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Trend] 2012 美 소비자가전쇼(CES)에서 본 트렌드…지금까지의 TV는 잊어라
입력 : 2012.01.27 17:35:05
수정 : 2012.02.27 13:58:39
‘왕의 귀환.’
TV가 다시 미국 소비자가전쇼(CES)의 중심에 섰다. 지난해는 수십 종의 태블릿PC가 무대를 장악하면서 TV의 위세가 잠시 주춤거리는 듯했지만 올해는 TV가 단연 메인이었다. 1월 10~13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내놓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와 차세대 스마트 3D TV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미국 가전제품제조자협회(CEA)를 비롯해 미 테크전문지 ‘시넷’, 유명 정보기술(IT) 블로그 ‘테크노 버펄로’ 등이 한국의 OLED TV를 CES의 최고 제품으로 잇달아 선정했다.
TV 뒷면에 명함 크기의 키트(Kit)를 꽂기만 하면 TV의 핵심 프로세서와 메모리 등 모든 기능이 최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삼성 스마트TV의 에볼루션 기능은 전자업체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맥주나 음료를 5분 내로 시원하게 만드는 급속 냉장 기능을 갖춘 LG전자 스마트 냉장고도 CES 관람객들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올해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CES 분위기를 주도했고 소니, 파나소닉, 샤프 등 일본 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반면 하이얼, TCL, 레노보 등 중국 업체들이 한국 업체의 장점을 벤치마킹하면서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CES 2012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겼는가.
Polaroid사의 SC1630 스마트 카메라.
“리모컨 어디 간 거야?”
주말 오후 회사원 김철민 씨는 거실에 있는 TV를 켜려고 리모컨을 찾았지만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소파 밑이며 책장 위를 다 뒤져봐도 나오지 않았다. 리모컨 숨바꼭질은 한두 번이 아니다. ‘말로 작동하는 TV가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김 씨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CES 2012에 나온 삼성 스마트TV가 김 씨의 이런 고민을 해결해줬다.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은 차세대 스마트TV인 ES8000시리즈를 관람객들에게 처음 공개하면서 말로 TV를 켜고 채널을 돌리는 기능을 선보였다. “채널 원”이라고 외치자 채널1이 나왔고 “채널 투”라고 말하자 채널2로 화면이 전환됐다.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 불어 등 여러 언어로 작동시킬 수 있다.
허공을 향해 손을 움직이면 커서 키가 화면에 이리저리 나타난다. 손이 마우스처럼 인식되는 것. 얼굴 인식 기능도 인상적이다. TV 위쪽에 내장된 카메라에 얼굴을 대니 화면 속에 얼굴이 입력됐다. TV가 사용자의 얼굴을 기억해 선호채널을 틀어준다. 스카이프 접속을 시도하자 신원 확인 없이 바로 연결된다. TV를 보면서 트위터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LG전자의 스마트 3D TV도 음성과 동작인식을 지원한다. TV 앞에서 리모컨 키를 누르자 커서가 깜빡거린다. MBN 뉴스를 보면서 친구에게 트위터 메시지를 날려본다. 문자를 일일이 버튼으로 누를 필요가 없었다. 리모컨에 입을 대고 “안녕, 잘 지내지?”라고 말하면 화면에 같은 문자가 입력된다. 매직 리모컨을 통해 음성이 문자로 바뀌기 때문이다. LG의 동작인식 기능도 진일보했다. ‘3D모션센싱게임’의 일종인 과일 자르기 게임을 켜고 화면을 향해 주먹을 던지니 수박이 반으로 갈라진다.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면 볼륨이 올라간다.
키트만 갈아 끼우면 TV의 하드웨어가 업그레이드되는 에볼루션 기능도 눈길을 끈다. 애플 아이폰이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의 간편한 업그레이드를 지원해 소비자들을 열광하게 만든 것처럼 TV의 핵심 기능을 매년 최신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TV제품 생태계에 충격을 줄 만한 신개념이다.
작은 화면을 통해 스키장의 지도를 확인할 수 있는 UVEX고글. / 소니의 3D안경.
“한국 기업의 승리를 인정한다”
CES에 참가한 일본 전자업체의 한 관계자는 삼성과 LG의 OLED TV를 살펴본 뒤 이렇게 답변했다. 올해 한국 업체가 CES 무대를 장악할 수 있었던 비밀병기 중 하나는 55인치 대형 OLED TV다. 삼성과 LG는 자연색에 가까운 또렷한 화질을 제공하는 OLED TV를 올해 CES에 공개한 뒤 본격적인 양산 판매에 돌입할 예정이다. 기존 LCD나 LED TV는 화면의 광원 역할을 하는 백라이트를 필요로 하지만 OLED TV는 스스로 빛을 내는 자체 발광 디스플레이를 탑재해 화면 두께와 무게, 전력 소모량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반응 속도도 LCD에 비해 훨씬 빠르다. 화면 전환이 빠른 스포츠 경기를 보다가 간혹 화면이 끊어지거나 잔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데 OLED는 LCD보다 수백 배 빠른 반응 속도를 보이기 때문에 이러한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
3D 안경속으로 LG 3D TV를 촬영하고 있다.
