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중소기업의 지역별, 업종별 양극화 현상이 도드라지고 있습니다. 비대면 IT 기업의 경우 더 큰 기회를 맞았지만, 전통제조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잘되는 기업에는 더 큰 기회를, 어려운 기업에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지난 1년간 총력을 다해 왔습니다.”
김학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 이사장은 지난 5월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중소·벤처업계에도 K자형 그래프로 대변되는 업종·지역별 양극화를 초래했다. 김학도 이사장은 지난 1여 년간 코로나19 사태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역할을 하는 중책을 수행해 왔다.
실제 중진공은 지난 1여 년간 디지털 전환, 지역산업 혁신, 사회안전망 강화라는 경영 혁신 방향에 맞춰 중소기업 정책자금의 지원 체계를 비대면 방식으로 개편해 왔다. 개별 기업 중심의 지원체계를 지역별·업종별 지원으로 확장하고, 사회포용성 확대를 통한 중소기업들의 자생력 회복을 위해 코로나19 피해 기업을 대상으로 정책자금 지원 확대 및 선제적 자율 구조개선 프로그램을 새로 도입했다. 올해에는 친환경 그린 혁신을 더해 중소기업들의 탄소중립 지원에도 적극 나선다는 복안이다.
지난해 5월 제18대 중진공 이사장으로 부임한 김 이사장은 산업통상자원부 대변인과 통상교섭실장,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을 지내며 관가에서 명실상부한 ‘산업정책통’으로 꼽힌다.
<매경LUXMEN>에서 김 이사장을 만나 올해 중소기업 경영환경과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한 중진공의 정책 방향을 들어봤다.
He is
▲1962년 청주 출생 ▲서울대 국제경제학(학사)·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정치경제학(박사) ▲행정고시 31회 ▲산업통상자원부 대변인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에너지자원실장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제18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먼저 중앙부처에서 정책 수립을 해오다 현장에서 직접 시행하는 기관을 1년여 동안 이끌어 오셨는데, 소회가 궁금합니다.
▷다른 정부 기관도 마찬가지겠지만, 현장집행 역할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어요. 정책과 현장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다르더군요. 양쪽을 다 느끼면서 현장감 있는 정책 추진을 하기 위해 노력했고, 성과도 있었습니다. 중진공 임직원들에게 항상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고객 입장에서 규정된 매뉴얼을 재해석해봐라”라고 강조합니다. 정해진 규칙에만 집착하다 보면 책상물림 정책이 되기 쉽습니다. 특히 지난해부터 코로나 때문에 기업들의 어려움이 큽니다. 예를 들어 신용도 같은 잣대를 과거 기준 그대로 적용하면 적절한 지원이 되지 않을 공산이 컸어요. 그래서 특정 기업이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지, 사업성의 문제인지 등등 규정을 유연하게 적용해오고 있어요.
이를 위해 2가지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냈어요. 첫째가 한계기업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IR(기업설명회) 제도입니다. 조금만 도와주면 한계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지, 또한 미래의 기업상을 제대로 제시하는지 등을 일종의 IR를 통해 판단하는 것입니다. 2번째는 재심제도예요. 중진공 지원사업에서 탈락한 기업에게도 기회는 줘보자는 취지죠.
▶중진공 사업 중 가장 주요한 부문은 정책자금 지원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애를 써 왔습니다. 지난해 4조5900억원에서 출발했던 예산은 결국 6조2900억원 집행으로 마무리됐어요. 한정된 돈에 필요로 하는 곳이 늘다보니 1조7000억원이 증액됐죠. 올해 예산은 5조6100억원. 하반기에 상황이 어려우면 추경 등 작년 수준으로 집행이 예상됩니다. 1조원 정도의 추가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봐요.
자금 지원 방식의 디지털 전환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어요. 지난 1년간 정책자금 지원체계를 비대면 방식으로 개편했습니다. 자금 지원은 상담→온라인 신청→실태 조사→평가→융자 결정→약정 체결로 진행되는데, 아직까지 실사, 약정은 대면으로 시행됩니다. 금년 말까지 약정까지 비대면으로 전면 개편할 예정입니다. 사회안전망 혁신과 관련해선 올해 고용유지플러스자금 2000억원을 신설하고, 기업들의 자율구조개선 지원 규모를 250억원까지 확대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지역과 수도권에 위치한 기업 간 양극화도 우려됩니다. 이런 점에서 중진공의 K예비유니콘 육성 제도가 눈길을 끕니다.
▷현재 국내에는 13개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이 있지만, 대부분 수도권에 몰려 있습니다. 지역기업이 성장하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됩니다. 이러한 선순환 과정이 국가 균형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중진공의 청년창업사관학교는 혁신기업 성장에 좋은 플랫폼이 될 수 있습니다. 졸업 기업 가운데 유니콘으로 성장한 토스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런 강점을 살려 중진공에선 지역에 기반한 기업들 중에서 32곳의 지역본부 추천을 받아 103개 K예비유니콘 후보기업을 선발, 중진공 사업에 연계한 지원은 물론 별도의 밸류업(IR 코칭 및 투자진단,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어요. 이 중 7개 기업은 기업가치 1000억원이 넘어서 K예비유니콘으로 지정됐어요. 이들은 특히 이어달리기 연계 지원을 통해 선제적 직접투자는 물론 민간 후속 투자 유치에 도움을 주고 있어요. 사실 예비유니콘 기업들은 자기가 앞으로 얼마나 더 필요할지 모릅니다. 이에 중진공에서 컨설팅도 해주고 거래선 확보, 인력 지원 등등 필요한 부분을 연속해서 지원해 점핑할 수 있게 해주자는 취지예요.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시절 스마트팩토리와 중기의 디지털 전환 정책을 추진하신 바 있습니다. 중진공 이사장으로서 현장에서 보신 성과는 어떤지요.
