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담동과 신사동 가로수길 등 이른바 핫한 공간에 들어서면 쉽게 눈에 띄는 백(Bag)이 있다. 사각 모양에 넉넉한 크기, 간결한 디자인과 탄탄한 가죽이 실용적인 이 백은 내로라하는 셀러브리티와 한다하는 패셔니스타들에겐 이미 잇백이다. 하지만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눈에 띄는 로고나 그 흔한 브랜드 표시도 없는 이 제품의 인기가 갸우뚱 한 것도 사실. 그런데 왠지 통쾌하다. 과연 이유가 뭘까.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이러니 한 일이지만 요즘 트렌드는 큼지막한 로고나 이미 알려진 브랜드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나만의 무엇이에요. 자연스럽고 실용적인 트렌드가 대세이니 알 만한 명품 브랜드들도 슬쩍 로고 가리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요.”
또 다른 패션업계 관계자는 아예 대놓고 브랜드를 이야기한다. “루이비통, 펜디, 구찌, 크리스챤 디올의 공통점이 뭘까요. 로고가 훤히 드러나거나 로고를 이용한 프린트가 강렬한 명품브랜드죠. 또 하나는 지난해 국내 실적이 저조하다는 겁니다. 강남스타일이 변하고 있다는 방증이죠. 그 틈새를 몇몇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제대로 공략하고 있어요.”
강남 패셔니스타가 권하는 잇백 스타일
길고 긴 서론의 주인공은 국내 브랜드 타마(THAVMA)의 크리스타(Christa) 라인. 2010년 브랜드를 론칭한 이수정 대표는 “가장 반응이 좋은 백인데, 디자인이 간결하고 퀄리티가 좋아 찾는 분이 다시 찾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방송가와 영화계, CF 업계에서 1대 스타일리스트로 활약한 이 대표는 이른바 국내 명품 과도기에 20~30대를 보낸 ‘패션 얼리어답터’다.
“한때 페라가모 구두와 프라다 나일론백이 패션공식이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 20~30대를 보냈는데, 패션에 민감하고 트렌드를 선도하는 우리나라가 왜 이런 제품을 들지 못할까 안타까웠어요. 한국의 브랜드 파워가 높아지면 우리 브랜드가 세계로 진출하는 시기가 꼭 올 거라고 생각했죠. 희망이 보이고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갓 세 살이 된 타마에게 그간의 성장통은 만만치 않았다. 마음에 차지 않는 디자인은 보완을 거듭했고 최고의 가죽을 얻기 위해 이탈리아 현지로 날아가야 했다.길을 찾아 돌아오는 과정은 멀고 험했지만 열매는 달콤했다. 어쩌면 타마의 성장은 이 대표의 삶과도 궤를 같이 한다.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할 땐 ‘Plum Style Group’을 열고 30명의 스타일리스트를 운영했었고, 사업을 접곤 청담동에 일식 퓨전 레스토랑 ‘MUVI’와 ‘YEN’을 열기도 했어요. 레스토랑 컨설팅을 하다 패션업계 제의를 받곤 여러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임원이 되기도 했고… 그러다 몸이 안 좋아 1년 간 쉬게 됐어요. 암이었는데… 비교적 초기여서. 그런저런 일들을 겪고 보니 내 브랜드를 갖고 싶더군요. 내가 가장 잘 알고 아끼는 백이 제겐 길이었죠.”
패션업에 종사한 어머니를 따라 한없이 보고 즐기던 옷과 구두, 백 등의 아이템이 이젠 그녀의 전부이자 미래다. 이 대표가 꼽은 타마의 강점은 ‘질리지 않는 심플함’. 가볍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실용성이 어떤 콘셉트와도 잘 어울린다.
“지금까지의 타마가 기존 명품의 영향에 자유롭지 않았다면 최근 새롭게 선보인 루스(Ruth) 백은 온전히 타마의 디자인과 영감이에요. 이제 시작이죠. 전 국민이 타마를 알고 인정해주셔야 세계 진출도 확실하다고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