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글로벌 공동기획] ⑳ 세계의 건축·건축사 안도 다다오의 미국 포트워스 현대미술관…자연이 된 건축물
입력 : 2012.12.28 14:16:45
수정 : 2013.01.25 11:36:59
지난 2002년 12월 문을 연 포트워스 현대미술관(The New Modern Art Museum)은 미국 텍사스의 포트워스 문화지역(Culture District) 내에 자리 잡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작품을 2400여 점 소장하고 있으며 3000점 이상의 근·현대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영구 소장하고 있다. 그 작가들 중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피카소와 잭슨 폴락, 앤디 워홀도 포함되어 있다. 미술관 바로 맞은편엔 루이스 칸이 설계한 킴벨 미술관(Kimbell Art Museum)이, 또 인근에는 필립 존슨이 설계한 아몬 카터 미술관(Amon Carter Museum)도 있어 포트워스 문화지역이라 부르는 그들의 도시계획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전체 5개 동으로 구성된 이 미술관은 특이하게도 연못 위에 지어졌다.
인상적인 형태와 재료의 사용으로도 유명한 이 건물은 일본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건축설계를 했으며 손튼 토마세티사(Thornton-Tomasetti)가 구조설계를 맡아 진행했다. 인근 여러 미술관과 각축하며 특화된 면모를 보여야 했던 포트워스 현대미술관은 자연과 재료에 대한 건축철학을 지형적 특성과 잘 어우른 안도 다다오 덕분에 지역 주민의 삶과 함께 숨쉴 수 있는 생활미술관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인상적이면서도 자연과 아주 잘 어울리는 이 건물은 어디에서부터 그 탁월성을 언급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해외여행 잡지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중 하나’로 이름 붙이기도 했다. 넓은 부지에 ‘예술을 위한 숲’이라는 이름으로 여유롭게 예술작품을 음미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대지를 계획해 대지 곳곳에서 예술 전시품과 이를 배경으로 한 야외공연과 축제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노출콘크리트 사용에 뛰어난 감각을 보이는 안도 다다오는 화려하진 않지만 인상적이고 강렬한 노출콘크리트를 이 건물에도 적용했다. 노출콘크리트의 사용은 두 가지 측면에서 강인함과 잠재력이 더 극대화됐는데 바로 ‘유리+콘크리트’와 ‘빛+물’이다.
‘유리+콘크리트’ 그리고 소통
유리와 콘크리트는 포트워스 현대미술관의 수직적 요소를 형성하는 외벽의 주재료로 사용됐다. 미술관의 특성상 전시장 내부에는 전시물 보호를 위해 자연 채광을 위한 창문을 계획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건물에 있어서 창문은 눈과 같은 역할로 외부와 내부가 소통할 수 있는 요소이다. 이러한 창문이라는 요소가 배제된 미술관은 외부의 방문객에게는 폐쇄적으로 인식될 수도 있고 외부와 소통의 부재로 느껴질 수도 있다.
최근에 이중외피 시스템(Double Wall)을 도입한 건물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중외피의 바깥외벽에 유리를 사용하면 내부기능과는 별개로 개성있는 입면 디자인을 연출하는 장점과 에너지 절약에 효과가 있다.
포트워스 현대미술관에 적용된 콘크리트 내벽은 내부 전시물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성을 띠고 있다. 이러한 콘크리트 내벽이 주는 폐쇄성의 이질감을 유리 외벽(Double Wall)을 통해 극복했으며, 결국 아름다운 올 글라스(All Glass) 미술관 건물을 구현해 냈다.
그러나 포트워스 현대미술관만의 탁월한 특성은 이 두 벽의 중간에 계획된 회랑에서 드러난다. 두 개의 벽 사이에 위치한 회랑은 마치 우리의 옛 골목길을 연상시킨다. 3개 전시동의 외벽을 둘러 형성된 이중외벽 사이에 설계된 보행자 회랑은 2개의 미술관을 갖고 있는 하나의 건물이 되도록 했다.
내부 미술품 보호를 위해 설계된 강건한 12m의 노출콘크리트 벽은 내부 전시장을 형성하고, 전시장 외곽과 건물 외벽을 따라 형성된 회랑은 12m 높이의 유리외벽 밖에 또 하나의 전시 공간을 제공한다. 미술관은 대지 내 6000㎡의 연못에 위치한다. 연못에 설치된 조각품과 연못 넘어 계획된 아름다운 조경은 회랑을 따라 걷는 관람객에게 여러 방향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내부에서 즐기는 또 하나의 외부 미술관을 갖게 된 것이다. 건물의 내부 회랑을 살펴보면 회랑의 보행레벨은 연못과 별 차이 없이 계획되어 외부에서 내부를 조망할 때 마치 관람객이 물 위를 걷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이러한 모든 계획은 지형의 특성을 건물계획에 반영해 관람객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어느 곳에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결과이다.
