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왔는데 케이블카도 안 타고 그냥 가자고? 왜?”
“목포에 먹을거리 많다는데, 케이블카 타는 돈으로 회 한 접시 더 먹자는 거지 뭐.”
“입으로 먹는 것만 먹는 게 아냐. 눈으로 보는 것도 그 나름 미식이라고. 입으로 맛있는 건 배만 부르지만 눈으로 맛있는 건 오감이 짜릿하다니까. 내 말 좀 들어.”
올 초 결혼한 A와 B가 옥신각신이다. 목소리를 최대한 줄여 속삭이고 있지만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선 그저 괜한 배려다. 결혼하고서 고집이 늘었다는 둥 나는 아직 배부르다는 둥 배부르면 구경만 하라는 둥 소곤대던 대화가 점점 소리를 키울 때쯤 매표소 앞에 섰다. ‘일반 캐빈 왕복 2만4000원. 크리스털 캐빈 왕복 2만9000원’이라 적힌 가격표에 B가 놀라며 한마디 던진다.
“우와, 2만4000원이면 총 4만8000원인데, 이거면 오늘 저녁 근사하게 즐길 수 있겠다.”
“왜 2만4000원이야. 이왕 탈 거면 크리스털로 타야지. 그리고 왜 4만8000원이니. 2만9000원이면 되니까 나머지 금액은 자기 저녁 먹는 데 보태든지. 여기 크리스털 왕복 ‘한 장’ 주세요.”
이쯤 되면 남편의 참패다. 이 말 곧이듣고 혼자 갔다 오라고 할 리도 없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평생 추억(?)거리 하나 짐처럼 이고 가게 된다. 재빨리 사과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간식거리 사들고 쫓아간다면 그나마 저녁 식사 때 때늦은 민어 한 점 맛볼 수 있지 않을까. 바로 그때 A의 결정적인 한마디가 B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니 크리스털 캐빈에 저녁식사, 야식까지 내가 쏜다. 나는 지금부터 닥치고 따라갈 테니 그대는 목줄 잡고 날 이끌어 주십시오.”
“응. 그러시든지….”
아, 이런 걸 두고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 했던가. 어쨌거나 저쨌거나 목포에 왔다. 근대 역사의 거리가 떠오르던 이곳이 요즘 해상케이블카로 ‘핫’해졌다. 찾는 이가 많으면 즐길 거리, 먹을거리도 많아지는 법. 이곳을 찾아 먹고 즐기고 하루 묵어가는 이들도 늘고 있다.
케이블카에 올라 10여 초가 지났을 뿐인데 이곳을 찾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우와아~!” 단 한 명이라도 일행들만 탑승하기에 괜스레 목소리가 높아진다. 마치 롤러코스터 초입부처럼 고개 하나를 넘자마자 펼쳐지는 풍광에 눈이 시렸다. 온 사방이 탁 트인 하늘 위에 홀로 선 느낌은 꽤 설렜다. 막춤을 춰도 누구 하나 보는 이 없는 고요한 장소에 항구도시와 바다의 비경이 펼쳐지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순간이 눈앞에 펼쳐진다. 왼쪽에는 목포 시내가 오롯하고 오른쪽에는 목포대교 너머 다도해가 출렁인다. 말로만 듣던 유달산 정상이 옆을 스치듯 지나고 나니 저 앞에 고하도가 버티고 섰다. 북항스테이션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유달산스테이션을 거쳐 고하도스테이션에 이르는데, 이곳에 내려 둘레길을 걷고 돌아가는 길에 유달산에 오른 후 복귀하는 코스다.
목적지는 고하도 둘레길이지만 목포해상케이블카는 그 자체로 새로운 관광지가 됐다. 총 길이 3.23㎞의 길이도 손꼽을 만한 장점이지만 최고 155m에 이르는 아찔한 높이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2019년 개통 이후 300만 명 이상이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목포역’ ‘목포국제여객선터미널’ ‘목포대교’부터 ‘목포해양대학교’ ‘유달산 일등바위’ ‘유달산조각공원’ ‘노적봉’ ‘스카이워크’ ‘목포타워 155’ ‘용머리’ ‘고하도 해안데크길’까지 이름난 관광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힘들여 찾아가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열에 아홉은 휴대전화 들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유달산 전망대에 오른 단체 관광객들이 큰 소리로 “겁나게 박아부러~”를 외치는 모습이 싫지 않은 건 나 또한 그런 마음이기 때문이다.
고하도 둘레길은 해안데크길과 산길로 나뉜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후 먼저 해안데크길을 따라 걷다가 고하도를 가로지르는 산길로 돌아오는 코스다. 외관을 정비 중인 고하도 전망대에서 해안데크길로 내려서면 그 아래로 파도가 철썩인다. 그러니까 바다 위에 섬 주변을 도는 둘레길을 낸 것이다. 가지런한 데크길 위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는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맞은편엔 유달산이 섬처럼 웅장하고 그 사이로 유람선 두어 척이 바다를 헤쳐 나간다. 데크길을 걷다 보면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만나게 되는데, 고하도는 이충무공이 수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전열을 정비한 후 노량해전에 나섰던 전초기지였다. 지금도 고하도에는 이충무공의 유적지와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데크길의 막바지엔 용(龍) 상이 있는데, 실제 은색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용을 닮아 용섬이라 불리기도 하는 고하도를 형상화한 포토존이다. 이 용머리를 뒤로하고 데크 계단을 오르면 등산길이 이어진다. 다시 고하도스테이션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산길이라고 험하진 않다. 등산화보다 운동화가 어울리는 길이다. 가다 쉬다 한 바퀴 걷고 나면 한 시간 반쯤 걸린다. 고하도 전망대의 카페에 들러 숨 돌리고 케이블카에 오르면 두서너 시간의 산책코스가 완성된다. 유달산스테이션에서 내려 전망대에 오르는 건 말 그대로 옵션이다. 선택해도 되고 그냥 북항으로 향해도 된다. 목포의 9味를 제대로 즐기려면 무리하지 않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 목포 9味
세발낙지 | 홍어삼합 | 민어회 | 꽃게무침 | 갈치조림 | 병어회(찜) | 준치무침 | 아구탕(찜) | 우럭간국
· 목포항구포차
15개 점포에서 100여 종의 음식을 내놓는다. 목포 내항과 유달산을 배경으로 상설무대에서 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다(삼학로 92. 061-270-8598).
· 목포활어회플라자
북항에 자리한 목포해양수산복합센터 위판장에서 매일 목포, 신안 등 인근 해역에서 잡은 활어가 경매(1일 2회)된다. 바로 옆 직판동에서 싱싱한 활어를 구입해 먹을 수 있다(고하대로 641-21. 061-277-9744).
글 · 사진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