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각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어려움이 점입가경으로 흘러가고 있다. 틱톡으로 대표되던 갈등 기업은 바이낸스, 마이크론 등으로 확산되며 제살 깎아먹기란 비판이 커지고 있는 상태다.
미·중 무역 갈등의 시작은 2018년 7월로 돌아간다. 미국이 예고대로 340억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 818종에 대한 25%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서 본격적인 중국 압박에 나섰다. 중국 역시 이에 대한 미국산 농산품과 자동차에 대한 보복 관세로 무역전쟁이 본격화됐다. 이처럼 정부 대 정부의 싸움으로 시작된 양국의 싸움은 트럼프 정부가 바이든 정부로 바뀌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다소 완화될 것이란 기대와 달리 바이든 정부와 시진핑 주석 간 강 대 강 대치는 심화하는 분위기다. 특히 바이든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법)과 반도체 지원법(CHIPS법)을 필두로 직접적인 대중 제재 대신 중국과의 거리 두기를 미국과의 무역을 위한 전제로 두며 교묘하게 압박을 키워가고 있다. 이와 더불어 틱톡으로 대표되는 중국 기업들의 미국으로부터의 퇴출을 가속화하며 정부와 민간 양동작전을 펼치고 있다.
사실상 국경이 사라진 글로벌 기업의 손발을 묶는 양국의 대치로 인해 민간 기업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태다. 이로 인한 피해는 기업뿐 아니라 고스란히 사용자 및 일반인들에게 이어지며 그 피해와 불편함 역시 나날이 커지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틱톡에 대한 제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몬태나주는 처음으로 틱톡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지난 4월 14일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은 찬성 54대 반대 43표로 통과됐으며 해당 법안은 몬태나 주지사 승인 아래 내년 1월부터 시행이 예정돼 있다. 기존 미국 정부는 틱톡의 정부기관 소속 장비에서의 사용을 법으로 금지시켰고 개인 이용자들도 사용할 수 없도록 완전한 퇴출에 대한 압박에 나선 바 있다.
몬태나주의 법안이 시행되면 애플과 구글 등 모바일 앱스토어에서 틱톡을 다운받을 수 없고 다운받을 경우 틱톡에 매일 1만달러에 달하는 벌금이 부과될 예정이다. 해당 법안은 “틱톡이 사용자 정보와 데이터를 훔쳐 그 데이터를 중국 공산당과 공유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라며 “몬태나의 사생활 권리를 침해한다”라고 금지 이유를 밝히고 있다. 틱톡은 “우리는 이 터무니없는 정부의 과잉 대응으로 생계와 수정헌법 제1조의 권리를 위협받고 있는 몬태나의 틱톡 사용자와 크리에이터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강경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최근 틱톡의 CEO 추쇼우즈가 직접 미국 의회에 방문해 미국이 우려하는 정보 유출 및 미국 정부기관 해킹에 대한 우려에 해명을 하고 정보 보호 조치를 위한 철저한 대응책을 전달했으나 현재 미국의 완강한 태도를 뒤바꾸기엔 부족한 상황이다.
물론 미국 측의 움직임에 오히려 반발하는 것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 내 사용자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만 1억5000만 명이 사용 중인 만큼 틱톡으로 수익을 내는 크리에이터 등 이용자들은 의회 청문회 날 미 국회의사당 앞에서 틱톡 폐지 반대 시위를 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바도 있다. 다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의 틱톡에 대한 압박 수위는 나날이 높아지는 만큼 미래는 밝지 않은 상태다.
문제는 틱톡이 대표하던 미중 갈등의 골이 곳곳에서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엔 글로벌 1위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가 미국의 제재로 이슈의 중심에 섰다. 미국은 지난 3월 바이낸스와 회사를 운영하는 자오창펑 CEO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구체적으로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파생상품 등에 대한 규정 위반으로 소송에 돌입했다. CFTC는 이날 바이낸스가 미국 당국에 제대로 등록하지 않은 채 사업을 영위했단 이유로 압박에 나섰다. CFTC는 소장에서 “자오창펑 등은 바이낸스가 미국에 고객 기반을 육성하면서 적용하는 연방법을 무시했다”라며 “그렇게 한 것이 결국 그들에게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소송의 이유를 밝혔다.
