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이재형 씨(남·가명)는 몇 달 전 대만 기업 ‘시놀로지’가 출시한 NAS ‘DS420j’를 집안에 설치했다.
네트워크 결합 저장장치(Network Attached Storage), 즉 NAS는 쉽게 말해 인터넷으로 연결한 외장 하드디스크(HDD)다. 이 씨는 NAS에 영화, 드라마, 사진을 저장한 뒤 인터넷을 이용해 어디서나 NAS에 접속해 콘텐츠를 즐긴다. 밖에서 NAS에 파일을 저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씨는 가족을 위한 NAS 공유용 계정을 만들기도 했다. 이씨는 “외장 HDD를 들고 다닐 필요 없이 NAS에 접속해 언제든 영상을 보거나 업무용 파일을 불러올 수도 있다”며 “나만의 클라우드 서버를 만든 것 같아 든든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코로나19는 정보기술(IT)·생활가전 수요를 폭발시켰다.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비대면 업무, 비대면 여가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일상을 비대면으로 재설계하기 위한 IT 가전 수요는 물론, 냉장고·세탁기 같은 전통적 가전 수요도 골고루 증가했다.
페이스북의 가상현실(VR) 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2. 사진 페이스북
시장조사기관 GfK는 최근 국내 가전제품 23종을 몇 개군으로 나눠 지난해 온·오프라인 채널 합계 매출액을 2019년과 비교해봤다. 그 결과 지난해 가전 시장 성장률은 14%로 집계됐다고 4일 밝혔다. 국내 가전 시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난해 1분기만 전년 동기 대비 4% 역성장했고, 2분기부터 플러스 성장을 지속해 지난해 전체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다.
제품군별로 보면, 대형 가전(TV·에어컨·세탁기·건조기·냉장고·김치냉장고·의류관리기·식기세척기)은 매출이 14% 늘었다. IT가전(데스크톱PC·노트북)과 주방가전(가스·전기레인지, 커피메이커, 튀김기)이 각각 17%, 20% 증가했고 음향가전(헤드폰·헤드셋)은 무려 51%나 급증했다.
최인수 GfK 연구원은 “2020년은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인테리어, 편리함, 휴식 등의 가치에 중점을 둔 가전들과 요리, 음악처럼 취미 가전 중심 소비가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며 “2021년은 백신 보급으로 코로나 이전 생활로 돌아간다면 가전 시장 성장은 줄어들 수 있지만, 여가와 취미에 중점을 둔 트렌드는 여전히 시장을 주도할 것이다. 온라인 채널을 기반으로 한 가전 시장 성장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GfK의 전망처럼, 올해 코로나19가 서서히 종식되더라도 전 세계 IT·가전 시장은 여전히 활활 타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에서도 취미와 여가를 위한 기기들의 흥행이 기대된다. 이미 ‘대란’이라 부를 정도로 품귀가 걱정되는 제품마저 나왔다. 코로나는 물러가도 한 번 물꼬를 튼 디지털 대전환은 되돌리지 못한다. 우리의 일상은 영원히 바뀌었다.
LG전자 울트라파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프로 모니터. 사진 LG전자
▶우리 집에 영화관이 들어왔다
우리 집이 클라우드 서버가 됐다?
극장으로 향하는 발길은 뜸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극장의 경험’을 원한다. 대화면으로 감상하는 고화질 영상, 심장을 두드리는 음향 효과의 수요는 변함없다.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는 홈 시네마를 비롯한 홈 엔터테인먼트 수요에 주목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75인치 이상 대형 TV가 작년 한 해 대세였고 올해는 75인치를 넘어 85인치를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 나만의 영화관을 구축하는 수요가 증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대화면 홈 시네마를 위해 ‘더 프리미어’ 프로젝터를 내놓았다. 더 프리미어는 최대 3.3m까지 화면을 확장할 수 있다. 벽면을 가득 채우는 초대형 화면이 가능한 셈이다. 더 프리미어는 초단초점 방식을 적용해 벽과 반 뼘(11㎝) 거리만 있으면 어디서든 대화면 홈 시네마를 완성해준다. 또 적색·녹색·청색의 다른 레이저를 광원으로 쓰는 트리플 레이저 기술로 4000픽셀(4K) 초고화질을 구현하도록 했다.
홈 시네마의 ‘청각’을 만족시키기 위한 삼성전자의 해답은 사운드바다. 공간을 극적으로 채우는 사운드는 홈 시네마의 화룡점정이다. 삼성전자는 TV와 사운드바가 조화를 이루는 ‘Q-심포니’ 기술을 적용한 Q시리즈 사운드바로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Q-심포니는 사운드바는 목소리를 포함한 메인 사운드를 재생하고, TV 상단 스피커는 메인 사운드가 아닌 효과음 위주로 재생하는 일종의 분업 기술이다.
