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여기 딱 서봐. 숲속에 들어가면 특별한 향기가 날 거야. 그건 숲속 공기 중에 나무줄기나 잎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란 물질이 있기 때문이야. 강한 살균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는데, 피톤치드 중에 테르펜이란 성분이 식물의 특유의 냄새를… 듣고 있는 거야?”
아빠는 마음이 급하다. 작은 거 하나부터 차근차근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숲의 시작점에서 나름의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앞에서 주변을 살피던 딸은 그러거나 말거나 딴청이다. 언뜻 초등학교 고학년쯤 됐으려나. 중2병 증세가 확연한 눈초리는 이미 관심 없다는 듯 꽉 다문 입 모양 처럼 길게 늘어졌다. 그런데 사실 아빠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사춘기가 된 어린 딸과 오랜 만에 산행에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저기 메타세쿼이아 잎이랑 네 입이랑 닮았다 야. 둘 다 길게 삐죽이고 있어. 근데 너 그건 모를걸. 아빠랑 엄마랑 연애할 때 저 잎사귀 떼면서 내기하곤 했어.”
“치이~, 저걸로 어떻게 내기를 해.”
“하나씩 따면서 마지막에 걸리는 사람이 밥 사기, 아님 업어주기, 이런거. 너도 해볼래?”
“아니, 치워 아빠. 그냥 빨리 걷고 나가자. 추워.”
웬일인지 딸의 표정에 미소가 비친다. 잠시 아빠의 눈이 놀란 듯 동그래졌다. 그리곤 재빨리 자기 주머니에 있던 핫팩을 딸의 패딩 주머니로 옮긴다.
“숲에선 마음이 유해진다더니 그 말이 맞나보다.”
“유해지는 게 뭐야.”
아빠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한다.
“짜증내기보다 너그러워진다는 거야. 눈에 보이는 모든 게 편안해서 그런 건가.”
“음… 그거 지금 내 얘기네. 정말 편한데….”
아빠의 걸음이 가볍다. 연신 옆을 돌아보는 품이 행복하다.
대전 서구에 자리한 장태산 휴양림을 찾았다. 하늘 높이 솟은 메타세쿼이아 때문일까. 휴양림에 도착하기 전부터 시원한 공기가 달고 맛있었다. 앞서가던 딸의 마음처럼 모든 게 편안했다.
요즘 대전은 성심당 덕에 빵의 도시가 됐지만 사실 도심에서 차로 40여분만 이동하면 전혀 다른 풍경이 객을 반긴다. 장태산 자연휴양림이 대표적인 명소인데, 특히 메타세쿼이아 숲이 울창해 이국적이다. 2006년 4월에 개장한 휴양림은 등산로와 산책로가 구분돼 있어 목적에 따라 선택해 즐길 수 있다. 300여m의 장태산 정상을 향해 전망대와 형제봉을 거치며 저만치 앞에 자리한 형제바위를 감상할 수도 있고, 자연휴양림에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다양한 숲체험을 즐길 수도 있다. 휴양림을 찾는 이들은 가벼운 차림의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나무 계단과 데크 길로 마감된 산책로는 운동화 한 켤레면 충분하다. 휴양림 입구부터 만남의 숲, 어린이 놀이터, 출렁다리, 숲속 어드벤처, 수련장, 산림욕장, 숲속 교실, 산림문화 휴양관, 교과서 식물원 등이 조성돼 1시간 30분가량의 산책이 지루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함께 온 가족도 여럿이다.
무엇보다 소셜미디어의 인기 배경으로 떠오른 출렁다리의 유명세가 대단하다. 그 앞에서 길을 인도하던 관리인 아저씨 왈 “두어 달 전 단풍이 절정이었을 땐 하루 수십만 명이 몰려와 정신이 없었다”나 뭐라나. 그러곤 저 위에서 찍은 출렁다리가 포인트라고 전망대를 일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대로 멋들어진 사진을 위해 오르는 길은 그리 쉽지 않다. 10~15분쯤 걸리는 짧은 산행이지만 가파른 산길과 계단이 연달아 이어진다. 곳곳에서 “난 그냥 여기서 찍고 가겠다”는 말이 들리는 걸 보면 천천히 올라야 무리 없이 이를 수 있는 길이다. 물론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휴양림 풍경은 입이 떠억 벌어질 만큼 찬란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꼭 한번 경험해 봐야 할 명소다. 포토스폿은 전망대 바로 아래 마련돼 있다. 출렁다리와 메타세쿼이아 숲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담기는 장소다. 어쩌면 인스타그래머블한 새해를 위한 최적의 장소랄까.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4호 (2026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