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Walking] 초여름에 거니는 이토록 눈부신 바다… 강원도 정동진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안재형 기자
입력 : 2020.06.05 15:47:10
수정 : 2020.06.05 15:48:00
“아빠, 이렇게 바람이 센 곳에서도 마스크 껴야 하는 거야? 모자도 날아가 버리는데 바이러스도 날아가지 않을까?”
입학식도 치르지 못한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의 눈에 ‘여기선 마스크 좀 벗고 싶다’는 간절함이 담겼다. 그 눈을 넌지시 그리고 따뜻하게 바라보던 아빠가 말한다.
“그럴 수도 있는데 마스크는 널 위해 끼는 거지만 반대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끼는 것이기도 해. 네가 마스크를 벗으면 넌 편하겠지만 이 길을 걷는 다른 사람들은 불편하지 않을까?”
이 얼마나 눈물겨운 부자의 대화인가. 아빠나 아들이나 처음 겪는 팬데믹에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라는 가르침이라니.
마침 그 앞을 지나던 남녀 커플을 보며 아이가 외쳤다.
“어 저 사람들은 벗었어!”
공공장소에선 함부로 벗으면 안 된다는 말, 아주 적확히 해당되는 상황에 앞에서 오던 커플이 멋쩍게 일행을 지나친다.
뒤따라오던 할머니 한 분이 그 상황을 이해한 듯 한마디 거들었다.
“언제든 어른들이 더 문제라니까. 입으라면 입고 쓰라면 쓰지, 좀만 더우면 벗어재끼느라고 난리들이여.”
아빠나 아들이나 그 말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한껏 벌려진 아이 입으로 눈부신 동해바다의 청정한 바람이 한가득 들어갔다.
▶천연기념물 437호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 관광지
온 가족이 총출동했는지 앞선 10여 명의 일행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펼쳐진 풍경 앞에 진한 탄성을 주고받는다. 그 뱃속 깊은 곳에서 올라온 감탄사가 얼마나 진국인지 어서 보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초여름 정동진, 그 바다 내음 짙은 공간에 길을 낸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한번 걷고 나면 꼭 한번 다시 찾는다는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 관광지다. 정동진에 자리한 커다란 배 모양의 리조트 바로 앞에서 출발해 심곡항까지 이어지는 약 3㎞ 구간에 길을 냈는데, 대부분 바다 위에 철제 난간이나 나무로 계단을 놓고 간간이 평평한 산책길을 만들었다. 해안단구는 쉽게 말해 해안을 따라 계단 모양으로 자리한 지형이다.
부채바위
오래 전 해안선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이 지형으로 짐작할 수 있다. 여하튼 이 바다산책길은 정동진과 심곡항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멋진 풍광을 만날 수 있다. 단 정동진에서 출발하면 초입에 내리막 계단을 만나지만 심곡항에서 출발하면 마지막 구간이 깔딱 고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어떻게 이런 구간에 이런 길을 만들 수 있을까.’
걸음을 내디디며 수없이 감탄한 추임새 중 하나다. 그런 이유인지 길에 들어서기 위해선 입장료를 내야 한다. 길이 열렸는지 막혔는지도 확인해야 하는데, 바람이 심해 파도가 높을 땐 길 위에서 파도를 맞을 수도 있어 오늘은 길이 어떤지 홈페이지를 통해 꼭 확인해야 한다. 또 당분간은 편의시설 확충을 위해 주중엔 공사를 하고 주말에만 길을 연다.
심곡항(위에서 두 번째), 자연산 김을 줍는 주민(위에서 세 번째)
▶절벽 아래 펼쳐진 몽돌해변
그리고 하이얀 백사장
정동진 썬크루즈 호텔 주차장 한쪽에 자리한 입구로 들어서면 절벽을 따라 이어진 계단이 가지런하다. 하나둘 딛고 내려서면 몽돌해변이 펼쳐진다. 해변으로 들어갈 순 없다. 길은 풍경을 보고 즐기는 것만 허락할 뿐 직접 발걸음을 남기는 건 원치 않는다는 듯 무심하게 다음 코스로 이어진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그대로 망망대해 태평양이다. 무엇 하나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뻥 뚫렸다. 게다가 하늘빛까지 새파래 눈이 시렸다.
산책길 곳곳에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특히 투구바위나 부채바위처럼 전설을 간직한 명소 주위에 앉아 바라보는 바다가 일품이다. 투구를 쓰고 있는 모양의 투구바위에는 고려 명장 강감찬 장군의 ‘육발호랑이의 내기두기’란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부채를 펼쳐놓은 듯 거대한 부채바위에도 설화가 깃들어 있다. 그 아래 마련된 데크에 앉아 있으면 바람이 어찌나 크고 센지 꼭 마사지를 받는 것처럼 시원(?)하다.
길의 말미에서 만날 수 있는 심곡전망타워는 심곡항 바로 앞에 마련된 철제 전망대다. 가족이 함께 걸었다면 이곳이 가족사진 포인트다. 어느 곳에 포커스를 맞춰도 인생컷을 만들 수 있다.
아, 잊지 말아야 할 팁 한 가지. 산책길 안에는 화장실이 없다. 정동진 매표소와 심곡항 매표소에 마련된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심곡항에 도착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순환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30분 간격으로 버스가 산책길 코스를 순환한다.
투구바위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정동’은 임금이 거처하는 한양(경복궁)에서 정방향으로 동쪽에 있다는 의미이며, ‘심곡’은 깊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여기에 정동진의 ‘부채끝’ 지형과 탐방로가 위치한 지형의 모양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것 같아서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란 지명이 탄생했다. 천연기념물 제437호로 지정된 곳이며, 동해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2300만 년 전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다.
· 탐방로 2.86㎞(편도 약 70~80분 소요)
썬크루즈↔투구바위↔부채바위↔전망타워↔심곡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