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um]경영인 멘토링 나선 삼성생명 FC 배양숙 상무…인생과 경영 넘나들며 지식 도네이션
입력 : 2012.12.28 14:18:22
수정 : 2013.01.25 11:39:13
지난해 12월 5일 오후 7시. 서울 강남의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리셉션룸이 70여명의 참석자들로 북적였다. ‘수요포럼 인문의 숲 제1기 수료식’이 진행된 이날, 총 40강의 마지막 강의에 나선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게 아니라 보여지는 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자”며 독립적인 주체를 강조했다. 퇴근 후 귀가도 빠듯한 오후 7시에 어떤 이들이 도가철학을 경청하고 있나 주변을 휘둘러보니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도 다양하다. 테이블에 놓인 명패를 보니 이제 막 일어선 벤처기업 대표부터 중소·중견기업 대표까지 다양한 업종의 비즈니스 리더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매주 수요일이면 최 교수의 인문학 강의를 듣기 위해 하나둘 모여들길 무려 40주.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주도 쉬지 않고 포럼을 준비, 진행한 이는 배양숙 삼성생명FC 명예사업부장(상무보)이다. 2009년 ‘수입보험료 1위’로 삼성생명 챔피언 자리에 오른 배양숙 상무는 2011년 ‘2세 경영인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지식 도네이션에 나섰다. 재무전문가로서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이자 고객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내린 결정이다. 지난해 범위를 넓혀 기획한 ‘수요포럼 인문의 숲’에는 알고 지내던 비즈니스 리더들을 초청해 인생과 경영, 나눔을 넘나들며 경영에 새로운 시각을 접목했다.
개인이 시작한 작은 포럼은 1년이 지난 현재 커다란 파장을 낳았다. 포럼 참가자 중 어떤 이는 적자로 허덕이던 회사를 흑자로 돌려 세웠고, 급작스런 불황에 죽음을 결심했던 CEO는 다시 출발선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물론 포럼 진행에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배양숙 상무는 “40주나 진행하다 보니 본업에 소홀한 것 아닌가 고민하기도 했다”며 위기의 순간을 되돌아봤다.
“호흡이 긴 포럼이어서 여름이 지나고 제 자신이 흔들리기도 했어요. 좋은 일 해보자고 시작했는데… 본연의 업무와 맞는 일인가 고민도 했고. 그러다 진정성을 믿게 됐어요. 쉽지 않은 계약을 진행 중이었는데 클라이언트가 매체에 소개된 수요포럼을 보고 감사하다고 하더군요. 이런 일을 진행하는 분의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그렇게 400억원대의 계약이 성사됐습니다.”
수요포럼 1기 수료식 일주일 후, 배양숙 상무(이하 배)의 사무실에 포럼을 수료한 김준범 EBS 라디오PD(이하 김)와 하영목 비앤이파트너스 대표(이하 하) 그리고 최진석 교수(이하 최)가 함께했다. 새로운 요강을 마련한 수요포럼은 올해도 계속될 예정이다.
소통은 진정성에서 비롯된다서로 인연이 궁금하다.배 멤버들을 구성할 때 몇 가지 원칙이 있었는데 우선 다양한 세대를 초대했다. 인격적 수양이 높은 젊은 세대, 또 사회생활의 절정에 오른 분들보다 절정을 향해 가시는 분들을 모셨다.
김 배 상무가 EBS의 프로그램에 출연했었는데, 그때 내가 담당PD였다. 방송 전에 서로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짜고짜 친구하자더라고(웃음).
배 그때가 벌써 3~4년 전이다. 원래 사람을 천천히 사귀는 편인데 막상 김 PD와 얘길 나누다보니 통하는 게 있더라고. 내게 친구는 평생가자는 의미인데, 그것도 남자한테 먼저 친구하자고 했다. 아, 우린 동갑이다.
김 늘 최 교수님 이야기를 하면서 방송에도 연결해보자고 해서 과연 동양철학을 김용옥 교수보다 쉽고 재미있게 강의할 분이 있을까 사실 의심했었다. 지금? 한번 듣고 홀딱 빠졌다.
배 김 PD는 수요포럼에서 동양철학에 대한 확신을 갖고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회의에서 메인 스피커로 연설하기도 했다.
김 이 시대는 이제 서양이 동양에 길을 묻는 시대가 됐고 동북아시아의 사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 이러한 생각에 대해 학문적으로 검증을 받고 싶었는데 수요포럼에서 최 교수님을 뵙고 확신을 갖게 됐다. 포럼을 통해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이 정리된 느낌이다. 이제는 정말 동양의 사상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구나 확신했지. 회의에서는 그러한 생각들을 정리해 발표했다.
하 난 배 상무를 서울대 미래지도자 인문학과정에서 처음 만났다. 다행히도 이 포럼에 초대해줘서 수혜자가 됐네. 내 인생에 큰 계기가 됐다. 2011년에 LG CNS 사업부문장으로 있을 때 기업 컨설팅 회사를 인수했는데, 지난해에 대표로 부임하게 됐다. 적자에 이직률까지 높아 고민이 많았는데 수요포럼에서 개인적인 멘토링을 받은 것 같은, 덕분에 그 역경을 잘 극복했다. 이제는 흑자로 전환됐고 떠났던 직원들에게서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소식이 들리곤 한다.
