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건축가’로 불리는 안도 타다오가 개인전 ‘안도 타다오(安藤忠雄)-청춘’(~7월 30일)의 개막에 앞서 방한했다. 이번 개인전은 그가 직접 설계한 ‘뮤지엄 산’의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개최됐다. 그동안 도쿄(2017), 파리(2018), 밀라노(2018), 상하이(2021), 베이징(2021), 대만(2022)에서 개인전을 가졌지만 자신이 직접 설계한 공간에서 전시회가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을 다니지 않고 독학해 건축가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중고서점에서 본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카탈로그가 긴 여정의 시발점이었다.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전무했지만 르 코르뷔지에의 설계 도면을 따라 그리며 외우다시피 공부했고, 1962년부터 1969년까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건축을 배우고 익혔다. 1969년 건축사무소를 차리고 건축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1976년 오사카 스미요시의 연립주택으로 일본 건축 학회상(1979)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의 행보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넓고 깊다. 1989년 프랑스 건축 아카데미상, 1991년 미국 건축가 협회(AIA) 명예 회원, 1993년 영국 왕립 영국 건축가(RIBA) 명예 회원에 오른 후 1995년에는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다. 그는 대학 졸업장 없이 미국의 예일, 컬럼비아, 하버드, 일본의 도쿄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간담회 현장에서 “가진 건 핸디캡뿐이었다”라고 고백한 안도 타다오의 입담은 유쾌했다. “대학을 다니지도 건축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않았다”라고 말한 그는 “그래도 50년 넘게 이 일을 하고 있다”라며 “100살이 될 때까지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선언 아닌 선언을 했다. 움푹 들어간 눈가에 피곤한 듯 거뭇한 그늘이 퀭했지만 눈동자는 또렷했다. 인터뷰는 간담회와 강연회 내용을 재구성했다.
Q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A 지금은 원주에서 이렇게 마주 앉아 있어요. 어제 일본 오사카에서 왔습니다. 오사카는 좀 촌스러운 곳이에요. 이곳처럼 문화적이지 않은 곳이죠.
Q 오사카가 문화적이지 않다? 그럼 도시가 갖고 있는 콘텐츠와 경관 사이에 건축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A 설계는 내가 하지만 그걸 지으려면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건물을 짓자고 공사를 발주하는 분도 분명 있어야 하죠. 많은 분들이 발주하지 않으면 공사가 불가능하잖아요. 어제 서울대에서 강연을 했는데, 질문 수준이 상당히 높고 재밌더군요. 제가 한때 도쿄대학에서 가르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서울대보다 떨어져요. 재미있는 곳엔 재미있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어야 해요. 서울이 매력적이라면 아시아, 아프리카 어느 곳에서도 서울을 보러 오겠죠. 매력적인 도시에는 좋은 분들이 모입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도시의 힘이 떨어지죠. 좀 더 덧붙이자면 한국과 일본은 가까운 사이예요. 난 정치나 경제는 모릅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앞으로도 교류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때로 재미있는 것일수록 쉽게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A 난 거절당해도 개의치 않아요. 나중에 어딘가에서 꼭 실현하겠다고 다짐하죠. 실제로도 그렇게 살았고, 마음속에 담아두면 언젠가 실현됩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오래 살아야 해요.
Q 팬데믹으로 삶이 달라졌다고들 합니다. 공간도 그러한데요. 어떤 공간이 가장 편하십니까.
A 뮤지엄 산의 입구로 들어왔을 텐데, 거기 파란 사과를 보셨는지요. 제가 만들어서 갖다놓은 거예요. ‘청춘의 사과’라 이름 붙였어요. 청춘은 10대나 20대가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입니다. 그러니 저도 청춘이죠. 그런데 청춘을 느끼려면 자연에 있어야 하고 물과 푸른 나무가 있어야 해요. 여기가 그렇죠. 그게 편한 공간이에요. 아, 파란 사과 한 번 만지고 오세요. 그거 만지면 1년은 더 살 겁니다.(웃음)
Q 그 편한 공간이 도시와 참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A 서울에서 두 시간은 족히 걸리던데, 여기에 미술관을 짓겠다고 한 건 고(故) 이인희 한솔 고문이에요. 참 대단한 분이죠. 전 세계에 없는 걸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사실 전 과연 이런 곳에 사람이 올까 싶었지요. 그런데 이 고문이 사람들을 오게 만드는 건 자기들 역할이라 하더라고. 이곳에 좋은 작품, 아름다운 자연이나 재미가 있든지 아시아, 아니 전 세계에 없는 미술관을 만들면 반드시 사람들이 찾아올 거라고 말했어요. 그래도 난 속으로 안 올 거라고 생각했지.(웃음) 그런데 요즘 연간 20만 명 이상이 찾고 있다네요. 이 미술관이 10년 전에 지어졌으니 5년 후에는 더 좋아질 겁니다.
