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희 소장님은 투자교육 전도사로서 펀드 투자의 대중화와 올바른 투자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셨고 후배들에게 고령화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전파한 큰 공이 있다. 미래에셋 임직원들은 항상 열정적이고 주변을 배려하는 겸손한 삶을 살고 있는 강 소장님과 함께 직장생활을 했다는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지난 11월 5일 미래에셋 센터원빌딩 20층에서 열린 강창희 부회장의 퇴임식에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남긴 말이다. 올해 65세로 40여 년간 금융투자업계 현장을 누빈 강 소장은 올해 미래에셋 부회장직을 내려놓았다. 아름다운 이별이다. 힘든 업계 사정을 체감한 강 소장은 작년 말 회사 측에 ‘올해 말까지만 근무한 후 현업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박 회장은 그에게 재고하길 바란다며 말렸지만 그는 “지금이 떠나야 할 때”라며 뜻을 꺾지 않았다. 결국 박 회장 역시 강 소장의 뜻을 받아들였다. 장기출장으로 연말까지 한국을 비워야 하는 스케줄상 박 회장은 퇴임식을 앞당겨 거행하며 직접 참석해 강 소장의 노고를 치하했다.
Part 1.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40년
1974년 증권선물거래소(현 한국거래소)에 입사하면서 처음 금융투자업계에 발을 들인 그는 1998년 현대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와 굿모닝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이후 2004년 부터는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장 겸 퇴직연금연구소장직을 맡고 있다. 밝은 인상과 겸손한 행실로 유명한 강 소장은 항상 자신의 분야를 연구하고 책을 가까이 해 업계에서 ‘여의도의 소맹자(小孟子)’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현직에서는 물러나지만 강 소장은 미래에셋자산운용 투자교육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남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지난 11월 중순 저녁 9시가 되어서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퇴임 후에도 강 소장은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센터원 20층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책상 위에는 수북하게 쌓인 책과 신문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미국에 있는 후배가 선물했다는 와인 한 병을 꺼내든 그와의 대담은 밤 11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화려한 인생 2막을 준비 중인 강 소장을 만나 40년 샐러리맨으로서의 삶과 허심탄회한 은퇴이야기를 들어봤다.
퇴임 후 어떻게 지내시나요
수안보에서 이제 막 서울에 도착하는 길입니다. 오늘은 충청도, 내일은 강원도, 모레는 경상도… 주말도 없이 강연 일정이 잡혀 있어서 퇴임 이후에 오히려 더 바빠진 느낌이네요.(웃음)
금융투자업계에 발을 들이시고 40년이다. 떠나시면서 많은 생각이 드실 텐데
긴 것 같지만 사실 순간처럼 지나간 것 같아요. 다양한 순간이 기억에 남지만 특히 28세 때인 1975년 처음으로 일본 연수를 떠났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그때 당시에도 일본은 노인비율이 높았는데 그들을 실제로 보고 느낀 바가 참 많았죠. 미리미리 준비해서 남보다 높이 올라가는 것보다는 오랫동안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처음 가지게 됐습니다.
많이 질문 받으셨겠지만 현업에 오랫동안 남을 수 있었던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조금씩 더 앞을 보고 준비를 했던 것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연구를 하다 보니 일본전문가가 됐고, 또 국제연구를 하게 됐고, (대우증권 근무 당시) 일본에 있을 때 고객들의 자금을 한국주식에 투자하기 위해 한국운용사에 맡겼더니 계속 손해를 보는 것을 보고 자산운용업이 무엇인가 공부를 하기 시작했죠. 자산 운용사 사장 시절 자산운용에서 성공하려면 투자자들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투자교육 분야를 파기 시작했어요. 또 가만 보니 투자교육은 결과적으로 노후대비와 관련이 많더라고요. 그렇게 은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웃음)
샐러리맨에게도 변신이 필요하다?
