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인근 공단에 위치한 기계 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김모(68) 사장은 수년 전부터 주문이 줄어들면서 사실상의 폐업을 고려해왔지만 막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김 사장은 “아이들이 다 결혼을 하지 못해 짝을 찾을 때까지는 사장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면서 “인력과 설비를 줄여서 공장을 작게 운영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김 사장의 공장부지 가격은 3.3㎡당 100여만원에 이른다. 처음 사업을 시작한 30여 년 전보다 10배 이상 올랐다. 부동산 가격과 체면치레 때문에 사업 퇴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퇴출(Exit)’이 다시 한번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IT나 바이오 벤처의 경우 적절한 사업 매각 시기를 잡는 게 이슈다. 이미 실리콘밸리에선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김경진 EMC코리아 사장은 “미국 IT업계에선 기술력을 갖춘 초기 벤처를 대기업들이 상당한 금액으로 사는 게 하나의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면서 “비즈니스 마인드를 고취하는 것은 물론 매입자 입장에선 기술을 선확보한다는 일종의 상생전략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상속을 염두에 두거나 내 사업은 내가 한다는 주인의식 때문에 사업을 끌고 가다 매각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에서도 선대에서 물려받았다거나 오너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트렌드 변화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Luxmen>은 딜로이트 컨설팅과 함께 비즈니스 퇴출 사례와 전략 유형, 퇴출 시행에 대한 기획을 준비했다.
비즈니스 퇴출전략 유형 재무적 목적 또한 사업 확장 한계 등 4가지
국내 대기업 화학 계열사에서 연매출 200억원 정도의 비교적 작은 사업 부문의 퇴출 여부를 결정하는 컨설팅을 맡겼다. 이 회사는 세계적인 화학 기업인 3M이 전 세계 시장의 약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사업 분야에 수익성이 높다는 이유로 10여 년 전에 진출했으나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매출이나 수익성을 개선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상태였다.
컨설턴트가 실시한 실무진 인터뷰에서 ‘자신은 입사 이후 20년간 이 사업 분야에만 매달려 왔으며, 이 사업이 없어지는 건 자기 경력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을 했다.
이렇듯 사업의 퇴출 여부 결정은 직원들이나 의사 결정자에게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올바른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퇴출 여부의 검토부터 이를 실행하는 단계에 걸쳐 전략적 측면에서 다양한 고려가 필요하다.
사업에도 흥망성쇠가 있다. 그 사업의 출구전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언젠가는 올 수밖에 없음에도 과거 우리 기업들은 이 부분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음 세 가지로 대표되는 경영 환경 변화로 퇴출전략의 중요성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우선 국내 경제가 과거와 같이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게 됨에 따라 기업들은 핵심 사업을 선정하고 이에 집중할 필요성이 더 많아졌다. 1997년 아시안 금융위기 이전에는 어느 기업이나 사업을 확장시키고 계열사 수를 늘려가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고 ‘퇴출 = 실패’라는 등식이 경영자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한정된 시장을 놓고 다수의 사업자가 경쟁해야 하는 경영 환경에서 선택과 집중을 위한 적절한 퇴출전략의 수립 및 실행은 항시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특히 산업의 성숙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건설, 조선, 화학 등의 산업 분야에서 퇴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전략 수립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음으로 국내에도 ‘창업-성장-안정화’로 이어지는 기업의 생태계가 구축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사업 아이디어 개발 단계에서 기업의 창업을 지원하는 벤처캐피탈, 이렇게 창업된 벤처들을 일정 규모의 사업체로 성장시킬수있게 지원하는 벤처캐피탈, 그리고 이를 더욱 더 성장시켜 기업공개(IPO)를 지원하는 벤처캐피탈들이 구분돼 운영된다. 이같은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기업의 성장은 단계별로 성격이 다른 핵심 역량을 요구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사이클을 모두 거친 기업의 수가 적었을 뿐 아니라 남이 시작한 사업을 내가 일으킨다는 개념 자체도 생소했다. 때문에 내가 한번 시작한 사업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생각이 강했던 반면 지금은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아이디어만을 갖고 사업에 뛰어드는 벤처기업들과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경영 인프라를 갖춘 대기업들이 각자의 역할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사업 가능성을 인정받은 벤처기업이 신규 고객 및 역량 있는 인재들을 확보해 나가는데 있어서 대기업이 가진 네트워크, 재무 역량, 인적 자원 측면에서의 강점이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는 반면, 대기업은 검증된 벤처기업을 인수함으로써 신사업 발굴 관련 불필요한 리스크를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업의 역할 분담은 국내에서는 특히 환경 관련 사업 및 디스플레이 사업에서 활발하다. 최근 삼천리가 수처리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는 과정에서 대양바이오테크를 인수한 것이나 GS칼텍스가 폐기물 에너지화 사업 진출을 위해 애드플라텍을 인수한 사례 등이 이 같은 역할 분담이 정착되고 있는 예라 할 수 있겠다.
