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침과 분침이 없는 시계가 있다. 무브먼트의 끝부분을 화살표처럼 만들어 시침과 분침 역할을 대신케 했다. 다이아몬드로 코팅한 실리시움을 부품으로 사용해 마모나 윤활유 교체 등 기계식 시계의 단점에서 벗어났다. 12년 전 ‘프릭(FREAK)’이라 불리는 이 손목시계는 2010년 시계 심장부에 실리시움과 LIGA 니켈을 사용한 ‘프릭 디아볼로(FREAK DIAVOLO)’로 진화했다. 가격만 2억원이다. 달의 인력과 태양의 인력을 모두 표현한 최초의 시계 ‘문스트럭(MOONSTRUCK)’은 2개의 디스크로 문페이즈의 정확성을 높였다. 가격은 1억원대. 10억원대 손목시계도 있다. ‘칭기즈칸 미닛 리피터(Genghis Khan Minute Repeater)’는 1분 15분 1시간 간격으로 울리는 미닛 리피터 벨소리에 맞춰 다이얼의 칭기즈칸과 병사들이 움직인다. 수공으로 각인한 병사들은 웨스트민스터 무브먼트 내부의 공과 해머에 세밀하게 연결돼 있다. 마니아들의 눈과 귀를 쫑긋 서게 하는 이 하이엔드 손목시계들의 매뉴팩처는 ‘율리스 나르덴(ULYSSE NARDIN)’이다.
1846년 스물셋이 된 젊은 율리스 나르덴은 크로노미터와 손목시계를 만들기 위해 스위스 르 르꼴(Le Locle) 지방에 정착했다. 그동안 시계장인 프레드릭 윌리엄 뒤부아(Frederic-William Dubois)와 함께 일했던 경험이 그의 전 재산이었다. 율리스 나르덴의 결단에는 사회적 상황이 한몫했다. 당시 범선, 소형 구축함, 스쿠너(소형 범선), 쾌속범선들이 속속 등장하며 세계 무역을 주도했고 정확한 시간은 운항의 기본요소였다. 바다에서 육분의(두 점 사이의 각도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장비)를 사용하던 선원에게 마린 크로노미터는 하나의 지표가 됐다. 2일에서 8일까지 파워리저브가 가능했던 이 시간 기록 장치는 1/2초까지 기록하며 정확한 경도 표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적도에선 1초의 오차가 463m의 거리차를 뜻한다.
율리스 나르덴의 시계는 1876년부터 스위스 뉴샤텔과 제네바의 연구소에서 마린 크로노미터를 정기적으로 검사해왔다. 36도 28도 20도 12도 4도 등 극한 상황을 연출해 7일 동안 9번을 테스트해 정확성을 증명한다. 율리스 나르덴의 마린 크로노미터에는 전 제품에 COSC(Controle Officiel Suisse des Chronometres)의 인증을 통과한 무브먼트가 사용되고 있다. 38㎜와 43㎜의 사이즈로 시와 분, 스몰세컨드,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가 디스플레이되며 스몰세컨드 안에 날짜 창이 있다. 날짜창 위에 붉은 색으로 표시된 ‘1846’은 율리스 나르덴 마린 크로노미터의 역사를 의미한다.
슈나이더의 선견지명, 율리스 나르덴의 재도약
Genghis Khan
Shtandart
독창성을 인정받은 율리스 나르덴 뒤에는 슈나이더(Rolf W. Schnyder)란 인물이 버티고 섰다. 그의 노력 덕분에 하락을 거듭하던 하이엔드 브랜드가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20대 초반이던 슈나이더는 1958년 아시아를 여행하며 스위스 무역회사의 시계부서 디렉터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1968년 시계의 부품 생산을 위해 태국에 공장을 설립했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엔 다이얼 공장을 세웠다. 1846년에 설립된 율리스 나르덴은 나르덴 가문이 5대째 경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쿼츠시계의 등장으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1983년 슈나이더가 인수한 율리스 나르덴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슈나이더의 전략은 간단했다. 기계식 시계 세계에서 옛 위상을 다시 되찾을 시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바티칸 박물관에 파네시안 시계(Farnesian Clock)를 복원한 외슬린(Ludwig Oechslin) 박사에게 아스트롤라베(Astrolabe·옛 천문관측의)를 손목시계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계가 시간의 3부작(Trilogy of Time) 시리즈의 첫 번째 ‘아스트롤라비움 갈릴레오 갈릴레이(the Astro-labium Galileo Galilei)’다. 최초의 천체시계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이 시계는 슈나이더가 율리스 나르덴을 인수한 후 첫 사건으로 기억되며 시계 마니아들에게 독창성과 고품질을 인정받았다.
슈나이더와 외슬린, 경영 파트의 피에르 기가(Pierre Gygax), 수석 엔지니어 루카스 휴마이르(Lucas Humair) 등 드림팀과 숙련된 워치메이커들은 율리스 나르덴을 ‘혁신에 있어 최강’이란 이미지로 포지셔닝하기 위해 전력을 쏟았다.
