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소비자들이 ‘요즘 백화점은 다 똑같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루이비통 등 유명 해외명품을 비롯해 일단 잘된다 싶은 브랜드가 있으면 어느 곳이든 간에 같은 브랜드, 비슷한 인기상품을 들여와 판매하는 통에 어디에 가든 상관없이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불만은 최근 잇따른 편집숍의 출현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
브랜드별로 꾸려진 기존 단독 매장 형태를 벗어나 여러 브랜드의 특정 품목을 한데 모아 판매하는 편집매장은 국내외 유명 브랜드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최신 트렌드를 발 빠르게 반영하는 민첩함 덕택에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아직 인지도는 낮지만 향후 성공가능성이 높은 ‘다크호스’ 브랜드를 누구보다 먼저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큰 이득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편집매장은 소비자 입장에서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외국의 트렌디한 상품을 선보여 다양한 선택권을 소비자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패션의류뿐만 아니라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군을 한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어 편리한 쇼핑이 가능한 점도 돋보인다.
해당 브랜드에 매장 운영을 맡기고 매출액 일부를 수수료로 가져가는 ‘특정매입’ 방식이 아니라 백화점이 직접 제품을 구입해 판매부터 재고관리까지 도맡는 직매입 방식으로 운영되는 부분은 중간 유통단계를 없애 합리적인 가격대에 제품을 선보일 수 있는 장점으로 이어진다. 편집숍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업체 쪽에도 상당한 이득이 있다. 로드숍이나 정식매장으로 선보이기 이전에 트렌디한 신생 브랜드를 백화점에서 한발 빠르게 선보이고, 이에 따른 고객들의 반응을 파악하는 리트머스지 같은 역할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이성환 현대백화점 바이어는 “요즘 고객들은 브랜드보다 상품 소재, 디자인 등을 더 중시해 구매하는 동시에 새로운 트렌드를 수용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기존매장보다 발 빠르게 트렌드에 대응할 수 있는 편집숍이 중요해지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런 장점 덕분에 주요 백화점들은 편집숍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의류와 패션잡화가 중심이 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스포츠와 아웃도어, 먹거리까지 취급 품목이 확대될 정도로 편집숍 열풍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뜨겁게 불고 있다.
글로벌 럭셔리 패션을 한국에서 즐긴다
백화점 편집숍은 패션계의 주력 분야인 여성복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2005년 본점 에비뉴엘에 선보인 여성 하이엔드 편집숍인 ‘엘리든’이 대표적이다. 뉴욕, 밀라노, 파리컬렉션에서 인정받은 40여 명의 세계적인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갖춘 이 매장은 현재 본점 에비뉴엘과 부산 센텀시티점에서 ‘색다른 명품’을 원하는 럭셔리 고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가격은 최저 10만원대부터 최대 400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이 백화점의 해외 컨템퍼러리 편집숍 ‘바이에토르’, 한국형 SPA 편집숍 ‘코스(KHOS)’와 팝업 전문매장 ‘더웨이브(The Wave)’도 여성 패션제품을 주력으로 판매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지난해 8월 압구정본점에 문을 연 ‘라뚜슈’도 비슷한 콘셉트의 여성 프리미엄 잡화 편집매장이다. 라뚜슈는 터치(touch)의 불어식 표현으로 백, 클러치, 스카프, 네크리스 등 스타일의 완성을 위한 마지막 ‘(패션)터치’가 되는 아이템을 선보인다는 의미를 담았다. 희소성 있는 패션 아이템을 찾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총 21개 브랜드 중 70%를 프랑스 슈룩, 이탈리아 비앙키앤라르디 등 국내에서는 만나기 힘든 브랜드로 구성했다.
악어가죽가방을 200만~700만원대에 모자는 10만~30만원대, 주얼리는 20만~50만원대에 선보인다. 신세계백화점은 40~50대 여성 VIP를 위한 럭셔리 캐주얼 콘셉트의 브랜드 편집숍 ‘트리니티’를 운영 중이다. 본점, 강남점, 센텀시티점에 입점한 이 매장은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세계 각지의 디자이너 브랜드 30여 개를 한 데 모았다. 듀산, 엔오또, 에르노, 람베르또 로자니 등이 대표 브랜드로 꼽힌다. 가격은 셔츠와 팬츠 각 50만원대, 블라우스는 70만원대, 아우터는 100만~200만원대다.
남성 전용숍부터 청바지 편집숍까지 이색 매장 봇물
자신을 가꾸는 데 익숙한 남성들인 ‘그루밍족’을 위한 편집숍도 눈에 띈다. 현대백화점이 2011년 업계 최초로 문을 연 남성 잡화 프리미엄 편집숍 ‘로열마일’에는 이탈리아 에스페란토와 일본 키프리스, 독일 리모와 등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정통 남성 브랜드 제품이 가득하다. 희소성 있는 브랜드를 발굴하기 위해 백화점 바이어가 6개월에 걸쳐 현지를 돌며 직접 구해온 것들로 남성 패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잇(it) 아이템’인 벨트와 가방, 지갑과 시계 끈 등의 소품을 다룬다. 가격은 벨트 10만원, 가방 50만원대, 지갑 20만원대다.
