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주(IPO) 시장에서 바이오 기업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녹십자 계열의 세포치료제 개발업체 녹십자랩셀에 이어 동아쏘시오홀딩스 계열의 원료의약품 개발업체 에스티팜이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의 공모가는 당초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에서 결정됐다. 연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헬스케어 등 굵직한 대어급 IPO가 등장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 데다, 사상 최대 공모주로 기대를 모은 호텔롯데 IPO가 연기되면서 실탄을 확보해온 많은 기관투자가들이 바이오 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에 따라 연초부터 공모주 시장에 불어온 ‘바이오 열풍’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에이프로젠이 지난 5월 한국거래소에 코스닥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하고 본격적인 상장 작업에 착수했다. 2000년에 설립된 에이프로젠은 코스닥 상장사인 슈넬생명과학의 최대주주로, 레미케이드(관절염치료제)·아라네스프(빈혈치료제)·허셉틴(유방암치료제) 등의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고 있다. 설립 이후 줄곧 적자를 내오다 지난 2014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번 공모 규모는 2000억~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공모 자금은 바이오시밀러 후속 제품인 독자적 임상 개발에 활용할 계획이다.
에이프로젠은 올 1분기 매출액 184억원에 영업이익 99억원을 달성했다. 지난해(매출액 197억원, 영업이익 25억원)와 비교하면 1년치에 달하는 매출액을 1분기에 거둔 셈이다. 앞서 일본 니찌이꼬제약과 바이오시밀러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해 올해 영업이익은 3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번 상장을 발판 삼아 글로벌 신약개발 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복안이다. 동시에 오는 2017년 말까지 400억원을 투입해 충청북도 오송에 자회사인 ABA바이오로직스 공장을 세울 예정이다. 공장이 완공되면 바이오시밀러 원료를 연간 2000kg까지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대형 바이오 기업들도 연내 IPO를 추진 중이어서 바이오 열풍이 한층 가속화될 전망이다. 삼성그룹 바이오계열사이자 국내 최대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업체(CMO)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르면 11월께 유가증권 시장에 입성한다. 2011년 4월 설립 이후 5년 만에 상장을 추진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예상 시총은 10조원 안팎에 달한다. 공모금액도 3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증시에 신규 투입되는 삼성그룹주라는 측면에서 공모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번 상장과 관련해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바이오 사업의 성장에 필요한 투자 자원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며 “이를 위해 좋은 투자자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과 향후 시장 지배력 강화 전략을 주간사 선정의 주요 요소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5월 상장 주간사로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 등 국내 증권사 2곳과 씨티글로벌마켓증권, JP모간 크레디트스위스(CS) 등 외국계 증권사 3곳을 선정했다.
코스닥 시총 1위 기업인 셀트리온의 자회사 셀트리온헬스케어도 연내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사는 셀트리온이 개발한 바이오의약품의 해외 수출 물량 전체 유통을 담당하고 있다.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인 램시마가 유럽에서 처방이 증가하고 미국 판매허가 승인을 받으면서 회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상장 후 기업가치는 2조원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셀트리온 매출이 증가할 때마다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재고자산이 늘어 사실상 재고를 떠안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얼마나 해소하느냐가 공모 흥행을 결정지을 것이란 게 업계의 시각이다.
JW생명과학도 지난 4월 거래소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하며 연내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JW생명과학은 국내 수액(링거) 시장의 40%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어 JW중외그룹의 알짜 계열사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매출액은 1259억원, 영업이익은 18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매출액(1095억원)과 영업이익(128억원)에 비해 각각 15%와 46.1% 증가했다. JW생명과학의 상장 후 시가총액은 30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되고 있다.
2년 전 CJ제일제당에서 분가한 CJ헬스케어 역시 연내 증시 입성을 목표로 상장 작업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최근 NH투자증권과 신한금융투자를 공동 주관사로 선정했다. OTC(일반의약품) 사업 비중을 줄이는 대신 신약과 제네릭(복제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 제약사인 뤄신과 1000억원 규모의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CJ-12420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은 데 이어 최근에는 고지혈증 복합제 시장에 진출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녹십자랩셀·에스티팜 공모가 희망가격 웃돌아
2016년 6월 13일, 녹십자그룹 계열의 세포치료제 개발업체 녹십자랩셀은 국내외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한 결과 공모가를 1만8500원으로 확정했다. 이는 당초 주당 희망가격(1만3600~1만5900원)을 훌쩍 넘어선 수준이다. 이에 따라 전체 공모액은 370억원, 상장 후 시가총액은 1952억원에 달한다.
