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5년차’ 배우 최강희가 <굿캐스팅>으로 또 한 번 ‘인생작’을 썼다. 작품과 캐릭터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물 만난 열연으로 작품명만큼이나 짜릿한 <굿캐스팅>임을 스스로 입증해냈다.
최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굿캐스팅>(극본 박지하·연출 최영훈)은 국정원 현직에서 밀려난 여성들이 초유의 위장 잠입 작전을 펼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사이다 액션 코미디 드라마다.
드라마 종영 후 만난 최강희는 “사전 제작되다 보니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많은 미션이 있었음에도 충분히 즐기면서 찍을 수 있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스태프 한 명 한 명, 배우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보며 함께 호흡했다”고 말했다.
<굿캐스팅>은 소위 시청률 ‘대박’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월화극 1위를 독주하며 인기리에 방송된 드라마다. 여성 캐릭터가 전면에 나서 큰 사랑을 받는 게 여간해선 쉽지 않은 드라마 환경인 만큼, <굿캐스팅>의 사례는 특별했다.
“여성 삼총사의 캐릭터들이 다 현실적인 환경 안에 있는데 그들이 능력을 발휘하고 승리하니까 시청자들이 즐겁게 봐주신 것 같아요. 고구마(씹은 듯한 전개의 드라마)보다는 사이다(전개)를 좋아하시잖아요. 대리만족을 줄 수 있어 행복했고, 끝까지 믿고 봐주신 시청자분들께 정말 감사드려요.”
▶25년차 배우, 걸크러시 매력 선보여
최강희는 드라마에서 성격은 최악이지만 실력은 최고인 국정원 블랙요원 ‘로열또라이’ 백찬미(가명 백장미) 역을 열연, 다시 한 번 그 자신의 이름 석 자에 대한 ‘믿음’을 시청자에 심어줬다.
백장미가 극중 에이스 요원인 만큼 최강희는 뛰어난 액션은 기본, 거침없으면서도 믿음직한 언행으로 걸크러시 매력을 보여줬다. 여기에 망가짐을 불사한 코믹 연기와 강렬한 워맨스, 애틋한 로맨스까지 다양한 모습을 소화했다.
“백찬미는 대놓고 멋진 캐릭터였어요. 캐릭터를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대놓고 멋짐에도 불구하고 부담 없이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편으로는 코믹, 액션, 휴먼, 로맨스, 워맨스 등 여러 면모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보여줘야 해서 어렵기도 했지만 대본 자체가 연기자에게 무엇을 하라는 압박감을 주는 대본이 아니라 감사했어요. 내가 만들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작품 속 캐릭터이기 때문에 늘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굿캐스팅>이 초반부터 시선몰이를 할 수 있었던 데는 1회부터 등장한 최강희의 강렬한 액션 연기가 한몫했다. 최강희는 안전상의 문제가 우려되는 몇 장면을 제외한 모든 액션을 직접 소화하며 배우로서 또 다른 강점을 보여줬다.
“한 달 정도 폭염에 컨테이너 박스에서 에어컨 없이 연습하며 준비했어요. 그 때 체력도 더 좋아진 것 같아요.(웃음) 유도 장면도 그렇고, 모든 액션을 가능한 부분은 제가 소화하고 대역이 커버해주며 찍었어요. 기억에 남는 액션 장면은 스카이점프 장면인데, 스카이점프는 앞까지 뛰어가는 건 제가 하고, 뛰어내리는 건 대역이 했어요. 그것도 제가 하고 싶었는데, 안전 조끼도 입지 않고 와이어를 차고 뛰는 거라 안전상의 문제로 할 수가 없었어요. 아쉬움이 남아서인지 기억에 남네요.”
<굿캐스팅>의 성공 배경에는 최강희를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이 있었다. <굿캐스팅> 팀은 특히나 팀워크가 중요했는데, 황미순 역의 김지영, 임예은 역의 유인영, 동관수 역의 이종혁, 그리고 윤석호 역의 이상엽 등 주요 배우들의 앙상블이 빼어나 시너지가 유독 컸다.