Q 미술관을 설계하면서 느낀 재미라면.
A 난 그 장소에만 있는 재료로 건축을 합니다. 그게 공통된 테마죠. 뮤지엄 산을 두른 벽의 돌들도 모두 이 땅에 있던 재료예요. 이곳은 대규모 건축이었지만 마치 정원을 설계하는 것처럼 즐거웠습니다.
Q 말씀을 듣고 보니 나오시마 섬의 미술관이 떠오릅니다.
A 일본의 나오시마 섬에 미술관을 지었는데, 그곳도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었어요. 지금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합니다. 처음엔 정말 절망적인 곳이었는데, 나오시마 프로젝트 이후 지금은 연간 70만 명이 이 섬을 찾고 있습니다. 섬의 소유자(후쿠다케 소이치로)가 아직 살아계신데, 그곳에 세계 최고의 미술관을 짓고 싶다고 했어요. 뮤지엄 산처럼 도시에서 먼 곳이지만 저곳에서도 무엇이든 집중해서 보게 됩니다. 물론 뮤지엄 산도 그렇고 나오시마 미술관도 그렇고 이렇게 성장시키기 위해선 많은 분들이 노력해야죠. 아이를 낳으면 성장시키고 돌봐야 해요. 똑같습니다.
Q 매끄러운 촉감으로 마감한 노출 콘크리트 공법은 안도 타다오를 상징하는 방식인데요. 특별히 콘크리트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있습니까.
A 건축은 자연과 잘 어우러져야 해요. 콘크리트라는 재료는 1897년에 파리에서 만들어졌어요. 누구든 쉽게 구할 수 있죠. 난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재료로 아무나 만들 수 없는 건축물을 세우고 싶었어요. 로마 판테온에는 철근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께가 8m나 되죠. 뮤지엄 산은 철근 콘크리트 덕에 두께가 많이 줄었습니다. 내가 설계한 건축물은 자연광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데, 빛은 희망이고 그 희망을 지탱해주는 게 콘크리트예요. 앞으로는 100살까지 살 텐데, 그러려면 지적인 체력과 신체적인 체력이 필요합니다. 이걸 유지하려면 항상 새로운 걸 찾아야 하고 또 희망을 찾아야 해요. 난 그런 희망이 있는 건축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Q 노출 콘크리트가 미래에도 지속될까요. 정말 좋은 건축이 나오기 위해 필요한 요소라면.
A 콘크리트란 재료는 100년이 지나도 끄떡없어요. 좋은 건축물을 만들려면 좋은 클라이언트가 필요합니다. 교토에서 큰 건축물을 만들고 싶다는 클라이언트가 찾아왔는데, 그걸 완성하려면 한 7~8년은 같이 일해야겠더군요. 근데 그분이 당뇨병을 앓고 있는 거야. 당뇨병부터 고치고 오라고 했어요. 10년 동안 살아있지 않으면 우리가 힘들어지거든. 인생을 살아갈 땐 작전이 필요합니다.(웃음)
Q 안도 타다오라는 이름은 희망의 아이콘이기도 한데요. 실패의 순간에도 희망을 유지하는 비결은.
A 개인적으로 난 정말 절망적인 인생이에요. 대학도 안 갔고 전문학교도 가지 않았어요. 건축가가 되겠다고 했더니 안도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고들 했어요. 또 암 때문에 담관, 담낭, 십이지장, 췌장, 비장 전부를 제거했지요. 지구상에 내장 5개를 적출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루 1만 보를 걷고 식사도 30분씩 하죠. 지금도 하루 2시간씩 공부합니다. 이렇게 노력하면 반드시 즐거운 일이 생겨요. 절망에 머물지 않고 계속 희망을 찾아 나가야죠. 절대 잘된다고 안심해선 안 됩니다.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놔야죠. 난 여러분의 본보기가 되고 싶어요. 아, 또 하나. 난 책이 보물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은 스마트폰이 보물이겠지만 그건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가가 된 이유라면.
A 14살 때 살던 집을 증축했는데, 마을 목수가 와서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건축이란 게 참 재미있구나 싶었지요. 지금 하는 일을 즐기고 계신가요? 난 즐거워요. 왜냐고? 돈은 클라이언트가 대거든.(웃음)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A 일본은 한국처럼 학력주의 사회예요. 학력이 없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고 싶어요. 때로 어떤 의미에선 학력을 가진 이들이 비판을 받기도 하죠. 누구에게나 기회는 동등하게 있어요. 이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밖에 있는 파란 사과를 많이 만지시길. 난 올해 81살이 됐어요. 앞으로 열심히 살 것인데, 사회를 위해 20년은 살아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천국과 상의했는데 20년은 더 살다 오라던데.(웃음)
안재형 기자 사진 뮤지엄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