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시간과 상황 그리고 사물을 잇는 길이자 동시에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들어가게 하는 입구에 우리를 세운다. 낯선 것들이 시공간을 초월해 완벽에 가까운 평정을 보여주는 불균형을 포함한 균형은 항상 긴장을 자아낸다. 그는 자연을 통해, 사물을 가지고 공간이 아닌 시간을 담아낸다. 이렇게 이우환을 다시 만났다. 일본 도쿄의 국립 신미술관이 개관 15주년을 맞아 이우환의 회고전(2022년 8월 10일~11월 7일)을 열어 가능한 만남이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스스로 디스플레이 계획을 수립하고, 작품을 직접 설치했다. 끝까지 격렬하고 신랄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자신과 자신의 작품에 엄격한 그의 태도는 팔순을 훌쩍 넘긴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렇게 혼신의 힘을 쏟은 이번 회고전은 마치 그의 자서전 같다는 느낌이다.
1936년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 태어난 그는 다섯 살 때부터 서예, 시,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서울에서의 고교 시절에 그는 시인을 꿈꾸었다. 동양화를 공부하려고 진학한 서울대 생활을 3개월 만에 접고 1956년 일본으로 가 일본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이후 모노하(物派,もの派)의 일원으로 반전통, 반예술의 대열에 들어섰다. 당시 프랑스 68운동은 전 세계 젊은이들을 기존의 가치와 질서에 저항하라고 독려했다. 이때 모노하는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현상학과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어 1960년대 반문화 운동에 뛰어들었고, 이우환은 이런 반전통운동에 이론적 틀을 제시하면서 뒤집기, 전복을 시도하며 모임을 이끌었다. 그의 초기 작업은 본질을 왜곡시키는 시각적 회화를 비트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이번 회고전의 들머리에서 전시를 이끌어내는 단초가 되고 있다. 그는 반회화 작업과 함께 관계항(Relatum)이란 입체작업을 병행한다. 이후 그의 작업 내내 입체와 평면은 이우환의 미학을 동시적으로 드러내는 형식이 되었고 서로 이질적인 것들의 ‘만남’을 통해 ‘열린’ 가능성을 이끌어냈다.
이우환의 회화작업은 회화의 기장 본질인 점과 선, 그리고 서체적 운필법이 중심이다. 하지만 그의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백’이다. 아니 여백보다는 ‘비움’이 더 적절할 듯하다. 그는 점과 선, 서예를 연상시키는 붓놀림을 통해 여백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 여백은 비움이 된다.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비울 것을 염두에 둔다. 이때 주로 사용하는 석채 안료는 수용성임에도 묵화하고는 다른 사물로 지지체 위에 존재한다. 그려진 것 자체가 오브제인 동시에 뒷전에 물러나 있던 지지체의 존재감을 회화의 전면에 내세우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때 비움은 동양회화의 여백에서 왔지만, 동양회화의 여백과는 다른 사물이 되며 캔버스는 그림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형식이 아닌 그 자체가 그림이 되어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이렇게 그의 캔버스는 재료와 여백이 만나는 장인 동시에 장소가 된다. 그리고 이 장소는 무한하게 열려있는 통로이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어 열리면서 열린 세상 그 자체로 변모한다.
그는 자전적 회고전에서 자신의 작업을 크게 1기 ‘초기 활동기’, 2기 ‘모노하의 기원과 전개’, 3기 ‘회화의 시작’, 4기 ‘바람(Wind)과 조응(Correspondance)의 시대’, 5기 ‘여백의 예술’, 6기 ‘열리는 무한’기로 구분하고 있다. 1기라 할 수 있는 1936년부터 1968년까지 <풍경> 등의 시·지각적인 작품에는 수묵화 등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통해 스스로를 벼르던 시기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본다’는 것과 ‘보이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는 점이다. 시각의 불확실성을 탐구하는 ‘이미지론’이 새롭게 비평용어로 대두되면서 이우환도 ‘본다는 것’에 의문을 갖고 작품을 제작했던 시기다.
1969~1972년의 2기는 ‘모노하의 기원과 전개’기로 모노하의 물질이 등장한 것은 날것의 있는 그대로의 재료를 작가의 행위를 통해 ‘현장’에서 그것을 그대로 구조화하는 모노하의 방법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후 이런 방식은 가공되지 않은 물질 그대로를 이용하는 설치작업으로 일반화되면서 모노하의 선두가 되었다. 3기인 ‘회화의 시작’은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의 시기이다. 이 시기의 작업은 공간이 아닌 시간을 회화에 도입한 작업이란 점이 특징이다.
서양미술의 본령인 공간을 포기하고 붓질을 통해 시간을 드러내는 회화를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킨 시기다. 이때 점과 선은 간결하게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그 단순함이 관객들에게 행간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게 하면서 사유와 성찰하게 하는 회화가 된다. ‘바람과 조응의 시기’인 4기는 매우 대조적인 시기로 극과 극의 시기이다. 단순하게 반복되던 선과 점이 필세가 살아 화면이 격랑의 파도처럼 일렁이다 갑자기 폭풍우가 멎는 듯한 ‘조응’의 시기로 들어선다. 보다 그의 회화를 대하는 사유의 세계가 어떤 결론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2000년 간행된 그의 책 <여백의 예술>을 이우환은 제5기의 시기로 규정한다. 속칭 ‘대화(Dialogue)’의 시기로 여백 또는 비움 그 자체가 작품이다. 이때 커다란 화면에 명도 차가 있는 큰 점 하나가 화면에 덩그러니 놓이면서 그 자체가 하나의 회화이자, 여백으로 인해 또 다른 작품의 부분이 되면서 서로 대화하는 역설의 회화가 완성된다. 6기는 ‘열리는 무한’의 시기로 나오시마(2010년), 부산(2015년), 아를(2020년)에 이우환의 미술관이 개관하고, 국제적인 작가로 영일이 없는 현재 진행형의 시대이다. 이 즈음 작업은 그의 대화 시리즈가 점의 형식은 지니되 풀어지기 시작한다. 5기의 ‘대화’가 그려진 것과 여백의 대화라면 이제 점 스스로 자신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쉼 없이 자신을 담금질해온 이우환의 최근작은 긴장보다는 여유가, 절제보단 유머가 돋보인다. 이우환은 이제 ‘대립’과 ‘조화’를 넘어섰다. 최근 끊임없이 혹독하게 스스로를 다스려온 그가 자신에게 관대해진 듯 ‘쉼’과 ‘여유’가 느껴진다. 결국 전시는 “이우환이 이우환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우환은 이제 하나의 장르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6호 (2022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