“(김)지영 언니는 실제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어서인지 캐릭터와 정말 비슷했어요. 상황적인 부분을 떠나, 호탕하고 재미있는 성격적인 부분도 싱크로율이 높았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언니는 ‘가까이서 볼수록 예쁘다,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는 말이 딱인 사람이에요. 언니를 보는 것만으로도 도전이 되고, 연습이 되고, 힐링이 되고 행복했죠.”
또 최강희는 “(유)인영이도 친해져야 무장해제 되는 성격이라, 이전에 같은 소속사였고 운동하는 짐도 같았는데 이렇게 똑똑하고 예쁘고 털털하고 잘하는지 미처 몰랐다. 현장에서 인영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저도 마찬가지였다”며 빙긋 웃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과 함께할 때 가장 에너지가 넘쳤고, 얼굴만 봐도 힘이 되는 존재였다. 생사의 현장을 함께하는 전우애랄까?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많은 응원이 됐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굿캐스팅> 시청자를 열광하게 한 연상연하 첫사랑 로맨스의 파트너, 이상엽과의 호흡에 대해 묻자 최강희는 “상엽이는 우는 신도 웃어서 NG가 나고 싸우는 신도 웃어서 NG가 났다”며 시종 유쾌했던 현장을 떠올렸다. “제가 심쿵해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걱정 말라’고, 자기가 그 타이밍에 심쿵하게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면 심쿵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정말 아기 같았죠.(웃음) 처음 상엽이를 봤을 땐 스킨톤이 너무 예뻐서 반했어요. 가까이서 보면 멍뭉미가 아니라 송아지미(?)가 있는데, 눈이 엄청 착해요. 이번에 상엽이랑 붙는 장면이 적어서 아쉬웠는데, 다음에 다른 곳에서 또 만났으면 해요.”
<굿캐스팅>은 분명 재미있고 유쾌한 드라마였지만 30대를 넘어 40대를 보내고 있는 ‘여배우’ 최강희에게는 특별한 의미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엄마 혹은 아내 캐릭터에 한정되지 않고, 제대로 무르익은 연기라는 ‘무기’를 갖고 카메라 앞에서 제대로 놀 수 있는 장을 열어준 작품이라는 점에서다.
▶“누군가의 엄마 혹은 아내 캐릭터에 한정되지 않아 의미”
“개인적으로 저는 누군가의 엄마, 아내인 역할을 많이 해보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연령대가 주는 이미지가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다만 저는 그와는 별개로 캐릭터성이 돋보이는 역할을 많이 했기 때문인지 평범한 역할보다는 캐릭터성이 강한 작품이 많이 오죠. 나이의 제한보다 그러한 이미지에서 오는 제한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기에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굿캐스팅>은 제가 액션이란 장르에 새롭게 도전하고, 많은 분들께 변화로 다가갈 수 있게 해준 또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이기도 하죠.”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을 비롯해 <애자> <달콤한 나의 도시> <쩨쩨한 로맨스> <하트 투 하트> <추리의 여왕> 그리고 <굿캐스팅>까지. 주로 캐릭터성이 강하거나 작품의 톤에 2% 다른 특별함이 있는 작품에서 활약해 온 최강희. 그 자신이 언급했듯 캐릭터성이 강한 배역을 주로 맡다 보니 그 길이 계속 이어져 오며 어마무시한 변신의 기회는 많지 않았던 게 사실. 이에 대해 최강희는 “색다른 캐릭터들을 많이 많이 만들었는데도 비슷한 옷을 입은 최강희의 이미지가 센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내가 아닌 내가 되는 걸 좋아해요. 변화를 늘 즐기죠. 하지만 아예 제게 없는 것을 표현할 정도의 배우는 못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스스로는 못 보는 무언가를 보고 써주시는 분들이 있죠. 누군가 제게 ‘한겨울 하얀 얼굴에 피칠갑을 하고 서있는 모습’을 떠올렸다고 이야기해준 적이 있고, 예전에 어떤 감독님과 장난삼아 (대단한 변신을 약속하며) 500원에 계약했는데 계약을 한 지 근 10년이 넘어가는데도 어찌된 영문인지 소식이 없네요 하하.”
