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상자를 열기 전까지 어떤 맛의 초콜릿이 들어 있을지 모르지.”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 are going to get.)
주옥 같은 명대사를 쏟아낸 영화 <포레스트 검프>. 그중에서도 으뜸을 꼽자면 인생을 이렇게 초콜릿 상자에 비유한 대목이다. 인간은 살아가며 여러 가지 선택을 하고 그 결과는 초콜릿 맛만큼이나 다양하다는 뜻이다.
숨겨진 함의는 가슴에 울림을 줬을지 몰라도 대사 자체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입장에서 공감하기 쉽지않다. 지금이야 국내 업체들이 여러 가지 맛의 초콜릿을 출시했고 수백 가지가 넘는 수입산이 들어와 있지만 영화가 나올 당시만 해도 2~3개 업체가 내놓은 10여 가지 제품이 전부였고 맛도 고만고만했다. 머리가 띵해지도록 달달한 화이트 초콜릿이나 감기약보다 쓴 다크 초콜릿이 일반화된 것도 비교적 최근 일이다.
로셰(Rocher),초콜릿으로 만든 작품들
일류호텔·베이커리에서 모시는 귀한 몸 ‘쇼콜라티에’
달달한 맛의 대명사 초콜릿은 대표적인 디저트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 디저트 시장이 본격화되면서 다양한 맛의 초콜릿 수요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초콜릿 메뉴가 하나둘 늘어가고 수제 초콜릿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쇼콜라티에(Chocolatier)라는 직업군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쇼콜라티에는 프랑스어로 ‘초콜릿 공예가’, ‘초콜릿 장인(匠人)’을 뜻하고 영어로는 ‘초콜릿 아티스트(Chocolate Artist)’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러 종류의 초콜릿 원료로 블렌딩(Blending)하고 부재료를 첨가하여 자신만의 고유한 맛과 풍미로 레시피를 만들고, 초콜릿 공예를 통해 예술 작품에 비견되는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초콜릿과 어울리는 음료와 음식, 포장의 최종 단계까지 디자인하는 작업도 쇼콜라티에의 몫이다. 전문적인 쇼콜라티에는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의 재배 과정부터 카카오 원두를 선별하여 초콜릿을 만들어 가공하는 단계까지 관여하기도 한다.
국내에는 아직까지 쇼콜라티에를 공인하는 자격 제도는 없고, 몇몇 업체에서 운영하는 민간 자격증을 발급하는 상황이다. 일부 제과점이나 호텔에서 쇼콜라티에를 채용하고 있으나 초콜릿 분야의 전문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공예 위주나 아니면 제과 제빵과 겸업으로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대기업 중심의 초콜릿 시장이 고급 디저트 시장으로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쇼콜라티에 직업군의 위상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김용훈 빠드두 쇼콜라티에
촉감과 맛을 좌우하는 ‘템퍼링’
초콜릿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템퍼링이다. 초콜릿의 탈을 쓴 기타 경화유가 아닌 카카오버터로 구성되어 있는 리얼 초콜릿은 템퍼링 작업을 거치게 된다. 말 그대로 온도를 조절하는 과정인 템퍼링은 초콜릿의 광택과 식감 등을 결정한다. 템퍼링을 거치지 않은 카카오 버터 결정체는 그 크기가 일정치 않고 일부 또는 대부분이 육안으로 봐도 볼륨이 균일하지 않다.
템퍼링이 잘된 초콜릿은 몇 분 내에 딱딱하게 굳어 윤이 나고 입안에 들어갔을 때는 알갱이 없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 난다. 반면 제대로 된 템퍼링을 거치지 않은 초콜릿은 굳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윤기가 부족하고 굳고 나서도 손으로 잡았을 때 금방 녹아내린다. 입안에서는 거친 느낌이 들고 표면에 하얀 반점이 생기는 블룸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
쇼콜라티에 체험을 위해 압구정에 위치한 빠드두 초콜릿 공방을 찾았다. 초콜릿을 만드는 과정은 맛 이상으로 달콤했다. 처음 시도한 것은 ‘바위’를 뜻하는 로셰(Rocher)였다.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벨기에 초콜릿 ‘페레로 로셰’와 모양이나 맛이 유사하다. 다크 초콜릿을 화이트 초콜릿 60g과 녹여 윤기가 날 때까지 부드럽게 저어준다. 여기에 잘게 부순 아몬드와 건조과일을 섞어 바위 모양으로 건조시키면 완성된다. 예상 외로 상당히 쉽고 짧은 시간(10분) 안에 그럴 듯한 초콜릿을 만들 수 있다.
동그란 모양에 중간에 회오리 문양이 들어간 만디앙(Mendian) 역시 화려한 외형에 비해 과정은 간단하다. 다크 초콜릿 150g, 화이트 초콜릿 30g을 각각 녹이고 다크 초콜릿을 동그란 틀 안에 넣고 화이트 초콜릿을 그 위에 살짝 얹어놓고 이쑤시개 등으로 모양을 낸 후 굳히면 된다. 그 위에 견과류나 건조과일을 취향대로 올려놓으면 여느 수제 초콜릿 못지않은 비주얼과 맛을 낼 수 있다.
“제대로 알고 즐겨요” 초콜릿에 대한 오해와 진실 밸런타인데이 연인에게 받은 수제 초콜릿은 대부분 가짜다
초콜릿의 핵심 원료인 카카오버터는 상당히 비싸다. 수분이 부족한 초콜릿을 부드럽게 하고 입에 닿는 감촉을 뛰어나게 만드는 카카오버터는 1kg에 2만2000원에 판매되는 고가 성분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저렴한 초콜릿이나 밸런타인데이 때 정성스럽게 만들어내는 수제 초콜릿의 원료에는 이를 대체할 식물성 유지가 들어간다. 팜유 등의 식물성 유지가 카카오버터 대신에 들어간 경우 엄밀히 말하면 ‘가짜’이자 초콜릿이 아닌 ‘초콜릿 가공품’ 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가짜 초콜릿은 위험하다
초콜릿은 카카오매스와 카카오버터, 그리고 설탕과 소량의 레시틴으로 이뤄져 있다. 가짜 초콜릿에 카카오버터 대신에 함유된 팜유 등은 기름야자의 과육에서 채취한 식물성 기름으로 포화지방과 불포화지방이 50 대 50으로 이루어져 있다. 액상일 때는 몸으로 흡수되었다가 온도가 낮아진 혈관 속에서는 고체 상태로 바뀌게 된다. 이 상태로 몸에 축적되면 얇은 혈관 벽을 막아버리게 되고 고혈압과 동맥경화, 심근경색 등 혈관계 질환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몸에 안 좋은 가짜 초콜릿이 생산되는 이유는?
가격적인 문제도 있지만 오리지널 초콜릿은 템퍼링이라는 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은 쉽지 않다. 특히 대용량 작업 시 템퍼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식품의약국에서는 초콜릿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제품에는 반드시 카카오버터만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우리나라는 카카오 고형분이 20% 이상이면 초콜릿류로 인정하고 식물성 유지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항목이 없다.
초콜릿은 건강에 해롭기만 할까?
초콜릿은 달콤한 만큼,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많다. 대량 생산된 대체 초콜릿의 경우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강력한 항산화 성분을 가지고 있다. 초콜릿을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비만 등 성인병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오리지널 초콜릿은 적당히 먹고 양치만 잘하면 노화 방지 효과를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