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건축트렌드] (8) 빛의 생명력 담은 공간 설계 …포스트모던 건축의 선구자 ‘루이스 칸’
입력 : 2016.09.09 14:39:13
필립 엑스터 도서관
“나는 시작(Beginning)을 사랑한다. 2개의 기둥과 1개의 보가 있는 곳에 건축의 시작이 있다.”
루이스 칸(Louis I. Khan,1901~1974)은 질서와 원리, 침묵과 빛으로 영감적 가치에 의한 건축설계 활동을 한 미국의 건축가다. 그의 작품은 모던 건축에서 포스트 모던(Post Modern)으로 이어지는 현대건축 시기의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01년 러시아 발틱해의 사아레마섬의 쿠레사레(Kuressaare)에서 가난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나 1906년 미국 필라델피아로 이민을 갔다. 루이스 칸은 소년기부터 미술과 음악에 예술적 재능을 보였다. 어린 시절 얼굴과 손에 크게 화상을 입는 바람에 내성적인 성격을 갖게 됐지만 이는 건축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사고의 깊이를 더하는 계기가 되었다.
칸은 고등학교 시절의 수업시간을 통해 건축에 흥미를 갖게 됐으며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유럽여행을 통하여 로마의 건축문화 및 고전 건축 그리고 유럽의 근대 건축운동을 직접 접했다. 또한 그는 실무 건축가로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개설해 활동하면서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교수로 강의를 하는 등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건축가로 주목을 받았다.
루이스 칸
▶침묵과 빛으로 창조되는 공간
현대건축의 4대 거장으로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미국), 월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독일), 미스 반 데이 로이(Mies van der Rohe·독일), 르 꼬르비제(Le Corbusier·프랑스)를 꼽는다. 이들은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1919년 독일에서 설립된 현대 디자인의 시초가 된 학교) 정신을 기점으로 디자인 및 현대미술 발전에도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1930년부터 1960년까지 대공황, 세계대전 과정에서도 자유로운 예술의 정신과 냉철한 과학적 기술로 건축을 공간예술과 종합예술로 발전시켰다. 이들을 현대건축의 1세대라고 한다면, 루이스 칸은 2세대로 포스트모던 건축의 선구자로 불리는 거장이다.
현대건축의 가능성을 보여 주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까지 산업발전에 따른 산업박람회와 새로운 구조의 중요한 재료로 된 주철의 교량, 전시관, 상징조형물 등의 건설이었다. 고대부터 사용되었던 건물의 장식은 20세기의 구조와 재료의 표현으로 대치됐고, 기능을 따르는 형태는 기하학적 입체로 발전했으며 마침내 국제주의 양식을 형성하게 됐다. 이러한 모더니즘에 대응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루이스 칸은 건축의 본질과 형태, 재료의 개념으로 자신의 건축철학에서 핵심적 개념을 정립해 건축가로 명성을 얻었다.
루이스 칸의 건축철학은 형태-질서-디자인(Form-Order-Design), 서비스 공간(Servant and Served Space), 침묵과 빛(Silence and Light)이 핵심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침묵과 빛’은 루이스 칸의 가장 추상적인 마지막 이론으로, 인간의 내면에 발현되는 창조적 표현욕구의 기원을 탐구한 시도였다. 공간의 구조는 빛에 의해서만 정의되고, 생명력이 있는 자연광의 공간만이 진정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칸의 모든 건축물은 철저하게 이러한 그의 건축철학에 의해 설계되고 건축됐다.
예일대 미술관
▶루이스 칸의 주요작품들
예일대학의 미술관(Yale University Art Gallery, 1951~1953년)은 루이스 칸이 명성을 알리게 된 첫 번째 작품으로 기존의 미술관에 증축한 건축물이다. 미술관의 기능상 요구되는 적절한 빛의 처리와 노출 콘크리트, 붉은 벽돌의 사용 그리고 삼각형의 계단은 원통형 벽으로 격리되어 특이한 공간구성을 보여준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리차드 의학연구소(1957~1964년)는 칸의 건축철학이 표현된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설비공간을 활용한 수직적 요소가 벽돌 재료와 함께 표출된 건축물이다.
