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이어 알펜루트 환매 중단, TRS(총수익스와프)가 뭐기에… 증권사 자금 회수 땐 깡통펀드, 개인 손실 눈덩이
문가영 기자
입력 : 2020.03.02 16:40:03
수정 : 2020.03.05 08:19:17
총수익스와프(TRS·Total Return Sw ap)란 증거금을 담보로 주식 등 기초자산을 대신 매입해주면서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파생금융거래 기법이다. 총수익 매도자가 자산 매수 대금을 제공하고 매매에 따른 손익은 총수익 매수자에 이전하는 식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시장 변동성을 키운 주범으로 지목된 신용부도스와프(CDS·Credit Default Swap)가 기초자산의 신용위험만 분리해 이전한다면 TRS는 신용위험과 더불어 시장위험도 모두 이전하는 계약이다. 금융위기 당시 부동산을 담보로 한 주택저당증권(MBS)과 이를 비롯해 다양한 채권을 한데 묶은 부채담보부채권(CDO), 그리고 이 상품의 신용위험만 따로 묶어 이전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복잡한 구조의 파생상품이 금융회사의 위험 대비 능력을 떨어뜨려 부동산 버블 붕괴에 따른 위기 증폭의 배경이 됐다.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CDO의 부실이 커지면서 파산했고, 한때 세계 최대 보험사였던 AIG는 리먼 브라더스 CDO의 신용위험에 대한 보험상품 격인 CDS를 대량으로 판매했다가 부도 위기에 몰려 정부 구제금융의 대상이 됐다.
TRS 계약은 부도가 나면서 대출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는 신용위험뿐 아니라 자산가치의 등락에 따른 손익도 모두 총수익 매수자에 이전되는 구조다. 이에 따라 총수익 매수자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도 자산을 매입한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거래 상대편인 총수익 매도자도 별다른 위험 없이 약정 수수료를 챙길 수 있어 증권사 등 금융회사의 쏠쏠한 수입원이다. TRS 계약에 따라 총수익 매수자는 단순 신용위험뿐 아니라 금리 및 환율 변동에 따른 시장위험도 부담하게 되기 때문에 레버리지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는 것이 특징이다.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피해자들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검찰 수사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해 10월 환매 연기 사태가 불거진 라임자산운용과 증권사의 TRS 계약도 이런 구조다. 금융위기 당시 문제가 됐던 기초자산이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상품인 모기지론이었다면 라임 환매중단 펀드는 다양한 채권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다.
TRS 계약은 만기시점에 이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유지되며 총수익 매수자가 자금을 상환하면 종료된다. 총수익 매도자는 담보로 잡은 자산에 손실이 날 것으로 판단되면 증거금 비율을 높이거나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증권사들은 최근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 이후 헤지펀드 운용사와의 TRS 규모를 축소하려는 분위기다. 증거금 비율을 올리거나 펀드 환매를 요구하는 식이다. 최근 알펜루트자산운용은 이 같은 TRS 계약 해지로 유동성 위기에 부딪치면서 총 2300억원 규모의 26개 펀드에 대한 환매를 중단한 바 있다.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등 증권사로부터 TRS 자금 상환을 요청받은 탓이다.
TRS 거래는 기업 간의 인수합병(M&A)이나 대기업의 계열사 지원, 순환출자 해소 등 목적으로도 종종 활용된다. M&A의 경우 지분을 인수하고 싶은 기업이 중간에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하고, 이 SPC가 증권사와 TRS 계약을 맺고 자금을 빌리는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 SPC는 이를 통해 지분을 사들이고 주가 등락에 따른 손익은 인수기업에 귀속시킨다. 해당 지분의 보유 공시의무나 의결권은 TRS 자금을 제공한 증권사에 돌아간다.