현재 홈 시네마가 구현할 수 있는 채널의 최대 사양은 9.1.4 채널로, 총 14개의 스피커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2020년형 삼성전자 사운드바 Q시리즈의 최고급 모델인 ‘HW-Q950T’는 4개의 스피커로 9채널을 구현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9채널을 실현하는 HW-Q950T는 더 넓은 현장감을 선사하면서 콘서트와 뮤지컬, 영화 감상의 질을 높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의 한쪽을 홈 시네마로 채웠다면 우리 집을 클라우드 서버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NAS는 근거리통신망(LAN)으로 연결된 HDD로서 가정, 중소기업에서 클라우드망을 구축할 수 있는 기기다. 네이버나 카카오, 아마존 같은 거대 IT 기업들의 데이터 서버를 개인이 조작할 수 있도록 소형화하고 단순화한 서버로 이해하면 된다.
NAS의 사용자들은 외부에서 인터넷을 통해 데이터를 저장하거나 공유할 수 있다. 외장 HDD와 USB 메모리는 분실과 고장 위험이 있지만 NAS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저장 공간도 작게는 1~2테라바이트(TB)부터 수백 TB까지 모델별로 다양하다.
NAS 제조사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대만의 시놀로지다. 세계 시장의 약 절반을 점유하고 있고 국내 IT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이 밖에 또 다른 대만 업체인 큐냅(QNAP)과 무선 공유기 ‘ip TIME’ 시리즈로 친숙한 국내 기업 EFM네트웍스도 NAS 모델을 만들고 있다. 웨스턴 디지털, 시게이트 같은 HDD 제조사들도 잇따라 NAS 시장에 뛰어든 상태다.
LG전자 그램 노트북. 사진 LG전자
▶2020년 ‘닌텐도 동숲’ 잇는 2021년 PS5 대란…
2024년 81조원 6배 넘게 크는 VR 시장
작년 봄 코로나19의 창궐로 집안에 갇힌 사람들에게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은 그야말로 히트를 쳤다. 닌텐도의 게임기기 스위치와 묶여 발매된 닌텐도 스위치 동물의 숲 에디션은 국내 공식 발매가가 36만원이었지만 품절에 품절을 거듭하며 흥행을 넘어 대란이 됐다. 제품을 계속 출하한다는 한국닌텐도의 발표에도 중고 시장에서 동숲 에디션은 100만원 이상을 호가했다. 동숲은 가상의 섬을 자신의 취향대로 꾸며나가며 다른 게이머들과 온라인으로 교류하는 게임이다. 코로나19에 막힌 교류의 욕구는 동숲 대란의 핵심 동력이었다.
일본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SIE)가 제작한 게임 콘솔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5’는 동숲을 잇는 흥행을 전 세계에서 일으켰다. AMD Zen2 기반 중앙처리장치(CPU)와 AMD RDNA 2 기반 그래픽처리장치(GPU), 16기가바이트(GB) GDDR6 SD램, 825GB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을 장착한 PS5는 게임뿐 아니라 유튜브·넷플릭스 같은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고화질로 즐길 수 있어 ‘집콕’족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PS5는 지난해 11월 전 세계에서 순차 발매됐다. 국내에는 일반 버전 62만8000원, 블루레이 디스크 드라이버를 뺀 디지털 에디션이 49만8000원에 정식 출시됐다. 시장 조사기관 엠퍼러애널리시스는 PS5가 작년 11월 12일부터 올해 2월 중순까지 약 420만 대가 팔렸다고 추산했다.