세 번째로 어느 한 사업에서 철수할 경우 단순히 그 사업을 중단하는 것 이상으로 과거의 사업 모델에 최적화된 인력 자원 및 경영 인프라와의 단절을 꾀하는 ‘완결적 퇴출’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세계화로 인해 노동력, 단순 생산 기술 등이 더 이상 핵심 역량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 국내 사업자들은 좀 더 고부가가치 사업 부문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하기 위해 기존 전통 사업 부문을 축소 혹은 퇴출시키고 성장 사업으로 옮겨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업 환경에서 신사업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결단력 있는 리더십, 유연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 구조, 글로벌 소양을 갖춘 인적 자원 등이 필요하나 과거(Legacy) 사업에서의 사업 및 인력 구조를 유지할 경우 그 성공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지게 된다. 즉 과거의 성공 경험이 새로운 환경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많은 국내외 대기업들이 통신, 인터넷 분야에서 성장을 시도했지만 우수한 재무적 인적 역량을 갖추고도 이에 실패한 사례들은 과거의 사업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사업 계획 수립에 있어 적절한 퇴출전략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의 수익성이 악화되거나 신사업 추진에 장애를 겪는 경우가 빈번해진다.
흔히 기업의 성장은 핵심 사업의 확장 및 신사업의 성공적 추진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기 쉽지만 이를 위해서는 퇴출시켜야 할 비핵심 사업을 선정하고 그 시기와 방법에 대한 의사 결정 또한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즈니스 퇴출의 유형은 크게 다음 네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1) 처음부터 재무적 결실(Financial Return)을 목적으로 투자 자본의 회수 시점에 대해 시간표를 가지고 투자한 경우로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들의 퇴출전략이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과거 굿모닝증권이 외국계 사모펀드인 H&Q에 의해 신한은행에 매각된 경우나 최근 코너스톤이 대선주조를 매각하려는 사례를 들 수 있다.
2) 기업의 생태계에서 벤처기업 등의 창업자가 기존 역량으로 사업 확장에 한계를 느끼고 추가적인 성장을 위한 출구전략이다. 한화그룹은 지난 5월 무인항공기 전문 벤처기업인 마이크로에어로봇을 인수함으로써 아직은 미개척 분야인 국내 무인항공기 시장을 선점, 그룹의 성장 동력으로 육성할 것임을 선포했다.
이는 규모 확대와 상용화 비용에 대해 투자가 필요한 벤처기업 입장에서도 한 단계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성공적 퇴출전략의 사례라 할 수 있다.
3) 여러 개의 사업을 보유한 사업자가 자금 확보나 핵심 사업 집중을 목적으로 비핵심 사업부터 철수하는 경우다. 두산그룹이 중공업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식음료 부문 사업을 정리했던 경우를 들 수 있다.
4) 기존 사업 분야의 경영 환경 및 수익성 악화로 사업에서 불가피하게 철수하는 사례도 있다.
출구전략 혹은 퇴출전략은 위와 같이 다양한 목적으로 어떤 사업에서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극대화(혹은 손실의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정의된다.
▶ 퇴출 전략 수립·이행 시의 핵심 질문
1) 퇴출 여부 의사 결정 ① 전사 포트폴리오 관점의 의사 결정 ·퇴출 대상 산업의 잠재적 성장 가능성은 무엇인가? ·퇴출 고려 대상 사업과 타 사업들과 향후 시너지 창출 가능성이 있는가? ·퇴출 이후에도 핵심 기술, 인력 등의 보유가 가능한가? ② 비사업적 요인 배제 ·과거의 사업 성과에의 집착, 의사 결정 번복 회피 등의 Sunk Cost Error를 범하고 있지 않은가? ·감정적 요인 등의 비사업적 요인이 의사 결정을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③ 사업 발전 필요 역량 확보 여부 확인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내가 그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가, 혹은 향후 확보가 가능한가? ·사업 확장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 다른 사업자가 있는가?
