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9일 스웨덴의 귀리 음료 회사인 오틀리(Oatly)가 나스닥에 상장했다. 귀리, 아몬드, 코코넛 등을 사용해 우유를 대체한 ‘식물성 우유’를 생산하는 오틀리는 이번 상장을 통해 100억달러 이상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오틀리의 성공을 놓고 시장은 두 가지 트렌드에 주목하고 있다. 육류나 유제품을 먹지 않는 ‘비건 문화’의 성장과 자신의 신념, 가치를 반영한 ‘미닝아웃(Meaning -out·신념을 뜻하는 Meaning과 벽장 속에서 나오다라는 뜻의 Coming out이 결합된 단어)’ 소비문화가 그것이다. 전자는 대체 단백질 식품 시장의 확대를, 후자는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젊은 소비자의 등장을 의미한다. 특히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한 ‘가치 소비’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며 대체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식물성 우유 제품
▶식물성 고기, 성장성 높은 대체육
음료뿐만 아니라 최근 환경과 동물 복지를 고려하는 소비문화가 자리 잡으며 식물성 고기인 대체육 중심의 대체 단백질 식품 시장 성장이 점쳐지고 있다.
대체 단백질(Alternative Protein)이란 동물성 단백질 식품을 만들 때 사용되던 원료 대신 식물 추출, 동물 세포 배양, 미생물 발효 방식을 통해 인공적으로 단백질을 만들어 맛과 식감을 구현한 식품이다. 원조를 따져보면 대체육 햄버거가 가장 앞섰다. 2009년 미국의 ‘비욘드미트’가 식물성 대체육 햄버거 패티를 내놓은 이후 대체육의 범위는 유제품과 해산물로 넓어졌다.
2017년 세계 최초로 녹두로 달걀을 만든 미국의 스타트업 ‘잇저스트’는 개발 이후 3년 만에 1억 개 이상의 녹두 달걀을 판매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미국의 스타트업 ‘오션허거푸드’는 토마토로 만든 참치, 가지로 만든 장어, 당근으로 만든 연어 제품 등을 개발 중이다.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생산비용도 낮아지고 있다. 동물 세포 배양육은 2013년 개발 당시 생산비용이 파운드(lb)당 120만달러나 됐지만 현재는 7.5달러로 하락했다.
소비자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지난 4월 소비자시민모임이 국내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대체육을 먹어본 경험이 있는 응답자가 63.2%나 됐다. 이들 중 34.6%는 대체육 맛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41.2%는 보통, 24.2%는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런가 하면 전체 응답자의 72.6%는 ‘대체육이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도 50%나 됐다.
업계에서 추산하는 국내 대체육 시장 규모는 약 200억원 수준.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성장 가능성은 어느 분야보다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한국무역협회(KITA)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대체육은 2030년 전 세계 육류 시장의 30%, 2040년에는 60% 이상을 차지하며 기존 육류 시장 규모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건 문화가 자리 잡은 선진국에선 대체육이 이미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비욘드미트, 임파서블푸드 등 글로벌 기업의 성장이 특별하고 신기한 제품이던 대체육을 일상적인 소비제품으로 이끌었다. 일례로 미국 시장에서 대체육의 판매량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31%나 증가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글로벌 대체육 시장 규모는 2019년 5조2500억원에서 2023년 6조7000억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김보경 한국무역협회 전략시장연구실 수석연구원은 “대체 단백질 식품 시장의 활성화는 소비자의 건강, 환경, 동물 복지 등 사회·환경 부문의 지속가능성 중시에 따른 장기적인 트렌드”라며 “식품 산업뿐만 아니라 유관 산업의 변화를 촉진해 약 3000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것”이라고 전했다.
롯데푸드의 ‘엔네이처 제로미트 까스’
▶시장 공략 나선 국내 식품업계
시장의 장밋빛 전망에 국내 식품업계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올 1월 농심은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 ‘베지가든’을 내놓으며 대체육 시장에 진출했다. 베지가든은 농심의 농수산식품 가공 전문 계열사 태경농산과 손잡고 18개 제품을 출시했다. 떡갈비와 너비아니 같은 식물성 다짐육부터 사골 맛 분말과 카레 등 양념류도 내놓았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선 신동원 농심 부회장이 직접 올해 주요 신사업으로 대체육 시장 개척을 꼽기도 했다.
풀무원도 식물성 단백질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미 콩에서 추출한 대두단백으로 고기 식감을 구현한 반찬과 소스형 제품들을 출시했고, 향후 고기의 질감과 풍미를 살린 신제품 출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동원 F&B는 2019년 미국의 대체육 전문기업 비욘드미트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다. 비욘드미트 제품은 단순히 콩을 갈아 글루텐으로 굳힌 기존 콩고기와 달리 식물성 단백질을 추출, 섬유질·효모 등과 혼합해 맛과 식감을 구현한 게 특징이다. 동원F&B는 그동안 국내 시장에 대체육 소시지 등을 선보여 왔다.
지난 6월 15일 미래 식품산업을 이끌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는 ‘프론티어 랩스(FRONTIER LABS)’ 프로그램을 론칭한 CJ제일제당은 글로벌 액셀러레이터 ‘스파크랩’과 공동으로 뛰어난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스타트업을 선발해 기업당 5000만~1억원의 비용을 투자할 예정이다. CJ제일제당은 이를 위해 10억원을 출자했다. 이후 3개월간 전문가 멘토링 과정을 거친 뒤 추가 투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미국 푸드테크 기업 ‘임파서블 푸드’가 개발한 임파서블 버거. 버거 패티를 식물성 단백질로 만들었지만 고기의 맛과 육즙을 재현했다.
