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리인하 열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지난 9월 17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인하했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기존 4.25∼4.50%에서 4.00∼4.25%로 내려갔다.
연준은 지난해 12월 기준금리를 마지막으로 0.25%포인트 인하한 이후 5번 연속 동결 랠리를 이어갔다. 그러다 9개월 만에 다시 금리인하를 시작한 것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한 이후 첫 번째 금리인하다. 금리인하의 명분은 약화되는 노동이었다. 연준은 FOMC 성명서를 통해 “최근 지표는 경제 활동의 성장이 올해 상반기에 완화됐음을 시사한다.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상태지만 고용에 대한 하방 위험이 증가했다고 판단해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만장일치 결정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해 새로 연준 이사 자리에 오른 스티븐 마이런 신임 이사가 투표권을 행사했는데, 홀로 0.50%포인트 인하를 주장했다. 나머지 FOMC 인사는 전부 25bp 인하에 찬성했다. 공개된 점도표에 따르면 연준은 연내 2번의 인하를 추가로 할 것으로 보인다.
관심을 끈 것은 이날 보여준 시장의 움직임이었다. 연준 성명서가 나온 직후 금리 변화에 민감한 러셀 2000지수는 전일 대비 2% 넘게 상승하면서 상방으로 랠리했다. 하지만 장중 전일 대비 하락하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다 강보합으로 마무리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장기물 금리도 비슷한 롤러코스터를 탔다. 10년물 국채 금리는 연내 추가 50bp 인하를 시사하는 점도표가 나오자 장중 한때 연 4% 밑으로 금리가 떨어지며 채권값이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하락하던 국채금리는 상방으로 방향을 틀어 결국 전일 대비 상승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는 상반된 매크로 지표가 나오며 미국 경제를 해석하는 난이도가 갈수록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이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여전히 미국 인플레 우려가 남아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또 미국 소비는 여전히 강력하고 이에 따라 9월 금리인하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보험성 인하’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이번 “금리 인하는 위험 관리 차원의 인하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위험 없는 길은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연준 점도표는 침체 상황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인 3연속 금리인하를 시사하자 시장 일각에서 ‘과연 현재 경제 상황에서 이것이 가능한 시나리오인가’를 놓고 혼란에 빠진 것이다.
실제 16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8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6% 증가해 시장 예상치 0.3%를 크게 웃돌았다. 7월 소매판매 역시 기존 발표치 0.5% 증가에서 0.6% 증가로 상향 조정됐다. 소비가 두 달 연속 강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자동차, 휘발유, 건축자재, 음식 서비스를 제외한 핵심 소매판매 역시 0.7% 증가하며 전망치를 크게 상회했다.
이는 국내총생산 추정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소매판매 수치가 나온 직후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GDP나우 모델은 3분기 성장률을 기존 3.1% 성장에서 3.4%로 올려잡았다. 겉보기만 봐서는 미국 경제 침체를 논하기 힘든 숫자들이 연이어 쏟아지고 있다. 소비가 미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2가 넘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강한 소비 지표는 강한 경제와 연결된다.
하지만 다른 지표를 보면 미국 경제가 급속도로 침체로 빠져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CNN 등 현지 언론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평균 FICO 신용점수는 올 들어 2포인트 하락했다.
FICO 점수는 미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신용점수로, 개인의 신용도를 300점에서 850점 사이의 숫자로 나타낸다. 이 점수는 연체 기록, 빚 규모, 신용 사용 기간, 신규 계좌, 신용 종류 등을 종합해 산출된다. 은행이나 카드사 등 금융기관은 FICO 점수를 보고 대출 승인 여부와 이자율 같은 조건을 결정한다. 쉽게 말해, 개인의 금융 신뢰도를 보여주는 일종의 성적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신용도 하락 속도는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빠르다. 자동차 대출, 신용카드, 개인 대출 연체율은 2009년 이후 최고치에 근접했다. 특히 젊은 세대인 Z세대는 학자금 대출 부담과 취업난이 겹치며 신용점수가 평균 3포인트 떨어졌다. 이 가운데 14%는 불과 1년 사이에 50포인트 이상 급락하는 극심한 신용 악화를 겪었다.
