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 가상세계를 뜻하는 메타버스 시대가 열리면서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과 인공지능을 이용해 주변 사물들을 보다 정교하게 탐지하는 지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파피루스에 그린 첫 지도가 기원전 1300년께 이집트에서 등장한 이래 공간 위치와 지형 등을 표기하는 방법이 한 차원 더 높아진 셈이다. 특히 오늘날 부상하고 있는 메타버스 지도는 단순히 위치를 표시하는 것을 넘어 각종 정보를 보다 직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지도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늘날 메타버스 지도가 어떤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야외 공연장에서 열린 구글 개발자들을 위한 연례 이벤트인 ‘구글 I/O 2022’에서는 신개념 지도들이 쏟아졌다. 대표적인 지도는 몰입형 지도인 이머시브뷰(Immersive View)였다. 그동안 구글은 거리 보기인 스트리트뷰(Street View)나 입체 보기인 3D 건물 보기 등을 선보인 바 있는데, 이머시브뷰는 메타버스라는 점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클릭만 하면 랜드마크, 경기장, 레스토랑 등 온갖 장소에 마치 실제로 입장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구글은 “새로운 여행지를 떠나거나 정확한 정보를 얻고 싶을 때 유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영국 런던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웹을 통해 웨스트민스터 상공을 날아올라 다양한 각도에서 직접 바라볼 수 있다. 또 날씨 조건을 변경해 해당 지역이 날씨에 따라 실제로 어떻게 바뀌는지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이러한 몰입형 지도는 구글의 막대한 데이터 확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구글은 정교한 지도 개발을 위해 그동안 16억 채에 달하는 건물과 6000만㎞ 길이에 달하는 도로를 가상공간으로 옮기는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골 지역을 지도화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해결했다는 것이 구글의 설명이다. 컴퓨터 비전을 활용하고 위성으로 건물을 스캔해 보다 입체감 있게 제작했다. 이를 토대로 아프리카 지역 건물 수가 2020년 7월보다 다섯 배 가까이 늘었다는 것이 구글의 설명이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CEO)는 “구글 지도는 약 5분의 1정도가 인공지능 기반 컴퓨터 비전을 활용해 만들어졌다”면서 “그 결과를 세계은행이나 UN 같은 국제기구에 제공해, 보다 정교하게 재난 지원과 긴급 구조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선보인 몰입형 지도 역시 인공지능 기술을 토대로 하고 있다. 수십억 장에 달하는 항공 사진과 거리 배경을 3D로 전환하고 머신러닝 기술을 적용해 실제와 같은 입체감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구글은 이날 런던 전경을 몰입형 지도로 선보였는데 마치 게임 속 화면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피차이 CEO는 “빅벤을 방문하기에 앞서 교통상황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서 “비 오는 날씨라면 어느 정도로 비가 내리는지 확인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구글은 몰입형 지도를 일반 건물 외관뿐 아니라 실내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레스토랑 실내를 몰입형 지도로 제작해 식당을 예약하기 전에 실제 식당 모습이 어떤지 마치 방문하듯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메시지다. 이러한 몰입형 뷰는 올해 말 출시될 예정이며 미국 뉴욕·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영국 런던,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먼저 선보인 뒤 서서히 도시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구글은 스트리트뷰 서비스 15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예고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옛 거리 보기이다. 구글은 “이제는 모바일에서도 2007년 이후의 거리를 시시각각 볼 수 있게 됐다”면서 “안드로이드와 iOS에 모두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스트리트뷰 모드에서 화면 아무 곳이나 누른 뒤 ‘더 많은 날짜 보기’를 선택하면 된다. 해당 날짜를 선택하면 그때 거리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구글은 정교한 메타버스 지도 제공을 위해 360도 영상을 실시간 촬영할 수 있는 새로운 카메라를 도입하기로 했다. 현재는 전용 자동차를 통해서만 촬영이 가능한데, 이번에 도입할 카메라는 무게가 6.8㎏ 미만이기 때문에 일반 자동차에서도 손쉽게 촬영이 가능하다는 것이 구글의 설명이다. 구글은 그동안 지구 둘레보다 402배 많은 1000만 마일(1609만3440㎞)을 주행하며 2200억 개에 달하는 도로 이미지를 수집하기도 했다.
구글이 개발한 몰입형 지도 이머시브뷰(Immersive View).
▶게임처럼 다양한 각도로 보는 몰입형 지도
구글은 진열장에 있는 상품의 정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메타버스 검색 기능인 ‘장면 탐색(scene explora tion)’도 새롭게 선보였다. 프라바카르 라하반 구글 수석부사장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초콜릿 상점 선반에 진열된 상품들을 비추자 상품 정보가 잇따라 등장했다. 카카오 함유량은 얼마나 되는지, 종류는 무엇인지 증강현실처럼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해당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줬다. 이번에는 검색 입력창에 ‘땅콩이 들어가 있지 않은 다크 초콜릿’이라고 입력하고 다시 상품을 비췄는데 해당 제품만 스마트폰에 네모 모양으로 표기돼 나타났다. 그동안 구글 렌즈를 통해 이미지를 촬영하면 해당 정보에 대한 검색이 가능했는데, 이를 한 차원 끌어올려 카메라를 비추는 것만으로 검색 없이 다양한 제품들의 정보를 한눈에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구글의 지도가 현실세계에 기반을 둔다면 포켓몬고 개발사인 나이앤틱이 제공하는 지도는 가상현실용 지도다. 나이앤틱은 3만 곳에 달하는 증강현실 지도를 AR 개발자들을 위해 공개했다. 이번 지도는 실제 현실세계 위치를 정확히 인식해 가상 이미지를 보다 정교하게 조작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이앤틱은 앞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발자를 위한 첫 번째 행사인 ‘나이앤틱 라이트십 서밋’을 열고 이러한 내용을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나이앤틱의 존 행크 최고경영자(CEO)는 “AR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어 일상생활에 계속 침투할 것”이라며 “미래에는 스마트글라스를 통해 목적지까지 경로를 실제 거리에 겹쳐서 볼 수 있고, 건물 부지만 보고 그 역사와 과거 건축물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나이앤틱은 새롭게 공개한 지도 시스템을 ‘라이트십 비주얼 포지셔닝 시스템(LVPS)’이라고 명명했다.
