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한 번에 75bp (1bp=0.01%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밟자 미국뿐 아니라 한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주요국 증시가 흔들리고 있다. 6월 15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한 번에 75bp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밟았다. 1981년 말 이후 최악의 인플레이션 상황이 이어지자 앞서 5월에 기준금리를 50bp 올렸음에도 물가 상승세가 수그러지지 않아 28년 만에 최대 폭 인상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연준의 강력한 긴축 조치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시장을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투자자들은 ‘격동의 시기’를 맞아 하반기 전략 방향을 찾는 분위기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급등하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부정적인 상황을 말한다.
연준은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정례회의에서 28년 만에 처음으로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의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사진 연합뉴스>
지금부터는 2022년 하반기 투자 전략을 찾기 위해 먼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 주요 발언을 돌아보고 이를 토대로 월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투자 방향을 소개한다.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기준금리를 0.75% 포인트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는 기존 0.75~1.00% 수준에서 1.50~1.75% 수준으로 뛰었다. 이날 연준 위원들이 발표한 수정 경제 전망 내용을 보면 올해 연말 기준금리 전망치는 3.4%로 3월 당시(1.9%)보다 높아졌다.
올해 미국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7%로 3월 당시(2.8%)보다 하향 조정됐다. 올해 실업률 전망은 기존 3.5%에서 3.7%, 에너지와 농산물 등을 포함한 헤드라인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전망치는 기존 4.3%에서 5.2%로 상향 조정됐다.
보통 장기 국채는 ‘T-노트’로 표기하는데, 주로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 중 만기가 10년 이상인 국채를 말한다. 이와 달리 단기 국채는 ‘T-빌’이라고 표기하는데 통상 3개월 만기 국채를 말한다. 보통 만기 3~6개월짜리는 단기채, 1~5년짜리는 중기채, 10~30년짜리는 장기채로 구분한다. 보통 장기 국채 수익률이 단기 국채 수익률보다 높기 때문에 수익률 곡선도 플러스 영역에 있지만 단기 국채 수익률이 장기보다 더 높은 ‘역전 현상’이 벌어지면 수익률 곡선도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장·단기 국채 수익률 역전은 경기 침체 전조 현상으로 통한다.
▶섣부른 매수는 자제
연준의 ‘자이언트스텝’ 금리 인상 결정 이후 월가에서는 섣부른 매수와 매도를 자제하라는 신중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지난 1929년 이후 과거 약세장 사례를 봤을 때 S&P500 지수가 추가로 하락해 오는 8월 말 저점을 찍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달에 이어질 기업들의 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실적 둔화세와 더불어 가이던스(이익 목표치) 하향 작업이 따를 것이라는 예상도 매매 신중론의 근거다.
현지 투자 업체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는 주식과 채권 비중은 축소하고 현금은 10% 비중을 늘렸다.
현지 투자 업체 네드 데이비스 리서치의 팀 헤이스 글로벌 투자 최고 전략가는 지난달 말 고객에게 보내는 투자 노트를 통해 뉴욕 증시가 추가 하락 가능성이 있다면서 반등할 지점을 확인한 후에 매수에 나서도 늦지 않다고 강조했다.
헤이스 최고 전략가는 “이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주간 기준 최근 10주 중 9주 하락했다”면서 “증시 낙폭이 짙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체 글로벌 균형 계정 모델에 따라 주식에서 약 5%에 해당하는 투자금을 빼서 현금으로 옮겨두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술적 반등이 아닌 대세적 반등이 올 때까지는 긴 험로가 예상된다”면서 “올해 들어서만 4번째로 주식 비중을 줄이고 있는 바, 그 결과 주식과 채권, 현금 비중이 각각 순서대로 50%, 30%, 20%인 상태인데 이는 지난 2009년 이후 현금 비중을 가장 높게 잡은 포트폴리오”라고 언급했다. 주식과 채권 비중은 각각 5%씩 비중을 축소하고 현금은 10% 비중을 늘린 결과다.