PS5는 출시 직후부터 엄청난 인기를 모으며 물량부족을 겪는 중이다. 생산국인 일본에서도 1차 예약 구매 물량이 10분 만에 동났고 일부 구매자들이 10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되팔이를 시도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예약 판매 물량이 완판됐고 현재도 웃돈을 주고 사야 할 지경이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현지에서 PS5를 비롯한 전자제품을 싣고 가던 운송트럭에 대한 탈취 시도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소니는 PS5를 올해 1480만 대 만들 계획인데 전 세계적 반도체 품귀 사태로 그마저 힘들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가격은 더 뛸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이전 주춤했던 가상현실(VR) 헤드셋 시장도 집콕 경제 덕분에 다시 성장의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페이스북이 출시한 VR 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2’는 올해 예상 판매량이 작년의 3배에 이르는 300만 대 이상으로 기대된다. 소니도 PS5용 VR 기기를 내년에 공개할 예정이며 애플도 VR 헤드셋을 내년 출시한다는 목표다. 삼성전자도 철수하려던 VR 사업을 다시 키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개발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 증강현실(AR) 글래스 영상이 유출돼 IT 업계가 주목하기도 했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VR 시장 규모는 지난해 12억달러(약 13조4000억원)였지만 2024년엔 728억달러(약 81조5000억원)로 불어날 전망이다. 게임에 치중됐던 VR 콘텐츠도 영화, 콘서트는 물론 의료와 헬스케어로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세상을 여는 ‘창’ 노트북·태블릿은
올해도 전 세계적으로 성장세 뚜렷
비대면 활동과 재택근무·학습의 필수 도구인 노트북 PC와 태블릿은 올해도 전 세계에서 성장세가 뚜렷하다. 삼성전자는 올 초 노트PC 신제품 ‘갤럭시 북’ 3종과 ‘노트북 플러스 2’를 출시했다.
갤럭시 북 3종은 최신 인텔 11세대 CPU와 엔비디아의 최신 그래픽 카드 MX450을 탑재했다. 업무·학습 외에 고사양 게임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이 중 갤럭시 북 플렉스2는 스마트 S펜과 360도 회전 가능한 터치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투인원 노트북이기도 하다. 또 클릭 한번으로 사용자 얼굴을 넣은 강의 영상, 유튜브 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스크린 레코더’, 동영상 편집이 가능한 ‘스튜디오 플러스’ 같은 기능을 기본 제공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태블릿 제품도 성능을 강화했다. 지난해 출시된 갤럭시 탭 S7 시리즈는 역대 갤럭시 태블릿 중 가장 큰 디스플레이인 12.4인치(탭 S7 플러스 모델) 패널을 탑재했고 스마트 S펜의 반응속도를 전작보다 80% 높여 부드럽고 편안한 필기감을 제공하도록 했다. 재택 학습의 효율을 위해 필기와 함께 음성을 녹음하고 해당 부분 필기를 선택하면 녹음된 음성을 재생하는 ‘삼성 노트’ 기능도 갖췄다.
LG전자는 초경량 노트북 라인업인 ‘그램’을 앞세워 비대면 수요를 적극 공략하고 있다. LG전자가 지난해 말 공개한 2021년형 LG 그램 16은 무게가 1190g으로 세계 기네스 협회로부터 ‘세계 최경량 16형 노트북’ 인증을 받았다. 가벼운 무게에도 80와트시(Wh)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해 사용 편의성도 높였다. 또 LG 그램 16은 미국 국방부의 신뢰성 테스트(MIL-STD)의 7개 항목(충격·먼지·고온·저온·진동·염무·저압)을 통과해 내구성도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LG전자는 영상, 게임 수요 공략을 위해 프리미엄 모니터 신제품도 잇따라 내놨다. LG전자가 올해 공개한 모니터 신제품은 ‘LG 울트라기어(27·32·34인치)’ ‘LG 울트라와이드(40인치)’ ‘LG울트라파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프로(32인치)’다. 이 중 LG 울트라기어 게이밍 모니터와 울트라와이드는 올해 CES 2021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 울트라기어 게이밍 모니터는 초당 144~165장의 화면을 보여줘 빠르게 움직이는 게임에 최적화됐다. 여기에 화면 끊김을 최소화하기 위해 엔비디아 지싱크 기술이 적용됐다. 울트라와이드 모니터는 여러 작업을 동시에 하는 멀티태스킹에 좋다. 16대9 모니터보다 화면을 30% 정도 넓게 쓸 수 있는 21대9 곡면 디자인을 적용했다. 울트라파인 OLED 프로 모니터는 영상 제작에 최적화한 제품이다. 10억 개가 넘는 색을 표현할 수 있다고 LG전자는 설명한다.
▶‘소리’가 중요해… 다시 뜨는 음향가전
원격 수업과 재택근무의 확대는 생활 소음을 차단하는 음향 가전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소니코리아는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자사 무선 헤드폰 판매량이 전년 동월 대비 223% 급증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고 밝혔다.
소니의 최신 무선 헤드폰 ‘WH-1000XM4’는 ‘블루투스 오디오 시스템 온 칩’ 반도체로 노이즈 캔슬링 성능을 강화했다. 헤드폰에 설치된 센서가 저음역대부터 중·고음역대 소음까지 감지해 제거해주는 것이다. 또 이 제품은 사용자가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 사용자의 목소리를 인식해 자동으로 음악 등 콘텐츠를 일시 정지하고 상대 음성과 주변 소리를 강조해 헤드폰을 착용한 채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