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겹악재를 겪고 있다. 뉴욕 증권거래소 상장 후 1년여 만에 주가는 연일 바닥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대 주주인 손정의 비전펀드를 포함해 주요 주주들의 대량 매도가 한 원인이다. 물류센터 노동자 사망 등 작업환경과 사건사고도 악재로 작용했다.
주가를 제외하고 보면 쿠팡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로켓배송’을 앞세워 지난해 22조원이 넘는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유통 기업 1위 이마트의 매출을 뛰어넘는 수치다. 지난해 4분기 매출은 50억7669만달러(약 6조13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34%나 성장했다. 쿠팡은 매출 증가 배경으로 유료 멤버십 서비스인 와우멤버십 안착을 꼽는다. 로켓배송 서비스와 콘텐츠 플랫폼 쿠팡플레이 이용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멤버십으로 고객 이탈을 막는 ‘록인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유료 회원제인 와우멤버십 가입자 수도 전년도 470만 명보다 100% 늘어난 900만 명에 달한다.
이용자와 객단가도 늘었다. 작년 4분기 말 기준 쿠팡에서 한 번이라도 물건을 구매한 적이 있는 활성고객은 1793만여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 늘었다. 활성고객 1인당 구매액은 약 34만원으로, 전년(약 30만9000원)보다 11% 증가했다. 유통 시장에서 1위를 노리는 공룡으로 성장했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하지만 여전히 문제도 안고 있다. 바로 적자 누적이다.
지난해 영업적자는 14억9396만달러(약 1조8039억원)로 전년 5억1599만달러와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늘었다. 경기도 덕평 물류센터 화재로 인한 손실 1억5800만달러(약 1900억원)와 부동산 및 기계 손실 1억2700만달러(약 1500억원) 등이 반영된 수치다. 이 밖에도 쿠팡은 배달 애플리케이션인 쿠팡이츠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쿠팡플레이 같은 신사업과 전국 물류 인프라 확대 등에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미국 뉴욕 증시 상장 전 누적적자 4조6700억원에 지난해 적자까지 더하면 적자 총액은 6조원대로 불어난다. 업계에선 쿠팡이 물류센터와 신사업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당분간 영업적자가 계속 쌓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누적적자 6조원… 업계선 “당분간 적자 지속될 것”
쿠팡의 악재는 증시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지난 3월 9일 보통주 5000만 주를 매각했다. 이는 약 1조3000억원 규모로 지난해 9월에 이은 두 번째 대량 매각이다. 시장에선 소프트뱅크 자체의 자금 흐름 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쿠팡의 적자 지속과 주가 부진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따라서 유통가와 증권가 일부에선 쿠팡이 적자폭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올해 운용 효율성 개선으로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단 자금 여력이 남아있다. 쿠팡의 지난해 말 현금성 자산은 4조5265억원에 달했다.
쿠팡은 지난해 12월 와우멤버십 신규 가입 요금을 2000원 인상했다. 비슷한 시기 쿠팡이츠의 기존 가입자 대상 프로모션도 종료하며 수수료 체계를 개편했다. 최근에는 쿠팡의 차별화 포인트였던 ‘묻지마 반품’ 서비스도 중단했다. 최근에는 ‘와우멤버십(로켓와우)’의 기존 회원에 대한 요금도 월 2900원에서 4990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기존 회원들에게 순차적으로 요금 인상에 대한 안내를 진행하고 있다. 인상 요금의 적용 시점은 6월 10일 이후 결제분부터다. 수익성 강화 조치의 일환이다.
다만 쿠팡이 커머스 영역에서 수익화에 성공할 수 있을지 시장이 의문을 가지고 있는 점도 쿠팡이 풀어야 할 숙제다. 쿠팡이 벤치마킹한 아마존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보면, 아마존웹서비스(AWS) 부문이 전체 매출의 13.2%, 전체 영업이익의 74.4%를 차지하며, 클라우드가 실적 견인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풀필먼트 시장의 경쟁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네이버는 지난해 CJ대한통운 등 물류 업체와 ‘네이버 풀필먼트 얼라이언스(NFA)’를 결성했다. NFA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브랜드스토어 입점 고객의 물류를 대행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쿠팡 로켓배송급 빠른 배송도 가능하다.
제휴 방식인 만큼 근거리 배송 ‘퀵커머스’ 등으로의 확장성도 높다. 실제로 최근 NFA에 배달대행 플랫폼 업체 메쉬코리아가 합류하기도 했다. SSG닷컴 및 hy(한국야쿠르트)와 제휴를 통해 새벽배송 서비스도 선보인다. 지난해 이마트몰과 트레이더스의 장보기 서비스 입점에 이은 세 번째 장보기 제휴로, 쿠팡 그리고 컬리로 이어진 새벽배송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출혈경쟁을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가 온라인 풀필먼트 데이터 플랫폼(NFA)을 비롯해 최근에는 SSG닷컴 새벽배송도 도입하면서 물류 경쟁력을 높이고 있고, 이마트 역시 이베이와 합병 이후 본격적인 시너지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커머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초반 시장 장악에 성공했던 쿠팡이지만 현재 수많은 경쟁사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 같은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라면서 “여기에 미국 시장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얻어내지 못할 경우,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서울 양재동의 한 화물트럭 터미널에 쿠팡 배달 트럭들이 늘어서 있다.
▶상품 ‘리뷰 조작’ 논란으로 공정위와 악연 이어가나
최근에는 ‘리뷰 조작’ 문제가 불거지면서 공정위 조사를 받게 됐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 시장감시국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등 6개 단체가 쿠팡과 자회사 씨피엘비(CPLB)를 공정거래법 및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신고한 사건을 접수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통상 신고 사건은 지방사무소에서 접수해 처리하지만 사회적 영향력이 크거나 본부에서 처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사건을 본부에서 접수해 조사하기도 한다.
앞서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등은 지난 3월 15일 기자회견에서 쿠팡의 리뷰 조작 행위가 이뤄진 것으로 의심되는 대상으로 CPLB가 출시한 곰곰(식품), 코멧(생활용품), 탐사(반려식품), 캐럿(의류), 홈플래닛(가전) 등 16개 브랜드의 4200여 개 상품을 지목했다.
이들은 쿠팡이 지난해 7월께부터 직원들에게 해당 상품 리뷰를 작성하도록 하고, 리뷰를 통해 PB 상품 노출 순위가 상승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앞서 쿠팡은 지난해 7월 PB 상품을 기존의 납품 업체 상품보다 상위권에 노출되도록 알고리즘을 조작했다는 혐의로 공정위의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쿠팡 상품평의 99.9%는 구매 고객이 작성한 것”이라며 “참여연대가 거짓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