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위기다. 경쟁에서 낙오한 소수가 하는 불평이 아니다. 지금껏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우수성을 기리는 향연장과 같았던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올해 가장 진지하게 토론되었던 주제가 바로 자본주의의 위기와 미래였고, 세계 유수 언론사인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올 초부터 ‘위기의 자본주의’라는 특집기사를 계속 싣고 있다. 먼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태동 및 전개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시장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자산버블이 발생하고 결국 터지게 되는 내재적인 불안정성을 안고 있다.
금융기관의 대출이나 투자가 경기호황기에는 더욱 늘어났다가 불황기에는 더 줄어드는 경기순응성(pro-cyclicality)을 보이는 것이 주된 원인이다.
날로 악화되는 소득 불균형문제 또한 현대자본주의의 커다란 취약점이다. 나라별로 상위 소득계층이 차지하는 소득비율에 큰 차이가 있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계층 간 소득 격차가 눈에 띄게 악화되고 있다. 현대자본주의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능력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 문제는 20세기 후반부터 거세게 불고 있는 기술 혁신, 세계화, 경제의 서비스화라는 3대 흐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자본주의가 위기라 하여 자본주의가 그 세력을 잃어가고 있거나 자본주의를 대체할 만한 유력한 대안이 떠오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지구촌 곳곳으로 날로 그 적용지역이 확대되고 있으며, 아프리카나 서남아시아 등 그동안 지구촌 교역이나 성장 스토리에서 벗어나 있었던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신흥중산층으로 새로 탄생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최근의 논의와 성찰은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현대자본주의를 시대 환경에 맞게 재정비하려는 노력이다. 현대자본주의가 위와 같은 금융 불안정성, 소득불균형 및 일자리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와 시장의 역할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일자리 문제는 사실 쉬운 해법을 찾기 어렵다. 일단 국내 산업기반을 외국에 뺏기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이 합심하여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양질의 일자리가 한정되어 있는 현실에서 근로시간 단축 등을 통해 그 양질의 일자리를 나누는 정책이 필요하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줄어든 시간을 채워줄 새로운 사람들을 채용할 수밖에 없어 일자리가 늘게 될 것이고, 늘어난 여가시간을 갖게 된 사람들이 그 시간을 활용하여 재교육을 받거나 공연을 보고, 가족과 놀러 다니게 되면 그만큼 교육, 문화, 관광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것만을 미덕으로 삼는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일을 좋아하는 개미와 놀이에 특기가 있는 베짱이가 서로 존중하면서 공존하는 모델이 필요하다. 일자리 나누기도 기업들이 경쟁력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 근무시간을 단축하되 종업원들이 생산성을 높여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어야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있는 일자리를 지키고 나누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노력과 함께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길러 낼 수 있도록 교육시스템을 혁신하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현대 사회가 채택하고 있는 교육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제조업 시대에 필요한 표준형 인간을 대량으로 길러내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그런데 기술혁신으로 표준화된 업무는 점점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 컴퓨터 칩에 현존 지식이 모두 저장될 수 있는 시대에 아직도 암기능력 테스트에 몰두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미래에 필요한 인재는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능력을 바탕으로 남들과 더불어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정답을 정해놓고 외우게 다그치는 낡은 교육시스템으로는 이러한 인재를 길러 낼 수 없다. 사실 미래의 핵심 인재가 다룰 문제들은 대부분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정답을 못 맞히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고 스스로 정답을 찾아갈 수 있는 창의적인 능력을 갖춘 글로벌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으로의 대전환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