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북부의 소도시 바젤은 매년 봄이면 전 세계에서 몰려온 시계 관계자들로 북적인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시계보석박람회인 ‘바젤월드’가 열려서다. 2011년 올해 행사는 지난 3월24일부터 31일까지 8일간 일정으로 개최됐다. 전 세계 45개국에서 총 1900여 개 시계보석 브랜드가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바젤월드는 1972년 스위스산업박람회에서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기업들이 모여 ‘유럽 시계 주얼리 쇼’를 개최한 데서 유래됐다. 그 후 행사 규정과 조직, 명칭 등이 여러 번 바뀌는 과도기를 겪다가 2003년부터 ‘바젤월드’라는 정식 명칭을 갖게 됐다. 매년 1월에 열리는 스위스고급시계박람회(SIHH)와 함께 세계 양대 시계박람회로 통한다. SIHH가 최고급 시계브랜드 위주인 반면 바젤월드는 보다 대중적이며 규모 면에서 월등히 앞선다.
2011년의 시계 트렌드
클래식 시계의 부활이 두드러졌다. 시계에서 클래식은 예전에 나왔던 제품을 다시 내놓는 것. 디자인은 그대로 사용하면서 탑재한 기술만을 보강하는 게 이번 시즌의 큰 특징이다. 브랜드 저마다 스테디셀러 베스트셀러를 다시 내놓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클래식 시계의 등장은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 등 아시아를 겨냥해서다.
시계 사이즈가 작아진 것도 서구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체구가 적은 아시아 소비자를 잡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여성을 위한 매혹적인 시계들도 쏟아졌다. 남성들이 선호하는 최고급 시계인 ‘파텍 필립’에서도 여성을 위한 다양한 기능의 컴플리케이션 워치인 ‘레이디 퍼스트 스프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를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시간을 알려주는 미니트 리피트 기능을 탑재한 이 시계는 기존 남성 시계를 사이즈만 작게 만든 데서 벗어나 고급 기계식 시계를 좋아하는 여성의 취향을 반영한 게 특징. 이번 바젤월드에선 신소재·신기술 적용을 두고 브랜드간 치열한 자존심 경쟁이 벌여졌다.
그 대표주자가 ‘위블로’다. 위블로는 F1 레이서들을 위해 폭발 사고시 섭씨 200도를 견디도록 만든 특수 소재를 적용한 시계와 4000m 방수까지 가능한 최첨단 제품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소재에서는 세라믹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보수적인 ‘롤렉스’마저도 시계 테두리를 세라믹 소재로 덮은 모델(데이토나)을 내놓았을 정도다. 세라믹 전도사인 ‘라도’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세라믹 시계인 ‘트루 신(thin)’을 선보였다. 두께(쿼츠 기준)가 남성용은 5㎜, 여성용은 4.9㎜에 불과하다.
‘시간을 멈추는 시계’라는 낭만적인 콘셉트의 시계들도 많이 나왔다. ‘에르메스’는 원하는 순간에 시간이 가는 것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원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능을 갖춘 ‘아소 타임 서스펜디드’를 선보였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행복한 순간, 그 찰나의 시간을 잠시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시계는 작동을 잠시 멈췄다가 나중에 원하는 때에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기능을 갖췄다.
‘불가리’는 15분마다 현재 시간을 소리로 알려주는 ‘그랑 소네’를 내놓기도 했다. 시계공학의 결정체인 복잡한 기술의 컴플리케이션 워치들도 눈길을 끌었다. 불가리는 15분마다 해당 시간을 소리로 알려주는 ‘그랑 소네리’와 ‘투르비옹’(중력의 오차를 줄여주는 장치), ‘퍼페추얼 캘린더’(윤년까지 인식해 날짜를 표시하는 장치) 등 최고급 기술을 한데 담았다.
