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공부만 열심히 했던 친구들 있잖아요. 안 좋은 표현으로는 ‘범생이’라고도 하죠. 박근혜 경제팀 1기는 그런 사람들만 모아놓은 것 같아요.”
박근혜 1기 경제팀 라인을 본 한 새누리당 의원은 이렇게 평가했다. 대부분 성실하면서 공부와 일을 열심히 하고, 무엇보다 정치적 술수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박 당선인은 측근들이 ‘전략적으로 생각하자’는 말을 하면 굉장히 싫어한다”며 “꼼수를 부리거나 뒤에서 밀고 당기기 하는 사람은 특히 경제팀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경제부총리 내정자인 현오석 KDI 원장은 관료 사회 내에서도 손꼽히는 ‘학구파’다. 그와 함께 일했던 한 관료는 “펜실배니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게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얘기가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 대학은 다른 학교에 비해 학위에는 매우 인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와 함께 경제팀을 이끌 청와대 경제수석 내정자도 조세연구원의 원장인 조원동 씨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내정자, 이동필 농림축산부 장관 내정자 등도 각기 노동연구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 싱크탱크들에서 일한 ‘학구파’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방 내정자 같은 경우는 노사관계를 다뤄본 적이 없고, 관료 사회와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벌써부터 ‘모범생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내정자도 ‘너무 고집이 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완고한 시장경제주의자다.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내정자는 정부조직개편을 이끌며 각 부처의 쉴 새 없는 로비전에도 원칙으로 맞서는 단호함을 보여줬다. 반면 언론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대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골머리를 앓았다는 얘기도 전해질 만큼 ‘꼼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역시 매일경제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부처 간 이기주의 등으로) 흔들릴 것이었다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다”고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모두 공통적으로 ‘고집 세고, 정치권이나 관료 등의 ‘작전’과 타협하지 않고, 부지런하면서, 성실하다’는 특징들이 있다.
성시경이냐 경고성이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1기 경제팀의 특징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경제기획원(EPB)의 부활’이다. 노무현-이명박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도다. 이를 두고 ‘박근혜식 탕평인사’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경제기획원 출신 인사들의 발탁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먼저 경제기획원의 성격을 알 필요가 있다. 경제기획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빈곤 퇴치를 정권 정통성 확보의 핵심으로 보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조정하던 곳이다. 예산 편성·외국자본 유치·거시정책 조정 등 한마디로 1960~70년대 한국 경제의 부흥을 주도한 정부부처라 할 수 있다.
현오석, 조원동 등은 모두 강봉균 전 재무부장관, 이근경 전 금통위원 등과 함께 경제기획원 내에서도 ‘기획 라인’이었다.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주 전공이란 얘기다. 특히 현오석 부총리 내정자의 경우 또 하나의 1960~70년대 경제개발 계획의 브레인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라는 곳을 지휘한 인연도 있다. 조원동 경제수석 내정자는 근혜노믹스 실현을 위한 핵심적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할 조세연구원장 출신이다. 두 사람 스스로 친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행시 기수로는 9기수, 나이로는 6살 위인 현오석(14회·50년생)은 조원동(23회·56년생)과 함께 매경 이코노미스트 클럽에 참석했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거친 ‘KS라인’인 데다 해외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학구파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현 내정자가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재임 기간동안 조 수석을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로 위촉할 정도로 둘 사이는 끈끈하다.
하지만 둘의 업무 스타일은 좀 다르다. 현 내정자는 학구적 스타일로 ‘무엇(What)을 할 것이냐’ 보다는 ‘어떻게(How) 할 것이냐’에 더욱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와 함께 일했던 경제정책국 출신 관료와 KDI 관계자들은 “주어진 과제에 대한 이행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반면 조원동 내정자는 ‘어떻게(How) 할 것이냐’보다 ‘무엇(What)을 할 것이냐’에 상대적으로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와 함께 일했던 한 관료는 “적극적이고, 할 말은 꼭 하는 성격인 데다 평소에도 국정과제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특히 조 수석은 총리실 국정운영실장 등을 역임해 국정 과제 전반에 대한 이해관계를 다뤄 본 경험이 있다. 현오석 내정자가 학자 스타일이라면 조원동 수석은 감독관 스타일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현오석-조원동 콤비에 대한 걱정들도 있다. 두 사람, 특히 현오석 내정자는 장관·차관으로서 국회를 상대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정책 입법 과정에서 마찰이 나올 가능성이 염려된다. 이른바 너무 학자풍이어서 나오는 리스크다.