10년에 한 번은 샐러리맨들도 변신이 필요하겠더라고요. 끊임없이 자신의 몸값을 생각해 봐야 해요. 오너가 자신의 몸값을 어떻게 평가할지 판단하고 과하면 연봉을 낮추든가 아니면 교육받거나 능력을 키우든지 해야죠. 이어령 교수가 “이제 샐러리맨도 자영업자의 심정으로 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상당히 공감합니다.
항상 솔선수범하고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아 직장상사는 물론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그의 직장생활의 철학은 명확했다. 상사와 후배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아랫사람에게는 경쟁자가 되지 말 것을 당부했다.
Part 2. 장수비결? 후배들 경쟁자가 되지 말아야직장생활에서 어려운 것이 또 인간관계인데
사소한 것 하나부터 신경 써야 합니다. 사실 직장생활에서 선배들에게는 다들 잘하지만 후배들에게 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높이 올라갈수록 후배들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요. 일례로 제가 직장생활을 하며 당혹스러울 때가 상사가 갑자기 점심 약속 있냐고 물어오는 것이었어요. 당신은 약속이 취소돼 쉽게 물어도 후배 입장에서는 선약이 있어도 거절하기 쉽지 않거든요. 나는 후배들에게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했어요. 혼자 밥 먹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안 좋은 유교문화, 체면문화 때문에 처음에는 힘들지만 습관이 되면 좋아집니다.
직장 후배들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을까
후배에게 경쟁자로 비추지 않는 것이 상당히 중요해요. 일본 증권업계에 오랫동안 근무한 모모세라는 친구가 아플 때까지 계속 회사고문으로서 일을 했는데 CEO가 해결하지 못한 일을 자신의 네트워크를 통해 도와주면 고마워할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더라는 겁니다. 오히려 자기 자리를 빼앗지나 않을까 걱정을 한다는 것이죠. 저 역시 후배에게 경쟁자로 비추지 않으려고 상당히 신경 쓰며 노력했습니다. 두 번째는 후배에게 항상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일을 시키더라도 뭐라도 사주고 또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해야지 후배 입장에선 도움이 안 되면 빨리 안 나가나 생각하지 않겠어요?(웃음)
반대로 후배들 중에 조금은 경계해야 할 유형이 있을 텐데
경계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주변에 은퇴한 CEO 한 분이 선배들의 비위를 잘 맞추고 했던 것들이 진심이 아닌 처세였던 경우가 많았다고 합디다. 현직에 있을 때 자신에게 잘하던 후배가 일선에서 물러나니 나 몰라라 하는 것에 섭섭했다고. 저는 사실 호불호가 덜한 편입니다만 제가 단적으로 후배들에게 거취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자신의 생각이 아닌 그 사람이 어떤 대답을 하길 원하는지 생각하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솔직한 얘기를 듣기 쉽지 않죠. 진심인지 아닌지를 가려듣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임원 승진은 ‘배제의 논리’가 적용된다고 하셨는데
모모세라는 친구가 하루는 말하길 회사에서 부장이 될 때까지는 ‘장점의 논리’가 적용되지만 임원은 ‘배제의 논리’가 적용한다고 합디다. 즉 임원이 되기 전인 부장이 될 때까지는 그 사람의 장점이 작용해 올라가지만 임원이 되는 사람은 결국 단점이 제거된 사람이 남는다는 거죠. 같이 직장생활을 하는 입장에서 공감이 가고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고 생각해 사람들에게도 많이 들려주고 있습니다.
Part 3. 삶을 변화시킨 인연회사생활을 해오며 은인이라고 할 만한 분들이 계시다면
저는 참 운이 좋은 편입니다. 단점도 많은 사람인데 장점을 높게 봐주시는 상사를 잘 만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먼저 대우증권에서 근무할 당시 김창희 사장님은 월급쟁이지만 오너에 가깝게 일을 했어요. 16~17년 동안 CEO를 하며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인재를 키웠죠.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도 제가 일본으로 연수를 떠날 수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또 당시 한근환 국제담당 부사장이 역시 일본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 덕에 제가 영어가 부족한데도 (대우증권) 국제본부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장점을 살려주고 단점은 가려주는 그러한 상관을 만난 것이 참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현주 회장님 역시 제게는 은인입니다. 2004년 당시 회사의 수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외면하던 투자교육을 해보겠다고 했을 때 망설임 없이 믿어주시고 일을 맡겨 주셨죠. 참 감사한 분입니다.