앞서 도이체방크는 시장 전문가들이 올해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을 들어 기업 이익 전망치를 수정하면 이것이 또 다른 증시 하락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빙키 채드하 골드만삭스 전략가는 투자 메모를 통해 “오는 2023년 말까지 완만한 경기 침체 상태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경제 지표 전망치가 악화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대형 기술주에 대한 월가 수익 추정치가 여전히 너무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채드하 전략가는 “현재 상태를 경기 침체라고 볼 수 없지만 침체가 임박하면 S&P500지수 상장 기업들 주당 순이익(EPS)이 연간 기준으로 2023년 말에 185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팩트셋 집계를 기준으로 현재 월가 전문가들이 낸 2023년 말 주당 순이익 평균치가 234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골드만삭스 전망은 비관론에 속한다.
채드하 전략가는 특히 에너지와 금융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종목이 이익 전망치 하향 리스크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가장 취약한 대형 기술주를 비롯해 경기 침체 직격탄을 받을 항공·관광 등 경기순환주마저 앞으로 경제 상황 대비 현재 월가 수익 추정치가 너무 높아 하향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유로 경제 침체 또 다른 뇌관
실제 뉴욕 증시에서는 빅테크를 비롯한 대형주와 미국 장기 국채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상품으로 투자금이 몰리는 분위기다. 대표인 것이 S&P500지수와 나스닥100지수에 각각 하락 베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프로셰어스 숏 S&P500(거래코드 SH)’과 ‘프로셰어스 울트라프로 숏 QQQ(SQQQ)’이다. 숏은 시세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SQQQ는 3배 레버리지 상품이다.
시장 행위자들은 S&P500이나 나스닥종합주가 지수 등 주가지수뿐 아니라 미국 국채와 주요 통화인 유로화, 엔화 추가 하락을 점친다. 일례로 20년 만기 이상인 미국 장기 국채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프로셰어스 숏 20+트레저리 ETF(TBF)’ 시세가 최근 오른 이유다. 연준이 물가 잡기를 위한 긴축 정책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점, 그럼에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공급 측면 물가 급등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동시에 고려하면 주요국 경제 침체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투자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유로화와 엔화 가치 약세에 베팅하는 ETF인 ‘프로셰어스 울트라숏 유로(EUO)’와 ‘프로셰어스 울트라숏 엔(YCS)’도 인기를 끌었다. 두 ETF는 2배 레버리지 상품이다.
이런 가운데 투자 전략을 바로 세우려면 연준의 긴축 강도와 미국 경제 침체 우려 외에 유럽 경제 침체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휴 로버츠 퀀트인사이트 연구원은 “최근 뉴욕 증시 낙폭이 커지는 원인을 연준 긴축에서만 찾으면 큰 부분을 놓치는 것”이라면서 “유럽 경제 침체가 글로벌 증시를 끌어내리는 또 다른 뇌관”이라고 언급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암모니아 수입이 힘들어진 CF 인더스트리 등 유럽 비료 업체들이 줄줄이 공장을 폐쇄하는 등 산업 현장이 하나둘 가동을 멈추고 있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특히 유럽은 국가 부채 비중이 높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남유럽 지역 국채 가격이 급락하면서 금융 불안감이 커졌고 이에 따라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도 하락세다.
일각에서는 낙폭 과대 기술주를 저점 매수할 시기가 오고 있다는 낙관론도 존재한다. 우선 제러미 시겔 와튼스쿨 교수도 이날 CNBC 인터뷰를 통해 “지금 주식을 사면 1년 후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앞으로 S&P500지수가 5%, 10% 더 떨어질 수 있어 투자자들이 더 많은 역풍에 대비해야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주식 시장은 결국 인플레이션 압박을 넘어서는 수익률을 내왔다”고 언급했다.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먼트 CEO
나아가 ‘돈나무 선생님’이라는 애칭으로 인기 끌었던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 최고경영자(CEO)는 “2000년대 초 닷컴 버블(거품) 시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역사적 사례를 보면 하락장에서는 항상 기술주 위주인 나스닥종합지수가 대기업 중심 S&P500지수보다 먼저, 더 크게 바닥을 쳤지만 나중에는 가장 먼저 회복하곤 했다”면서 “인플레이션 압박이 가시면 혁신 기업들이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최근 아크 주요 ETF를 통해 바이오 기업 인비태와 자이머젠, 3D 프린팅 기술 기업 3D시스템스 주식을 추가로 사들여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