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차를 접할 때 용어가 익숙하지 않아 불편을 겪을 수 있다. 차의 종류만 하더라도 녹차, 홍차, 보이차는 대충 알겠는데 백차, 청차, 우롱차, 황차, 흑차, 숙차, 생차 등은 선뜻 친해지기 어렵다. 하지만 하나의 개념만 알면 의외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발효라는 개념이다.
찻잎에는 수백 가지 성분이 있는데 카테킨이라는 폴리페놀이 가장 중요하다. 카테킨은 차를 차답게 만드는 핵심 성분이다. 찻잎이 시들고 마르면 산화작용을 통해 다른 성분으로 변한다. 찻잎 뒷면에는 산화효소가 보호막 안에 갇혀있는데 이파리가 마르면 이 막이 깨지면서 효소가 활성화, 즉 산화작용이 시작된다. 차의 세계에서는 산화라는 어감이 좋지 않아 이를 보통 발효, 또는 숙성이라고 일컫는다.
발효가 어느 정도 진전되느냐에 따라 차의 맛과 향, 그리고 영양소마저 바뀐다. 그래서 차를 분류하고 특성지을 때 발효가 가장 의미 있는 기준이 된다. 일반적으로 차는 발효 정도에 따라 6가지 종류로 분류된다. 녹차(綠茶), 백차(白茶), 황차(黃茶), 청차(靑茶), 홍차(紅茶), 흑차(黑茶). 발효 정도에 따라 바뀌는 찻잎 색으로 명명되는 것이다.
백호은침
서호용정
보이차 홍인
쾌활 병차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녹차는 거의 발효가 되지 않은 차이다. 가장 자연 상태의 차로 이해하면 된다.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시든 찻잎을 비벼 산화효소를 나오게 한 다음 뜨겁게 열을 가해 죽인다. 효소는 일종의 단백질이기 때문에 높은 열을 가하면 기능을 못하게 된다. 이 작업을 살청(殺靑)이라고 한다. 100% 살청한 차는 더 이상 발효하지 않는다.
홍차는 녹차와 정반대에 있는 차이다.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찻잎을 자르거나 충격을 주어 산화효소를 조기 활성화시킨다. 제조과정에서 이미 발효가 다 되어 녹차와는 전혀 다른 차가 된다. 청차, 황차는 녹차와 홍차의 중간에 있는 차들이다. 살청작업을 통해 발효를 20~50% 정도 시키면 황차, 50~70% 정도면 청차가 된다. 청차는 우롱(烏龍)차라고도 한다. 까만 찻잎의 모양이 까마귀나 용과 같이 생겼다고 그렇게 부른다.
백차는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볶거나 비비는 과정 없이 자연 그대로 건조시켜 만든 차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효소가 천천히 작용하게끔 만든다. 전문가들 말에 의하면 백차는 작업이 가장 단순하지만 그렇다고 제조가 쉬운 것은 아니라고 한다.
흑차는 완전 발효된 차라는 점에서 홍차와 같지만 발효방법이 전혀 다르다. 홍차는 찻잎 속의 산화효소를 이용해 발효시키지만 흑차는 미생물, 즉 곰팡이를 이용해 발효시킨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보이차의 경우 위의 6가지 분류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진다. 차가 제조된 이후에도 계속 발효가 진행된다고 해서 후발효차라고 부른다. 그래서 차 전문가들은 보이차를 새로운 차로 규정하여 차를 7가지로 분류해야 한다는 말도 한다.
보이차는 다시 생차(또는 청차)와 숙차로 나뉜다. 보이생차는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산화효소를 적절히 살려놓아 세월이 지나면서 천천히 발효되도록 만든 차이다. 40, 50년 전 만든 차가 수억원에 팔린다는 이야기는 바로 보이생차를 두고 하는 말이다.
보이숙차는 보이생차가 천천히 발효되는 단점을 보완해서 만든 차이다. 단기간에 보이생차와 비슷한 성분의 차를 만드는 것이다. 찻잎을 톤 단위로 엄청 쌓아놓고 물을 뿌리면서 습도를 높이면 자체에서 생기는 미생물, 즉 곰팡이를 이용해 발효를 촉진시킨다. 이 작업을 악퇴(渥堆)라고 한다.