박현주 회장님과 인연을 맺게 된 과정이 특별하다 들었습니다
2004년 2월에 PCA를 떠나면서 투자교육 관련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박현주) 회장님을 만나뵙기로 했습니다. 만나기 일주일 전에 미래에셋이 투자교육연구소를 만들면 어떤 점이 좋다는 것을 속속들이 적은 제안서를 만들어 박 회장님께 보냈습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오너와 처음 만나서 그러한 제안을 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잖습니까. 미리 제안서를 보내야 검토도 하고 아랫사람들과 회의도 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했는데 그 점을 좋게 보셨나봅니다. 만나는 날에는 이미 제안이 통과돼 있었습니다.
두 분과의 인연이 회사생활에 있어 변화를 가져온 부분이 있을까
후배의 단점은 가려주고 장점을 살려주는 선배가 돼야 한다고 항상 다짐하게 됐죠. 실상 사람은 32~33세가 넘어서면 품성이나 일을 하는 스타일이 바뀌기 힘들다고 봐야합니다.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하고 어떠한 장점을 지니고 있는지 보고 그러한 면을 살려줘야 합니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주례를 서면 항상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을 바꿀 생각하지 말고 단점을 어떻게 가려주고 장점을 바라볼 수 있을지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삶에 있어 멘토라고 하실 만한 분이 있으시다면
아까 잠깐 언급한 모모세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예전 일본 간교 카쿠마루 증권이라는 중대형 증권회사에서 인수담당 전무를 하고 계열사 벤처투자회사의 사장을 했던 사람이에요. 그리고 이후에도 계속 기업의 고문으로 일하신 분입니다. 첫 만남은 제가 대우증권 조사부 과장 시절 그분이 한국 담당을 맡아 사무라이 본드 인수 건으로 누군가의 소개를 받아 나를 찾아왔었어요. 요깡(일본과자)을 선물로 책상에 올려놓으며 친하게 지내자고 하더라고요. 후에 제가 일본을 찾았을 때 더욱 친하게 어울리게 됐습니다. 제가 회사생활 말미에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고 원칙이 된 ‘임원이 되는 것은 배제의 원리가 적용된다’나 ‘후배에게 경쟁자로 비추지 말아라’는 원칙들은 모두 그 친구가 제게 해준 이야기들이죠. 이외에도 회사생활에 있어 소중한 교훈은 물론 인간적으로 제게 많은 영향을 준 친구라고 할 수 있죠.
조경엽 국장과 인터뷰하는 강 부회장
Part 4. ‘은퇴 전문가’ 본인의 은퇴 모습은
강창희 소장은 미래에셋에서 9년 동안 투자교육연구소와 퇴직연금연구소 소장을 겸임하며 매년 300회 이상 총 2657회의 강연을 통해 ‘행복한 은퇴 전도사’로 활동해왔다. ‘평생 현역’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은퇴 후에도 ‘크든 작든 반드시 소일거리를 찾아나서라’고 주장하며 국내 은퇴분야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한 그자신의 은퇴준비는 정작 어떻게 해왔을지 궁금해졌다.
은퇴 후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친구와 모임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은퇴하고 나서 지속적으로 지인들을 만나거나 모임에 나가기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니죠. 저도 사실 최고경영자에서 생겨난 모임, 증권담당 재무계 모임, 금융투자업계 여의도 모임 등 몇몇 모임들도 있고 지인 분들도 있는데 은퇴 후에 뵙지 못한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도 은퇴 후 그러한 모임에 참석해 교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사실 사고도 많이 납니다. 예전 제가 모 최고경영자 과정을 함께 수료한 것이 인연이 돼 결성된 모임이 있었는데 총무를 맡은 친구가 돈을 가지고 사라진 적이 있습니다. 모임이 결성되더라도 장기적인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경비만 그때그때 모으는 것이 현명합니다.