‘슈컬렉션(신발 편집숍)’과 ‘핸드백컬렉션’, ‘란제리컬렉션’, ‘피숀(테이블웨어 편집숍)’은 신세계백화점이 선보인 패션 아이템별 편집매장이다. 슈컬렉션은 지미추, 마놀로 블라닉, 페라가모를 포함한 럭셔리 슈즈를 판매하며 가격은 샌들 70만원대, 구두 100만원대다.
이 백화점의 ‘블루핏’은 프리미엄 데님(청바지) 베이스의 컨템퍼러리 캐주얼 의류 편집숍이다. 데님 및 컨템퍼러리 캐주얼을 즐겨 입는 20~30대의 트렌디한 고객을 겨냥해 미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 들여온 제이브랜드, 씨위, 커렌트엘리엇 등 60여 브랜드를 취급한다. 데님과 함께 매치할 수 있는 씨뉴욕, 스티브앤요니 같은 캐주얼 의류도 함께 선보이고 있으며 매년 신진 디자이너와의 콜라보레이션과 시즌별 신규 디자이너 발굴로 항상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는 것이 장점이다. 청바지 가격은 20만원부터 60만원대다. 현대백화점도 무역센터점에서 수입청바지 편집매장인 ‘데님바’를 운영하고 있다.
제임스진, 로빈슨 진 등 세계 각국의 20여 개 규모의 프리미엄 수입 청바지와 스니커즈, 잡화 등을 함께 판매한다. 가격은 청바지 40만~50만원대, 프리미엄 스니커즈 30만원대, 핸드백 40만~70만원대, 스카프 10만원대, 선글라스 10만원대다.
(위)슈컬렉션, (아래)라뚜슈
패션을 넘어 이제는 라이프스타일숍으로
최근에는 패션뿐 아니라 먹거리와 생활용품까지 삶의 전반을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편집숍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은 올 초 지하 2층에 업계 최초로 이탈리아 토털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일라비타’를 선보였다.
의류브랜드 ‘베아유크무이’와 ‘알리지’, 수제 초콜릿 웨하스 ‘바비’, 프리미엄 스파게티 ‘미켈레 포르토게즈’까지 패션부터 식품까지 유럽의 정취를 듬뿍 느낄 수 있는 23개 이탈리아 브랜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현재 일라비타에서 판매하는 브랜드 21개 중 13개는 국내에 처음 들어온 것이다. 기존 백화점 편집숍이 ‘의류와 잡화’ 중심이라면 일라비타는 여기에다 생활용품과 식품을 더했다. 매장 콘셉트도 ‘이탈리아 현지의 삶을 느낀다’는 모토에 맞게 ‘작은 이탈리아’로 꾸몄다. 의류 20만~30만원대, 가방 50만~120만원대, 슈즈와 선글라스는 30만원대, 식품은 1만~6만원대에 판매한다.
신세계백화점이 서울 청담동 피앤폴루스 건물에서 운영 중인 ‘마이분’은 패션 아이콘 밀란 부크미로빅과 손잡고 만든 라이프 스타일 매장으로 화장품부터 비트라, 카펠리니 등 가구와 크롬하츠 등 액세서리, 완구와 조명, 선물용 소품까지 다양한 아이템을 다룬다. SSG푸드마켓이 제공하는 신선한 제철 생과일과 채소를 이용한 착즙주스가 메인 메뉴인 주스바도 운영한다.
롯데백화점은 스포츠로 편집숍 외연을 넓혔다. 지난 3월 영등포점에 문을 연 ‘피트니스 스퀘어’에는 영국 프리미엄 요가브랜드 이지요가, 기능성 스포츠 액세서리 브랜드 화이텐 등 전문 스포츠 카테고리 제품을 한번에 비교하고 구입할 수 있다. 영등포점과 인천점에는 의류, 백팩, 등산화 등 캠핑과 아웃도어 관련 상품군을 총망라한 아웃도어 토털 자주편집숍 ‘아웃도어플러스원’이 들어섰다. 먹거리 브랜드로만 구성된 신개념 편집숍 ‘더 푸드 웨이브’는 지난 4월 롯데백화점 본점 식품관에 오픈했다. 한두 달 단위로 식품 업체가 변경되는 팝업스토어 방식으로 운영되는 이곳에는 첫 주자로 강원 속초의 명물인 만석닭강정과 5대 명물떡, 경성 고로케, 바르도 아이스크림이 입점하여 브랜드별로 하루 최고 2000만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