2) 퇴출 실행 ① 퇴출 시기 선정 ·퇴출 대상 사업이 중단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인가? ·시장 크기, 고객 욕구 및 경쟁 구도의 변화 속도는 어느 정도로 예상되는가? ·향후 수익성이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면 그 속도와 정도는 어느 수준인가? ② 시나리오 플래닝에 기반한 Exit Strategy 이행 ·각 사업별로 사업 환경과 성과의 변화에 대한 시나리오를 보유하고 있는가?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 및 이를 정기적으로 체크하는 마일스톤은 있는가? ③ 윈-윈 가능한 퇴출 구조 설계 ·사업 퇴출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은 누구인가? 예) 사업 인수자, 종업원, 정부 및 지자체, 지역 주민, 고객 및 공급사 등 ·이해관계자들이 퇴출로 인해 부당한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는가? 퇴출전략의 수립 지금까지 들인 비용 아까워 말아야
출구전략의 수립 및 이행은 크게 사업 퇴출 여부 검토 및 의사 결정과 퇴출전략 수립 및 실행의 두 단계로 구분된다. 여기서는 각 단계별로 기업이 범하기 쉬운 오류를 사례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응책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도 전사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그 사업의 역할과 잠재적 가능성을 평가하고 이를 고려해 퇴출을 결정해야 한다. 특히 그 사업이 기술적 역량을 요하거나 고객 접점이 될 수 있는 유통 채널의 한 단계를 보유할 경우 단순 매출 정체나 수익성 악화만을 이유로 퇴출 결정을 내렸을 때 그 이후 경영 환경의 변화에 따라 기회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일례로 한 국내 전자 대기업의 경우 캐논이나 니콘 같은 일본 경쟁사 대비 역량 확보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됐던 카메라 사업을 수익성 악화와 낮은 성장 가능성을 이유로 퇴출하기로 한 것은 일견 타당한 의사 결정으로 보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인 휴대전화에 카메라 장착이 일반화하자 광학 및 카메라 기술 및 관련 역량의 부재로 카메라폰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또한 당시 급성장한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놓치고만 사례가 있다.
둘째로 감정적 요인 등 비사업적 요인에 의해 의사 결정하는 것을 배제해야 한다. 앞에서 얘기한대로 사업으로부터의 퇴출이 곧 실패라는 인식을 갖고 있거나, 선대에 일군 사업을 포기한 자식으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워 사업을 유지할 경우 더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쥐고 가려다 결국 하나도 확보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걸 기업의 오너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정상적인 의사 결정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비사업적 요인 중 하나가 매몰비용(Sunk Cost)이다. 경영심리학에서는 ‘Sunk Cost Error’라는 표현이 대표적인 용어로 자리 잡을 정도로 매몰비용로 인한 실패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기서 매몰비용이라 함은 단순히 그 때까지의 금전적 투자뿐만 아니라 감정적 이성적으로 투자한 비용까지를 포함하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학자들은 항상성(Consistency), 자부심(Pride), 손실(Loss)의 세단어로 ‘Sunk Cost Error’의 동인을 설명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일에 대해 통제력을 갖기를 원하며 불확실성을 회피한다. 사람들은 사계절의 변화와 같은 일관적(Consistent)인 현상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며 같은 일이 몇 번만 반복되면 이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성급히 결론내리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제껏 이렇게 해 왔는데’, ‘이렇게 해서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라며 과거의 성공 경험이 항상성을 갖고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되기를 희망하는 심리에는 무의식적으로 불확실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또한 경영자들은 자신이 이제까지 지지했던 의사 결정을 번복함으로써 자부심에 상처를 내는 것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갖는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회생이 어려운 사업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두려움을 없애 주는 장밋빛 전망의 보고서를 더 신뢰하게 되는 것은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무엇인가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손실의 감정에 두려움을 갖는다. 곧 없어질지도 모르는 것은 실제보다 더 가치 있어 보이기 마련이다.