은퇴를 앞둔 사람들이 가장 시급하게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지
우리 부모세대들은 수명도 짧고 아이도 많고 그래서 단둘이서 사는 기간이 짧았습니다. 또 자녀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아 핑계 김에 화해도 하고 밤에는 또 정이 붙어 잘 살았죠.
베이비부머 세대부터는 노년에 부부 단둘이서 살아가는 기간이 20년이 넘습니다. 자녀들도 따로 사는 경우가 대다수라 중재자도 사라지고. 남자는 은퇴 후에도 밖으로 나가서 소일거리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함께 붙어있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말씀이신지(웃음)
요새 요리하는 남자들은 집에서 쫓겨나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집사람에게 내가 요리를 배우면 구박하지 않을 거냐고 물었더니 “요리는 안 배워도 되니 그냥 나가서 놀아라” 하더라구요.(웃음) 남자들은 잘 모르지만 여자들은 남편 삼시 세끼 밥 차려 주는 것이 가장 스트레스입니다. 남자입장에서는 아이들도 없고 남편 하나 있는데 식사 못 차려 주느냐 하지만 그게 아닌 것 같더라구요. 한 두 명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그렇다는 것은 심각하게 생각을 해봐야 한다.
은퇴가 닥쳐오면 소일거리를 찾는 일이 쉽지 않은데요
은퇴 후에도 30~40년을 살아야 하는데 다시 일을 찾는 것은 필수죠. 그러기 위해서는 5가지 자세가 중요합니다. 첫째는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인지 확실히 인식을 하고 두 번째로 내가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나 주특기를 확실히 알아야 해요. 없다고 생각하면 재교육을 받을 수 있죠. 찾아보면 무료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상당히 많습니다. 세 번째는 자기소개서를 다시 써봐야 합니다. 보통 창피하다고 생각해 꺼리는데 연습을 해봐야 합니다. 네 번째는 사람들에게 은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려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해직됐다고 멍하게 있지 말고 네트워크를 활용해 재취업에 도움을 구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재취업에 대한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정서상 자신이 퇴직한 사실을 주변에 알리기가 쉽지 않고, 실제로 은퇴자들은 모임에도 안나오고 은둔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질병과 퇴직 사실은 밖으로 널리 알릴수록 좋습니다. 실상 조기퇴직을 한 경우 90% 이상은 얼마간 멍해져 은둔생활을 합니다. 그렇지만 요즘 회사수명이 짧아지면서 구조조정이나 해임사례는 엄청나게 많아졌죠.
그러한 세상이 됐으니 쇼크 받고 말 것도 없죠. 예전에 제 후배 중 한 명은 별안간 오전에 출근해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통보 두 시간 뒤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자기가 해임이 됐는데 더 일을 해야 하니 도움을 달라고 청해왔습니다. 멍한 상태에서 바로 벗어나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바로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후배처럼 빠른 대응이 필요합니다. 저도 그러한 전화를 받으니 이런 후배를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재취업에 성공했습니다. 병과 퇴직한 것은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아프다고 숨길 필요가 없듯이 퇴직 후에는 네트워크를 통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소일거리를 찾는 일은 어떤 기준에서 시작할까요
전혀 모르는 분야보다는 자기의 현업에서 먼저 찾아보는 것이 가장 좋은 재취업의 길입니다. 얼마 전 2년 남짓 정년을 앞두신 사진기자 분을 컨설팅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재취업에 대해 물으셔서 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일거리를 찾아보시라고 조언해드렸습니다. 사업이나 여타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서 준비 없이 새로 도전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죠. 요즘 창업을 많이 한다는 음식점 역시 힘듭니다. 우리나라 25가구 중에 1곳이 음식점을 한다더군요. 사업을 하는 사람들 보면 산전수전 겪은 꾼들과 얽혀서 이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 막내 동생이 올해 환갑인데 대학을 못나와 저는 항상 걱정을 했습니다. 동생은 방수판 하청업자를 30년 정도 따라다니며 기술을 익혀왔습니다. 언젠가 삼성 이건희 회장 화장실 집에 물이 새 난리가 난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삼성그룹이 마스터 제도를 도입해 전문 기술자를 영입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막내 동생이 50세 이후에 마스터로 삼성에 입사하더군요. 사촌 중에 대학 나온 애들도 놀고먹는데 참 고마운 일이죠.(웃음)
