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er]100m 경주 90m서 출발하는 게 정의인가요…정의의 철학자 황경식 서울대 교수
입력 : 2013.02.04 14:31:45
수정 : 2013.02.26 10:31:23
지난 대선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민생과 복지, 경제민주화는 여야 모두의 공통된 화두였다. 세계 15위 경제대국이라지만 민초들의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다. 대기업은 흥하는데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설 자리는 극도로 위축됐다. 거부들의 2,3세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거부가 되고 새파란 나이에 고위 임원으로 군림하는데 평생을 뼈가 빠지게 일해도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이들이 허다하다. 누가 봐도 정의롭지 않은 사회의 해법은 무엇인가. 한국의 대표적 ‘정의의 철학자’를 만나러 서울 서초동의 꽃마을한방병원으로 갔다. 황경식 서울대 교수는 이 병원을 운영하는 명경의료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8월 퇴임식을 한 황 교수는 “아직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지금도 필수 과목은 강의를 하고 있다”며 병원은 ‘정의론’과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아내가 한의사인데 아기를 갖게 해주는 특별한 기술을 개발했다. 국내에 불임시술을 하는 곳은 많지만 시술을 하지 않고 몸의 자생력을 키워서 아기를 갖게 하는 기술로는 한국에선 선두주자로 가고 있다. 최근 SCI에 (불임에 대한 한방치료를 주제로) 논문도 실었고 하버드대 대체의학연구소와 공동연구도 했다. 그런데 내 전공이 정의론 아닌가. 배운 대로 하려고 지천명(知天命·50세)에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자고 했다.”
그의 부인은 서초동 삼신할미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명한 강명자 원장이다. 부인이 바로 승낙을 했을 지가 궁금했다.
“물론 처음부터 바로 승낙한 것은 아니다. 아내를 설득하는 데 1년 정도 걸렸다. 롤즈의 정의론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공부 따로 생활 따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설득이 가능했다. 사는 방식도 비슷하게 가야 한다고 했다. 아내에게 의료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와 의료 정의를 구현하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100억원을 출연해 재단을 만들었다. 꼭 18년 전 일이다. 재단 이름은 부인(강명자 원장)과 자신의 이름에서 한 자씩을 따 명경의료재단이라고 붙였다. 처음엔 국가에 출연했는데 지금은 관리기관이 서울시로 바뀌었다고 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의 일관성이 숙제”라지만 그는 언행일치의 삶을 사는 철학자인 셈이다.
황경식의 철학 여정
그가 왜 철학을 했고, 그중에도 당시엔 생소한 분야였던 ‘정의’의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조부모님이 학자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학자를 꿈꿨다. 고등학교 때 학자가 되고 싶다고 꿈을 얘기하니 선생님이 ‘그러면 철학부터 하라’고 했다. 그때는 철학이 무엇인지 몰랐다. 철학을 하다 보니 너무 이론철학에 몰두하는 것 같아 현실과 닿는 철학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사회철학인 윤리학을 하게 됐고 이후 철학의 현실화, 현실의 철학화를 추구했다. 정의의 철학을 하게 된 것은 김태길 교수님 덕분이다. 1971년에 롤즈가 <정의론>을 냈다. 1973년에 그 책을 구해 김태길 교수님과 박사과정에서 2년에 걸쳐 강독을 했다. 그렇게 윤리학의 길을 걷게 됐다. 1973년부터 1975년에 걸쳐 롤즈 심포지엄을 열었고 1977년엔 <정의론>을 완역했다. 1979년에 번역한 책을 들고 하버드대에 가서 롤즈에게 ‘내가 이 책을 번역했소’라며 내놓았다. 그렇게 롤즈를 사사했다.”
그는 ‘정의의 철학자’로 유명하지만 ‘윤리의 철학자’이기도 하다. 참고로 철학을 크게 실천철학과 이론철학으로 구분할 때 이론철학에는 인식론이나 현상학 등이, 실천철학엔 윤리학과 사회철학 정치철학 같은 게 포함된다.
“철학을 공부하고 강의를 해온 40여 년간 내겐 두 가지 화두가 있었다. 하나는 정의론으로 30여년을 했다. 정의론은 사회구조적 윤리를 다루는 학문이다. 두 번째 화두는 덕윤리다. 덕윤리는 개인에서 출발한다.”