이러한 심리적 이유가 더해져 이제껏 유지해 왔던 사업에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 보고서는 환영받기 어렵다. 객관적 시각으로 봤을 때 사업의 존속이 어려움에도 이러한 비사업적 요인으로 인해 사업을 유지하거나 ‘이제껏 내가 들인 돈이 얼마인데’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추가적인 투자나 자원 배분을 집행하는 경우도 흔한데 이는 기업의 존속에 치명적일 수 있다.
세계 최초로 PC 기술을 개발하고도 이를 상품화하지 못한 제록스나, 코닥이나 폴라로이드 등 필름 카메라 사업자들이 디지털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퇴출됐거나 직전까지 몰린 경우가 ‘Sunk Cost Error’에 해당하는 경우다.
제록스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연구개발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복사기 회사로 성장했다. 복사기 기술만 잘 연구하면 성공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주변 환경의 변화, 즉 인터넷과 통신의 발달, 종이 없는 사무실 등을 간과하고 기존 사업 분야에만 집중했다. 2000년대 초반 HP 등 복사기보다 프린터 등의 기술에 집중해온 기업들에 밀려 사업성이 크게 악화됐다.
코닥과 폴라로이드의 경영진들 또한 디지털 카메라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것을 파악했지만, 필름 카메라 사업에 수십 년간 투자해 온 매몰비용의 영향으로 필름 카메라가 단기간에 사리지지 않을 것으로 오판했다. 따라서 사업을 계속적으로 발전시킬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객관적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단계별로 다른 종류의 역량을 필요로 하며, 그러한 역량 확보가 가능하지 않다면 사업의 성장을 위해 퇴출하는 게 옳은 의사 결정이다. 외국인과의 합작기업 설립이나 지분 투자 관련 프로젝트 수행 시 유난히 경영권에 집착하는 한국의 오너경영인들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게 하나의 일일 정도로 한국 경영진의 소유욕은 유별나다. 혈연과 농경 사회의 전통이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남아 있는 한국 사회에서 ‘사업은 자식에게’라는 의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만 논 몇 마지기를 자식에게 물려줘 대를 잇는 것과 계속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사업을 물려주는 것은 다른 얘기다.
예를 들면 소수의 글로벌 사업자가 업계의 표준을 장악하고 사업을 주도하는 의료, 제약 분야 같은 경우 국내의 중소기업이 글로벌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따라서 사업이 어느 정도 성장했을 경우 역량을 갖춘 글로벌 기업을 퇴출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 적절하다. 반대로 국내 벤처기업 1세대로 통하는 메디슨 같은 회사가 이러한 ‘내 사업인데’라는 성장의 벽을 극복하지 못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퇴출전략의 실행 이해 관계자 윈-윈 구조 만들어야
퇴출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퇴출전략을 수립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다음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퇴출 여부가 결정된 상태에서 그 시기와 방법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회사의 이익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시기별 사업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여 퇴출 시기를 정해야 한다.
퇴출전략 실행 과정에서 경영자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흔한 실수는 퇴출이 결정된 사업을 그 즉시 정리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이 사업을 접느냐 마느냐, 사업이 이렇게 된 것은 누구의 책임이냐 등으로 골머리를 앓아 왔는데 고맙게도 의사 결정이 내려졌으니 하루 빨리 사업을 접고 마음의 짐을 훌훌 털어 버리고 싶은 것 또한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퇴출이 결정됐다 하더라도 그 시기 및 방법에 대해서는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사업을 접는 것은 한순간에 가능한 일이지만 어떤 사업도 그 시장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축소되는 시장에서 자사의 경쟁력 및 포지셔닝을 평가하고 현 사업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지를 평가하여 퇴출 시기를 결정해야 한다.
