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의 최소 가입 금액이 낮아지고 운용사 설립요건이 완화되면서 헤지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으로 사모펀드 설정액은 225조원을 넘어섰다. 2012년 121조원이었던 사모펀드 설정액은 작년 말 199조원까지 늘어났고, 올해 상반기에만 25조원이 넘게 들어왔다.
특히 2011년 12월 탄생한 한국형 헤지펀드(이하 헤지펀드) 규모는 올해 5월 말 기준으로 5조1547억원이다. 2011년말(설정액 2000억원)에 비해 설정액이 25배 커졌다. 한국형 헤지펀드 숫자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작년 말 46개에 불과하던 펀드 수는 이미 100개를 넘어섰고 향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헤지펀드 운용사 설립 요건이 완화되고, 투자자 최소 가입액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아진 게 시장 확대로 이어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 8일까지 23개 자문사가 운용사로 전환했다. 운용사 입장에서도 헤지펀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고객 기반과 수익원의 다변화를 꾀할 수 있는데다, 공모펀드와 달리 일정 기간이 지나야 환매가 가능해 운용 변동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형 헤지펀드는 주식·파생상품·채권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 고수익을 꾸준히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모펀드다. 49인 이하 투자자들이 최소 1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형태로, 부유층과 금융지식이 상당한 투자자들이 주 고객층이다. 공모펀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500만원 이상이면 투자 가능해져
금융당국은 계속 헤지펀드 판을 키울 생각이다. 5월 29일 금융위가 발표한 ‘펀드상품 혁신 방안’에 따르면 헤지펀드에 대한 공모펀드의 재간접 투자 허용이 담겨 있다. 기존 헤지펀드는 운용 과정에서 차입 비율에 따라 최소 1억원(레버리지 200% 이하) 내지 3억원(레버리지 200% 초과)이 있어야 투자가 가능했다.
하지만 헤지펀드에 재간접으로 투자하는 공모펀드가 허용되면 최소 500만원이면 투자가 가능해진다. 다만 안정성 강화 차원에서 재간접 공모펀드는 최소 5개 이상의 헤지펀드에 분산 투자하도록 했다.
사실 헤지펀드에 투자할 정도라면 이미 기존 공모·사모펀드들은 대체로 한 번씩 섭렵했을 가능성이 높다. 헤지펀드를 투자한다는 것은 결국 자금 여력도 되고 좋은 펀드를 스스로 고를 선구안도 갖췄다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특히 투자전략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보통의 투자내공으로는 섣불리 도전하기 쉽지 않은 측면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헤지펀드의 매력은 일단 투자 가능한 대상이 공모펀드에 비해 폭넓기 때문에 증시가 부진할 경우 대체재를 찾아 수익을 올린다는 장점이 있다.
즉 돈이 된다면 투자 영역 구분이 없다는 의미로, 심지어 날씨에 베팅하는 펀드가 있을 정도다. 6월 13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1분기에 헤지펀드 자산 규모가 150억달러 감소했지만 날씨 투자 전문 헤지펀드 ‘큐뮬러스(Cumulus)’만 부진을 피해갔다고 보도했다.
큐뮬러스는 날씨 파생상품 전문가인 피터 브루어가 2006년 설립한 헤지펀드로 누적 수익률이 970%에 달한다. 설립 첫 해에만 67% 수익률을 올렸고 2011년에는 99.6%의 수익률 대박을 터트렸다.
트레이더와 전문 기상학자들을 고용해 날씨 예측에 대한 차이와 그에 따른 차익거래를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쓴다.