황 교수는 먼저 정의론에 대해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나갔다.
“인생을 100m 달리기 경주라고 생각하자. 그런데 출발점이 동일하지 않다. 누구는 50m서 출발하고 누구는 90m서 출발하고 또 어떤 누구는 95m에서 출발한다. 많은 사람이 원점에서 출발하는데 이건 불공정한 게임이다. 거기다 경기능력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100m를 대단히 빨리 달릴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느리게 걸어가고, 어떤 사람은 기어가기도 한다. 심지어 평생 결승점에 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게 원초적 불평등이다. 내가 평생 공부한 정의는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이런 불평등을 시정할 것인가 였다.” 그는 원초적 불평등은 (실력이 아닌) 우연이고 이 우연의 차를 없애는 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고 했다.
“누구는 재벌 2,3세로 태어나고 누구는 노숙자의 아들로 태어나고, 또 누구는 거지의 아들로 태어난다. 이것은 우연이다. 운(運)이 좋은 친구가 있고 운이 나쁜 친구도 있다. 이런 운은 도덕적으로 정당한 근거가 없다. 흔히 ‘운칠기삼’이라고 한다. 인생의 성공은 운이 70%이고 기가 30%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각자의 능력조차도 운이라고 한다. 어떤 유전인자를 갖고 태어났느냐 역시 운이다. 그래서 나머지 30%도 70대 30으로 나눈다. 그렇게 본다면 91%가 운이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9개의 운과 1개의 노력으로 결정된다.”
그는 개개인이 가진 능력을 천부적(태생적) 운, 어떤 지위를 갖고 태어났느냐를 사회적 운으로 구분했다. 이 두 가지 운을 개선하는 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고 했다. “두 개의 운을 개선하는데 쉬운 게 사회적 운이다. 재벌 2세냐, 거지 2세냐. 정의사회는 이 운을 중립화 해야 한다. 가난의 대물림이나 복불복(福不福)은 정의가 아니다. 과거 정의론자들의 주장은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교육의 기회를 균등화해 배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고, 기초 복지를 넓혀 먹고 사는 것과 병 치료하는 걱정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복지사회를 추구하는 이들은 사회적 운을 중립화 하는데 주력한다.”
그렇지만 천부적 운은 중립화 하기가 어렵고 이 때문에 불평등이 생긴다고 했다.
“IQ 150과 IQ 70을 어떻게 중립화 할 수 있나. 중립화가 어려운 이유는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그렇다고 가정을 없앨 수는 없지 않나. 가정은 나름 사회에 엄청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전자 조작을 할 수도 없고…. 천부적 운조차 사회적 운에 영향을 받는다.”
그는 사회적 운을 완화하거나 약화하는 것만으로는 억울한 사람이 너무 많게 된다고 했다. 롤즈가 출발점에서의 평등을 의미하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황 교수는 절차적 정의만 가지고는 안되며 결과적 정의는 천부적 운도 어느 정도 중립화해야 이뤄진다고 했다.
“최소 수혜자 계층을 지원해야 한다. 빈농이 될 수도 있고 어부나 비숙련 노동자 계층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을 최우선으로 배려해야 한다.”
그는 롤즈와 마찬가지로 자유경쟁체제를 받아들이는 자유주의자다. 그런데도 운을 평등화하도록 정부가 나서라고 주장한다.
“자유와 공정한 기회를 주장하나 시장의 실패를 방치하면 자유롭지도 경쟁적이지도 못한 상태가 된다. 게다가 자유롭더라도 정의롭지 않을 수도 있다. 시장은 강자를 가려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경쟁력 없는 루저를 보듬어야 하는 게 그래서다.”
롤즈는 기본적 자유와 기회, 소득, 재산, 파워, 권력 등 자존심의 기초가 되는 사회적 기본가치(Social Goods)는 균등하게 배분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최소 수혜자(사회적 약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때에 한해 차등 배분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황 교수는 이런 롤즈의 정의론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조정을 시도한 것으로 이해했다.
“자유주의는 자유 우선의 원칙이 지배한다. 사람은 어느 정도 살면 더 많은 빵을 위해 자유를 희생하지 않는다. 사회주의는 최소 수혜자에게 이득이 될 때에만 차등 배분을 인정한다. 아니면 평등 배분이 원칙이다.”