이번 수요예측에는 국내외 924개 기관이 참여했다. 그중 860개 기관이 1만8500원 이상의 가격을 제시했으며 1만8500원 미만의 가격을 적어낸 기관은 56개에 불과했다. 참여 경쟁률은 734대 1을 기록했다.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이익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상장 주간사 관계자는 “참여 기관 대부분이 희망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적어냈으나 시장과의 신뢰 형성을 고려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공모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녹십자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녹십자랩셀은 NK세포치료제 개발과 바이오 물류 등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NK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면역 세포를 말한다. 최근에는 글로벌 기업인 옥스포드 바이오 메디카와 함께 차세대 치료제 연구를 진행하는 등 난치암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항암치료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박복수 녹십자랩셀 대표는 “당사가 개발한 NK세포치료제 ‘MG4101’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한다”며 “상장을 발판 삼아 신개념 세포치료제 상용화를 앞당겨 글로벌 바이오 생명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하루 뒤인 6월 14일에는 동아쏘시오홀딩스 계열의 원료의약품 개발업체 에스티팜이 공모가를 2만9000원으로 확정했다. 앞서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한 뒤 당초 제시한 주당 희망가격(2만4000~2만7000원)보다 높은 가격에 공고가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전체 공모액은 1353억원, 상장 후 시가총액은 541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앞선 수요예측에는 국내외 총 955개 기관이 참여했다. 공모가 밴드를 초과한 3만2000원 이상~3만5000원 미만의 가격을 제시한 기관이 255개로 가장 많았다. 그보다 높은 3만5000원 이상의 가격을 적어낸 기관도 215개에 이르렀다. 2만9000원 미만의 가격을 제시한 기관은 24개에 불과했다. 참여 경쟁률은 717.4대 1을 기록했다. 전일 녹십자랩셀에 이어 또다시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에스티팜은 지난 2008년 8월 유켐 주식회사로 설립됐다. 2010년 6월 동아쏘시오그룹에 공식 편입됐고 같은 해 9월 삼천리제약을 흡수합병하면서 상호를 에스티팜으로 변경했다.
신약이나 복제약을 제조하는 데 들어가는 원재료(원료의약품) 개발을 주력 사업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380억원, 당기순이익은 252억원을 기록했다. 에스티팜은 이번 공모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시설 투자와 차입금 상환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상장을 추진하는 바이오 기업들이 잇따라 수요예측 흥행에 성공하면서 공모주 시장에서 ‘바이오 열풍’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애초에 제시한 공모가 밴드가 기업 가치에 비해 적정한가 하는 문제가 있어 이번 수요예측 결과만 놓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녹십자랩셀에 이어 에스티팜에도 많은 기관투자가들이 몰린 점을 감안하면 공모주 시장에서 바이오 기업의 인기는 여전하다”고 전했다.
▶기술 수익 연결에 시간 걸려 단기적 관점에서 투자해야
사상 최대 IPO로 예상돼온 호텔롯데가 롯데그룹의 검찰 수사로 상장을 포기하면서 공모주 시장에서 바이오 기업에 대한 인기가 한층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호텔롯데는 지난 1월 한국거래소에 상장심사를 통과했으며 예정대로라면 6월 말 상장을 완료해야 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 등으로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증권신고서를 지난 6월 13일 철회했다. 금융투자업계는 이번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호텔롯데가 재상장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거래소 상장규정에 따르면 심사 대상기업이 최대주주와 계열사에 대해 내부거래와 지급보증 등의 행위로 부당이익을 제공하거나 회계처리 기준 위반(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면 신청을 기각할 수 있다. 롯데그룹의 총수 일가와 임원이 계열사 몰아주기, 자산 편법매입, 분식회계 등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밝혀지면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거래소의 심사를 통과하기 어렵게 된다. 상장이 무기한 연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자산운용업계에서는 호텔롯데 공모에 대비해 모아둔 자금들이 성장성이 높은 바이오 기업으로 유입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호텔롯데 공모 규모가 사상 최대로 예상돼온 만큼 많은 자산운용사들이 이에 대비해 실탄을 준비하고 있었다”며 “하지만 상장 자체가 무산되면서 다른 IPO로 자금이 몰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들이 바이오 기업 공모주에 투자할 때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 관계자는 “국내 증시가 조정 국면에 있지만, 바이오 업종의 성장성은 분명하다”며 “다만 업종 특성상 기술이 수익으로 이어지는 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리다 보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유가증권 시장의 공모 규모는 약 9조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10년 이후 사상 최대 실적이어서 공모주 투자자들의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 5월 김원대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부이사장은 “올해 초대형 우량기업의 상장 추진으로 일명 ‘IPO 빅딜’이 이어지면서 공모 금액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