‘빛+물’ 그리고 동화(同化)
5개 직육면체형 미술관의 지붕은 노출콘크리트 평지붕이다. 잔잔하며 정적인 연못의 수평선과 거대하나 간결하게 계획된 노출콘크리트 평지붕 선은 연못의 정적을 겸손히 수용하고 있는 듯하다. 캔틸레버 형으로 튀어나온 지붕은 수면 위에서 반사된 빛을 내부로 유입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얇은 노출콘크리트 지붕의 수평선과 유리외벽을 잡아주는 철의 수직선만이 주는 정적에 Y자 형의 기둥은 형태적 안정감과 절제된 장식미를 느끼게 해준다.
물위에 설치되는 건축물들은 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물로부터 띄워 별개의 조물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익히 봐왔던 방식이다.
포트워스 현대미술관은 이러한 익숙한 방법이 아닌 다른 접근을 시도하고 실현했다. 주간의 미술관 모습은 빛에 반사된 유리 외벽으로 인해 연못과 하나가 된 듯한 착각을 일으켜 연못의 정적이 그대로 반영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마치 물위에 세워진 고층건물의 느낌을 준다.
안도 다다오가 계획한 건물들은 ‘유리는 외부환경의 차단을 위한 단순한 기능성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몇 편의 종교시설 프로젝트들도 그러하다. 빛은 형태를 돋보이게 하고 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 콘크리트와 공존하는 요소이고, 유리는 단지 그 빛이 지나가는 길에 있는 보조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포트워스 현대미술관은 ‘빛과 콘크리트’라는 주제에서 ‘물과 유리’라는 주제로 부각된 건물이라 하겠다.
유리 외벽에 비친 연못의 모습은 연못과 건물이 하나된 느낌을 주며, 연못에 비친 건물의 모습 또한 거울에 비춰진 느낌으로 신비로운 감마저 든다. 건물의 수직 요소인 Y자형의 기둥과 유리를 잡고 있는 철 프레임은 연못에 비춰져 더욱 길게 강조되며 수직적인 디자인 미를 극대화해 준다.
미술관의 내부조명은 막힌 외벽으로 인해 외부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계획요소이다. 그러나 불이 켜진 야간의 포트워스 미술관은 외부 유리외벽을 통해서 연못 위에 떠있는 등대와 같은 모습으로 야외 카페테리아와 야간 방문객들에게 아름다운 광경과 휴식을 제공한다.
주민을 위한 편익 제공
포트워스 현대미술관은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과 쉼터로서 교육프로그램과 시설물도 같이 계획되어 있다. 미술품 전시를 위한 공간은 두 개의 레벨로, 높이가 다른 공간을 갖는 여러 개의 실들로 구성되어 전시의 묘미를 살려주고 있다. 더불어 520㎡의 교육센터가 계획되어 있고 여러 개의 강의실에서 주민을 위한 수공예, 문학 강의 등을 진행한다. 주민교육센터는 전시를 위한 공간과 별개의 출입구가 계획되어 관람객의 복잡한 동선과 분리됐으며 전시가 없는 야간이나 박물관 휴무 시에도 주민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계획됐다.
250석 규모의 공연장은 지역 주민을 위한 문학, 영화제, 음악회 공연을 제공할 수 있도록 계획됐다. 공연장과 접한 250석 규모의 카페테리아는 건물을 둘러싼 회랑을 갖춘 미술관의 아름다움을 주간과 야간에 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아름다운 미술관의 모습은 야간공연과 축제 등의 배경이 되며 지역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과 미술관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대지의 특성이 갖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재료의 아름다움을 잘 조화시켜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포트워스 현대미술관은 전시관 이상의 아름다움으로 지역 주민의 삶과 동화되어 자리하고 있다.
안도 다다오는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안도 다다오는 건축교육을 정식으로 받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헌책방에서 르 코르뷔지에를 접한 그는 건축에 흥미를 느껴 르 코르뷔지에를 찾아 파리여행길에 오른다. 독학으로 건축을 시작해 지금은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그는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듯한 노출콘크리트의 디자인을 많이 선보였다.