LVPS의 특징은 매우 정교하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증강현실 지도는 현실세계의 높낮이나 깊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이앤틱의 지도는 현실세계에 있는 사물을 정확히 인식한다. 예를 들어 이미지인 피카추를 책상 위에 두면 책상과 겹쳐 보이지 않고 실제로 책상 위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또 피카추가 달리다 장애물을 만나면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부딪히는 것처럼 인식된다.
나이앤틱은 뉴욕, 샌프란시스코, 런던, 도쿄를 중심으로 이러한 지도를 공개한 뒤 그 대상을 넓혀갈 예정이다. 또 ‘라이트십’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일반 개발자들에게 이러한 지도 플랫폼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날 주목을 끈 것은 나이앤틱과 스타트업 JR의 협업이다. 증강현실을 통해 공공장소에 움직이는 생동감 있는 초상화를 내걸 계획이다. 예를 들어 유서 깊은 역사가 있는 건물의 가상세계에 관련 인물의 초상화를 걸어, 초상화 속 인물로부터 건물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직접 들을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구글이 개발한 몰입형 지도 이머시브뷰(Immersive View).
▶현실세계를 실제 사물처럼 인식해 생동감 더해
포켓몬고 개발사인 나이앤틱은 구글에서 분사한 기업으로 존 행크가 설립했다. 증강현실 기반 게임인 포켓몬고를 개발했는데, 출시 첫해 5억 회 이상 다운로드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아울러 인그레스 페리도트 등 수많은 증강현실 기반 게임을 잇달아 론칭했고 현재는 증강현실 게임 개발 플랫폼으로 거듭나고자 개발 도구를 공개하고 있다.
애플 역시 몰입형 지도를 앞서 선보인 바 있다. 애플 운영체제인 iOS 15 출시와 함께 선보인 서비스 중 대표적인 것이 몰입형 도보 길 찾기 기능이다. 애플은 “수년 동안 구축한 새 지도에서 확장된 업데이트는 이제 런던, 로스앤젤레스, 뉴욕,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다”면서 “더 많은 도시가 추가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애플의 몰입형 길 찾기는 증강현실을 통해 이뤄진다. 아이폰을 들어 해당 지역 건물을 스캔하면 해당 정보가 등장한다. 또 증강현실을 통해 보다 손쉽게 길 찾기를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내비게이션을 켜고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모습으로 길을 찾아야 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서 비추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현재 워싱턴 포스트, 내셔널 파크 파운데이션 등 1000개 이상의 장소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스마트폰을 들고 길을 걸으면 화살표 방향이 등장하고 그 길을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애플은 “좋아하는 장소를 선택하고 맞춤형 가이드를 만들 수 있다”면서 “이를 친구와 가족과 공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애플은 전 세계 지구본을 메타버스로 구현했다. 3차원 지구본은 지구의 자연미를 담아 산맥, 사막, 열대 우림, 바다 등 생생한 세부 사항에 대한 확인이 가능하다. 이러한 몰입형 지도 개발은 국내에서도 활발하다. NHN엔터테인먼트는 애플이 제공한 아이폰 증강현실(AR) 키트를 활용해 캐릭터와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기능을 도입했다. 사용자가 카메라를 켜고 앞을 비추면 가상 캐릭터인 ‘폭스’가 등장해 안내를 하는 방식이다. 화살표가 아닌 친근한 캐릭터가 먼저 길을 건너면서 사용자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 또 사용자가 따라오지 못하면 기다리는 모습도 연출한다.
애플이 개발한 몰입형 도보 길 찾기 기능
이처럼 빅테크를 중심으로 메타버스 지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까닭은 관련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리서치 기관인 퓨처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디지털 지도 시장은 2021년 140억달러 규모에서 올해 162억달러로 성장한 뒤 2032년까지 매년 14.2%에 달하는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국가별로 살펴보면 미국은 14%, 중국은 15.4%, 인도는 15.7% 각각 성장할 것으로 관측됐다. 특히 자율주행 교통 시스템 등이 발전하면서 그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러한 이유로 지도에 대한 원천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들을 인수합병(M&A)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글로벌 부품업체인 보쉬는 올해 3월 디지털 매핑 전문 기업 아틀라텍(Atlatec)을 인수해 주목을 받았다. 자율주행 분야를 고도화하려면 지도와 같은 소프트웨어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시장이 커지다보니 분야도 넓어지고 있다. 오늘날 디지털 지도 시장은 구성 요소에 따라 크게 솔루션과 서비스로 구분이 가능하다. 또 애플리케이션 방식에 따라 분류하면 실시간 위치 데이터 관리, 지오포지셔닝, 라우팅 탐색 등으로도 나눌 수 있다. 자율주행 외에 향후 뜰 유망한 디지털 지도 분야로는 건설이 꼽히기도 한다. 마케츠앤드마케츠는 “디지털 지도는 건설과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디지털 지도를 통해 안전 조치를 강화할 수 있고 네트워크 유지 관리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주요 업체로는 구글, 애플, 메타, 톰톰, 니어맵, ESRI, INRIX, 히어테크놀로지, 맵퀘스트, 알리바바 등이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