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와 비자금 조성은 종종 나라의 큰 사건이 되고 있다. 그 과정에 부가가치세가 항상 중심에 있다는 것은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부가가치세 제도는 그 징수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 적은 비용으로 엄청난 규모의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데다가 대부분의 국가에서 재정을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세원 확보 수단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부가가치세 제도는 20세기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으로 평가 받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이 제도가 도입된 지는 40년 가까이 되고 있다. 부가가치세 제도는 최종 소비자가 납세 부담을 지는 반면에 납부는 납세의무자가 대납하는 제도다. 이른바 간접세다. 납세의무자가 세금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탈세가 생겨나는 이유인 것이다. 이로 인해 부가가치세의 탈세는 이 제도를 도입한 국가마다 풀어야 할 심각한 문제다.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하기 시작한 유럽에서도 부가가치세 탈세는 여전히 남겨진 숙제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제도가 국제 간 전자상거래나 인터넷 서비스의 발달로 인하여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서비스를 구매하는 경우 공급자와 소비자의 관할 국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최종 부가가치를 소비하는 소비자에게 세금을 부담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특히 나라마다 부가가치세 세율이 다르다거나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는 나라와의 관계에서는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내국인이 외국 공급자로부터 인터넷 서비스를 구매 또는 이용하는 경우다. 이 경우에 국가는 언제 누구에게 세금을 징수할 것인가와 구매한 가격에 부가가치세가 포함된 것인가가 모호해진다. 나라마다 다른 부가가치세율의 차이를 이용한 거래도 등장한 상태다. 부가가치세가 가장 낮은 나라에 본사를 두고 거래를 하는 것이다. 소비세가 부과되는 경우도 있게 된다. 이로 인하여 세원의 공백이 발생하는 것이다.
부가가치세 징수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탈세와 세원의 감소는 국가 재정에 심각한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탈세와 누락의 이중고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부가가치세 징수 방법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일일 것이다.
부가가치세 탈세는 태생적인 원인에서 기인한다. 부가가치세 제도가 도입될 당시에는 간접세로 출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즉 징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에서 나온 것이다. 일정기간 납세부담자가 부담한 세금을 납세의무자인 기업 등이 일정기간 그 세금을 기업의 자금으로 이용하게 함으로써 세금 징수비용을 납세의무자에게 지운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납세의무가가 세금을 과세당국에 전달하지 않는 것이 부가가치세 탈세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상황은 제도 도입 이후 아직까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부가가치세는 각 유통단계에서 생산된 부가가치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그리고 각 유통단계에서 부과된 세금은 납세의무자가 과세 당국에 대납하는 형태를 갖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납을 하지 않거나 현금을 이용한 거래를 통하여 거래 사실을 숨김으로써 세금을 탈루한다. 세금을 탈루하는 방법도 계속 진화를 한다. 허위 세금계산서를 통한 부정환급도 오래된 탈세 수법이다. 더 나아가 이른바 폭탄업체를 이용한 부가가치세 탈세는 전형적인 수법도 이용된다. 이러한 탈세는 거래 단계에서 폭탄업체를 이용한 위장 거래를 통해 과세 당국으로부터 환급을 받아내는 구조다. 또한 수출시 환급되는 제도를 악용하는 것을 통하여 세금을 탈루하기도 한다.