건축에 대한 그의 열정은 책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견 단순히 보이는 구성 속에 복잡한 공간을 내포한 건축을 추구해온 나에게 그러한 형태들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으리라. 동시에 그런 극한의 형태로부터 무릇 창조자이고자 하는 자는 자신을 항상 극한의 상태로 내몰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 것 같다. 일도 없이 항상 뭔가에 쫓겨 지내던 스무 살 무렵의 나와 지금까지도 결별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끈이기도 하다. 불안과 긴장 속에서 창조성을 모색하기 시작한 시절의 육체와 정신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서….”
1969년 개인 사무소를 시작한 그는 자연과 지형을 해석하는 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1995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고베의 로코하우징Ⅱ(1993), 오사카의 산토리 미술관(1994), 가고시마대학의 이나모리 회관(1994), 오사카의 맥스레이 본사(1994), 나라의 고조문화박물관(1995), 빛의 교회(1989), 물의 교회, 물의 절, The Modern Art Museum(2002), 상하이 디자인센터(2008) 등이 있다. 그의 건축은 동양적인 단순함으로 세계로 진출하는 데 한계가 있어 보였으나 그가 추구하는 건축의 본질이 자연에 있음은 모두의 공감을 얻어 그의 활동 무대를 세계로 넓혀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그의 건축에서 보이는 빛, 물과 같은 자연 요소들은 시간, 날씨 및 시시각각 변하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노출콘크리트, 유리, 철, 목재와 같은 절제된 재료 위에 극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주어진 장소에서 살아나가는 데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생활이야말로 주거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나오시마 현대미술관(Naoshima Contemporary Art Museum, 1992년)
1992년 건립된 나오시마 현대미술관은 일본 남부해안의 혼슈와 시코쿠 사이에 위치한 세토해협의 작은 섬에 자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안도 다다오의 개인주거 건축에서 공공을 위한 도심건축의 성공적인 시작을 알리게 된 초기 작품이다.
출판업자인 시치로 후쿠오카는 그가 소장한 많은 20세기 현대 미술품의 전시를 위한 미술관을 나오시마섬에 짓기를 원했다. 그러나 일본의 개발관련법 제약조건으로 섬 여행객을 위한 호텔과 미술관을 같이 계획하게 됐다. 시치로 후쿠오카는 건축물이 섬의 풍광을 해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안도 다다오의 대지를 해석해 나가는 탁월한 능력으로 언덕 위에 위치한 복잡한 지형을 훼손하지 않은 아름다운 풍광의 미술관과 호텔을 계획했다.
글라스 하우스(Glass House, 2008년)
제주의 섭지코지에 위치한 Glass House는 휘닉스 아일랜드 리조트 복합단지의 갤러리로 계획된 건물이다. 관광사업과 자연의 보전이라는 복합 과제를 접한 리조트 개발에는 지속가능 디자인(Sustainable Design) 콘셉트로 제주도의 자연 재료를 건물 곳곳에 반영했으며 안도 다다오 디자인의 노출콘크리트와 조화를 이루어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지형을 거스르지 않는 외부의 접근을 풀어내는 탁월함은 1층을 필로티로 띄워 방문객들에게 제한된 풍경을 제공하며 호기심을 유발한다. 1층은 갤러리와 카페테리아로 계획됐으며 건물 내로 유입된 방문객은 막힌 듯 열린 지붕과 외벽을 통해서 섭지코지의 다양한 빛과 바람을 경험하게 된다. 2층의 레스토랑에선 유리 외벽을 통해 섭지코지의 석양과 바다를 볼 수 있으며 외부에서 보이는 2층의 Glass House는 제주의 바닷바람에 떠 있는 듯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산토리 미술관(Suntory Museum, 1994년)
템포잔(Tempozan)은 오사카 만에 위치한 해안 문화복합시설단지이다. 오사카 시내 중심부에서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나 산토리 미술관과 오사카 아쿠아리움 등 여러 건축물들은 오사카의 문화와 휴식의 허브 기능을 담아내도록 기능적 공간으로 계획됐다.
산토리 주류는 기념문화사업의 하나로 시민들을 위한 3D 아이맥스 영화관, 갤러리 및 기념품들을 판매하는 여러 개의 상점과 레스토랑을 같이 계획했다. 산토리 미술관은 안도 다다오의 기념비적인 작업 중의 하나로 인류와 물 그리고 건축에 대한 그의 건축 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건물의 형태는 거대한 3D 아이맥스 영화관이 위치하는 역 원추형의 중심부와 전시 갤러리 및 카페테리아의 저층부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