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세계 각국의 주식시장이 붕괴되고 실물경기 위기에 초저금리 기조로 고착화됨에 따라 근로자들의 노후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인 연금 수익률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국내 1분기 국민연금 수익률은 6%대의 손실을 기록하며 지난해 11%대의 준수한 수익률이 무색해졌다. 퇴직연금시장의 사정도 그리 여의치 않다. 유형을 불문하고 지난 1분기 기준 원리금 비보장형 상품의 수익률은 마이너스로 전환했고 원리금 보장형 상품들도 대부분 1%대 내외에 그쳤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크게 내리며 퇴직연금의 수익성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용과 세금, 인플레이션 등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원금을 까먹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민연금 주식시장 폭락에
올 1분기 수익률 -6.08%
팬데믹이 전 세계를 뒤덮은 지난 1분기 투자시장 역시 큰 파고를 겪었다. 대표적으로 국민연금은 1분기 마이너스(-) 6%에 달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특히 국내외 주식군에 투자한 자금이 15% 이상 손실을 입으며 기금 전체 수익률을 크게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지난 5월 29일 올해 1분기 말 현재 국민연금기금 수익률이 -6.08%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국민연금기금 적립금은 698조3000억원을 기록해 700조원 이하로 줄어들었다. 자산군별로 살펴보면 금액가중수익률 기준 국내주식 -18.52%, 해외주식 -16.90% 등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반면 해외채권 6.85%, 대체투자 4.24%, 국내채권 0.89% 등은 수익을 거뒀다.
국민연금 이외에 다른 연기금들의 수익률도 신통치 않았다. 사학연금의 올해 1분기 수익률은 시간가중 기준으로 -5.84%로 집계됐다. 공무원연금도 1분기 시간가중 기준 -4.55%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냈다.
국민연금이 다른 국내 연기금들보다 나쁜 수익률을 거둔 이유는 수익률이 좋지 못했던 국내채권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주식 비중은 다른 연기금과 유사했지만 해외채권에 비해 수익률이 저조했던 국내채권 보유 비중이 높아 손실을 방어하지 못했던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지난 3월 말 기준 사학연금의 채권 비중 37.5% 가운데 국내채권이 31.7%, 해외채권이 5.8%로 나타났다. 공무원연금도 채권 비중 42.3% 중 국내채권이 33.9%, 해외채권이 8.4%로 국내채권 비중이 30%대다. 반면 국민연금은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채권 비중이 50.7%로 집계됐다. 이중 국내채권은 45.7%, 해외채권은 5%로 국내채권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연기금 대비 선방한 실적
“위험자산 베팅으로 손실 만회할 것”
-6%대의 손실을 기록한 국민연금이지만 해외 연기금과 비교해 양호한 수익률을 거뒀다는 평가도 나온다. 글로벌 주식시장이 폭락 장세를 나타내면서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와 네덜란드 공적연금(ABP)은 1분기에 각각 -14.6%, -9.8%의 수익률을 보였다.
특히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측은 “지난 5월 기준 1분기 낙폭을 상당 부분 만회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코스피 지수는 3월 19일 연중 최저점인 1457.64를 기록한 이후 상승 폭을 키워 이달 27일 2031.20을 기록했다. 1분기 말에 기록한 1754.64에 비해 15.8% 올라선 수치다.
이에 따라 주식·채권 등 국민연금의 전체 수익률도 지난 1분기 동안의 낙폭을 만회할 만큼 회복세를 보인다고 기금운용 관계자는 전했다.
국민연금은 “앞으로도 연금 재정 안정화에 기여하도록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며 장기투자자로서 기금을 철저히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2분기에도 낙폭을 키웠던 위험 자산인 주식군으로 다시 수익률 회복에 나섰다. 코로나19에도 주식군의 포트폴리오 비중을 늘리는 계획을 유지해 수익률 반등을 꾀한다는 복안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제5차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위험자산을 3분의 2까지 늘리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로 손실을 봤지만 장기투자자인 만큼 위험자산을 늘리는 방향을 지속하더라도 큰 리스크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국민연금은 오는 2025년 위험자산 비중을 65% 수준으로 확대하는 방침을 세웠다. 국민연금은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국내주식(15.8%), 해외주식(20.3%), 대체투자(12.6%) 등 48.7%를 위험자산에 배분하고 있다. 이를 5년 뒤까지 16%포인트가량 늘려 65%로 분산할 방침이다.
국민연금은 국제통화기금(IMF) 지표를 바탕으로 내년부터 코로나19의 기저 효과가 나타나며 향후 5년간의 평균적인 경제성장률이 코로나19 이전과 비슷하게 회복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회예산처 “국민연금 고갈시기 2054년”
한편 지난 6월 21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사회보장정책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재정은 2040년 적자로 전환돼 2054년 고갈될 것으로 전망됐다. 2018년 정부가 발표한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보다 3년 당겨진 셈이다. 당시 정부는 국민연금이 2042년 적자로 전환된 뒤 2057년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측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정부 전망치보다 고갈시기가 앞당겨진 데 대해 재정전망에 사용한 변수가 다르게 적용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2018년 재정전망 당시 통계청의 2016년 장래인구추계를 적용한 반면 예산정책처는 최신 자료인 2019년 장래인구추계를 전망에 사용했다.