■ 10년간 바젤월드의 유일한 한국 브랜드 로만손
로만손(Romanson) 전시장
한국의 시계 브랜드인 로만손(Romanson)은 국산 브랜드 중 유일하게 바젤월드를 10년간 지속적으로 참가해 오고 있다. 시계로 유명한 스위스의 공업도시 로만시온(Romancion)의 이름을 본뜬 로만손이 시계의 본고장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다. 올해 바젤월드에서 로만손은 한층 젊어진 시계 상품들을 내놓아 관심을 끌었다. 이들 신제품은 스위스 현지 디자인 스튜디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디자인을 진행했다. 대표적인 제품은 ‘액티브 라인’과 ‘프리미어’다. 활기찬 느낌을 주는 액티브 라인(Active Line)의 AL1216HM 모델은 새의 날개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시계 전체를 좌우 분리형 날개가 양 옆에서 감싸는 형상으로 우아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게 특징. 시계 글라스에서 바로 시곗줄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디자인도 눈길을 끈다.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은 스위스산 무브먼트를 장착했다. 프리미엄 라인인 프리미어(PREMIER)의 PL1219HM은 거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거미의 네 다리가 먹이를 사냥을 하기 전 웅크리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시계 보디를 휘감고 있다.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은 스위스산 무브먼트와 3종 기능 디스플레이 다이얼, 10atm(약 100m) 방수 기능을 자랑한다.
2011 BaselWorld : 눈길 끈 명품시계 10선쇼파드 ‘L.U.C XP 토너 화이트 골드’
새롭게 선보이는 화이트 골드 쇼파드 L.U.C XP 토너(전체적으로 둥근 느낌에 위아래는 직선으로 마치 술통과 같은 디자인)는 전문기술, 희귀함, 우아함이 결합돼 탄생한 브랜드다.
무브먼트 자체가 토너 형태로 맞춤 설계됐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스위스의 시계인증기구인 COSC에서 정확성을 보장받은 ‘L.U.C 3.97 캘리버’가 장착돼 있다는 점에서 고급스럽다.
샤넬 ‘J12 크로매틱’
J12블랙과 화이트 컬러 워치에 이어 새롭게 론칭된 J12 실버 그레이톤의 티타늄 세라믹은 착용감이 편안하고 빛에 따라 색상이 변화되며 스크래치에 매우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티타늄의 가벼움, 색채와 무색채가 공존하는 이중적인 미(美) 그리고 하이테크 세라믹의 강한 내구성과 열 중립성(신체 및 팔목 온도에 자연스럽게 맞춰지는 소재)을 통해 인체공학의 결정체가 결합된 제품이 J12 크로매틱이다. 또 다이아몬드 파우더를 사용하는 사파이어 폴리싱 처리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샤넬만의 독보적인 폴리싱 기술로 인해 깊은 광채를 낸다.
브라이틀링 ‘크로노맷 GMT’
항공 시계의 대명사 브라이틀링은 ‘전문가를 위한 장비’라는 모토를 그대로 보여주듯 강인함과 기술력를 갖춘 새로운 시계를 대거 선보였다. 이들 신제품의 공통점은 완전히 새로운 기술 혹은 디자인을 채택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친밀감을 준다는 것이다. 크로노맷 GMT는 브랜드 플래그십 모델인 기존의 ‘크로노맷 01’에 새로운 기술력을 더한 신제품이다. 이번 바젤에서 주목을 받은 브라이틀링의 두 번째 무브먼트 칼리버 04가 탑재됐으며 크라운(용두)을 앞뒤로 돌리는 단순한 조작만으로 칼리버 04의 듀얼 타임존 시스템이 구현된다.
위블로 ‘클래식 퓨전 크로노그래프’
럭셔리 스포츠 시계의 대명사인 위블로에선 처음으로 클래식 퓨전 라인에 크로노그래프(스톱워치 기능) 무브먼트를 탑재한 제품. 사이즈는 45㎜로 대범한 느낌을 주며 HUB1143 오토메틱 매커니컬 무브먼트를 탑재했다. 티타늄 소재와 18K 킹 골드 두 가지 모델로 선보인다. 반면 다른 구성 요소는 블랙 코팅을 통해 더욱 강렬한 대비 효과를 줬다. 강렬한 골드 컬러를 부각시킴으로써 위블로만의 고급스러운 매력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았다.
오메가 ‘씨마스터 플래닛 오션 45.50㎜ 크로노그래프’
우수한 기능을 자랑하는 ‘코-엑시얼 칼리버 9300/9301’ 무브먼트를 탑재한 시계다. 여기에 사용된 무브먼트는 정확도가 뛰어나며 타임 키핑뿐만 아니라 크로노그래프 기능(시각 표시 외에 한 개 이상 바늘을 가지고 스톱, 스타트, 리스타트, 리셋 기능 등 시간을 측정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또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도 탑재돼 있다. 실리콘은 자기장 영향을 받지 않는 특성 때문에 원형 회복력이 뛰어나 더욱 정확하게 시간을 측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내구성도 뛰어나다.
