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서부 나이지리아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져있다. 보코 하람(Boko Haram)이라는 과격단체가 지난 4월 중순 한 공립여학교를 급습해 중학생 276명을 납치했다. 이어 5월 초에도 11명의 소녀들을 납치했다. 보코 하람의 지도자는 자신이 제작한 동영상에서 “알라께서 내게 여학생을 데려다 팔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소녀들을 개종시킨 후 결혼시키거나 노예로 팔 것”이라고 위협했다. 동영상에서는 강제적으로 이슬람을 받아들인 소녀들이 히잡(hijab: 무슬림 여성의 두건)을 쓰고 쿠란의 첫 장을 낭송하는 장면도 등장했다. 실제로 일부 소녀들이 이미 12달러에 보코 하람 대원들의 신부로 팔리거나, 카메룬, 차드 등 인근 국가로 인신매매되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국제사회는 보코 하람의 반인도적 범죄에 경악했다. 유엔 사무총장과 교황은 사건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즉각적인 인질석방을 촉구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강대국도 전문가와 장비를 파견해 수색 및 구출작전을 지원했다. 나이지리아 정부와 군의 무기력한 대응에 대해 국제사회와 나이지리아 국민의 비난도 이어졌다. 전 세계 주요 도시들에서는 국제사회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시위도 연이어 발생했다.
“서구식 교육은 죄악”
보코 하람은 ‘금지된 죄악’이라는 의미의 아랍어 하람과 ‘가짜’라는 서부아프리카의 하우사어 보코 두 단어로 된 과격단체의 이름이다. 보코는 후에 이 조직의 주요 공격대상인 서구식 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 ‘이슬람에 따르지 않은 서구식 교육’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단체는 2002년 결성된 나이지리아의 과격세력이다. ‘서구식 교육은 죄악’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샤리아(Sharia: 이슬람 법)에 의해 통치되는 이슬람국가 및 사회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가진 반정부 군벌이다.
특히 2009년부터 나이지리아 북부를 중심으로 정부군과 맞서며 무차별 테러방식을 통해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재까지 약 4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보코 하람은 각종 폭탄공격, 요인암살, 인질납치 등을 통해 공포를 조장하면서 장악한 지역을 사실상 통치하고 있다. 더불어 바지와 티셔츠도 금지하는 등 강력한 반서구적 생활방식을 강요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때 이슬람식으로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했던 조직의 이름을 따 나이지리아의 탈레반(Taleban)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단체 하마스의 무력 시위장면
가난과 차별에 대한 분노
보코 하람은 테러단체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차별적인 테러를 감행하고 있다. 테러는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나이지리아의 역사와 경제적 상황을 파악한다면 이들이 왜 극단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지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우선 나이지리아는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다. 인구 1억7500만명 중 약 9000만명이 무슬림이다. 아랍 국가들을 제외하면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이슬람 국가다. 이들 무슬림은 대부분 나이지리아 북부에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의 부가 최대도시 라고스를 포함한 남부에 집중되어 있다. 유전이 남부에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육, 보건, 상하수도 등 복지 및 사회 하부구조도 대부분 남부에 투자되어 왔다.
1인당 GDP가 남부 주요도시의 경우 구매력 기준 2만달러가 넘지만, 북부의 대부분 지역은 1000달러도 되지 않는다. 산업시설의 부재 등으로 인해 북부지역은 실질실업률이 40%를 넘는다.
역사적으로도 북부 지역은 이슬람국가가 있던 곳이다. 북부 나이지리아, 니제르 그리고 남부 카메룬을 아우르는 소코토 이슬람국가(Sokoto Caliphate)가 1804년에 설립되었다. 그 이전에는 15세기와 16세기에 송하이(Songhai) 이슬람제국이 이 지역 일대를 다스렸다. 소코토 이슬람국가가 1903년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분열되면서 현재의 나이지리아가 등장하게 된다. 유럽의 제국주의에 의해 이슬람국가가 사라지고, 영국에 영향을 받은 서방식 체제가 등장한 것이다. 이후 나이지리아의 정치경제는 기독교인들이 밀집한 남부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카이로 시내의 황금섬에 이슬람 사원과 기독교 교회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이슬람주의’ 정치무장단체 보코 하람
보코 하람은 이슬람주의(Islamist) 과격테러단체다. 이슬람을 정치적인 이념으로 설정하고 북부지역에서 이슬람 국가를 재건하려는 정치무장단체다. 이 과정에서 무자비한 테러를 감행한다는 점에서 테러단체로 분류된다. 북부지역에서 권력을 장악하려는 세력으로 다만 주민의 다수가 무슬림이라는 점에서 가장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이념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슬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지, 이슬람의 종교적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는 단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슬람에서 언급하는 지하드(jihad: 성전)는 방어적 성격이 강하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에도 “저들이 먼저 너희와 싸움을 걸어온다면 살해하라. 이것이 신앙을 억압하는 저들에 대한 대가”라는 구절이 있다. 외부의 침입과 점령으로부터 이슬람의 땅을 방어하기 위해 전투에 임하라는 것이다. 더불어 성전에 있어서도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민간인을 살상하거나 그들의 재산을 유린하는 것은 금지된다. 자살폭탄테러도 이슬람의 교리에 어긋난다. 이슬람 종교는 자살을 금한다. 창조물 인간의 목숨을 결정할 수 있는 주체는 창조주 알라일 뿐이다.