위스콘신 서울·경기고 관료 출신 등 적절히 섞은 조합
박근혜 1기 내각 전체적으로 보면 위스콘신대 출신들이 약진했다는 얘기가 많다. 강석훈, 안종범, 최경환, 유승민 등 이른바 위스콘신 4인방들이 각료 발탁에 영향력을 많이 행사하지 않았겠느냐는 추론과 맞물리며 이는 이미 예견됐었다. 경제팀 안에서도 위스콘신 출신 두 사람(윤상직, 방하남)이 눈에 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내정자는 위스콘신대학교에서 법학 박사를 받았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내정자는 위스콘신대에서 사회학 박사를 받았다.
1957년생인 방하남 장관은 또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내정자와 서울고 동기생이다. 두 사람은 경제팀에서 나란히 서울고 동기생으로 활약하게 된 것이다. 박근혜 내각 중에서 활약할 서남수 교육부장관 내정자, 유진룡 문화체육부 장관 내정자 등도 서울고 출신이다. 두 사람 외에 경제팀에서 서울고 출신은 없다.
경기고 출신들도 눈에 띈다. 1950년생인 현오석 경제부총리, 진영 복지부장관 내정자들이 경기고 동기생이다. 조원동 경제수석 내정자도 경기고다. 박근혜 정부 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경제부총리-경제수석-복지부장관 등의 라인이 대거 경기고 출신들로 포진된 것이다.
또 한 가지 특징을 꼽으라면 관료 출신들의 약진이다. 이는 인사 검증 문제 때문에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예상이 인선 이전부터 있어왔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 조원동 조세연구원장 등 경제기획원 관료 출신들을 빼고라도,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내정자도 행시 23회 출신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동기생이라 친분이 깊다. 그러나 그는 관료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많이 보였다. 행시 동기이자 성균관대 행정학과 동료 교수로 그와 함께 일했던 박 장관이 국회로 가자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그러나 그 역시 박 장관과 비슷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돼 묘한 인연이다. 박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 인수위에서 정부 조직개편을 아무도 찾지 않는 밀실에서 혼자 기획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당시 정보는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비밀리에 이뤄졌기 때문에 전혀 외부에 새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대통령 정무수석을 거쳐 국정기획수석을 지내다가 물러난 지 20일 만에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유 수석도 같은 길을 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자연스러울 정도로 둘은 비슷한 경력을 갖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 개인과의 인연을 갖고 있는 ‘훈구파’도 있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 내정자의 부친인 서종철 씨는 박 전 대통령의 육군사관학교 선배이며, 박정희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등을 지냈다.
본인들도 깜짝 놀란 인사
새 경제팀 대부분은 모두 인사가 나기 하루나 이틀 전에 박 당선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후보군에 들어갔지만 입각하지 못한 다른 인사들은 대부분 당선인에게 직접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종합해 보면 당선인은 어느 정도 검증을 통과한 사람들에겐 결심이 서는 마지막 순간에 직접 전화를 하는 행보를 보인 것이다. 이들의 말은 신빙성이 꽤 높다. 하지만 주변 정황을 보면 이들은 사전에 당선인 측이나 인수위 측과 교감을 하지는 않았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소위 ‘줄타기’를 하는 성향들은 아니었던 셈이다. 본인들조차 “깜짝 놀랐다”고 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경제부총리로 내정된 현오석 KDI 원장은 “(발표 나기) 이틀 전에 직접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2월 17일 저녁 자택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자세한 통화 내용은 말씀 못 드린다”며 “부족한 사람이라 처음에는 고사를 했다”고 말했다. 현 원장은 스스로도 경제부총리 지명을 놀라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상황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지명된 조원동 조세연구원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2월 19일 인수위에서 경제수석 발표가 나던 당일, “어제(18일) 저녁에 전화로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19일은 그가 원장으로 있는 조세연구원과 한국재정법학회(학회장 옥동석 인천대교수)가 공동으로 세미나를 개최하려던 날이다. 그는 여기에서 오후 2시 개회사를 한 뒤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기로 돼 있었다. 조세연구원 관계자는 “18일 오전까지만 해도 세미나 준비 때문에 바빴다”고 말했다. 미리 지명을 받았다면 하기 어려운 행보였다. 결국 그는 19일 세미나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진영, 유민봉, 서승환, 방하남 등 인수위에서 일했던 이들은 그러나 ‘전혀 몰랐다’는 기색은 아니었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정도만 미리 본인의 장관 내정을 알았던 것 같다. 장관 내정 직후 한국 국적을 회복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6년 전부터 (당선인과) 연락해 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