새로운 분야를 찾길 바라는 사람들도 많은데
물론 상당히 많습니다. 제가 원고 집필을 위해 케이스를 수집하면서 만난 분들 중 이성규 전 국방부 정보본부장은 농사로 성공한 케이스죠. 육군에서 영어를 제일 잘한다고 알려진 사람이고 미국에서 연수도 오래 한 사람인데 은퇴 후 특이하게 농사를 택했죠. 7800평 규모의 땅에 매실, 은행, 배 등을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사에서 서당 훈장으로 재취업에 성공하신 분도 있고 평범한 직장인에서 문화유산 해설가로 변신한 이상벽 해설가도 있습니다.
중학교 교장선생님이 퇴임 후 연꽃 재배전문가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신 케이스도 있죠. 자신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를 개척하신 이분들의 공통점은 끊임없이 준비하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은퇴 후에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회사에서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후배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내가 사랑하는 투자교육과 은퇴 관련 강의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또 100세 시대 자산설계에 대한 니즈가 확실한 만큼 은행 등 리테일 분야가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할지 연구하고 관련 포럼을 조직할 계획도 있습니다. ‘미래와 금융 연구포럼이란’ 이름도 생각해놨죠. 단 포럼 운영은 혼자 해나갈 생각입니다. 스폰서나 다른 사람이 개입되면 경영이 들어가고 하다 보니 샐러리맨으로 살아온 저로서는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손자가 내년부터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조금 여유가 생기는 딸을 비서로 두고 필요한 부분은 아웃소싱을 통해 보완해서 운영해 나갈 생각입니다.
일본을 닮은 한국 고령화 극복방안은일본의 노령화 추세를 닮아가고 있는 한국 역시 일본과 같은 문제점을 보일 가능성이 큰데
일본의 경기가 장기적인 침체를 보이고 있는 원인 중 하나는 돈을 가진 노인들이 쥐고 쓰지 않아서입니다. 은퇴 후 40년 이상 살아야 하는데 불안해서 돈을 쓰지 못하고 제로금리에도 은행에만 돈을 맡기는 것이죠. 우리나라 역시 그러한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구구조는 일본과 비슷해져 가고 있고 수명이 길어진다고 하니 불안한 생각에 돈 만원에도 벌벌 떨게 돼 소비를 못하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추세로 보면 일본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상당히 큽니다.
소비활성화를 이끄는 것을 최선으로 보시나
일본처럼 가지 않을 방법은 두 가지죠. 그 돈을 쓰게 하든지 아니면 그 돈이 투자 상품에 들어가게 하든지. 은행은 기본적으로 돈을 빌려주며 성악설에 근거하게 됩니다. 즉 미래에 꿈이 있는 기업에 투자하기보다 대기업처럼 안전한 쪽에 투자하게 되죠. 결국 경제가 활성화 되지 못하고 벤처가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일본 2경원의 가계예금 중에 5%만 투자자금으로 흘러 들어가면 지금처럼 되진 않았을 것입니다.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대안은 무엇인가
투자자들의 교육과 금융기관의 자세 변화가 우선입니다. 또한 금융투자회사 경영자들의 목숨이 1년 단위로 짧은 것도 문제죠. 이러한 경우 장기계획을 세울 수 없어 선행투자가 불가능해지는 것 입니다. 내년에 해고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장기투자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이러한 부분들이 개선돼야 한다고 봅니다.
[대담 조경엽 정리 박지훈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7호(2012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