이번 모델은 45.50㎜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에 무광 오렌지 알루미늄 혹은 무광 검정 세라믹 베젤(시계 테두리)을 선택할 수 있다. 시계판은 무광 검정이다.
태그호이어 ‘까레라 마이크로그래프 1/100초 크로노그래프’
매커니컬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가 장착된 ‘까레라 마이크로그래프 1/100초 크로노그래프’를 선보였다. 이는 진동수가 시간당 36만 번에 달하는 제품으로 100분의 1초까지 측정해 이를 다이얼 중앙에 위치한 시곗바늘로 보여준다.
‘고주파로 작동하는 듀얼 타입 매커니컬 무브먼트’를 적용한 이 제품은 2개의 메인 파트와 396개 부품으로 구성돼 있다. 두 개의 각기 다른 밸런스 휠(시간을 재는 시계 부품)과 분리된 이스케이프먼트(시계 톱니바퀴에 맞물려 톱니바퀴의 회전 속도를 조절하는 닻 모양 장치) 등을 갖춘 것이 특징.
티쏘 ‘티쏘 레이싱 터치’
티쏘 레이싱 터치는 조깅할 때 속도를 측정하고 그 기록을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을 터치 하나로 가능하도록 했다. 또 단순히 기록 저장 기능을 넘어 여러 랩타임 평균을 낼 수 있고 최고 기록과 최저 기록을 확인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지역 현재 시간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듀얼 타임, 밀물·썰물을 측정할 수 있는 타이드 캘큘레이터(tide calculator)와 나침반 기능도 갖추고 있다. 검은색과 오렌지 컬러의 고무 밴드와 스틸 밴드로 출시되며 특별히 여성들을 위한 화이트 고무 시곗줄 제품도 함께 출시됐다.
크로노스위스 ‘퍼시픽’
퍼시픽의 케이스는 온갖 모험과 도전 속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스포티하고 실용적인 디자인, 100m 방수 및 날짜 창과 같은 기능적 특징 그리고 뛰어난 가독성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착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또 약간 높은 돔 형태 사파이어 글라스는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전통적인 시계제조 방법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져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퍼시픽은 케이스 사이즈 40㎜의 퍼시픽, 43㎜의 그랑 퍼시픽,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장착한 퍼시픽 크로노그래프 등 총 3가지 모델을 선보였다. 시계 케이스 측면에서는 크로노스위스 케이스의 전형적인 폴리싱을 확인할 수 있다.
롤렉스 ‘익스플로러Ⅱ 42㎜’
기존 ‘익스플로러Ⅱ’ 시리즈 중에서 40㎜로 크기를 확대한 제품. 24시간 표시 바늘을 오렌지색 화살표 모양으로 만든 게 두드러진다. 시침·분침은 가운데를 야광으로 채우고 가장자리는 검은색으로 처리했다. 검은색 다이얼 위에서는 바늘의 야광 부분만 떠다니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그리고 일반 시침과 오렌지색의 24시간 시침 덕분에 듀얼타임 표시가 가능하며 24시간 단위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어 밤낮 구분이 힘든 백야의 극지방과 동굴을 탐험할 때 유용하다. 자성에 강한 파라크롬 헤어스프링과 충격 흡수 장치인 파라 플렉스를 장착해 시계 정확도와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점도 강점이다. 시곗줄이 쉽게 풀리지 않도록 하는 세이프티 캐치(Safety Catch)와 시곗줄 길이를 쉽게 줄이고 늘일 수 있는 이지링크(Easylink)를 장착해 편의성을 높였다.
브레게 ‘클래식 5717 오라 문디’
‘클래식 5717 오라 문디(Classique hora mundi)’는 레드 골드 또는 플래티늄 소재를 바탕으로 세 개 버전의 다이얼을 선보였다. 복잡한 작동 없이 간단하게 버튼 하나를 누르면 미리 선택했던 두 개의 타임존이 즉시 바뀌는 방식으로 사용자가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 세팅 중의 정확한 작동은 스톱 세컨드 시스템에 의해 보장된다. 타임존을 바꾸면 시간뿐 아니라 트래킹 캘린더 시스템을 통해 동시간 날짜와 낮밤 인디케이터 역시 바뀌게 된다.
[김지미 /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차장 jimee@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