 핵심 사업이나 기존 사업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포스코는 중소기업 업종 침해나 비관련 분야로의 무분별한 확장은 지양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포스코는 올 상반기 기준으로 부채비율 92%(단독 부채비율 37.5%)다. 글로벌 경쟁사들의 부채비율은 신일본제철 109.8%, JEF 175.2%, US스틸 356.6%, 현대제철(단독) 138.4%으로 여전히 포스코의 부채비율은 낮은 편이다.
그러나 시장의 우려가 높은 만큼 포스코는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해 유가증권 매각과 계열사 IPO, 사업 연관성이 적은 계열사도 정리하고 있다. 이미 지난 4월 SKT, KB, 하나금융 블록딜, 교보생명 지분 및 산동시멘트 매각 등을 완료했으며 포스코특수강의 IPO도 진행 중이다.
그래도 투자는 계속 된다
구조조정안과 자금마련 계획을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포스코를 의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계열사 정리에 나서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여전히 M&A 드라이브를 이어가고 있어서다. 호주의 철강회사 아리움과 스틸아메리카스 인수전이 그것이다.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포스코가 아리움을 인수하려는 까닭은 철강석 등 원자재 확보가 수월해지고, 컨소시엄을 구성한 노블그룹을 통해 글로벌 철강 원자재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포스코는 지난달 29일 아리움을 주당 0.75 호주달러에 인수하겠다는 조건의 제안서를 제출했다. 매입 규모만도 약 10억달러로 한화 1조2000억원에 달한다.
반면 독일계 철강사인 티센크루프그룹의 스틸아메리카스를 인수하려는 이유는 북미지역의 유통망 확보에 있다. 티센크루프그룹이 밝힌 스틸아메리카스의 매각가격은 92억달러로 원화로 환산하면 10조원에 가깝다.
업계에서는 포스코가 두 건의 M&A 딜 중 아리움 인수전에 주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매입가격이 1조2000억원에 달하지만 인수 주체가 포스코가 아닌 호주 법인이며 노블법인을 비롯해 국민연금과 정책금융공사, 한국투자공사 등이 컨소시엄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 컨소시엄에서 포스코 호주법인이 부담하는 지분은 10% 수준이다.
반면 스틸아메리카스 인수전은 사실상의 정보 확보 차원으로 보인다. 일단 스틸아메리카스가 최근 수년간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매각 주체인 티센크루프그룹이 밝힌 매각가격도 포스코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정준양 회장은 지난 6월 열린 철강의 날 행사에서 스틸아메리카스의 인수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때 7조원대의 현금을 보유하며 막강한 자금력을 자랑했던 포스코. 정준양 회장이 남은 임기 동안 다시 한 번 포스코의 곳간을 풍요롭게 만들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