연방법상 미국인이 거래하는 상품일 경우 해당 플랫폼이 반드시 기관에 등록한 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미 정부 측에 따르면 바이낸스가 이러한 조치 없이 미국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해 법을 어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CFTC는 바이낸스에 대한 불법 이득 추징, 민사법상 벌금, 영구 거래 금지 등을 요청한 상태다. 로스틴 베남 CFTC 위원장은 성명서를 내고 “바이낸스가 수년간 규정을 위반하고 이를 회피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라며 “이번 제소를 통해 미국 법의 고의적 회피를 용납하지 않고 디지털 자산 세계에 경고를 보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미국 측의 압박에 대해 중국 정부와 바이낸스 등에서는 무리한 정치적 보복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문제를 끄집어낸 타이밍이 묘하다는 뜻이다. 틱톡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만큼 중국계 기업들의 부담은 나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바이낸스는 이날 곧바로 성명을 내 “우리는 지난 2년간 미국인들이 우리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도록 상당한 투자를 했다”라며 “추가로 8000만달러를 들여 규정 준수 프로그램을 지원해왔다”라고 억울함을 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군기 잡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방침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압박을 비웃기라도 하듯 미국에서는 중국 앱들의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틱톡의 퇴출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지난달 미국 앱마켓에서 인기 1~5위 앱 중 4개 앱이 중국에서 제작한 앱인 것으로 확인된 셈이다. 온라인 쇼핑 앱 ‘테무’가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틱톡의 동영상 편집 앱 ‘캡컷’과 쇼핑 앱 ‘쉬인’이 상위권에 위치했다. 특히 틱톡을 만든 바이트댄스의 앱들이 대거 유입됐는데, 이는 틱톡의 후광효과라는 지적도 있지만 앱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있다. 이는 13억 인구가 사용하는 중국 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쳐 살아남은 앱들인 만큼 앱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해당 앱들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데만 많은 비용뿐 아니라 고급 인재들이 투입돼 만들어진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처럼 누를수록 부풀어 오르는 풍선 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고민은 나날이 커지고 있는 상태다.
중국 역시 가만히 있지 않고 반격에 나섰다. 중국 사이버정보판공실(CAC)은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중국에서 판매하는 제품에 대한 보안 심사에 착수한다고 3월 31일 밝혔다. CAC는 이번 조사가 국가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시작되는 것이며 핵심 IT 인프라 공급망의 안전과 네트워크 보안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제품을 사전 방지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론은 세계 3위이자 미국 최대 규모의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로 네트워크, 모바일 기기 등에 쓰이는 수많은 반도체 모듈을 제조·판매하고 있다. 특히 마이크론의 지난해 영업이익 307억달러 중 중국 시장에서만 33억에 달하는 이익을 얻었다. 즉 전체 이익의 10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서 마이크론에 대한 압박이 늘어난 셈이다. 시장에서는 중국이 세계적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에 대한 조사를 착수하면서 메모리 기술 국산화를 앞당기고 미국에 대한 견제를 더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그간 미국의 다방면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별다른 저항이나 대응 없이 조용한 행보를 이어왔지만 이번 대응을 놓고 중국 측이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다양한 첨단기술 분야 중 마이크론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만큼은 중국의 국산 기술로 충분히 만회가 가능하고 대안이 많기 때문에 첫 번째 타깃이 된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또한 대한민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이 뛰어난 글로벌 기업들도 즐비한 만큼 만약 마이크론과의 관계가 악화하더라도 충분히 기술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 역시 중국의 노림수로 평가된다. 외교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행보를 두고 시진핑 주석의 3연임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중국이 계속해서 당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국 내 국민들의 우려나 동요가 커질 것을 감안해 마이크론을 본보기로 대응에 나섰다는 것이다. 즉 자국에 타격이 가장 적으면서도 미국 바이든 정부에 큰 타격을 입힐 반도체 기업으로 마이크론을 택해 보복에 나선 것이다.
이번 중국의 반격은 향후 중국의 보복 행보가 전방위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란 우려로도 이어지고 있다. 만약 중국이 본격적인 보복 행보에 나설 경우 양국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 전반에 큰 위기감으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중국의 마이크론 규제는 한국·일본과 같은 미국 동맹국에 보내는 경고 신호”라며 단순히 미중 갈등이 아닌 전 세계 경제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일각에선 전 세계 경제 성장률 저하가 우려되는 가운데 중국의 역할론을 주목해야 한다는 입장도 내놓고 있다. 사실상 선진국의 성장이 멈춘 가운데 중국의 성장 없이는 전 세계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실제 많은 국가들이 중국의 포스트코로나 움직임에 발맞춰 세계 경제 회복을 기대하는 만큼 미국의 중국 압박이 자칫 중국의 저성장과 글로벌 시장 경제의 위기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여전히 높은 물가 등을 이유로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우려를 키우기도 했다. 피에르 올리비에르 고린차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심각한 금융 안정성 위기 우려로 인한 경기 하방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라며 “세계 경쟁률은 올해 2.8%를 찍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IMF는 세계 경제 성장률이 15% 확률로 1%대로 그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위험을 줄이기 위한 중국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 역시 이러한 현실을 잘 인지하고 있는 만큼 내수 경제의 성장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에서의 주요한 역할을 잘 수행해 국가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고 세계 경제의 중심에 서겠다는 계획이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시장 전망치도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다”라며 “세계 경제 성장에 더 큰 기여를 할 자신과 능력이 있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어 왕 대변인은 “최근 여러 국제기구가 중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한 만큼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과 동력 제공을 준비 중”이라며 “불확실한 세계에서 중국의 확실성은 세계 평화와 발전을 수호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동훈 매일경제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