그는 과거의 다른 정치철학자들이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인 자유와 평등 박애 중에서 자유와 평등만을 강조한 반면에 롤즈는 박애에 큰 비중을 두었고, 이 점이 롤즈가 위대한 면이라고 했다.
“롤즈는 “내 정치철학은 박애의 정치적 함축을 전제했다”고 밝혔는데 거기엔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반영돼 있다. 최소 수혜자에게 관심을 가질 때 우리는 정의에 눈을 뜰 수 있다. 정의의 핵심엔 인간 사랑이 담겨 있다.”
황 교수에게 ‘정의’를 한마디로 정의해달라고 부탁했다.
“기독교선 정의로운 사람을 이야기한다. 바이블을 book of righteousness(義의 書)라고도 한다. 나는 ‘정의는 최소한의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은 정의의 완성이다. 서로 뿌리가 맞닿아 있다. 정의는 타인에 대한 사랑이며 인류 공동운명체에 대한 배려다. 정의에 대한 고전적 정의는 각자에게 그 몫을 주는 것인데 사랑은 각자에게 그 이상을 주는 것이다.”
그가 한국의 왜곡된 분배구조와 이를 시정하기 위한 복지 정책을 어떻게 이해할까.
우선 MB 정부의 분배정책은 전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불경기 때 수출로 경제를 살린 공은 인정한다. 그러나 온기가 윗목으로 가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아무리 참아도 온기가 가지 않는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명분이 없다.”
그러나 이를 시정하기 위한 복지 정책은 성장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했다.
“복지는 재분배로 가진 사람이 양보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은 분배와 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의 승리로 성장을 놓지 않으면서 분배와 복지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좌파는 성장을 돌보지 않고 복지를 요구한다. 그런데 평등의 자원이 어디서 나오나. 성장동력을 고사시키지 않는 선에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성장동력이 메말라선 안 된다. 무조건 복지만 하다간 몇년 안 가 밑바닥이 드러난다.”
그가 덕에 관심을 돌린 까닭
황 교수의 두 번째 화두는 ‘덕윤리(德倫理)다. 그는 왜 정의에서 덕으로 화두를 돌렸을까. “작년에 마이클 샌델이 한국 사회에 쓰나미를 몰고 왔다. 엄청난 충격이다. 그런데 샌델이 남긴 게 무어냐. 한국을 정의롭게 하는 데 무엇을 기여했나. 사람들이 정의가 무엇인지 몰라서 관심을 가진 게 아니다. 삼척동자도 정의가 무엇인지는 안다. 문제는 정의에 대해 아는 만큼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앎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과 실천의 문제다.”
우리의 문제를 알지 못한 게 아니라 실천하지 않는 데 있다고 인식한 그는 정의를 실천하고 정의로운 인간으로 변하게 하는 윤리, 특히 덕으로 관심을 돌렸다.
“To Know가 아니라 To Become이다. 정의감 가진 인간으로 변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사회에 얼마나 많은 범죄가 벌어지나. 그중 상당수는 고등교육을 받은 자들이 저지른다. 아는 만큼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천착하지 않아서다.”
소크라테스는 좋은 것을 ‘알면 행한다’는 지행합일론(知行合一論)을 주장했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우리의 도덕적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이를 빌어 한국적 현실을 설명했다. “윤리학에선 도덕적 실패라고 한다. 왜 실패하느냐. 첫째 의지가 나약해서다. 옆에서 유혹이 들어온다. 의지가 약해 넘어간다. 이를 극복하려면 (정의에 대한) 보다 강한 유혹과 도덕적 용기가 필요하다. 두 번째로 어려서부터 가치 있는 것, 정의로운 것, 고귀한 것에 맛을 들이는 정서교육이 필요하다. 감정 조율, 정서 교육이 필요하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도덕 교육을 생각한 것이다. 그는 특히 나약한 의지를 강화하기 위한 담금질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의 학교 교육엔 담금질이 없다. 사고 교육만이 있을 뿐이다. 화랑도는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의지를 강화했다. 극기교육, 참을 줄 아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군대가 아주 중요하다. 군대는 의지를 강화하는 굉장히 좋은 수도장이다. 강한 의지는 도덕적 용기를 준다. 아는 대로 실천하게 한다.”
