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일주일 동안 남미지역을 다녀왔다. 멕시코의 한국문화원 개원 행사, 코스타리카의 국제예술제에 참석차 방문한 중남미 지역에서 한류현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남미에서 한류가 가능하다면 한류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출장 기간에 칠레와 페루에서 K-pop 공연이 있었다. 공연을 보기 위해 남미의 여러 국가에서 몰려온 관객들이 노숙도 마다하지 않는 보도가 있을 만큼 열기가 대단했다.
한류 현상을 직접 보고 느끼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3월 22일 매일경제신문이 주최한 ‘한류본색-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가 열렸다. 보고대회에서 한류 지속을 위한 많은 제언이 있었는데 조사결과 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일본·중국·대만인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0%의 응답자가 ‘한류가 5년 이내 끝난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한류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던 차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와 K-pop이 이끈 한류가 새로운 지역으로 뻗어가고 있지만, 한류가 시작된 지역에서는 우려할 만한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류의 지속·심화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일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콘텐츠의 다변화다. 몇 개의 장르, 그리고 대중문화만으로 한류가 세계에서 지속적인 호응을 받기는 어렵다. 1980년대 홍콩 영화는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현재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천편일률적 스토리로 인해 퇴조했다는 게 일반적인 진단이다. 덧붙여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여러 장르가 존재했더라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발전을 지속했을지 모른다. 한류 드라마와 K-pop뿐 아니라 다른 문화산업 분야의 발전이 병행돼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대중문화뿐 아니라 한국문화 전체를 세계인들이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하루끼의 소설을 읽은 세계 유수의 젊은이들이 일본(문학)을 공부한다고 한다. 서구사회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의 시작은 백남준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로 인해 한국과 비디오아트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정신과 감정의 총체인 문화예술을 접해야 관심과 애정이 깊어지고, 그것이 쉽게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대중문화, 문화예술과 함께 한류 지속을 위한 축은 전통문화다. K-pop, 문화예술에도 전통문화가 스며들어 있다. 이것은 K-pop의 역동적인 춤이나 지난해 영어로 번역돼 인기를 얻은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밑바탕에 흐르는 정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수용자가 적은 전통문화의 재해석과 발전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전통문화는 문화예술과 문화산업 콘텐츠의 원천이면서 한국문화의 특성과 원형을 그대로 보여주는 콘텐츠 자체이다. ‘날 것’으로서의 전통문화, 특히 전통예술을 세계인과 함께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류 콘텐츠의 다양화에는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다. 콘텐츠들이 고유성, 보편성, 고품격의 세련미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없다면 아무리 장르가 다변화되어도 한류가 지속·심화되기 어렵다. 남미 국가들은 유럽에서 시작된 축구에 세련된 자기만의 형식을 입혔다. 남미 국가들은 새로운 축구를 창조해냈고, 그래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다.
한류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무엇에 한국의 고유하고 세련된 것을 결합시켜 새로움을 만들어내야 한다.
새롭고 세련되고 다양한 한국문화를 세계인과 함께 즐기는 것,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 갈 한류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