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디비(Cardi B)와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고도, 눈앞에 앉은 여성이 누구인지 몰랐다.
뉴욕 맨해튼에서 일을 마치고 뉴저지 집으로 돌아오던 날이었다. 집 앞 드라이브웨이에 낯선 검은색 캐딜락 SUV가 들어와 있었다. 운전석에는 선글라스를 쓴 체격 좋은 남성이 앉아 있었다. 남의 집 앞에 왜 차를 세웠나 싶어 창문을 두드렸다.
뒷좌석에서 여자아이와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내렸다. 알고 보니 둘째 아이의 친구였다. 다음 날 생일 파티를 하루 일찍 찾아온 것이었다. 이왕 왔으니 잠깐 놀다 가라고 했다. 아이 둘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이들의 방문을 조금 열어둔 채, 그 엄마와 방 앞 복도 벽에 기댄 채 바닥에 앉았다. 테이블도 차도, 격식도 없었다. 아이들은 방 안에서 놀고 있었고, 우리의 대화는 곧 자녀를 키우는 고민으로 흘렀다.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야 하고, 어떤 친구들과 어울렸으면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아이 교육 때문에 뉴저지의 이 동네를 선택했다고 했다. 안전한 환경과 좋은 친구들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 역시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하는 동안 내 앞의 사람은 그저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하는 엄마였다.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묻자 나는 변호사라고 했고, 그녀는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대화가 끝날 무렵 휴대전화로 영상을 보여줬는데 조회수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제야 그녀가 카디비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오래 남은 것은 유명인을 만났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거침없는 세계적 스타도 자녀 앞에서는 평범한 엄마였다. 유명하든 평범하든, 돈이 많든 적든 부모의 고민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아이가 잘 자라기를 바라고, 좋은 친구를 만나기를 바라며, 내가 부모로서 옳은 선택을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묻는다. 자녀 앞에서 사람은 직업과 지위 재산을 내려놓고 한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된다.
그날 카디비와 AI 교육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장면 이후 나는 뉴욕과 뉴저지에서 만나는 학부모와 자산가 고객들이 자녀의 미래를 준비하는 방식을 더 유심히 보게 됐다. 부모의 마음은 비슷했지만 준비하는 방법은 같지 않았다. 내가 만난 일부 부유층 부모들의 관심은 좋은 학교와 좋은 친구를 넘어, 아이가 인공지능을 어떤 방식으로 다룰 것인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챗GPT를 무조건 금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숙제를 대신해주는 편법으로 방치하지도 않는다. 아이에게 챗GPT를 검색창이 아니라 리서처, 튜터, 편집자, 비판자, 발표 코치가 함께 붙어 있는 ‘개인 참모진’처럼 다루게 한다. 핵심은 좋은 질문 몇 개를 외우는 것이 아니다. AI에게 역할을 나누고, 일의 순서를 정하며, 나온 결과를 검토해 다시 지시하는 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독후감 써줘”라고 묻고 AI가 만든 글을 그대로 제출한다. 다른 아이는 책의 핵심 주제를 세 가지 관점에서 정리하게 한다. 이어 자신이 주장할 논점과 반론을 요구하고, 마지막에는 이를 3분 짜리 발표문으로 바꾸게 한다. 예상 질문을 뽑아 스스로 답을 준비하고, AI에게 허점을 지적하게 할 수도 있다.
두 아이 모두 같은 AI를 썼다. 그러나 한 아이는 숙제를 외주화했고, 다른 아이는 작은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한 아이에게 AI는 답안지였지만, 다른 아이에게는 자신이 지휘하는 팀이었다. 산업화 시대의 교육은 아이를 성실한 수행자로 훈련시켰다. 주어진 문제를 정확히 풀고, 정답을 빨리 찾으며, 지시받은 일을 실수 없이 해내는 사람이 좋은 인재였다. 한국 교육은이 능력을 키우는 데 강했다.
그러나 AI가 몇 초 만에 답을 만드는 시대에는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만으로 차별화하기 어렵다. 미래의 고급 인재는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연주자를 조율해 하나의 음악을 만드는 오케스트레이터에 가깝다. 코딩 교육도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코드를 몇 줄 더 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무엇을 만들지 상상하고, AI에게 초안을 맡기고, 결과를 시험하며, 수정 방향을 지시하고, 최종 결과물의 의미와 책임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AI 교육은 오히려 인문 교육에 가까워진다. 배경지식이 없는 아이는 AI에게도 얕은 질문밖에 하지 못한다. 역사와 문학을 읽은 아이는 더 깊은 맥락을 요구하고, 과학과 경제를 이해하는 아이는 AI 답변의 허점을 찾아낸다. 토론을 해본 아이는 AI를 단순한 답변 기계가 아니라 논쟁 상대로 활용한다. 결국 AI를 잘 쓰는 아이는 기계 조작에 능한 아이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와 맥락을 잘 이해하는 아이다.
부모의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챗GPT썼니?”라고 추궁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AI에게 무슨 일을 시켰니?” “왜 그런 순서로 시켰니?” “그 답 중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채택했니?” “그 답을 믿을 근거가 있니?”라고 물어야 한다. 아이가 AI에게 받은 답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함께 토론해야 한다. AI가 만든 글을 완성품이 아니라 생각을 시작하는 초안으로 보게 해야 한다. 이것은 비싼 사립학교에 다녀야만 가능한 교육이 아니다.
학교도 AI가 써준 글을 잡아내는 데만 몰두해서는 안 된다. 학생이 어떤 질문을 던졌고, 어떤 답을 의심했으며, 무엇을 버리고 어떻게 최종 판단을 내렸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최종 문장만 보는 교육에서 그 문장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판단을 보는 교육으로 옮겨가야 한다. AI 사용을 숨기게 만드는 교육보다, 사용 과정을 드러내고 자신의 선택을 설명하게 하는 교육이 더 현실적이다.
복도 바닥에 나란히 앉아 있던 그 시간, 나는 카디비가 아니라 자녀를 걱정하는 한 엄마와 이야기했다. 부모의 마음은 그렇게 닮아 있다. 그러나 같은 마음만으로 같은 미래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아이는 AI가 만든 답을 소비하고, 어떤 아이는 AI를 지휘해 새로운 결과를 만든다. 앞으로의 계층 격차는 정보를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 사이보다, AI가 준 답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AI를 활용해 더 나은 질문과 결과를 만드는 사람 사이에서 더 크게 벌어질 수 있다.
장준환 변호사
미국 뉴욕주 변호사이자 문화경제 전략가.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대학원·로스쿨을 마친 뒤, 뉴욕을 기반으로 프라이빗 웰스, 투자, 부동산, 기업 구조 자문을 해왔다. 〈장준환의 진짜 미국 AI 스토리〉에서는 미국이 먼저 겪는 AI 시대의 산업·교육·부·취업 변화를 한국 독자에게 전한다. 저서로 <K가 죽어야 K가 산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