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민식이 풍수사로 출연하는 <파묘>가 2월 중에 개봉된다. 언론이 대대적으로 ‘홍보’ 중이다. 파묘(破墓)란 기존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을 말한다. 영화 <파묘>는 집안 우환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장하는 내용이다. 중국 성리학자로서 조선을 신분 계급사회로 철저하게 묶어놓았던 장본인이 주자(朱子, 1130~1200년)이다. 조선 왕실과 사대부들이 묘지풍수 ‘바이블’로 섬겼던 것이 또한 주자의 <산릉의장(山陵議狀)>이다. <산릉의장>은 주자가 당시 황제 영종(寧宗, 1168~1224년)에게 바친 풍수론이다. <산릉의장>의 핵심 내용이다.
“후손이 조상 유골을 모실 때 반드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편안케 하는 것입니다. 유골을 온전하게 모셔 혼령이 편안하다면 자손이 번창하여 제사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땅이 나쁘면 물·땅강아지·개미·바람 등이 무덤을 침범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유골과 혼령이 불안할 것이며 재앙과 대가 끊기는 우환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주자의 풍수설을 근거하여 조선 왕릉들이 이장되고, 사대부에서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이장을 다반사로 하였다. 조선 최고의 풍수사 남사고(1509~1571년)는 9번 이장하여 10번 장사를 지내 ‘9천10장(九遷十葬)’이란 말을 남겼고, 명성황후는 친정아버지 민치록 묘를 4번 이장하여 ‘4천5장(四遷五葬)’이란 기록을 남겼다. 현존 인물로서 국회의원을 지낸 김종회 선생은 그 증조부 묘를 12번 이장하여 13번 장사를 지낸 ‘12천13장(十二遷十三葬)’을 하였다. 필자가 그 현장을 직접 가보았다. 김종회 선생은 선친 김수연 선생을 이어서 ‘학성강당’에서 제자를 양성하는 성리학자이다. 지금까지 7000명의 제자를 길러낸 대한민국의 대표적 유학 서당이다. 김종회 전 의원은 말한다.
“명당발복이 목적이 아니라, 조상의 체백이 편안함을 으뜸으로 해야 조상(彼)과 후손(此)이 영생하는 피차생생(彼此生生)의 천리가 완성됩니다.” 주자의 풍수론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파묘>는 조선왕조와 유학자들에서 끝나지 않았다. 대권을 꿈꾸었던 많은 정치인들이 파묘와 이장을 하였다. 김대중·이회창·한화갑·김종필·김덕룡·이인제 등이 그들이다. 필자는 그 현장을 답사하여 책으로 남겼다(<권력과 풍수>, 2002년). 영화 <파묘>가 나올 수 있는 배경이다. 이때가 1990년대였다. 그보다 10여 년 앞선 1970~1980년대의 일이다. 군인들의 <파묘>가 있었다. 다름 아닌 전두환과 노태우이다. 2023년 11월에 개봉되어 1300만 관객 동원을 앞두고 있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황정민 분)’과 ‘노태건(박해준 분)’이 그 주인공들이다. 당시 풍수계에서도 큰 사건이었다. 선영이 명당이라서 대통령이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육관도사 손석우(1928~1998년) 씨가 소문의 진원지였다. 평소 그는 자신이 전두환과 노태우가 ‘왕이 될 자리를 잡아주었다’고 자랑했다. 훗날 그가 쓴 <터>(1993년)라는 책에서 또 자세히 소개한다. 손석우의 이야기이다.
“1978년 전두환의 처삼촌 이규광이 한남동 나(손석우)의 집을 찾아왔다. 아버지 이봉희(이순자 조부)를 위해 명당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길지를 소개해주었는데, 돈이 없다고 난색을 표한다. 하는 수 없이 국유지를 추천하였다. 왕비가 날 자리이니 가능한 한 빨리 새벽 암장을 권하였다. 이규광·이규성·이규동(이순자 부친) 3형제가 개장신고도 하지 않고 파묘하여 이곳으로 이장하였다.”(손석우, <터>)
이장한 뒤 2년 만에 손녀(이순자)가 ‘왕비’가 되었다. 단지 손석우의 허풍이라 말할 수 없다. 이장지는 용인시 내사면 금박산에 자리한다. 필자도 1990년대 중반 현장을 답사하였다. 손석우 씨 터잡기 특징이 드러나는 땅이었다. 다음은 노태우와 손석우의 풍수 인연이다.
“1980년, 누군가가 나(손석우)를 모셔갔다. 가보니 김복동 3형제가 나를 맞이한다(김복동은 전두환·노태우와 육사 동기이자, 그의 여동생이 노태우의 아내이다). 돌아가신 아버지 묘를 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북쪽 10여㎞ 떨어진 동명마을 뒷산을 소개했다. 나는 이 자리가 ‘딸이 왕비가 될 자리입니다’ (…)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987년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다. 처갓집 명당 덕이다.”(손석우, <터>)
실제로 필자는 1990년대 노태우 장인묘를 답사한 적이 있다. 손석우 풍수사의 터잡기가 드러나고 있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처가 명당 덕에 ‘왕’이 된 셈이다. 대통령이 된 뒤 그들은 고향 땅 선영에 신후지지(身後之地·죽어서 묻힐 자리)를 잡았다. 전두환은 합천군 율곡면 기리 산 81에 있는 부모묘 진입 30여m 아래에 신후지지를 잡았다. 필자 역시 호기심을 못 이겨 20여 년 전(2001년) 그곳을 가보았다.
노태우 대통령은 자신의 생가 뒤인 대구 동구 신용동 607번지에 신후지지를 잡았다. 부모묘 바로 아래에 있다. 어인 일인지, 이 자리는 풍수사 손석우가 아닌 건설부 차관을 지낸 이관영(1934~2023년) 씨가 잡았다고 한다. 박정희 정권 당시 건설부에 재직했던 이관영 씨는 국토 건설에 풍수 자문이 필요하여 많은 풍수사들을 접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풍수 고수가 되었다.
3년 전인 2021년, 전두환과 노태우가 사망하였다. 그들은 고향 땅으로 돌아갔을까? 노태우 대통령은 신후지지를 버리고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동화경모공원’에 안장된다. 전두환도 고향 땅으로 가지 못했다. 그 까닭은 알 수 없다. 파주시 모처에 묘를 쓰고 싶어 했으나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유골이 자택에 보관 중이다.
전두환과 노태우 그 둘의 업보에 차이가 있는 듯하다. 비록 고향으로 가지 못했으나, 노태우는 음택(묘지)을 찾아 영면을 얻은 반면, 전두환은 집(묘지)을 찾지 못해 구천을 떠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 <파묘>가 관심을 끌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된다고 한다. 묘지풍수가 오랜 문화로 익숙한 우리에게는 관심을 끌 수 있겠으나, 낯선 서양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김두규 우석대 교수
국내 손꼽히는 풍수학자다. 현재 우석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풍수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