또 정부가 재정계산 거시경제변수와 자산별 포트폴리오 및 기대수익률을 자산별 투자 비중을 적용해 전망한 반면 예산정책처는 자체변수와 회사채금리 대비 국민연금기금 수익률의 평균 배율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2040년 16조1000억원의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2054년 적립기금이 163조9000억원 적자로,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됐다. 예산정책처는 국민연금 고갈시기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산정책처는 “국민연금의 노후 소득보장 역할을 강화하고 연금의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국민의견을 바탕으로 연금 제도 개혁을 조속히 완수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이를 위해 개혁에 따른 정부 재정 변화 전망 등 보다 풍부한 자료를 분석·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퇴직연금 수익률 줄줄이 급락
원리금 비보장형·IRP 치명상
국민연금과 더불어 근로자들의 은퇴자산인 퇴직연금은 사실상 제로금리 시대에 진입한 환경에 수익률 기근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퇴직연금은 몇 년간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은 가입자들의 노후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 들어 한국은행이 3월에 이어 5월에 기준금리를 연달아 75bp를 인하하면서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 시대가 열렸다. 이에 따라 퇴직연금 수익률도 마이너스 폭이 더 확대될 전망이어서 은퇴자들의 노후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국내 퇴직연금 운용사들은 기존의 운용전략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투자자(가입자)들이 원금 보존에 대한 마음이 크다는 이유로 대부분 안정적으로 원금을 보존할 수 있는 정기예금, RP 등 안전자산으로만 운용한다. 지금 같은 금리환경에서는 이전과 같은 수익률을 내는 것조차 어려워진 셈이다.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말 현재 유형별 퇴직연금의 평균수익률은 DB형이 1.47%(은행 1.50%, 증권 1.44%)를 기록했고, DC형은 -0.47%(은행 1.16%, 증권 -2.10%), IRP는 -1.36%(은행 -0.15%, 증권 2.57%)를 기록했다. 유형별 퇴직연금 수익률을 합산 단순 산술평균하면 전체 퇴직연금 수익률은 -0.12%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주요은행인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해 1분기 DC형 퇴직연금 수익률은 평균 0.86%에 불과했다. 이들 은행의 이 상품 지난해 4분기 수익률은 평균 2.35%로 양호했는데 한 분기 만에 수익률이 내려앉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농협은행은 1.09%로 1%대 수익률을 겨우 넘겼지만 하나은행(0.90%), 신한은행(0.87%), 우리은행(0.85%), 국민은행(0.63%) 등은 0%대로 떨어졌다. 각 은행의 원리금 보장 상품 수익률은 1.81~1.93%를 기록했으나 원리금 비보장 상품 수익률은 마이너스로 급락한 것이 원인이다. 국민은행의 원리금 비보장 상품 수익률 -7.85%를 기록해 가장 나쁜 성적표를 받았다. 이어 하나은행 -7.46%, 농협은행 -6.12%, 우리은행 -5.61%, 신한은행 -5.29% 순이었다. 직전 분기 5대 은행의 원리금 비보장 상품 수익률은 4.70~7.75%로 ‘역대급’ 성적을 낸 바 있다.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과 달리 DC형은 회사가 매달 계좌로 일정 금액의 돈을 넣어주면 근로자가 직접 자금을 운용하는 상품이다. 원리금 보장 상품은 주로 예금상품을 담는 반면, 원리금 비보장은 국내외 주식, 채권, 원자재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편입할 수 있다.
한편 무엇보다 가장 큰 손실을 기록한 유형은 원리금 비보장형 개인형퇴직연금(IRP) 수익률이 모두 ‘마이너스(-)’로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리금 보장형 수익률은 잇따른 기준금리 인하 탓에 최저 1%대 초반대로 떨어졌다.
▶IRP 수익률 타격 가장 커
지난 1분기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IBK기업·KDB산업·BNK부산·경남·DGB대구·광주·제주 등 IRP를 운용하는 12개 은행의 원리금 비보장형 1분기 평균 수익률은 최저 -11.07%(대구), 최대 -3.78%(제주)를 기록했다. 직전 분기 수익률과 비교하면 대구은행이 5.35%에서 -11.07%로, 광주은행도 7.38%에서 -10.87%로 떨어져 하락폭이 컸다. 주요 은행 중에서는 국민은행이 6.98%에서 -10.01%로 부진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IRP 원리금 비보장형 상품은 상대적으로 자금을 주식이나 펀드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장기간 운용하면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최근에는 연령대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주는 TDF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지난 1분기에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주가가 폭락하자, IRP 수익률도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밖에 원리금 보장형 수익률은 플러스(+)를 기록 중이지만, 초저금리 영향으로 1.2%대까지 내려앉았다. 지난 1분기 수익률은 최대 1.53%(산업), 최저 1.28%(대구)를 나타냈다. 직전 분기 최저 수익률은 1.31%(대구)였다. 직전 분기에는 2개 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10개사)의 수익률이 1.4%대 이상이었지만, 올해 1분기에는 6곳의 평균 수익률이 1.4% 밑으로 떨어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환경이 코로나19로 인해 초저금리 기조로 고착화됨에 따라 갈수록 근로자들의 유일한 노후보장자산인 퇴직연금 수익률이 하락하여 비용과 세금 등을 공제하면 결국 퇴직연금 원금마저 까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퇴직연금 운용 금융사들도 고객이 이탈할 수 있다는 점은 되새기며 운용전략을 보다 다양화해 고객들에게 믿음을 줄 필요성이 커졌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