1959~1965년에 설계한 생물학연구소인 요나스 솔크 연구소(Jonas Salk Institute)는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캘리포니아 언덕 위에 대칭의 건물을 배치하여 수평적 구성을 했다. 중정은 하얀 인조석 광장 가운데로 좁은 물줄기가 흘러 조그마한 연못을 거쳐 바다 쪽으로 흐르게 하였다. 중정에서 바라본 스카이라인(sky line)은 태평양을 배경으로 중정의 수로가 흘러가는 연출로 노출콘크리트의 건축물에 생기를 부여한 공간이다. 솔크 생물학연구소는 개인연구, 휴식의 서재를 연구실험실 주변에 배치하여 공간의 기능적 구성을 추구했다.
필립 엑스터 도서관(1967~1972년)은 동심원을 이룬 2개의 공간구성으로 되어 있다. 중앙 아트리움 상부에서 자연채광이 유입되면서 서고 및 열람실이 배치되어 드라마틱한 공간 구성을 제공하며, 벽돌 모양의 노출 콘크리트 구조와 거대한 원형 스케일은 신화적 고전적 느낌을 연출한다.
킴벨 미술관(Kimbel Art Museum, 1966~1972년)은 연속되는 반원통형 볼트 구조의 미술관건축물이다. 연속된 반원형 볼트의 지붕상부에서 유입된 빛이 반사판과 천장 볼트면에 2차·3차로 반사, 확산되어 연출하는 빛의 효과로 인해 내부공간이 빛의 특징을 가장 잘 활용된 미술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장 명료하고 단순한 공간구성의 연속으로 구조, 공간, 빛의 완성체를 이루는 건축물로 칸의 건축 개념 중 침묵과 빛의 개념 어휘를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대 리차드 의학연구소
▶포스트 모던건축 이끌어 낸 위대한 거장
루이스 칸은 그의 나이 50세에 들어서야 세상의 주목을 받고 건축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종교적 이유로 독립한 신생국가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Dhaka)에 지어질 국회의사당의 설계를 제안 받는다.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1962~1974년)은 건축물 이전에 방글라데시의 민주주의를 도입·상징한다고 할 만큼 의미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건물의 기품과 치열한 공간구성 의식은 보는 이를 경건함으로 이끌어 낸다. 인상적이고 육중한 외관과 달리 내부의 경우 중앙의 원형공간에 본회의장을 두고, 주변에 마름모꼴이 되도록 부속공간을 배치한 평면이다. 중앙의 원형공간 상부는 볼트(Vault)의 연속으로, 빛의 연출로 종교적·권위적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요나스 솔크 연구소
현대건축은 벽을 면으로 간주하는데, 루이스 칸은 벽 구조에 의해 건물의 육중성을 강조하였다.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의 파사드 외벽은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거칠고 힘찬 모습을 표출하되, 벽을 이중으로 하여 외벽에는 원, 삼각형, 사각형의 개구부를 뚫어서 Solid(견고한 공간)와 Void(텅 빈 공간)의 기하학적 대조를 극적으로 연출하였다. 이러한 이중벽 구조는 빛의 연출과 기후 조건에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의 국회의사당과 인도 아마다바드(Ahmedabad)의 경영 연구소(1962~1974년)는 칸의 마지막 작품이다. 인도 경영 연구소의 외관은 평온하고 단아하며 중세의 성 같이 붉은 벽돌의 외벽구조로 된 건축물이다.
칸이 설계한 건축물을 보면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Ando Tadao)를 생각하게 된다. 단순함과 엄격함, 그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균형을 특징으로 하는 건축물을 보면서 노출 콘크리트 벽면의 물처럼 흘러내리는 빛을 통한 공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루이스 칸은 1974년 3월 17일 인도에 출장 갔다 돌아오던 중 뉴욕의 기차 정거장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들 나다니엘 칸(Nathaniel Kahn)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My Architect>의 첫 장면은 아버지 사망에 관한 신문기사 검색, 그리고 아버지 사망에 대한 질문을 통하여 아버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줄거리이다. 다큐멘터리는 복잡한 가족관계 그리고 예술과 사랑의 관계에서 위대한 건축가 루이스 칸의 행적을 살펴보는 내용이다.
루이스 칸은 예일대학 및 모교인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교수로 강의와 건축가로서 활동하였으며, 현대건축에서 기본적 형태를 강조함으로 건축의 역사적 흐름에서 모더니즘(Modernism) 다음에 등장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예고, 새로운 가능성의 역할을 한 위대한 건축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