팬데믹 동안 유예됐던 학자금 대출 상환이 올해 2월부터 다시 신용 기록에 반영되기 시작했고, 교육부가 5월부터 연체 대출 회수에 나서면서 그 부담은 더욱 커졌다. 현재 학자금 상환 대상자 2100만 명 가운데 610만 명이 연체 상태로 기록돼 연체율은 29%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아직 연체 기록이 반영되지 않은 채 상환을 미루고 있는 이들까지 합치면 그 충격은 더 크다. Z세대의 34%가 학자금 대출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재정 압박은 단순한 세대 문제를 넘어 경제 전반의 소비 기반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신용 점수 하락은 대출 금리 상승, 신용 거래 제약, 주택 구매 불가 등으로 이어져 사회 전반의 소비 여력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결국 미국 사회 전체로 보면 탄탄한 소비가 지속되고 있지만 취약계층에서는 신용 하락 위기를 겪을 만큼 위기 상황에 놓였다는 뜻이 된다. 양극화가 매우 심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소비가 고소득층에 의존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무디스가 공개한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미국 상위 10% 가구는 전체 소비의 49.2%를 차지하고 있다. 1분기 48.5% 대비 상승했다. 1989년 통계 집계 이래 최고 수준이다. 쉽게 말해 상위 10% 계층이 미국 소비 절반가량을 담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증시 상승 덕분에 소득 상위 계층은 자산 인플레이션과 증시 호황의 수혜를 동시에 받고 있다. 이에 과감하게 소비를 늘리며 미국 소비 전체 평균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하지만 취약계층은 여전히 연준 목표인 연 2%를 넘는 물가와 고금리에 시달리며 소비 여력이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필라델피아 연은 자료를 보면 자산 기준 미국 하위 50%가 보유한 자산은 4조달러 남짓으로 미국 가계 전체 자산 약 160조달러의 2.5%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상위 소득 계층만이 소비를 늘리며 숫자를 떠받치고 있다.
이 같은 괴리는 다른 지표들에서도 드러난다. 노동시장의 표면적 실업률은 4.3%로 여전히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장기 실업자 증가는 뚜렷하게 관측된다. 8월 기준 190만 명 이상이 27주 이상 구직에 실패한 장기 실업 상태다. 이는 전체 실직자의 25%를 넘어 팬데믹 이후 최고치다. 2023년 초 약 100만 명 수준이었던 장기 실업자가 불과 2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실업이 6개월을 넘어가면 실업급여와 퇴직 위로금이 고갈돼 재정적으로 불안정해지고, 구직 의욕도 꺾이며 노동시장에서 아예 이탈할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한다. 지표상 실업률은 낮아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이미 취약계층의 고용 기반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고, 노동시장이 점점 양극화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밑바닥 경제와 증시간의 괴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저소득층 고통에도 불구하고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파티 분위기다. 양극화된 구조 속에서 평균 지표는 ‘호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수 국민이 침체를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괴리가 심해질수록 지표 해석은 점점 더 난해해지고, 정책적 판단은 더 어려워진다.
결국 연준이 강한 소비 지표를 보고 매파적 태도를 취해야 할지, 아니면 장기 실업과 신용 악화를 고려해 비둘기적 접근을 해야 할지 난감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이런 혼란한 매크로에 대한 해석이 FOMC 직후 시장 반응에도 나타난 셈이다. 한편 FOMC에서 확인된 연준의 경제 전망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SEP에서 연준은 올해 말 실업률 전망치를 4.5%로 유지했다.
내년 예측치는 4.5%에서 4.4%로 내려갔다. 2027년 예상치도 4.4%에서 4.3%로 낮아졌다.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측치는 6월 발표한 1.4%에서 1.6%로 높아졌고, 내년과 2027년 수치도 각각 1.6%에서 1.8%, 1.8%에서 1.9%로 올라갔다.
개인소비지출(PCE) 인플레이션율 예측치는 올해 3.0%로 유지됐지만 내년 수치는 2.6%로 6월보다 0.2%포인트 뛰었다. 2027년은 2.0%로 전망됐다. 근원 PCE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올해 말 3.1%로 6월과 동일했다. 내년 예측은 기존 2.4%에서 2.6%로 상향 조정됐다.
연준은 국채 및 모기지 증권 보유분을 줄이는 양적 긴축(QT)도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파월 의장은 “연준의 목표 달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리스크가 부상하면 통화정책 기조를 조정할 준비가 돼 있다”고 설명했다.
[홍장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