이에 따라 기업이 부실 계열사 지원, 재무구조 개선 등 목적으로 TRS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2018년 금융감독원은 국내 17개 증권사를 기업과 관련된 TRS를 매매 혹은 중개하면서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혐의로 제재 대상에 올린 바 있다. 그중 12개 증권사는 금융투자회사가 장외파생상품을 매매하거나 중개할 때 거래 대상이 기업 등 일반투자자인 경우 거래목적이 위험회피에 있어야 하는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중단 사태와 TRS의 관계는?
자산운용사는 펀드를 담보로 증권사와 TRS 거래를 통해 사실상 대출을 받아 자산을 매입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실상 증권사가 수수료를 받고 투자를 대행해주는 셈이다. 증권사의 이러한 업무를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라고 부른다. 운용사는 이에 따라 펀드 투자금이 늘어나는 레버리지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수익이 날 경우 수익률이 다소 높아진다. 부채비율에 대한 부담 없이 자산매입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러나 자산 처분 시 법적으로 TRS 계약을 맺은 증권사에 우선 변제권이 인정되기 때문에 손실이 발생할 경우 일반투자자의 손실률이 급격히 늘어날 수 있는 위험도 존재한다.
라임자산운용이 증권사와 맺은 TRS 계약도 이러한 구조다. 이러한 TRS 계약이 펀드 손실에 따른 일반투자자의 피해를 더욱 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금융당국은 최근 라임자산운용이 증권사와 맺은 TRS 계약을 전면 재검사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운 바 있다. 우선 환매가 중단된 라임펀드의 예상 손실 규모와 TRS 계약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해 10월 라임이 환매를 중단한 모펀드는 ‘플루토 FI D-1호’(플루토), ‘테티스 2호’(테티스), ‘플루토 TF-1호’(무역금융펀드) 등 3가지다. 이 펀드는 각각 국내 사모사채, 국내 코스닥기업의 전환사채(CB) 혹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메자닌 상품, 해외 무역금융펀드 등에 투자했다. 또 라임이 지난달 추가 환매 중단 가능성을 인정한 크레딧인슈어드(CI) 펀드는 싱가포르 무역금융회사 로디움이 인수한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소개했지만 투자 자금의 상당 부분을 플루토와 무역금융펀드 그리고 그 외 국내 사모사채 등 다른 자산에도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환매 중단된 3개 모펀드의 당시 장부금액 1조7704억원 가운데 TRS 계약 규모는 68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실사가 마무리된 플루토 FI D-1호, 테티스 2호에서는 3200억원 규모의 TRS 계약이 이루어졌다. 두 펀드 관련 TRS 계약 규모는 신한금융투자가 1400억원, KB증권이 1000억원, 한국투자증권이 800억원이다. 두 모펀드에 투자한 120개 자펀드 중 TRS 계약이 포함된 펀드는 29개다. 세 번째 모펀드 무역금융펀드(플루토 TF)의 경우 투자액 6000억원 가운데 2400억원은 개인투자자 자금, 3600억원은 신한금융투자가 제공한 TRS 레버리지 금액이다.
또 라임자산운용은 지난달 추가 환매 중단 가능성을 인정한 크레딧인슈어드(CI) 펀드 투자금을 증거금으로 신한금융투자와 1500억원 규모의 TRS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4일 라임자산운용이 환매 중단 펀드 관련 실사결과를 발표하면서 TRS 계약 여부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TRS 계약 여부에 따라 개인투자자들에게 돌아갈 금액이 크게 갈린 탓이다. 실제 플루토 FI D-1호와 테티스 2호를 편입한 라임자산운용 자펀드 120개 가운데 증권사의 TRS를 사용한 29개는 회수된 자금이 증권사 TRS 자금 상환에 우선 쓰이게 되면서 일반투자자의 손실률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라임자산운용이 발표한 예상 손실률에 따르면 증권사는 TRS 자금을 대부분 건지는 반면 개인투자자는 TRS를 사용한 펀드에 가입했을 경우 투자금 전액을 날리게 되는 사례도 나왔다. 대표적인 사례는 라임 AI스타로 예상 손실률이 발표된 14일 기준 순자산보다 손실금액이 더 크기 때문에 투자자는 투자자금을 전액 날리게 됐다.