▷스마트공장을 2022년까지 3만 개로 늘리는 정책을 만들었습니다. 현장에 와서 보니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기업들이 사후관리(AS)와 고도화, 인력 공급 등이 필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스마트공장 구축 설비 도입을 위한 자금 지원을 5000억원에서 6000억원으로 늘렸습니다. 인력문제와 관련해서 스마트공장 배움터 5곳을 광역별로 운영 중인데, 여기에 1곳을 추가로 설립해 현장 실습 등 맞춤형 교육을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스마트공장 전문인력 6만 명을 내년까지 양성할 계획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스마트공장 사후관리 예산을 확보했습니다. 스마트공장 도입 기업 사후 관리를 위해서 부품 교체 등 긴급 복구, 기능 개선 등 업그레드 사업을 지원하고 있어요.
▶취임 1주년을 맞아 친환경·그린 혁신을 추진과제로 추가하셨는데요, 관련해서 기업들 입장에서 소위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화두입니다. 중진공의 지원은 어떤 게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ESG가 경영의 이슈입니다. 중진공은 이를 살짝 다르게 해석해, E(환경) 부문을 지원해주는 역할에 주목하고 있어요. 1주년을 맞아 탄소제로 지원 친환경 그린 혁신을 얘기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미 4월에 기업 2000여 곳을 설문했는데, 중소기업 85%가 ESG의 필요성과 기본적인 가치 방향에 대해서는 인식하고 있더군요. 문제는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점입니다. 15%만 ‘앞으로 해볼까?’ 정도더군요. 결국 ESG 경영으로 넘어가게 됐을 때 부담이 코스트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를 해소시켜주는 게 중진공의 역할입니다.
먼저 탄소중립 실행을 위한 지원체계를 준비하고 있어요.
실제 현장에서 탄소 배출량을 분석하고, 저탄소 전환을 위한 전략 수립, 시설이나 설비를 도입할 때 자금 지원 등을 연계하는 정책 사업입니다. 컨설팅에 따른 구체적인 실행과 함께 자문을 받을 수 있게 진단 바우처, 장비에 대한 융자 등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가치(S)나 지배구조(G)는 중진공의 직접적인 역할과는 좀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나, 기업하기 좋은 환경 구조를 만드는 데 지원 역할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전체 경제는 턴어라운드하는 분위기입니다. 지금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보는데요. 준비를 잘하면 점프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뒤처질 수도 있습니다.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게 중요합니다. 지역 기업이 잘돼야 지역 경제가 잘되고 국가 경제도 살아요. 개별 기업들이 지역에서 창업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스마트 혁신지구를 준비 중입니다. 중소기업 밀집 지역 두 군데를 정해서 스마트 플랫폼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자금조달인데, 그래서 실리콘밸리식 ‘투자조건부 융자 방식’을 추진하고 있어요. 이는 중진공에서 먼저 융자해주고 주식을 받는 거예요. 융자와 투자가 혼합된 개념으로 중진공에서 지분을 참여했다고 하면. 민간 VC(벤처캐피털)에서 같이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셈이죠. 창업 초기 투자와 성과를 공유해, 유니콘기업으로 나아갈 때 유용한 방식이라고 봅니다. 신기술 분야 기술인재 양성에도 주목하고 있어요. 청년 실업률은 높아지는 반면 신기술 분야 전문인력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중소기업들 상당수도 전문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진공에선 신기술인력 역량강화와 중소기업(스타트업) 취업연계를 통해 전문인력 적시공급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현장을 잘 아는 중진공에서 수요를 반영한 맞춤 교육을 통해 시스템 반도체, 미래차 등 분야에서 인력을 양성공급해 중기들의 인력난을 해소해 나갈 계획입니다.
최근 급증하는 물류비용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출 중소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고 수출 호조세를 이어가는 데 기여하는 정책도 적극 시행하고 있어요. 수출바우처사업 지원 대상에 ‘국제운송 서비스 분야’를 신설해 물류비를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중소기업중앙회 코트라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유관기관들이 많습니다. 이들 기관들과의 협업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지역에서 사업을 하려고 하면 그 지역의 인프라를 활용해야 합니다. 결국 혼자 다 할 수 없죠. 예를 들어 타 기관과 협력해 우수한 기업들을 소개받는다면, 선발에 이중 노력이 안 들어가도 되죠. 기업 재기 지원을 한다고 했을 때도, 조금만 도와주면 더 잘할 수 있는지 선별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제대로 추천만 받는다면 훨씬 수월해지죠. 이미 제주도에서 중소기업 면세점에 전시장을 만들 때, 저희가 추천을 한 사례가 있습니다. 최근에도 김천에 있는 도로공사와 MOU를 체결해 스마트 물류센터에 입주할 지역중소기업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관기관과의 협력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 폴로 업하고 체크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불거지는 직장 내 세대 갈등에 대해 김 이사장은 “‘소통’만이 해답”이라고 강조한다. 실제 기성세대와 소위 MZ세대 간 문화적 차이는 중진공에도 존재한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접촉도 제한된 상태다.
김 이사장은 “화상으로라도 정책조정협의회를 만들어 부서 간 소통을 늘리고 있어요. 지역 본부장들이 참석해 관련 부처에서 회의 내용을 공유하자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신입직원이 들어오면 간담회도 빼먹지 않는다. 직접 패널로 가서 문답을 주고받으며 소통한다. 김 이사장은 “이런 모임에 선후배 사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다 보면 서로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