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권위의 프랑스 칸국제영화제가 16일(현지시간) 닻을 올린다. 켄 로치, 고레에다 히로카즈, 웨스 앤더슨, 빔 벤더스 등 세계 최고의 영화 거장이 경쟁 부문에서 겨루는 한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나탈리 포트먼, 줄리엣 비노쉬 등 최고의 배우들도 레드 카펫을 밟아 ‘별들의 전쟁’을 치를 전망이다.
올해 장편영화 21편이 칸영화제의 본상인 경쟁 부문에 오른 가운데, 최고 기대작은 칸에만 14회 초청받은 켄 로치 감독의 ‘오래된 참나무(THE OLD OAK)’다. 영국 북동부에 한 폐쇄된 광산마을에서 마지막 남은 펍인 ‘THE OLD OAK’를 그린 영화로, 집값이 저렴한 까닭에 시리아 난민이 몰려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알려졌다. 로치 감독은 칸영화제 본상만 7개, 그중 2006년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2016년작 ‘나, 다니엘 브레이크’는 1등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명장이다. 노동자와 소외자의 세계를 그려온 1936년생 로치 감독이 또 한번 트로피를 거머쥘지 관심을 모은다.
배우 송강호가 작년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브로커’를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괴물(MONSTER)’로 다시 칸 뤼미에르 극장에 앉는다. 미혼모의 아들이 살던 교외 마을에서 사소한 싸움이 벌어지고, 이 싸움에 어른들이 관여하며 큰 사건으로 발전한다. 예고편을 보면 아이들이 사라지고 어른들이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헤매는 모습도 나온다. 이번 영화는 그의 16번째 장편으로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총괄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어느 가족’으로 2018년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로 일찌감치 천재성을 보여준 빔 벤더스 감독의 ‘완벽한 날들(PERFECT DAYS)’의 배경은 도쿄다.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한 남성이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나고 이를 통해 과거가 밝혀지는 이야기로 전해진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특유의 색감과 미학을 보여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애스터로이드 시티(ASTEROID CITY)’도 기대작이다. 가상의 사막도시에 모인 이들이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도시에 격리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토드 헤인스 감독은 영화 ‘5월 12월(MAY DECEMBER)’로 칸을 찾는다. 주인공은 나탈리 포트먼과 줄리안 무어다. 악명 높던 타블로이드 로맨스를 겪었던 여배우들이 자신의 과거를 다루는 영화를 조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알려졌다. 베트남계 프랑스인 쩐아인훙 감독은 ‘도댕 부팡의 열정(LA PASSION DE DODIN BOUFFANT)’으로 칸을 찾는다. 주인공은 줄리엣 비노쉬다. 미식가 도댕과 요리사 유제니의 인연을 담은 작품으로 18세기 프랑스가 배경이다.
독일 아우슈비츠 수용소 옆에 사는 폴란드 가족을 그린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흥미의 영역(THE ZONE OF INTEREST)’, 명문고에 한 교사가 취직하면서 학생들과 ‘끈끈한’ 유대를 맺는 제시카 휴스너 감독의 ‘클럽 제로(CLUB ZERO)’ 등도 트로피를 두고 경쟁한다.
경쟁 부문 진출엔 비록 실패했지만 한국 장편영화 5편이 칸을 찾는다. 단편영화까지 합치면 모두 7편이다. 이렇게 많은 한국영화가 같은 해애 칸에서 상영되는 것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김지운 감독, 배우 송강호·임수정·오정세 주연의 ‘거미집’은 올해 칸 공식 비경쟁 부문으로 초청받았다.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영화감독이 검열과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제목 ‘거미집’은 거미줄에 갇힌 감독의 심정의 은유로 이해된다. ‘거미집’과 함께 공식 비경쟁 부문 초청작으론 총 5편이 초청됐는데, 그중 한 작품이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이다. 주인공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로, 그도 칸에 참석한다.
유재선 감독, 배우 이선균·정유미 주연의 영화 ‘잠’은 칸 비평가주간 초청작이다. 잠드는 순간 다른 사람처럼 변해 끔찍한 행동을 저지르는 남편이 자아내는 공포의 비밀을 파헤치는 아내의 스토리다. 정유미는 4번째, 이선균은 3번째로 칸을 찾는다. 특히 배우 이선균은 이번 칸영화제 진출작이 무려 2편이다. 이선균은 배우 주지훈·김희원과 함께 주연을 맡은 칸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작 ‘탈출: PROJECT SILENCE’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에 붕괴 위기에 처한 공항대교, 그 위에 사람들이 고립되면서 극한의 사투가 벌어진다. 김태곤 감독이 연출했다.
김창훈 감독, 배우 홍사빈·송중기·김형서 주연의 영화 ‘화란’도 이번 칸의 기대작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기댈 곳 없는 18세 소년이 조폭 중간두목을 만나 삶과 죽음의 위태로운 경계에 서는 모습을 그린 느와르 영화다. 송중기는 오토바이를 전문으로 훔치며 악랄한 고리대금업에도 손대는 조폭으로 출연한다. 화란(和蘭)이란 네덜란드를 부르던 용어로, 극중 주인공이 네덜란드를 가고 싶어 하는 일종의 유토피아다. 특히 김창훈 감독은 이번 영화가 데뷔작이어서 첫 영화 연출작에만 주어지는 ‘칸 황금카메라상’ 후보이기도 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우리의 하루’는 칸 감독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40대 초반 여자와 70대 남자를 방문객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룹 블랙핑크의 배우 제니는 샘 레빈슨의 HBO 드라마 ‘더 아이돌(THE IDOL)’에 출연해 이번 칸 일정에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