아직 실사가 시작되지 않은 CI펀드도 자금의 상당 부분이 이미 손실이 예상되는 플루토 등으로 흘러들어간 데다 TRS 계약이 이루어져 적지 않은 투자자 손실이 예상된다. CI펀드는 작년 4월부터 8월까지 판매가 이루어졌는데, 당시 라임자산운용이 이미 부실이 예상되는 자사 플루토펀드에 투자할 용도로 CI펀드를 출시했을 가능성도 제기된 바 있다. CI펀드의 투자 내역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년 7월까지 판매된 CI펀드 1~10호의 경우 모두 싱가포르 무역금융회사 로디움에서 인수한 매출채권에 51.47%, 플루토에 27.8%, 사모사채에 18.35%의 비중으로 투자했다. 다만 8월 이후 판매된 CI펀드의 경우 매출채권 비중이 갑작스럽게 80%대로 높아지고 플루토와 사모사채 투자 비중은 한 자릿수 대로 쪼그라든 바 있다. 지난해 7월은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수익률 돌려막기 의혹과 관련해 금감원이 조사에 착수한 시점이다. 이에 투자자들은 당국의 조사가 실시되자 라임자산운용이 부실자산인 플루토와 사모사채 비중을 줄인 것이라며, 라임 측이 애초부터 손실을 메우기 위해 돌려막기용으로 CI펀드를 조성하고 투자자를 모집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라임자산운용 TRS 계약을 집중 조사하는 까닭은?
이처럼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이 커지자 금융당국은 TRS 계약을 재점검하고 제도 관련 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양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라임자산운용의 TRS 거래에 대한 전면 재검사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라임자산운용과 펀드 판매사 그리고 TRS 서비스를 제공한 증권사 PBS 부서를 대상으로 TRS 계약이 이루어진 경위 등을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투자자들은 가입 당시 TRS 등 파생금융거래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으로 TRS 계약은 판매사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판단하는 데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당국이 이 같은 점검에 나선 배경에는 라임자산운용과 판매사 측이 부실을 숨기고 투자자를 기만하는 등 비행을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금감원이 발표한 라임 펀드 관련 조사 결과에 따르면 라임자산운용과 판매사인 신한금융투자는 무역금융펀드 자금을 투입한 미국 IIG펀드의 부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고객에게 알리지 않고 되레 수익률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금감원은 무역금융펀드에 한해 사기나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적용해 투자원금을 최대 100% 돌려주는 분쟁조정안도 검토 중이다.
이와 더불어 CI펀드의 경우도 1500억원가량의 TRS 계약이 걸려있는 데다 판매시점도 지난해 4~8월로 비교적 최근이라 라임자산운용과 판매사가 부실을 인지하고도 해당 펀드 자금을 무역금융펀드에 투자했다는 점에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라임자산운용과 신금투는 지난 2018년 11월 IIG펀드가 미 금융당국에 의해 청산절차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나 CI펀드 자금 일부를 무역금융펀드에 투자한 바 있다. 금감원은 이 같이 라임자산운용과 판매사의 불완전판매 및 사기 정황을 염두에 두고 TRS 계약이 이루어진 경위를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사모펀드의 레버리지용 TRS 계약 한도를 기존 사모펀드 레버리지 한도인 400%로 제한하는 등 제도개선안 마련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TRS 거래 등 장외파생거래에 대한 감시 체계도 더욱 체계화한다는 방침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10일 장외 파생거래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전담 조직을 신설해 집중적인 감독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거래소는 전담 조직인 파생상품시장본부 거래정보저장소(TR·Trade Repository) 사업실을 꾸리고 이르면 올해 10월부터 장외파생상품거래에 관한 세부 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로 저장하고 필요할 때 즉시 감독 당국에 보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출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