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당국회담이 ‘격(格)’ 문제로 무산된 이후 정치권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남북한이 만나 직급 대조표를 만들자”는 ‘기발한’ 제안을 내놨다.
DJ정부의 대북 밀사로 뛰었던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차라리 총리급 회담으로 격상시키자”는 논리를 폈다. 총리는 남쪽에도 북쪽에도 있기 때문이다.
남북회담에 있어 ‘격’의 문제는 숙명적(?)이다. MB정부 마지막 통일부 장관이었던 류우익 전 장관은 “세계에서 통일부 장관은 나 한 명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 주장처럼 북한에서는 대남사업을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총괄하고 있다. 이번에 북측에서 회담 단장으로 제시했던 강지영이 속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엄밀히 따지자면 노동당 외곽기구 혹은 사회단체다. 그러나 조평통을 남측의 사회단체나 비정부기구(NGO)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조평통 간부 대부분은 노동당 통일전선부에도 그에 걸맞은 직함을 가지고 있다. 일각에선 조평통 서기국장은 기본적으로 당 통전부 부부장이 담당하는 자리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어디까지나 추론이자 의견일 뿐, 정확한 남북 간 직급 비교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북한은 공산주의 특유의 당국가체제(Party-State System)을 채택하고 있다.
모든 권력은 노동당으로부터 나오고, 내각과 국방위원회 인사들 역시 대부분 위상에 맞는 노동당의 직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제1인자인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중앙군사위원장 등 당·군·정에 걸쳐 여러 직함들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북한 관영매체에서는 “조선노동당 제1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김 제1비서를 소개하기 위해 무려 62자에 달하는 수식어가 동원되고 있다.
이와 별개로 북한의 권력서열을 가늠하는 또 하나의 기준은 바로 주석단 서열이다. 북한 관영매체가 공식 행사를 보도할 때 이 행사에 참석한 고위급 인사들이 자리하는 순서가 곧 서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북한의 2인자는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된다. 올해 4월까지 주석단 서열 3위를 지키던 최영림 전 내각 총리는 퇴임 이후 권력서열을 지키고 있는지 불투명하다.
하지만 이 서열도 북한의 권력구도를 정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 서열은 공식적인 ‘의전’ 목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의견도 많다. 실제로 이 서열에서 실권과는 무관하게 일종의 ‘당연직’처럼 포함된 사람들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한 전직 통일부 고위 관료는 “김영남 위원장이 명목상으로는 북한 권력서열 2위이지만, 북한에서는 실제 이보다 훨씬 못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