요즘에는 발효촉진을 위해 아예 외부에서 곰팡이를 투입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술을 빚을 때 누룩곰팡이를 넣는 것과 비슷하다. 숙차는 만드는 과정으로 보면 흑차와 비슷하지만 흑차보다 외부 곰팡이 활용도가 낮다. 실제 어떤 흑차들은 아예 금화(金花)라고 부르는 노란 곰팡이가 피어있는 것을 좋은 등급으로 친다.
이제까지 차의 기본 분류와 차이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독자입장에서는 좀 모호한 느낌도 있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차란 것이 수천 년 내려오면서 개념이 그때그때마다 조금씩 바뀌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 같은 종류의 차라 하더라도 어느 차창에서 어떤 찻잎으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품질이 천차만별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 입맛, 취향에 맞는 차를 마시면 된다. 가장 자연에 가까운 차를 마시려면 녹차가 좋다. 실제 6대 차 중에서 녹차의 소비량이 가장 많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생산되는 차들도 대부분 녹차이다. 중국에서는 서호용정, 벽라춘 같은 녹차가 유명하다. 맛이 아주 고소하고 좋다. 일본에서는 녹차를 우려마시는 것을 넘어서 아예 녹차 잎을 갈아 통째로 마시기도 한다. 일명 말차(抹茶)라는 것이다. 녹차는 카테킨이 발효되지 않고 살아있어 위장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빈 뱃속에 마시거나 위장이 약한 사람은 삼가는 것이 낫다.
위장이 약한 사람은 발효차가 좋다. 홍차나 오래된 보이차, 흑차가 거기 속한다. 보이숙차나 흑차는 어차피 곰팡이로 발효시켜야 하니 좋은 찻잎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 값이 싼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각종 미생물과 세균이 자랄 수 있는 환경에서 만들다보니 위생문제에 신경을 써야한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신뢰할 수 있는 대형차창에서 만든 것을 구입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중국여행가서 가이드 권유로 구매하는 보이차는 대부분 중소차창에서 만든 보이숙차이다. 그런 차는 조심하는 것이 좋다.
세월의 깊은 맛을 즐기고 싶으면 보이생차가 최고다. 깊은 산속 야생 찻잎으로 만든 좋은 보이차는 깊은 맛에 황홀한 느낌도 들고, 등에 한 줄기 땀이 날 때도 있다. 다만, 그런 차는 엄청 비싸다.
최근 들어 인기를 끄는 차는 백차다. 이론상 오랫동안 발효가 가능해서 보이생차와 빗댈 수 있기 때문이다. 백차 광고를 보면 3년 지나면 약이 되고, 7년 지나면 보물이 된다는 구절도 나온다. 아직 검증이 안 되었기 때문에 좀 두고 볼 일이다. 다만, 백차는 열을 내리는 효과가 있어서 여름에 좋다고 한다. 실제 값도 저렴한 편이고 맛도 괜찮다. 새순으로만 만든 것은 백호은침, 다 자란 잎으로 만든 것은 수미 또는 공미, 그 중간에 있는 것을 백목단이라 부른다.
마시기 편하고 청량감을 느끼고 싶으면 청차, 즉 우롱차가 좋다. 대홍포, 철관음, 봉황단총등 종류가 엄청 많다. 초보자가 안전하게 마시고 싶으면 대만 우롱차, 즉 대우령, 동정오룡, 동방미인 등도 괜찮다. 황차는 그리 대중적이지 못해 접하기가 어렵다.
어떤 차를 마실지는 개인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진정한 차 생활을 즐기려면 이 차, 저 차를 마시면서 자기 나름의 안목을 키워야 한다. 국내에 전문 찻집도 많이 생겼고 온라인 매장도 많아졌기 때문에 정보를 얻는 것이 어렵지 않다. 차에 관한 블로그도 많다. 각자 하기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