현재까지 율리스 나르덴은 각종 시계 어워드에서 4300회 이상 골드메달을 수상하며 기계식 시계 부문에 수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실리시움으로 제작한 듀얼 율리스 이스케이프먼트(Dual Ulysse Escapement)를 장착한 ‘프릭(FREAK)’은 지금까지 성공에 날개를 달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칭기즈칸, GMT 퍼페추얼, 소나타 모델은 이노베이션 상(Innovation Prize)을 수상하며 시계업계를 뒤흔들었다.
율리스 나르덴은 2010년 석판술과 같은 신기술을 적용한 ‘프릭 디아볼로(FREAK Diavolo)’를 선보이며 다시금 전 세계 시계업계를 놀라게 했다. 실리시움, LIGA 니켈과 같은 신소재를 시계 중심부에 사용했을 뿐 아니라 투르비옹 카루셀(Carrousel)의 힘과 정확성을 높였다. 율리스 나르덴의 또 다른 성과는 아스트롤라븀(Astrolabium) 플라네타륨(Planetarium) 텔루르(Tellurium) 등으로 대변되는 3대 모델의 완성에 있다.
항상 선두에 서고자 하는 율리스 나르덴의 목표는 변함이 없다.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고 새로운 감각이 담긴 디자인을 구상하는 것은 그 목표를 향한 원동력이다.
새로운 율리스 나르덴의 개척 파트릭 P. 호프만
지난해 슈나이더의 갑작스러운 작고 후 2011년 4월 27일 예외적인 주주총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파트릭 P. 호프만(Patrik P. Hoffmann)이 율리스 나르덴의 새로운 CEO로 지명됐다.
호프만은 1964년 스위스 라이골트스빌에서 태어나 1989년까지 그곳에서 생활했다. 회계사 교육을 받아 공인 회계사 자격증을 얻은 후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시간의 앤드류스 대학에서 영어, 마케팅 매니지먼트, 국제 마케팅, 세일즈 매니지먼트, 마케팅 리서치 등을 공부한 호프만은 1991년 오리스(Oris)에서 세일즈 매니저로 시계산업에 발을 담그게 된다. 미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독일 스칸디나비아 지역을 담당하며 일하던 그는 말레이시아 체류 기간 동안 슈나이더를 만나게 된다. 당시 미국 진출을 꾀하고 있던 슈나이더는 호프만과 함께 율리스 나르덴의 새로운 비전을 정립한다. 북아메리카와 캐리비안 지역의 비즈니스 감독이 된 호프만은 빠른 성장세를 이어갔다. 2008년 율리스 나르덴 총괄 세일즈와 마케팅 부사장으로 지목된 호프만은 이후 본사와 미국을 오가며 전 세계에 있는 율리스 나르덴 매장을 챙겨왔다.
Freak Diavolo
Black Sea
미닛 리피터 부활의 선봉장
Safari Minute Repeater
율리스 나르덴은 미닛 리피터(Minute Repeater)의 부활에 불을 지핀 매뉴팩처 중 하나다. 미닛 리피터의 다이얼에 ‘자케마트(Jaquemarts)’라는 움직이는 그림을 그려 넣어 독특한 타임피스를 선보였다. 또 하나 시계 제작에 있어 최고 소재 사용은 율리스 나르덴 철학의 핵심이다. 재도약기에 율리스 나르덴은 기계적인 부분 외에 독특한 다이얼을 완성시키는 장식 기술인 에나멜링에도 열정을 쏟았다. 특히 에나멜링 기술의 소생은 로마 제국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 에나멜은 실리카, 납, 탄산칼륨을 구성하는 유리소재. 광택 가공 과정에서 석회와 마그네슘 등 안정화 재료들이 주원료인 실리카와 섞이고 더 낮은 용해점에서 칼륨과 나트륨 등을 추가한다. 에나멜은 각기 다른 금속 산화물에서 색깔을 얻는데 아연에선 옐로우 그린 브라운을, 망간에선 블랙과 바이올렛, 구리에선 블루 그린 레드 컬러를 추출한다. 수세기에 걸쳐 시계 제작에 사용되던 에나멜링 기술은 1950년대 세가 약해져 몇몇 장인들에게만 전수됐다. 율리스 나르덴의 에나멜링은 긴 연구과정과 경험을 통해 완성됐다. 특히 리미티드 에디션에 포함된 시계의 다이얼은 50회 이상의 예비공정이 진행된다. 장인들의 손을 거친 에나멜은 12~24회의 가마작업 외에도 적어도 50시간이 필요하다. 여러 번의 불합격 과정을 거쳐야 아름다운 다이얼 에나멜이 탄생한다.
듀얼타임 시스템 또한 율리스 나르덴의 독특한 특허. 1994년 시계를 벗을 필요없이 +와 - 푸셔로 시간 조정이 가능한 듀얼타임 시스템이 완성됐다. 여행 시 창에 보이는 디지털 숫자는 홈타임을 의미한다. 숫자로 한 눈에 시간을 확인할 수도 있다. 1995년 율리스 나르덴은 빅 데이트 이중창을 만들어 날짜를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는 로컬 타임이 날짜선을 지날 때 함께 조정되도록 고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