▶운용사 선택이 투자성공 좌우
다만 막상 헤지펀드에 투자하려고 보면 어느 운용사를 선택할지부터 난감하다. 기존에 유명한 금융사들도 있지만 매우 낯선 이름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실력 있는 중소형 투자자문사들이 대거 헤지펀드 운용사로 전환하면서 독특한 이름의 회사들이 늘어났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신생업체들은 아직 트랙레코드가 없기 때문에 언론에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 이름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며 “단순히 튀는 이름이 아니라 그 속에 투자 전략을 내포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예를 들어 유리치자산운용은 ‘에베레스트 펀드’를 선보였다. 고객의 자금을 등에 짊어지고 고지로 가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타이거자산운용은 설정일을 펀드 이름으로 정했다. 빠르게 시장에 대응해야 하는 헤지펀드 시장에서 앱솔루트자산운용은 펀드 이름을 ‘거북이’라고 붙였다. 또 대형증권사들이 조만간 헤지펀드 시장에 대거 뛰어들 것으로 보여 업계 전통강자와 신생업체간의 경쟁도 관전 포인트다. 미래에셋증권은 6월초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인가를 받아 헤지펀드 거래·자금지원 등을 맡는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 사업이 가능해졌다.
그 외 유명 증권사들도 진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대형사들의 ‘네임밸류’만 믿고 돈을 맡기는 투자자도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투자자들은 운용중인 펀드 수익률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보통 펀드는 장기 수익률을 보고 고르라고 조언을 많이 하지만 이를 헤지펀드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헤지펀드 설정기간이 1년 정도에 불과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절대수익을 안겨줄 것처럼 생각했던 헤지펀드도 성적이 극과 극이라는 점이다. 6월 14일 기준(이하 펀드 수익률은 모두 6월 14일 기준) 연초 대비 코스피 수익률은 0.5%에 불과하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 달 이상 수익률 계산이 가능한 96개 헤지펀드 중 같은 기간 아웃퍼폼(시장수익률 상회)한 펀드는 37개에 불과했다. 펀드의 절반 이상은 시장 흐름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대신에버그린롱숏·멀티하이브리드’ ‘브레인태백·한라·백두’ 등 6개 헤지펀드는 올해 수익률이 -10% 아래로 밀려났다.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내 헤지펀드들은 상당수 롱숏(싼 주식을 사고 비쌀 때 파는) 전략을 구사하는데 올해는 소위 대박이 난 특정 섹터가 없어 큰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결국 어떻게 수익을 내는지, 즉 운용전략을 잘 살펴봐야 한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난 2012년 투자자문사로 출범한 라임자산운용은 시장 트렌드 분석 중심의 종목 발굴과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메자닌 투자에서 탁월한 운용역량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년 12월 23일에 출시한 대표펀드인 ‘라임모히토’는 올해 6.79% 수익률을 올렸다. 유망 중소형주 발굴 능력이 탁월하다고 알려진 디에스자산운용이 올해 2월 2일 출시한 헤지펀드 ‘디에스 秀’와 ‘디에스 智’ 펀드는 각각 10.96%, 7.03%의 높은 수익률을 내며 순항 중이다. 디에스운용은 ‘은둔형 고수’로 불리는 장덕수 회장과 위윤덕 대표가 이끌고 있다. 공모주 투자를 주로 하는 타이거자산운용의 ‘타이거 0212 공모주’(올해 2월 24일 설정)와 파인밸류자산운용의 ‘파인밸류 IPO플러스’ 펀드(올해 1월21일 설정)도 각각 18%대, 14%대 수익률로 전체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 헤지펀드 운용사 대표는 “펀드 숫자가 많은 롱숏투자를 기본으로 하는 동시에 다양한 전략을 추구하는 펀드들에 분산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헤지펀드 시장 고수들 속속 진출
향후 운용고수들이 헤지펀드 시장에 진입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과거 공모펀드 전성기를 일궜던 이들이 헤지펀드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가 관전포인트다. 증권자 관계자는 “운용사 입장에서도 이들의 명성 때문에 빠르게 자금을 모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누구누구 펀드로 불리면서 성적도 좋으면 금상첨화지만 과거 방식을 고집할 경우 선전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표적으로 미래에셋 펀드 신화를 이끈 구재상 전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은 지난 5월 케이클라비스운용을 설립해 사모펀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케이클라비스운용은 올 하반기 CB·BW에 투자하는 메자닌 사모펀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헤지펀드 전문가인 서재형 전 대신자산운용 대표를 영입하며 진영을 갖추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모펀드 부문에서는 신규 수익원이 거의 없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업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투자 고수들의 헤지펀드 시장 진출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