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은 물론 글로벌 주식시장에 인플레이션과 오미크론 변이 등 불확실성이 높아짐에 따라 주식매수에 있어 신중론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리스크들이 제거될 경우 빠른 반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며 분할매수에 나서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오미크론 때문에 경제 재개는 제동이 걸린 상황이라 유로화 약세, 달러화 강세가 더 진행될 것이므로 당분간 보수적으로 증시에 접근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경기와 기업이익이 다시 개선되는지 여부를 살펴보고 매수에 나서도 늦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이경민 연구원은 “경기와 기업이익 개선 기대가 유입돼야 시장은 안정을 찾고 상승 반전을 모색해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에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선진국 증시의 신흥국 증시 대비 상대 밸류에이션은 10년래 가장 높은 수준에 있다”면서 “즉 신흥국 증시는 대내외 복합적인 리스크를 상당 부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선진국 대비 신흥국 증시의 조정이 이어져 저점에 가까운 상황에 투자 심리를 약화시키는 리스크들이 개선될 경우 빠른 반등이 가능할 것이란 분석이다.
그럼에도 이 연구원은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원은 “외국인의 신흥국 증시 자금 이탈 우려가 점증됐다”며 “연말을 앞둔 관망세와 수급 공백에 증시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만큼, 리스크 관리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KB금융에 따르면 신흥국 증시 대표 지수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이머징 지수는 선진증시 지수인 MSCI 월드 지수의 성과를 하회하고 있는 상황이다. 2021년 1분기 이후 두 지수의 성과 괴리율이 확대됐는데 인플레이션과 긴축 우려, 중국 경기 둔화 및 정부 규제 강화, 달러 강세 등이 신흥국 증시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MSCI 이머징 지수의 2022~2023년 이익 성장률은 각각 4.7%, 9.7%로 MSCI 월드 지수와 대등한 상황이다. 지수가 상대적으로 깊은 조정을 거친 상황에서 이러한 지표는 지수반등에 있어 유리한 환경이라 볼 수도 있다. 한편 최근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긴축기조로 인한 변수가 2015년 선진국 긴축 당시와 같은 충격을 주지 않을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관광 의존도 높은 태국·방역 위협 필리핀 ‘흐림’
인도·브라질·러시아·인도네시아 증시 ‘비 온 후 갬’
노동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2015년 하반기 신흥국 주식시장은 선진국 통화정책 긴축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바 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2015년을 방불케 하는 신흥국 주식시장의 큰 폭 조정을 재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밝혔다.
신흥국 증시의 조정이 이미 많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노 연구원은 “선진 대비 신흥국의 상대 주가수익비율(PER)은 0.65배로 2015년보다 낮아 선진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가능성을 상당 부분 반영한 상황”이라며 “2015년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 당시 ISM 제조업 지수는 기준선을 하회하는 소침체 영역이었지만 현재는 경기 레벨 자체가 2015년보다 높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와 유동성이 글로벌 주식시장을 지배하며 각 국가의 지수가 커플링(동조화) 현상을 보인 것과 달리 최근에는 대내외 변수가 신흥국 증시에 차별적으로 반영되면서 증시 간 상관관계는 크게 낮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신흥국 투자는 국가 선정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다.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길게 본다면 노출된 리스크를 반영하고 있는 중국(홍콩), 개혁은 다소 후퇴했지만 이익 성장이 견고하고 중국 노출도가 낮은 인도, 석탄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의 수혜가 예상되는 인도네시아, 대내외 지정학적 리스크가 반영되면서 절대 밸류에이션 매력도가 상승한 브라질과 러시아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제시한다”면서 “반대로 오미크론 변종 바이러스 확산 우려로 인해 관광업 정상화의 타격이 예상되는 태국, 방역정책 부재로 치명률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필리핀은 중립 이하의 투자의견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톰 윌슨 슈로더자산운용 이머징마켓 주식 운용 대표(Tom Wilson, Head of Emerging Market Equities)는 “동유럽 이머징마켓인 폴란드와 헝가리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라며 “(두 국가는) 경제 성장률이 견조하고 밸류에이션이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톰 윌슨은 러시아 시장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마찬가지로 낮은 밸류에이션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혜가 예상된다는 이유다. 다만 지정학적 리스크가 계속 유지되고 있으며, 서방 세계와의 긴장이 최근 고조되는 등 정치외교적 변수는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 한 증권사 객장에서 투자자가 시세판을 바라보고 있다.
▶다양한 정치 이벤트 앞둔 중국
첨단기술·친환경·인프라 분야 주목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와 20차 전당대회 등 여러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중국 시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변재일 한화자산운용 WM솔루션 팀장은 “일반적으로 중국 관리들은 큰 정치 이벤트 전에는 경기 친화적 정책을 통해 사회·경제적 안정을 도모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과거 전당대회 전 정책 기대감이 더해지며 1년간 중국 주식시장은 평균 +30% 수준의 고성과를 나타낸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변 팀장은 “현재 중국 주식의 밸류에이션은 미국 대비 30% 이상 디스카운트된 글로벌 펀드들이 비중 축소(Underweight)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어 글로벌 주식 중 가장 매력적인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2022년 중국은 ‘공동부유’ 실현을 위해 첨단 기술,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투자, 제조업 업그레이드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까지 규제를 가하고 있는 IT, 부동산, 교육 등 불확실성이 높은 섹터 외에 정책적인 부양을 받을 수 있는 섹터에 분산투자 전략이 유효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루이자 로 슈로더자산운용 중국 펀드 매니저(Louisa Lo, China Fund Manager)는 “중국의 전략 방향에 따라 새로운 인프라와 친환경사업 관련 자본투자가 핵심 성장 영역이 될 전망”이라며 “2022년에 재정정책의 지원이 증가하면서 전통적인 인프라 투자도 소폭 증가할 수 있겠으나 큰 폭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고 부동산시장의 디레버리징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부동산 투자는 계속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