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한낮엔 벌써 반소매 차림 사람들까지 보일 정도다. 그 분위기를 타고 홍대 근처를 거닐다 정통 이탈리아 피자와 여러 와인을 갖춘 식당이 있다고 해서 갔다. 합정역 근처 ‘빠넬로(Panello)’에 들어서니 맛난 음식에 이끌려 운동과 고시를 포기했다는 젊은 부부 셰프가 반겼다. 부부는 이탈리아 본토에서 수없이 먹어보고 공감한 음식의 맛을 재현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여느 이탈리아 레스토랑과 달리 메뉴는 단출했다.
이날은 미국 로버트 몬다비와 칠레 에라주리즈 가문이 합작한 칠레의 신흥 와이너리 깔리테라의 화이트와인 ‘트리부토 샤도네’와 레드와인 ‘에디시옹 리미타다 M’을 들고 갔다. 윤성원 셰프는 ‘모르타델라 포카챠’ 피자와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추천했다. 거기에 ‘T본 스테이크’를 더했다.
입가심이나 할 겸 먼저 트리부토 샤도네를 땄다. 올리브 아로마가 살짝 풍기는 상큼한 과일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한 모금 입에 머금으니 적절한 산도와 어우러진 진한 과일 맛이 일품이다. 과일향이 느껴지되 너무 달지 않았고 약하지 않은 산도와 미묘함을 더해주는 미네랄 풍미가 균형을 이뤘다.
먼저 화덕에서 잘 마른 참나무 장작을 때 구워낸 두툼한 피자가 나왔다. 도우의 구수한 냄새가 코를 벌름대게 했다. 안에 들어간 햄이나 체리토마토, 루꼴라, 로메인 등 채소들은 하나 같이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
싱싱한 재료 맛 느껴지는 피자
얇고 담백한 도우는 부담 없이 씹혔고 거기에 담긴 채소들은 본래의 신선한 맛을 고스란히 전해줬다. 윤성원 셰프는 채소는 보성에서 부친이 직접 기른 것을 올려다 쓴다고 했다. 도우는 밀가루와 물, 소금으로만 반죽한 뒤 장시간 숙성시켜 만드는데 나폴리 피자 본연의 맛을 유지하려고 신선한 이탈리아산 모짜렐라와 카푸토 밀가루만을 쓴다고 했다. 고소한 피자에 신선한 와인을 곁들이니 산뜻한 봄날 분위기가 살아나는 듯했다.
이어 까르보나라가 나왔다. 그런데 한국의 많은 이탈리아 식당이란 데서 만나는 것과는 달랐다. 걸쭉한 크림은 보이질 않고 꼬들꼬들한 파스타가 그대로 보였다. 이탈리아식 베이컨이라고 할 관찰레와 뻬꼬리노(양젖치즈) 목초란 등으로 만든 정통 로마식 까르보나라는 크림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몇 가닥을 말아서 입에 넣었다. 느끼한 크림 맛이 아니라 살짝 구운 돼지고기 맛이 먼저 전해졌다. 면은 씹을수록 고소했다. 셰프는 이탈리아 현지의 맛을 내려고 직접 관찰레를 만들어 30일 동안 숙성시켜 쓰는데 조미료는 넣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맛이 더 고소하게 느껴졌다. 튀긴 삼겹살을 곁들인 느낌이라고나 할까. 거기에 트리부토 샤도네를 한 모금 마셨는데 잘 어울렸다. 화이트와인이지만 산미나 향신료향이 짙어 약간의 돼지고기 요리와 무난하게 어울렸다.
중후한 느낌의 시라 와인
다음엔 시라를 주축으로 만든 레드 와인 ‘에디시옹 리미타다 M’을 땄다. 제임스 서클링이 95점을 줬다더니 풍미가 대단했다. 시라 품종치고는 아주 중후한 느낌을 줬다. 잔을 한 바퀴 돌리니 살짝 노간주나무 열매 향이 섞인 짙은 향신료향이 코끝을 찔러왔다. 한 모금 머금으니 잘 녹아들었지만 여전히 묵직한 느낌의 탄닌과 적절한 산도와 어우러져 다가왔다.
메인인 T본 스테이크는 이미 피자와 파스타를 맛본 뒤라 그런지 셋이 나눠 먹어도 될 만큼 상당히 커 보였다. 한 조각 잘라 입에 넣으니 고소하고 짙은 맛을 보여줬다. 느끼한 맛을 배제하려고 마블링이 심하지 않은 국내산 육우를 골라 쓴다는데 씹을수록 깊고 고소하며 살짝 단맛까지 났다. 토스카나식으로 구워냈다는데 올리브 오일과 구은 소금을 찍어 먹어도 좋았다.
다시 시라 한 모금을 더했다. 짙은 향신료 향과 묵직한 탄닌이 입안을 개운하게 씻어줬다. 이어 목안 깊은 곳으로부터 농축된 느낌의 진한 과일향이 피어올랐다. 그렇게 새 봄의 추억 하나를 더했다.
빠넬로 손님 1인당 와인 1병까지 콜키지 프리라서 와인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아담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전체적으로 가격이 합리적인데 와인 리스트엔 백화점가보다 싼 게 많이 보인다. T본 스테이크는 700g이 7만원. 1kg짜리는 예약해야 준비해 주는데 10만원. 화덕에서 참나무 장작으로 구워내는 피자가 간판 메뉴이고 까르보나라나 스테이크도 꽤 괜찮다. 점심은 12~15시, 저녁은 18~24시. 주말은 12~24시까지 영업한다. 라스트 오더는 마감 1시간 전. 매주 월요일은 쉰다. 합정역과 상수역 중간 골목인 서교동 400-22에 위치해 있으며 주차는 인근 공영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02)322-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