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중순 싸이는 ‘비현실적 매일’이 계속되고 있다는 트윗을 올렸다. 당연하다. 자신이 다저스 스타디움의 전광판을 장식하고,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춤을 가르치고, MTV 뮤직어워드에서 그의 말대로 감개무량하게 한국말로 감회를 얘기했다.
급기야는 필자도 미국에 있을 때면 자주 보던 아침 뉴스쇼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NBC <투데이쇼> 중 백미인 스튜디오 바로 앞에 위치한 록펠러센터 중간 무대에서 생방송 공연까지 펼쳤다. 싸이가 공연을 한 NBC방송국, GE본사, 아이스링크 등이 있는 록펠러센터는 뉴욕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중 하나다.
거기에 있는 NBC본사도 필수적인 관광코스 중의 하나로 필자가 예전에 미국에서 관광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단골로 가는 곳 중의 하나였다.
NBC 방송국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Saturday Night Live(SNL)’ 스튜디오 방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포맷을 그대로 들여와 장진 감독이 케이블TV에서 진행하며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는 바로 그 프로그램이다.
SNL 현장 방문은 물론 실제 생방송이 진행되는 토요일에는 하지 못하고 다른 요일에만 방문할 수 있다. 스튜디오에서 방문객들은 본인이 직접 사회자 자리에 앉아서 카메라 테스트를 해보기도 하고, 방청객의 일원이 되어 박수치며 감격스러워 한다. SNL에 출연하며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SNL의 초대를 받아 얼굴 한 번은 비추어야만 비로소 슈퍼스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무대에 싸이가 출연을 했으니 그 역시 9월 초만 해도 ‘비현실적’인 상상이었다.
싸이의 지난 10월 4일 서울시청 무료 공연
싸이와 이전 아이돌의 차이
왜 그렇게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열광하는 것일까? 싸이의 활약이 엄청나다보니 여러 가지 이유들이 전문가 분석이라고 나오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싸이가 이렇게 뜨면서 아마도 가장 물먹은 건 박진영일 거야.”
왜 굳이 박진영일까? 박진영은 나름 K-Pop의 선구자로 한국 대중음악을 해외에 알리는 선도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미국에 살아서 영어도 제법 되고, 힙합문화에 익숙하다는 것, 그리고 이국적인, 누구는 이종적이라고 하는 외모도 한몫했다. 이전의 JYP, SM, YG 등의 K-Pop을 보면 너무 진부한 표현이지만 선남선녀들이 정확한 안무에 따라 잘 짜여진 동작을 하고 닦여진 춤과 노래를 선보였다.
그런 노래와 춤이 방송이나 유튜브의 뮤직비디오로 처음 선을 보인다. 그때를 전후해 소위 예능에도 출연하고, 다른 가수들의 무대에 특별출연해 살짝 티저형이나 트레일러 식으로 선보이기도 한다. 일단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 그걸 보고 사람들이 평을 하고 친구나 아는 사람들에게 알린다.
트위터 용어로 하면 멘션을 한다. 특히 노래나 춤 중의 하이라이트 부분, 후킹하는 커버댄스나 커버송 부분을 따서 따라하고 패러디를 만들어낸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패러디를 만들며 놀이에 참여하고 토네이도 회오리처럼 세상을 휩쓴다.
보고 들으면 알겠지만 박진영의 음악과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박진영의 JYP뿐만 아니라 앞선 아이돌 중심의 음악과 댄스와는 크게 다르다. 아이돌들의 음악과 댄스는 나름 완벽하다. 댄스의 어느 한 동작이나 배경의 소품 하나, 노래의 음표 하나에도 모두 역할과 목적이 있고 꽉 짜여 있다. 싸이의 뮤직비디오 메이킹 필름을 보니 그도 한 장면 한 장면에 쏟는 노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화려한 카메오 군단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노력하면서도 일부러 어설픈 느낌을, 헐거워서 사람들이 쑥쑥 들어갈 틈을 보여준다. 완벽함의 미학도 있지만 어설픔의 미학도 있다. 어설프게 허점을 보여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보다 한 수 위다.