따라서 보코 하람, 탈레반, 알-카에다 등 이슬람주의 과격테러단체들은 경전에 등장하는 일부 구절을 확대해석 및 과장해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집단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거의 모든 이슬람국가의 최고 종교기관들이 보코 하람의 여학생 납치 등의 행위를 ‘비이슬람적’이라고 비난하고 인질석방을 촉구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나이지리아 여학생 구출작전에 동원된 경찰장비
국가 창설자 무함마드
보코 하람 등을 포함해 상당히 많은 수의 이슬람주의 단체들이 중동에 존재한다. 테러를 행하는 과격주의 단체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온건적인 성향을 보인다. 이슬람을 정치이념으로 내세우면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차지하겠다는 일종의 정당 기능을 하고 있는 단체들이다.
대표적인 예로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이나 튀니지의 알-나흐다(al-Nahda)당이 있다. 알-나흐다는 현지 튀니지의 사실상 집권세력이다. 무슬림형제단도 이집트의 집권세력이 되었지만 2013년 7월 군부쿠데타로 축출됐다. 두 세력 모두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합법적인 집권정당이 되었다. 사회를 점진적으로 이슬람화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폭력을 지양하고 제도권 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과격주의든 온건주의든 중동 내 이슬람주의 단체가 많은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많은 지지를 쉽게 끌어낼 수 있는 이념이 이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이슬람이 종교인 동시에 정치이념으로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슬람은 태동에서 그 정치적 이념으로서의 기능이 생겨났다. 이슬람을 창시한 사도 무함마드가 단순히 종교지도자가 아니라 이슬람국가를 창건한 정치지도자 역할도 수행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를 통합한 무함마드는 이슬람국가를 설립했다. 그리고 본인이 국가의 수장으로서 지역을 통치했다.
무슬림들은 무함마드와 그의 4명의 후계자인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그리고 알리가 통치했던 시대를 가장 ‘완벽한’ 중동의 국가 및 사회체제로 간주한다. 단순한 종교적 가르침이 아니라 실제 역사에 존재했던 가장 강성했고 완벽했던 국가였다. 이 기간 동안 무슬림들은 북아프리카와 현재의 중동지역 전체를 정복해, 거대한 이슬람제국을 형성했다. 알라의 가르침에 따라 국가와 사회를 운영한 결과 가장 이상적이고 힘이 센 제국이 만들어졌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위기 시 등장하는 과격주의
이슬람에서 원리주의가 사회전반에 확산되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라가 계시한 원칙과 율법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고 강력한 제국을 형성했던 무함마드와 4명의 후계자 시대가 ‘이상’이 아니라 ‘실제’로 역사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를 비판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무슬림들은 이슬람세계가 약화되어 유럽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현재까지도 서방에 뒤처져 있는 원인이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고 지나치게 서구화한 지배계층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직업도 없고, 가난에 찌들고, 차별을 받는 빈곤층들은 현재를 부정하는 이런 이슬람 원리주의에 쉽게 빠져들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현재의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으로서 다시 이슬람의 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 원리주의는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정치적 이념이다. 이런 이념을 주창하는 많은 단체들 중에서 일부 과격세력들이 비인도적인 테러를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1400년 이슬람 역사에서 이슬람과격주의가 등장한 시점은 제한적이다. 유럽의 침공으로 시작된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까지의 십자군 전쟁 기간, 이슬람제국 압바시야 왕조가 몽골에 의해 멸망하고 수도 바그다드가 유린되었던 13세기, 그리고 유럽의 제국주의로 중동이 식민지화된 19세 이후다. 그 외의 기간 동안 이슬람 역사에는 과격주의가 없었다.
사우디가 이슬람의 기준?
이슬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흔히 사우디아라비아를 떠올린다. 중동인들과 이슬람을 논하면서 사례를 들 때 사우디의 여성운전 금지, 여성의 복장, 종교경찰 등을 언급하곤 한다. 그러나 여성의 운전을 금지하는 나라는 57개 이슬람국가 중 사우디가 유일하다. 제도적으로 종교경찰을 두고 있는 나라도 사우디뿐이다. 외국인에게도 전신을 가리는 아바야(abaya: 머리부터 상체를 덮는 검은 천)를 강요하는 나라는 사우디와 이란뿐이다.
이슬람 종교가 등장한 곳이라는 점에서 사우디가 가장 정통 이슬람 원칙을 적용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사우디는 이슬람 종교를 국가의 정치이념으로 채택해 극단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곳이다. 사우드 왕족이 국가통합을 위해 전쟁을 시작했을 때 이념적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금욕적이고 원리주의적 성향을 가진 이슬람학자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Muhammad Ibn Abdal-Wahab)과 동맹관계를 구축했다. 이후부터 현재까지도 사우드 왕족은 개인과 사회를 통제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 원리주의를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사우디의 이슬람은 다른 57개 이슬람국가에 비해 가장 극단에 위치한다. 사우디의 사례를 언급하면 다른 국가의 무슬림들은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