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만 가입했는데… 매달 돈을 받는 기쁨이 생겼다.’
어느 자산운용사가 ‘월지급식 펀드’를 팔려고 내놓은 광고의 한 대목이다.
이 문구를 보면 월지급식은 엄청나게 자산을 불려주는 보물 같은 상품인 것 같다. 그렇다면 실상은 어떨까.
모닝스타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6월 12일 기준 설정한 지 6개월이 넘어 수익률을 공표하고 있는 56개 월지급식 펀드 가운데 설정 이후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펀드는 23개에 달했다. 또 설정한 지 1년이 넘은 11개 펀드 중 최근 1년 수익률이 플러스인 펀드는 4개에 불과했다.
특히 지난해 7월 설정된 메리츠자산운용의 월지급식 펀드 3종은 이날 현재 수익률이 모두 마이너스 16%대로 저조했다. 지난해 7월 코스피가 2100포인트대를 오간 것을 감안하더라도 지수조차 따라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설정한 지 1년 2개월된 동부자산운용의 ‘머스트해브월지급식펀드’도 수익률이 마이너스 10.41%로 저조했다. 이 기간 중 코스피가 12% 정도 떨어지기는 했지만 투자자들이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수익률이 양호한 것도 있다. 월지급식의 초창기(2007년 5월 17일) 펀드라고 할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한국투자노블월지급식연속분할매매증권투자신탁1(주식혼합)’의 수익률은 25.09%다. 설정 후 기준일까지 지수가 17% 정도 오른 것을 감안하더라도 양호한 성적이다.
이 외 월지급식 펀드 가운데는 평가일 현재 10% 이상 수익을 낸 펀드는 단 하나도 없다. 그간 월지급식 펀드 바람을 일으키며 판매사들이 나섰는 데도 펀드 판매가 따라주지 않은 까닭이다. 최근 판매사들이 월지급식 펀드보다 월지급식 ELS나 DLS 판매에 열을 올리는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판단을 하기 전에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자.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1월 2일 ‘자본시장법 이후 공모펀드의 특징과 투자자 유의사항’이라는 긴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지난해 9월 말 통계를 기준으로 작성된 이 자료는 2009년 2월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후 새로 1758개 공모펀드가 나와 총 공모펀드 수는 3576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당시(9월 말 기준) 월지급식 펀드는 33개로 전체 공모펀드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감독원은 이 자료에서 그 많은 공모펀드 가운데 미미하기 짝이 없는 월지급식 펀드를 여러 곳에서 언급했다.
감독원은 “2011년에는 고령화, 베이비부머의 은퇴시기 도래 등 사회구조 변화에 따라 ‘맞춤형 펀드’인 월지급식 펀드가 집중 출시되었다”면서 “월지급식 펀드는 매월 이익 또는 원금 일부를 투자자에게 분배하는 상품으로 투자원금이 보존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며 투자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뿐만 아니라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최근 판매가 급증하고 있는 월지급식 펀드의 경우 광고 및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있어 ‘월급받기’ ‘월급처럼’ 등 이자만 지급하고 원금이 보장되는 것으로 오인할 우려가 있거나, ‘예금처럼’ ‘적금처럼’ ‘보험처럼’ 등 다른 금융상품으로 오인할 우려가 있는 용어사용은 자제하도록 지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선 월지급식 펀드가 대세이고, 수수료를 내고 컨설팅을 받는 게 보편화된 미국에서조차 최근 월지급 서비스 붐이 일고 있는데 아직 월지급식 펀드가 정착조차 하지 못한 한국에서 금감원이 규제에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은행주의’가 만연한 한국 금융계에서 연금신탁 시장을 지키려는 은행권의 입김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펀드 환매 방법일 뿐
판매회사들이 월지급식 금융상품이 노후를 위해 돈을 모으거나 불려가는 수단인 것처럼 강조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지급방식을 강조한 상품임을 주목하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영훈 이트레이드증권 온라인PB센터 차장은 “적립식이 목돈을 만드는 펀드투자 방법이라면 월지급식은 환매의 한 가지로 목돈에서 나오는 이익이나 이자를 받는 방법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동엽 미래에셋 은퇴교육센터장도 “월지급식 펀드가 유행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퇴직으로 재테크의 초점이 목돈을 적립하는 데서 인출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출구관리가 중요해진 시점이다. 다음으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투자성향이 보수화됐다. 안정형 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특히 금융위기로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금융기관들이 비교적 금융자산 여유가 큰 50대 이상을 겨냥한 측면도 크다고 했다.
“현재 50대 이상은 전 인구의 30% 정도이며 이 비율이 2020년이면 40%, 2030년이면 50%에 육박할 것으로 본다. 연령대별 자산구조를 보더라도 50대는 평균 3억7000만원의 자산을 갖고 있는데 이 가운데 부채 5000만원을 제하더라도 3억2000만원의 순자산을 가지고 있어 20~30대에 비해 월등히 많다.” 김 센터장의 설명이다.
금융기관들이 적립식 펀드 타깃으로 20~30대를 잡았다면 월지급식 펀드의 타깃으로 이들을 잡았다는 얘기다. 50대의 경우 아직은 경제활동으로 캐시플로우를 유지하고 있지만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날이 다가오므로 곧 찾아 쓰는 법을 배우려 할 것이란 점도 금융기관들의 마케팅 포인트가 되고 있다.
그런데 많은 금융기관들이 ‘지급방법’ 측면을 부각시키기보다 ‘평생월급’ 개념을 내세워 엄청난 재테크 수단이나 되는 양 과장광고를 해왔다는 것이 감독 당국의 시각인 것이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