고릴라와 초콜릿
지난 2008년 칸느광고제의 그랑프리 중의 그랑프리라고 할 수 있는 필름 부문 그랑프리를 차지한 작품이 있다. 영국의 초콜릿과 유제품을 중심으로 한 제과회사인 캐드버리의 온라인 광고다. 고릴라 하나가 나와서 필 콜린스의 노래에 맞춰 드럼을 친다. 천천히 시작했다가 갑자기 미친 듯이 두들겨댄다. 제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마지막 부분에 밀크초콜릿 제품이 나타나고 그 밑에 ‘A glass and a half full of joy’라는 카피가 나오며 겨우 ‘밀크초콜릿 광고였구나’하고 알게 된다. 아주 어설프다. 왜 이런 작품에 칸느는 그랑프리를 안겨 준 것일까?
이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과 목적을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초콜릿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즉 인구통계학적인 속성에 따라 좋아하고 싫어하는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영국에서는 젊은이들이 초콜릿은 어린애들이 먹는 과자고 아니면 단맛에 인이 박힌 노인들이나 먹는 거란 인식이 강해졌다고 한다. 초콜릿 먹는 자체가 전혀 쿨(Cool)하지 않은 행동이 된 것이다. 당연히 초콜릿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떨어지는 것을 넘어서 거의 혐오식품의 반열에 초콜릿이 오르게 됐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초콜릿의 특성이나 장점을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보지도 않을뿐더러 본다고 하더라도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반감만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초콜릿이 좋다는 이유 100가지를 말해도 어느 한 가지 나쁜 얘기만 나오면 바로 그것을 가지고 초콜릿을 멀리하는 자신의 태도를 합리화하는 데 사용할 것이다.
캐드버리는 단지 궁금증을 자아내서 젊은이들이 서로 얘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들이 고릴라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하다보면 캐드버리 웹사이트에도 들어올 수 있고, 초콜릿 그림을 보고 자연스럽게 초콜릿에 대한 감정도 완화되리라 생각했다. 자신들의 웹사이트로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바로 목적이었다. 정확한 숫자를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목표치도 그리 높지는 않았던 것으로 안다. 어쨌든 이 광고는 소위 대박을 쳤다. 온라인에 오른 지 3주 만에 캐드버리 초콜릿에 대해 정확하게 어떤 인지도인지는 모르겠지만 60% 이상 올라갔다고 한다. 어떤 인지도 지표라도 대단한 수치다.
생애에 뭔가 굴곡이 있는 듯한 표정의 고릴라가 어설프지만 정열적으로 드럼을 두들기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치들이 이 광고에는 숨어 있다. 어찌 보면 그것은 빈 곳처럼 보인다. 그런 빈 곳들이 바로 소비자들에게 참여해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너무 완벽한 모습의 결과물을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보가 되자’ 또는 ‘어리석어지자’고 부르짖는 청바지로 유명한 디젤의 광고 캠페인에 이런 카피가 있다.‘똑똑한 자들은 계획서가 있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Smart has the plans, stupid has the stories)’ 계획서를 보고 싶은가, 스토리를 듣고 싶은가? 그 스토리를 함께 만들 수도 있으니 어느 쪽으로 갈 것이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캐드버리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점이 또 있다. 이 광고물을 만든 광고회사가 대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체 이것을 어떻게 팔았을까? 물론 이것을 승인해 준 광고주, 곧 클라이언트도 대단하다. 이 광고를 하면 매출이 5% 이상 오른다는 걸 입증하라고 했을까?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그랬다면 광고회사는 어떻게 입증했을까?
광고는 제품을 팔아야 한다. 20세기 세계 광고계 최고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데이비드 오길비 선생도 소비자는 광고에서 쓰인 유머러스한 글줄 때문에 제품을 구입하진 않는다며 광고는 제품의 특성을 얘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오길비가 그렇게 얘기할 때와 매체 환경, 소비자가 정보를 얻는 통로가 너무나도 달라졌다. 기업이 직접 정보를 주지 않아도 지금의 소비자들은 여러 통로를 통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발신자로서 기업 측면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여러 정보 통로를 가진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캐드버리 고릴라는 제품 판매와의 연계성 측면에서 두 가지 시사점을 준다. 첫째, 눈에 보이게 직접적으로 매출 관련된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매출을 올릴 수 있다. 둘째, 크리에이티브 결과물 하나로 판단하지 말고 전체 모든 그림을 보고 판단을 해야 된다.