황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감정을 순화하고 조율하는 교육이 필요한데 봉사활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봉사활동은 남의 편에서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정서를 순화하게 한다. 좋은 가치를 맛보는 훈련이다.”
도덕교육 핵심은 습관화
황 교수는 도덕적으로 실패하지 않으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첫째 지적인 각성이다. 좋은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 의지의 강화다. 아는 것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좋은 것을 즐길 수 있는 감정의 훈련이다. 지, 정, 의 3가지 기능의 통합적 훈련이 필요하다.”
또 공자의 공부법을 예로 들어 단순히 머리로만 익히지 말고 체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자는 다른 사람의 지식을 배우는 학(學)과 스스로 생각하고 자율적으로 배우는 사(思)를 두고 學만 하면 번잡하고 思만 하면 위태롭다며 두 가지가 수레바퀴처럼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황 교수는 진짜 공자가 중요하게 강조한 것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의 습(習)이라고 했다.
“習은 논어의 핵심이다. 반복적으로 익혀 습관화하라는 것이다. 배우는 것은 즐거운데 이를 반복해 습관화, 내재화, 자기화, 생활화해야 지식이 내 것이 된다는 얘기다. 실천적 지혜가 된다. 정의도 마찬가지다. 아는 것보다 정의로운 행동을 자꾸 해서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수영은 이론을 아무리 해도 안 된다. 그러나 물속에서 습이 되면 물이 즐겁다.”
새가 날기 위해 나래짓을 계속해(習) 습관화 하듯이 정의도 습관화를 하라는 얘기다. “습관화가 되면 속에서 우러난다. 사람이 정의롭게 된다. 정의롭게 행동하면 기분이 즐겁다. 자율적으로 우러난 의지이기 때문이다. 즐거운 감정에 길들여지면 습관이 덕이 된다. 이는 기계적 습관이 아니라 성찰적 습관이다. 이것이 덕이다.”
공자가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했는데 즐기는 것이란 바로 내 것으로 해야 한다는 얘기란다. 정의로운 행동을 하면서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특히 덕을 쌓는 좋은 방법으로 운동을 꼽았다.
“덕을 얻는 구체적 방법은 수양 또는 수행이다. 왜 폭포 밑에 들어가 수양을 했을까.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지적 각성을 했고, 강한 의지를 다졌으며, 감정을 조율하는 연습을 했다. 이렇게 도를 닦으면 덕이 얻어진다. 선비들은 도 닦는 법으로 고전독서와 마음공부(명상)를 꼽았다. 공자가 학과 사를 겸비하라거나 기독교의 절실한 기도, 불교의 지극한 참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손쉬운 방법은 운동이다. 유도나 검도 태권도 등이 모두 도라고 한다. 이들 운동은 심신을 함께 수련한다. 실제로 이들 운동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사람이 달라진다. 마라톤에 몰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모든 취미활동에 몰입하면 다 도를 닦게 된다.”
그는 지육과 덕육 체육 등의 교육 지표 가운데 지금은 지육만 남았다고 안타까워했다. 학교 교육이 덕성을 함양하고 의지를 강화하며 감정을 조절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덕성을 가르쳐야 한다. 용기 있는 덕성, 정의로운 덕성, 남을 배려하는 덕성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은 오랜 세월을 거쳐야 길러진다.”
젊어서부터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관심을 두고 정의를 천착한 그는 덕성교육이 돼야 한국사회가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회윤리와 개인윤리가 호응하는 윤리적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앞으로 일반인이 덕윤리를 이해하고 구체화할 수 있도록 일반인의 덕성개발을 위한 자기계발서를 쓸 것이라고 했다.
조기 철학교육을 위해 철학 동화책을 번역했고 강의도 많이 한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하기엔 늦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논리+논술이야기’와 ‘토론거리 논술거리’ 등 논술 책과 학습서들을 냈다. 어릴 때부터 사유가 돼야 이론이 되고 깊은 성찰이 가능하다.”
한국 철학 환골탈태 안하면 훈고학에 머물 것
그는 한국 철학에 대해 그동안 서양철학을 수용하는 데 급급했다고 평가했다.