1995년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로 데뷔, 어느덧 26년째 배우로서 달리고 있는 최강희. 험난하기로 유명한 연예계에서 이렇다 할 공백 없이 쉼 없이 달려온 지난 시간의 소회는 어떨까. 그는 스스로 “잘 달려왔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입을 뗐다.
“연예계가 험한 곳이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어디든 마찬가지 아닐까요? 제게 절친한 언니들이 있어요. 김숙, 송은이 언니는 정말 든든한 현실의 미순 찬미 예은인데, 얼마 전에 언니들이 ‘강희는 사기 안 당한다. 그런 것도 관심이 있어야 당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마도 제가 잘 달려왔거나 걸어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우직했던 여정이지만, 힘든 순간도 없진 않았다. “사실 연기를 그만두고 싶었던 때가 있었어요.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커져 스스로를 힘들게 했었는데, 지금은 비교도 경쟁도 안 해요. 난 최고의 나니까요. 예전과 달리 지금 저는 과거의 나를 쌓거나, 과거의 나를 기록 경신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아요. 과거의 내가 어떤 매력이 있었든 그것은 과거의 나이고, 지금과 오늘을 사는 나는 매일이 처음이니까 백지인 거죠. 어떤 그림을 그릴 수도 백지로 둘 수도 있고요. 스스로 완성품으로 세상에 공급된 거라고 믿으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보람 있어요.”
스스로 생각하는 ‘롱런’의 비결은 “어디 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는 최강희.
그는 “그 자리에 몹시도 충실히 있었고 열심히 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많은 분들께 사랑받을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1977년생. 우리 나이로 마흔 넷이지만 여전히 포털 사이트에는 ‘나이’와 ‘동안’ 키워드가 따라다닌다. 데뷔 후 꾸준히 동안 외모로 큰 사랑을 받은 만큼 숙명인 듯도 하지만 작품으로 대중 앞에 설 때마다 외모 평가를 받는 게 부담이 될 수도 있을 터. 이에 최강희는 그만의 ‘나이 철학’을 내놨다.
“제 나이 철학은 얼굴은 아무리 강제로 만진다고 해도 변하는 건 겉모습일 뿐이라는 거예요. 물론 누구나 예쁘고 싶고, 사랑받고 싶죠. 저 역시 그렇고요. 하지만 그게 진리는 아니라는 철학이랄까요.(웃음) 내가 무엇이든 ‘나는 나’라는.”
▶동안 비결은 근력 운동
자기만의 동안 비결로는 근력운동을 꼽았다. 그는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한다. (피부)관리도 작품 촬영할 때만 한다. 집에서 가끔 마스크 팩을 하는 정도고, 자외선 차단제도 잘 안 바른다. 단, 근력운동은 한다. 보통 운동하시는 분들을 보면 젊으시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대중과 호흡하며 ‘4차원’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어온 최강희. 하지만 그는 “스스로 엉뚱하다 생각해본 적은 없다”며 그 자신에 대해 돌아봤다. “인간 최강희의 모습을 가끔씩은 감추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저인데 유행에 따라, 나이에 따라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 스스로를 감출 때가 많아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잘 살아왔구나 생각하고 있죠.”
인터뷰 말미, 최강희는 시청자에게 거듭 감사를 돌렸다. “다양한 시청자와 호흡한 것이 너무나 기뻤어요. 아무리 열심히 촬영해도 시청자분들이 사랑해 주시지 않고, 인정해 주시지 않았다면 이토록 행복한 기억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굿캐스팅>을 통해 만난 시청자분들께 만나서 반갑다고 말하고 싶고, 우리를 사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굿캐스팅>을 통해 진정한 굿캐스팅의 진수를 보여준 최강희. 선택이라는, 일종의 ‘캐스팅’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객체가 되기도 하는 배우의 숙명 속에서 나(최강희)를 선택하는 게 ‘굿캐스팅’이라는 믿음을 주고 싶다는 배우로서의 포부는 여전하다.
“배우로서 나에 대한 자부심과 포부는 있어요. 현재 저는 <굿캐스팅>에서 그야말로 ‘굿캐스팅’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세연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사진제공 매니지먼트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