젊은층과 함께 노는 법
8월 초에 끝난 런던올림픽에서 화제가 됐던 장면이 있다. 우크라이나 양궁 선수가 착용한 가슴보호대(Chest guard)에 있는 ‘바가지머리’라는 한글과 만화 캐릭터가 선명하게 화면에 잡혔다. 눈길을 끌고 주의 깊게 보니 한국의 최현주 선수를 비롯해 여러 나라 양궁 선수들의 유니폼에서 바가지머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트위터와 게시판 등에서 화제가 됐다. 결국 바가지머리는 여성의류 전문 온라인 쇼핑몰이란 게 알려졌고, 바가지머리 기업에서는 홈페이지를 통해 어떻게 된 소치인지 밝혔다. 그들의 해명(?)에 따르면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과 같은 큰 대회 기간을 제외하면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양궁 선수들을 위해 바가지머리 캐릭터를 활용한 가슴보호대와 티셔츠를 양궁 선수들에게 제공해 왔단다. 2009년 한국에서 세계선수권 대회가 열렸을 때 많은 외국 선수들이 그걸 가지고 가기도 하고, 한국 선수들이 선물로 외국 선수들에게 주기도 해서 퍼진 것 같다고 한다. ‘작은 보탬이 되고자’ ‘좋은 취지로’ 한 일이 개인적인 평가로 보면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기업으로는 공식 스폰서들을 제치고 최대의 효과를 가져왔다. 바가지머리가 처음부터 거창하게 스포츠마케팅 계획을 세워서 같은 행동을 했다면 과연 같은 결과를 가져왔을까?
젊은층들이 기업의 마케팅 메시지에 대해서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인지 오래다. 다큐멘터리 감독을 하는 친구 하나는 어쩔 수 없이 기업의 후원을 받아서 작품을 제작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 기업의 제품이나 메시지를 슬쩍 넣어야 하는데, 후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젊은 관객들은 제품 자체에 대해서 고개를 돌린다고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들은 정보에 민감해 열심히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가장 잘 활용한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가격이나 품질을 비교하고, 멤버쉽 혜택을 꼼꼼히 살피고 체리를 따먹듯 그 혜택을 최대로 누리는 사람들이다.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 성향을 보이는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젊은층이 원하는 콘텐츠를 억지로 만들어서 내놓으려 하지 말고 그냥 콘텐츠 자체가 되자.’ 바로 그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도록 하는 것이 바로 방법이다. 그들이 원하는 콘텐츠는 무엇인가? 콘텐츠를 구성하고 즐기는 세 가지 기둥이 있다. 바로 음악, 디지털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 음악과 기술이 아우러진 게임이다.
그들은 직업으로 삼지는 않더라도 음악을 만들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희곡이나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하고, 옷을 디자인하는 등 창의적인 활동을 전문가 수준으로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친구들이다. 그저 마당이나 놀 거리만 제공하면 젊은이들은 알아서 끝말잇기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재미있게 논다.
마케팅 강연이나 저서에서 예전에 많이 인용되던 영화 중 하나가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꿈의 구장(Field of Dream)>이다. 거기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인 ‘(구장을)지어라. 그러면 그가 올 것이다(Build it, and he will come)’는 매장을 만들거나 광고를 하면 고객들이 바로 찾아올 거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의도로 자주 인용됐다. 뭔가 고객을 끌 새로운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냥 오기만 해서는 안 되고, 와서 놀아야 한다. 현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와 민주당 후보경선에서 싸운 힐러리 클린턴과 본선에서 상대가 된 공화당 후보였던 존 맥케인의 마케팅 전략을 온라인을 중심으로 비교한 적이 있다. 필자는 그 차이를 오바마는 ‘Come and take me’, 그의 상대들은 ‘Come and see me’라고 요약했었다. 마당을 주며 놀게 만들어야 한다.
나를 좋아해달라고 구걸하거나 강요하지 말라. 젊은이들은 그들 자신이 주인이 되어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 그들이 결정하게 하라. 당신의 브랜드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들에게 마구 들이밀지 말라. 그냥 그들이 놀 수 있게 마당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소재를 주어라. 누가 그런 놀이가 가능하게 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조바심내지 말라. 9월 중순 ‘비현실적 매일’을 얘기할 때의 싸이는 지금의 세계적인 열풍을 생각하면 전조곡이나 다름없었을 정도다. 정말 이 싸이의 열풍이 언제까지 계속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