“우리 맥락에서 천착하지 못해 우리 철학을 못했다. 이제 3세대 철학자가 나왔다. 이들은 우리의 입장에서 사유하는 입장이다. 아직도 더 우리의 철학이 진화해야 한다. 동양철학은 환골탈태해야 현대철학에 기여할 수 있다. 서양철학의 세계를 받아들여야 기여할 수 있다. 아니면 훈고학에 그친다. 철학자도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한문선생 밖에 안된다.”
그런 점에서 학교 교육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 교육이 파행적이다. 명문대 입시위주 교육에서 의지강화, 감정조율, 정서교육, 예체능 등 잃은 게 너무 많다. 아이들은 너무 위축돼 있다. 입시를 치르던 시절만도 못하다.”
그런 사정이 서울대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대학에 와선 곧바로 취직 공부 하느라 생각이 짧다. 너무 성적에 연연한다. 그러고도 막상 성적이 나가면 이메일로 항의가 빗발쳐 답장 쓰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대범한 그릇이 안된다. 시험 위해 진정한 공부를 모르는 것이 안타깝다. 입시 위주 교육을 바꿔 잃어버린 것을 찾아서 아이들이 원대한 꿈을 갖게 해야 한다. 교육의 뿌리가 바뀌어야 한다.”
황경식을 이끈 존 롤즈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과 특목고에서 필독서로 권하는 <정의론>의 저자다. 마이클 샌델은 “존 롤즈는 존 스튜어트 밀 이래로 자유주의 정치 원칙에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했다”며 언어분석과 도덕적 상대주의에 의해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가면서 빈사상태에 있던 영미 정치이론을 롤즈가 소생시켰다고 평가했다. 그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샌델이 있을 수 있었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정치철학자인 롤즈는 하버드대 교수를 32년간 역임했다. 2002년 11월 24일 타계했다.
황경식과 마이클 샌델
황경식 교수는 하버드대 연수 때 마이클 샌델이 옥스퍼드에서 막 학위를 받고 돌아와서 한 첫 번째 강의를 들었다고 밝혔다. 그때 샌델과 맺은 인연으로 지난 2005년 샌델을 처음으로 초청해 강연회를 열었고 지난해 아산재단이 샌델을 초청할 때도 주선했다. 샌델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던 언론이 출판 마케팅 덕에 그의 책이 150만부가 팔려 나가자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지 분석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는 얘기도 털어놨다.
황 교수는 샌델과 견해가 다르다는 점도 소개했다.
“샌델은 공동체주의자이고 나는 자유주의자이니 견해가 다르다. 그에게 얘기했다. 당신의 주장은 한국에는 맞지 않다. 우리는 유교사회에서 자라 너무나 공동체주의에 젖어 있다. 한국은 ‘우리’가 먼저다. 공동체주의, 집단주의 사회다. 반면 미국은 너무나 개인적인 자유주의라 공동체의 가치를 알리는 게 맞다.”
개인주의의 폐해가 심한 곳에서나 샌델의 공동체주의가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명경의료재단
서울 꽃마을한방병원과 경주 분원을 두고 있다. 서초동엔 100여명이, 아흔아홉 간 전통 한옥 병원인 경주 분원에선 30여명이 진료를 하고 있다.황 교수는 “아내는 매니지먼트 닥터이고 나는 매니지먼트 이사장이다”고 했다. 전 재산을 국가에 출연해 월급을 받고 있다는 것. 재단 만들고 10년 동안은 서초 강남과 사당동 일대를 돌며 무료 검진을 하는 등 많은 봉사를 했다. 매주 건강강좌를 열어 지역주민의 건강정보를 업그레이드하는 일도 하고 있다. 철학 발전에도 기여했다.
철학회에 매년 수천만원씩 기금을 내 인터내셔널 메모리얼 렉처를 열고 있다. 다산기념철학강좌가 그것. 지금까지 10여회에 걸쳐 외국 유명 철학자를 초청해 프레스 센터와 각 대학을 돌며 강좌를 열었고 전집도 냈다. 샌델도 그중 한 명이다. 서울대에 발전기금을 냈고, 명경논문상을 만들어 학부부터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좋은 논문을 쓴 학생을 뽑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