특히 후속 투자는 데모데이 이후 투자 여부를 바로 결정하는 패스트트랙(Fast Track)을 적용해 과감하고 빠른 투자로 실행력을 높였다. 선발된 기업은 CJ제일제당과의 다양한 파트너십을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사업 기회를 모색할 계획이다. 모집 영역은 ‘테이스트&웰니스(영양&건강, 대체단백, 정통식품)’ ‘뉴노멀(개인맞춤형 기술, 푸드테크, 스마트쿠킹)’ ‘지속가능성(스마트팜, 푸드 업사이클링)’ 등 3개 분야로 CJ제일제당의 식품사업을 한 단계 높여줄 제품과 기술, 지속가능한 식문화 등 산업 전반의 미래사업 발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CJ제일제당은 올 3월 식품전략기획실 산하에 사내 벤처캐피털 역할을 하는 ‘뉴 프론티어(New Frontier)팀’을 신설해 전략적 투자에 나서고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대체 단백질, 건강기능식, 푸드테크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 펀드나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미래 사업 발굴에 나서고 있다.
롯데그룹도 미래 먹거리 혁신을 주도할 스타트업을 발굴해 집중 육성에 나섰다. 롯데 식음료 계열사뿐 아니라 공유주방 ‘위쿡’, 농업기술실용화재단 등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선발된 스타트업과 협업한다는 계획이다. 2019년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 ‘엔네이처 제로미트’를 선보인 롯데푸드도 현재 너겟과 가스 등의 제품을 판매 중이다. 롯데중앙연구소와 2년간 개발 기간을 거쳐 고기의 풍미를 살렸다. 간식과 반찬류에까지 대체육 제품의 범위를 넓힌다는 전략이다. 롯데리아를 운영하는 롯데GRS는 지난해 업계 최초로 식물성 버거를 출시하기도 했다. 롯데마트와 코리아세븐도 콩고기 간편식을 출시하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식량사업 영역 확장을 위해 국내 푸드테크 기업과 협력에 나섰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 6월 17일 HN노바텍, 지구인컴퍼니와 글로벌 마케팅 협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으로 포스코인터내셔널은 HN노바텍, 지구인컴퍼니가 생산하는 대체육의 글로벌 마케팅, 제품개발 지원 역할을 하게 된다. HN노바텍은 세계 최초로 해조류에서 헴(Heme·철분과 아미노산 복합체로 고기 맛을 내는 단백질 핵심 인자) 분자를 추출해 대체육 원료를 제조하는 푸드테크 기업이다. 대체육 원료 브랜드인 ‘마린미트’를 보유하고 있다.
지구인컴퍼니가 만든 슬라이스 형태의 식물성 고기 ‘언리미트’
지구인컴퍼니는 세계 최초 식물성 고기 슬라이스 특허를 확보한 대체육 제조 기업이다. ‘언리미트’라는 브랜드로 국내외 프랜차이즈에 대체육을 공급하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식량사업 확장을 위해 농업 분야 트렌드 변화에 맞춰 국내 유망 푸드테크 기업과 협업을 추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 3월 글로벌 10대 식량종합사업회사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대상은 배양육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대체육이 식물성 단백질로 고기맛을 흉내냈다면 배양육은 살아 있는 동물의 세포를 배양해 별도의 도축 과정 없이 세포공학 기술로 생산하는 인공고기다. 진짜 고기와 똑같은 맛을 내면서도 공장식 축산업의 비윤리적인 문제를 해소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친환경 미래 기술로 꼽힌다. 국내 배양육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엑셀세라퓨틱스와 손잡은 대상은 이르면 2023년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그런가 하면 호주의 대체육 브랜드 ‘v2food’는 친환경식품 수입 전문기업 에포크라인과 독점 공급계약을 맺고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v2food는 호주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와 공동 개발한 대체육을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는 푸드테크 기업으로 호주의 최대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헝그리잭스에 패티를 공급하고 있다. 올 2월에는 버거킹의 ‘플랜트 와퍼’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닉 하젤 v2food 대표이사는 “기존 대체육의 단점을 보완해 실제 고기와 같은 맛과 높은 경제성을 장점으로 하는 식물성 대체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호주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와의 연구를 기반으로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v2food는 올여름부터 버거 패티와 다짐육 등의 제품을 국내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다.
▶버거업계도 고기 없는 버거 출시
대체육에 대한 관심은 햄버거 업계도 마찬가지. 롯데리아는 지난해 말 대체육 버거 ‘스위트 어스 어썸 햄버거’를 출시했다. 앞서 v2food의 국내 진출에서도 언급한 버거킹의 ‘플랜트 와퍼’는 식물성 패티로 만든 대체육 버거다.
신세계푸드가 운영하는 노브랜드버거는 영국 대체육 브랜드 퀀의 마이코프로틴을 활용한 ‘노치킨 너겟’을 선보였다. 미생물에서 추출한 단백질인 마이코프로틴은 씹었을 때 닭가슴살과 비슷한 식감을 줘 유럽에선 닭고기 대체육의 주성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맛을 더한 노치킨 너겟은 출시 한 달 만에 전국 90여 개 매장에서 10만 개가 완판됐다. 일 평균 약 3000개가 판매된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체육에 대한 관심은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니라 장기적인 문화로 정착될 가능성이 크다”며 “글로벌 소비문화를 이끌고 있는 MZ세대의 소비문화가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