커넥티드 제품의 진화
‘이게 가전 전시장이야, 오토 쇼야.’ CES 전시장엔 많은 자동차들이 전시되고 있어서 이런 궁금증을 갖게 했다. 올해 CES 2012를 꿰뚫는 또 하나의 화두는 ‘커넥티드의 진화(Evolution of Connected)’다. TV와 가전제품뿐 아니라 자동차, 헬스케어기기 등 각종 제품들이 와이파이와 이동통신 네트워크와 연결돼 소비자들이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기기 간 연결을 지원하는 ‘올셰어(AllShare)’ 기능을 한층 개선시켰다. 인터넷에 연결된 모든 디바이스 사이에 콘텐츠를 서로 공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집 밖에서도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카메라 등으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올셰어 플레이(AllShare Play)를 지원한다.
소니도 커넥티드 제품을 전면에 내세웠다. TV, 블루레이 플레이어, 가정용 AV 수신기, 태블릿PC, 스마트폰, 캠코더 등 소니의 상당수 제품이 인터넷 연결을 지원한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강점을 지닌 소니의 특성을 충분히 살리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영화, TV 동영상, 게임에다 클라우드 기반의 음악 서비스와 같은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를 결합해 소비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모바일 기기와 연결된 스마트카드도 이번 CES에서 볼거리를 제공했다. 포드, 아우디, 벤츠, 기아 등이 커넥티드카를 전시했다. 차량 내부에 전용 태블릿PC가 내장돼 있고 속도·주행거리 등을 알려주는 계기판을 디지털화했다.
스티브 발머(MS), 폴 오텔리니(인텔), 에릭 슈미트(구글), 폴 제이컵스(퀄컴) 등 상당수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들이 CES 연설에서 ‘커넥티드’ 개념을 강조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벤츠 가상 주행장치 / Tim Baxter 삼성전자 미국 법인장이 16-megapixel WB850F 카메라를 소개하고 있다.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다
CES는 더 이상 전자업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자, 통신, 반도체, 소프트웨어 등 IT업체뿐 아니라 자동차, 헬스케어, 화학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인들이 CES 전시장으로 모여들었다. 출품작도 갈수록 다채로워지고 있다. 산업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퀄컴은 모바일 헬스케어 신기술인 ‘2net’을 선보여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스마트폰에 인체 측정 기구를 연결해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을 실행하면 당뇨, 심장병 등 만성질환에 따른 위험을 사전에 점검해주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모바일 헬스케어로 나노센서를 장착하면 관련 앱이 “당신은 2주 후에 심장병 위험이 있습니다”라고 문자메시지(SMS)로 알려주는 놀라운 서비스가 펼쳐질 수 있다. 벤츠나 포드, 아우디, 기아차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은 지난해에 비해 한층 진화된 스마트카를 선보였다. 기아차는 차세대 텔레매틱스 서비스인 ‘UVO(유보)’를 전시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서로의 전통영역을 침범하는 경향도 두드러지고 있다. 이동통신용 반도체 칩 강자인 퀄컴은 이번 CES에서 자사 칩을 사용한 태블릿PC를 공개했다. 인텔도 뒤질세라 자사 모바일 칩을 장착한 태블릿을 선보였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 등의 스마트폰에 자사 모바일 칩을 공급하는 방안을 적극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 CES는
CES가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전시회로 성장한 데는 △연초에 열려 전자산업 트렌드를 살펴보기 좋은 점 △세계 정보기술(IT)시장을 주도하는 한국, 일본, 미국 기업들이 대거 참여하는 점 △라스베이거스의 풍부한 컨벤션 시설과 관광자원 연결 △가전과 모바일의 경계가 무너져 전시 영역이 넓어진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국제 가전전시회의 양대 산맥은 매년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와 매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되는 세계가전전시회(IFA)라 할 수 있다. 역사만 본다면 1927년 독일통신박람회로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IFA가 1967년 시작된 CES를 앞지른다. 하지만 최근 규모나 위상 면에서 IFA가 경제대국에서 열리는 CES를 따라가지 못한다. 자연히 CES 트렌드가 그 해 전자산업의 주류를 좌우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