특히 수출시 부가가치세 환급 제도를 이용한 탈루는 사실상 위장 거래를 이용하여 과세 당국이 거꾸로 다른 곳에서 거둔 세금을 탈루자에게 내어 주는 심각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과세 당국이 거두지도 못한 세금을 더 내어주는 구조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환급 탈루는 부가가치세를 도입한 국가 간 거래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연간 최대 25조원에 달하는 세금 탈루가 이러한 위장 수출 거래를 통해 발생하기도 했었다. 국내에서도 과거 수조원에 달하는 부가가치세를 이러한 방법으로 떼어먹는 사례가 과세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부정환급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를 통한 탈세 규모는 국내의 경우 연간 최소 1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이러한 탈세나 탈루를 막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 2017년부터 일정규모 이상의 거래에 대하여 사실상 부가가가치세 실시간 신고 제도를 도입한다고 한다. 부가가치세 발생에서부터 과세 당국의 부가가치세 환급에 이르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을 대폭 줄이겠다는 복안이다. 이를 통해 납세의무자가 부가가치세를 탈세하는 규모를 줄이겠다는 생각이다. 한마디로 탈세를 할 기회를 최소화하는 조치다. 이러한 조치는 징수제도에 정보시스템을 응용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유럽연합국가들은 올해부터 전자책과 같은 정보통신을 이용한 서비스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를 사용자의 관할 국가 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나라마다 현저하게 다른 세율에 따른 불균형과 의도적인 세입 감소를 막기 위한 시도이다. 유럽연합국가의 부가가치세율은 3%에서 27%까지 그 차이가 크다. 이를 이용한 사실상의 부가가치세 탈세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세율이 낮은 곳에 본사를 두고 전자책과 같은 서비스를 판매하면 가장 낮은 부가가치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 서비스를 이용한 소비자가 있는 국가입장에서는 더 높은 세율에 의한 부가가치세를 징수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결국 명목상 부가가치세율과 징수하는 부가가치세율 간에 생기는 큰 폭의 차이만큼 세금을 덜 걷게 되는 것이다. 기업은 이를 통하여 더 많은 제품을 낮은 가격에 팔 수 있지만 국가는 이에 상응하는 만큼의 세수 감소가 따르게 된다. 결국 나라의 재정이나 경제를 고려한 부가가치세율의 차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부가가치세가 세계 최초로 도입된 것은 1954년 프랑스에서다. 이제 60년이 흐른 것이다. 이 부가가치세 징수제도가 정보시스템으로 인하여 혁신적으로 바뀔 전망이다. 부가가치세는 도입에서부터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구조적인 한계로 간접세일 수밖에는 없었다. 이러한 간접세 구조가 반직접세 구조로 바뀌게 될 것이다. 유럽국가연합은 올해부터 새로운 징수방법의 도입을 시범적으로 추진한다. 이른바 실시간 부가가치세 제도다. 소비자가 부담하는 부가가치세를 더 이상 납부 의무가가 대납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의 흐름 중간에서 직접 징수하는 체계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납세 부담자가 직접 납부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간에 납세 의무자가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징수제도인 것이다.
실시간 부가가치세 제도에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물건의 구입 과정에서부터 전 과정이 전자적 결제 처리로 이뤄져야 가능하다. 신용카드 거래, 자동이체, 온라인 결제 등이 보편화됨으로써 전자적 처리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다 최근 불고 있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결제 방식의 변화는 조만간 대부분의 거래가 전자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온라인 쇼핑이나 핀테크의 확산은 전자적 결제 처리의 비중을 엄청나게 빠르게 높일 것이다. 전자적 결제 처리는 실시간 부가가치세 신고와 징수를 가능하게 하는 첫 번째 조건이다. 여기에다 부가가치세 환급이 실시간으로 처리돼야 한다. 매입과 매출에 따른 부가가치세 환급이 실시간으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부가가치세를 창출한 기업에게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시간 부가가치세 제도의 도입은 납세의무자에게서 발생하는 탈세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납세부담자가 납부한 세금이 직접 과세 당국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더 큰 장점은 세금을 내지 않는 음성거래를 차단할 수 있는 부가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부가가치가 발생하는 전 유통단계에서 누군가가 세금을 환급받으려면 세금을 신고하게 된다. 이 신고는 연관된 유통단계에 세금 신고의 누락을 자동으로 검출되게 해줌으로써 세금 징수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실시간 부가가치세 제도가 도입되면 과세거래에서 누락되는 상당부분의 음성거래를 양성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탈세로 인한 세수 누락은 결국 세금 징수비용이다. 이 비용을 줄이는 것이 국가의 의무다. 한마디로 징수제도의 혁신이 필요하다. 더 이상 세금 징수비용을 납세 의무자에게 지울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IT경제의 확산으로 국가의 세원 확보 및 징수 방식의 변화는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핀테크는 금융기업이나 핀테크 기업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의 핀테크는 곧 이러한 환경을 이용한 징수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