배 지난 연말 정기인사에서 연임되셨다는 연락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 연임이 당연했던 상황은 아니고(웃음). 정말 축복이자 기회였는데, 누구에게 알릴까 생각해봤더니 포럼을 마련해 준 담임선생님(배양숙 상무)이 떠오르더라고. 또 최 교수님께도 정말 도움이 됐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가끔 이런 말을 하면 인사치레 아닌가 하는데, 절대 아니다.
강의는 무료, 경비는 담임선생님이아무리 지식 도네이션이라지만 경비를 무시할 순 없는데.배 총 1억2000만원이 소요됐는데 내 커미션에서 진행했다. 클라이언트들의 자산운용을 돕고 커미션을 받는데, 총액이 연간 10억~12억원 정도다. 단순한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년 내 수입의 30%는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지는 일에 쓰기로 했다. 2010년에 ‘2세 경영인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지식 도네이션을 시작했고 지난해 ‘수요포럼 인문의 숲’을 진행했다. 1000명 정도의 직원과 함께 일하고 있는 리더가 좋은 경영, 좋은 결정을 해 고용이 유지된다면 약 3000명의 삶이 해결되는 것 아닌가. 그런 도움이 되고 싶었다.
최진석 교수와의 인연이 깊다.배 2011년에 ‘2세 경영인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멘토를 해주셨다. 포럼의 취지와 기획에 대해 1시간 정도 말씀드렸는데 요강을 완성해주셨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학자가 1년에 40주 동안 강의를 맡아 시간을 할애했다. 수요포럼은 최진석 교수님이 마무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아이고, 몸둘 바를 모르겠네. 포럼 참석자들이 모두 바쁜 분들이어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출석률이 너무 좋았다. 출석부는 담임선생님이 불렀지(웃음). 강의를 하다보면 느낌이 있는데 호응도나 집중도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제도권 교육시스템 밖에서 이런 포럼이 진행되는 건 문명사적으로 함축하는 의미가 크다. 문명은 전진하는데 기존 제도들, 교육시스템이 그 문명을 받쳐주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대학 밖에서 수많은 인문학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건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흐름이다.
이 시기에 왜 인문학인가.최 한국은 그동안 선수로만 뛰었다. 한 번도 감독이 되질 못했지. 인문학은 선수로 뛰는 게 아니라 감독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양적성장 이후 한국사회가 도달해야 할 지점이다. 또 하나 경제와 인문학의 연결성이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건 상상력과 창의성이거든. 이 두 가지가 없다면 앞으로 기업이 생존할 수 없다. 상상력과 창의성을 높이려면 인문학의 레벨로 올라서야 한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인문학적 시선이 있느냐 없느냐, 질문 할 수 있느냐 아니면 대답만 할 수 있느냐에 있다. 인문학은 질문하는 힘을 키우는 학문이다.
수강생이 모두 비즈니스 리더인데, 별다른 부담은 없었나.최 오히려 좋았지. 비즈니스맨에겐 특징이 있다. 생과 사의 성적표를 확인할 수 있지. 그러니 늘 깨어있다. 매너리즘에 빠질 시간이 없다. 대학에서 위기라고 하는 인문학을 한국사회에서 주도하는 이들은 비즈니스맨, 바로 기업인들이다.
세상을 보여지는 대로 보자 김 그런 면에서 여기 앉은 이들보다 더 대단한 포럼 참가자들이 많다. 우린 날라리지(웃음).
최 어떻게 하면 독립적 사고를 가질 수 있을까. 내 시선으로 세계를 볼 수 있는 동기, 그 자세가 중요한 것이지. 수강생들이 독립적 사고에 대한 의식, 주체력 등에 친숙해진 것 같네.
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면 기업이 혁신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혁신은 성공해야만 의미가 있다. 혁신만 하는 건 조직에 피로만 쌓이게 한다. 과연 혁신을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 여러 책을 참고 했지만 결국 내 마음을 감동시킨 건 수요포럼의 도덕경이었다. 성공과 실패의 기로에서 내리는 의사결정, 그리고 혁신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조금만 바꿔보자고 움직이는 건 피로만 쌓이게 한다는 걸 분명히 체험했다. 그게 내겐 자신감이자 용기다.
김 독립적인 주체가 됐다(웃음). 마지막 강의에 감사편지를 썼는데 ‘교수님은 늘 청춘이 느껴진다. 그걸 배우고 싶다’고 썼다. 청춘은 성장하는 것이고 변화하는 것 아닌가. 늘 포럼에서 강조된 것이 변화였다. 또 한 가지 화두가 있는데,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보지 말고 보여지는 대로 보라’는 것. 우린 늘 보고 싶은 대로 보거든. 이 명제는 내게도 화두가 됐다.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