2000년대 초반 PDP, LCD 등의 평면 TV가 세계시장을 제패할 것을 예상한 전 세계 디스플레이 사업자들이 앞 다투어 CRT(브라운관) TV 사업에서 철수 결정을 내렸을 때 인도 등 개발도상국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보고 철수시기를 늦췄던 국내 사업자들의 경우가 퇴출 시기를 조정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시킨 좋은 사례다. 반대로 퇴출 대상 사업의 가치를 너무 높이려고 협상을 계속해 나가는 가운데 사업의 가치가 하락하여 처음의 평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퇴출해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투자의 귀재 제이피 모건(J. P. Morgan)이 “나는 모든 재산을 조기에 매각해 벌어들였다(I made all my money by selling too early)”라고 이미 100여 년 전에 말했던 것처럼 목표 투자 수익률이나 목표 가치를 상회하는 퇴출 기회가 있을 경우 이를 일부라도 실현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2000년경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기반이 약했던 야후 코리아가 아이러브스쿨을 500억원에 인수하려 했으나 아이러브스쿨의 가치를 훨씬 더 높게 평가했던 대주주의 반대로 거래가 무산됐던 일은 퇴출의 기회를 놓친 대표적인 사례로 두고두고 여러 사람에게 아쉬움을 남긴 경우이기도 하다. 이때 추후 퇴출 모색 과정에서 경영자들은 과거 제안 받았던 가격에 집착하고 이보다 더 낮은 가격에 대해 계속적으로 거부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결국 상당 기간이 지나 대상 사업을 헐값에 넘기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미 퇴출이 결정된 사업의 경우 그 사업성 및 제안 가격은 계속적으로 낮아지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사업이 향후 단기, 중기, 장기적으로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닐 것인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에 근거한 퇴출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투자 차익을 목적으로 퇴출이 전제된 상태의 투자가 일반적인 사모펀드들의 경우 사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다양한 시장 규모 파악, 경쟁 분석, 시나리오 계획(Scenario Planning), 재무 모델링(Financial Modeling), 가치평가(Valuation) 등의 기법들을 활용하고 있으므로 우리 기업들도 이를 참조해 퇴출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먼저 시나리오 플래닝에 근거한 퇴출전략 이행을 살펴보자.
시기별 사업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단계별 사업의 상태를 체크하는 마일스톤을 수립하고 시나리오 플래닝에 의해 미리 계획된 대응책이 실시되도록 해야 한다.
유럽의 석유화학 회사인 보레알리스(Borealis)는 중동 지역의 생산설비 증설에 따라 유럽 내 생산설비의 존속이 어려울 것이라는 미래 전망에 따라 중동 지역 설비 증설에 대한 몇 가지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이에 근거해 자사의 유럽 내 생산설비 축소 계획을 수립했다. 이러한 시나리오 플래닝에 의해 미리 지정된 마일스톤에 따라 중동 지역의 증설 현황을 검토한 결과, 증설이 초기 계획 대비 지연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미리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설비 감축을 지연시켜 일찌감치 퇴출을 실행한 경쟁사 대비 유럽 시장에서의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관련 이해 관계자들이 윈-윈(win-win)할 수 있는 퇴출 구조를 만들어 줘야 한다.
2000년대 초반 등장, 미니홈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싸이월드는 여타 온라인 사업자들과 마찬가지로 확실한 수익 모델 부재라는 고민에 봉착했다.
이때 자사 온라인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가입자 기반 확보가 필요했던 SK커뮤니케이션즈에 매각됨으로써 OK캐쉬백 등 SK 차원의 사업 모델과 연계한 수익원 확보가 가능했던 것은 벤처기업의 성공적 퇴출 사례로 꼽힐 수 있다.
한편 내가 원하지 않는 사업은 다른 기업도 원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퇴출이 결정된 사업의 순조로운 매각을 위해 수익이 나는 비핵심 사업을 함께 매각한다거나 매각 후 일정 기간 사업권을 보장해 주는 등의 인센티브 제공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또한 쌍용자동차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종업원이나 기존 투자자의 이익을 저해할 수 있는 투자 대상에게 성급히 퇴출을 서두르는 것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경영자 매수(MBO: Management Buyout)나 스핀 오프(Spin-Off) 등의 수단으로 퇴출 과정에서 종업원들의 이익도 보호하는 방법들이 각광받고 있다. 따라서 기업 측면에서 퇴출전략 수립을 상시적인 프로세스로 정착시키고 퇴출 대상 사업에 대한 객관적 평가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 비즈니스 퇴출 유형 4가지 사례
퇴출 유형 사례 : 1) 재무적 결실로 투자 자본의 회수 사례: 굿모닝증권이 외국계 사모펀드인 H&Q에 의해 신한은행에 매각. 코너스톤의 대선주조를 매각.
2) 벤처기업 등 사업 확장의 한계 사례: 무인항공기 전문 벤처기업인 마이크로에어로봇의 한화그룹 피인수
3) 비핵심 사업의 정리 사례: 두산그룹이 중공업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환
4) 경영 환경 및 수익성 악화로 사업에서 철수 사례: 코닥의 필름 카메라 사업 정리
[방범석 딜로이트 컨설팅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