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다이나믹 오케스트라’ 지휘하는 프로 바이올리니스트 “재능기부로 시작한 지휘 지금은 되레 가르침을 받죠.”
박지훈 기자
입력 : 2019.11.29 17:01:02
수정 : 2019.11.29 17:06:38
아름다운 부산 해운대 바다와 멀지않은 한 작은 기독학교에는 매 주말마다 웅장한 클래식 연주가 시작된다.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가 한데 모여 펼치는 열정적인 하모니는 학교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귀를 즐겁게 만든다. 진지한 표정으로 눈을 빛내는 연주자들은 사실 프로가 아니다. 대학(원)생, 의사, 교사, 영양사, 구청공무원, 주부 등 저마다 다른 직업을 가진,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뭉쳐 2015년 창단한 다이나믹 오케스트라의 소속 단원들이다. 순수 아마추어 40여 명이 모여 주축을 이룬 ‘다이나믹 오케스트라’는 창단 이후 최근까지 8차례 정식연주회를 마쳤을 정도로 성장했다.
창단 당시 ‘외인구단’에 가까웠던 이들을 수준급 오케스트라로 성장시킨 인물들이 있으니, 바로 이광식 IPB챔버오케스트라 대표, 양욱진 IPB챔버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다.
연습실보다 대형공연장에 어울리는 이들은 2012년 창단해 세계적인 실내악단을 꿈꾸는 IPB(International Players of Busan)의 주축멤버이기도 하다. 국내 음악계에서 내로라하는 클래식 연주가인 이들은 주로 부산·경남에서 대형공연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평소 아마추어 클래식 저변확대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함께한 두 남자는 의기투합해 2015년 ‘다이나믹 오케스트라’의 멤버를 모으는 한편 각각 지휘와 음악감독을 맡았다.
“설이나 추석을 제외하고 매 주말 모여서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실력이) 암담했지만.(웃음) 단원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한 걸음씩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휘를 맡은 이광식 바이올리니스트 역시 4년간 꼬박 주말을 반납하고 오케스트라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후학양성과 자신의 연주활동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에도 눈을 빛내는 단원들의 열정을 뒤로하기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프로 연주자들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단원들의 열정에 제가 오히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사실 클래식 연주가 단기간에 발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지라 힘들만도 한데 꾸준한 단원들의 노력에 관객들의 반응도 처음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훌륭한 스승을 맞이한 오케스트라는 체계적으로 성장했다. 여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뚜렷한 목적 없이 모여서 비슷한 곡을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것과 달리 정기적인 공연을 목표로 압축적으로 단계를 높여갔다.
단계와 수준에 맞는 음악을 선정해 단원들의 성취도를 효과적으로 높인 지휘자와 음악감독의 역량도 빛을 발했다. 장혜진, 김영찬, 김소정, 유재형, 변은석, 박민선 등 프로연주가들도 재능기부에 동참하며 오케스트라의 완성도는 한층 높아졌다. IPB챔버오케스트라 멤버들은 돌아가며 협연에 참여해 무대를 빛내주고 있다. 최근 마친 6번째 정기연주회에서는 김가영 비올리스트(경성대 교수)가 협연에 나서기도 했다.
비올라를 연주하는 황윤호 다이나믹 오케스트라 단장
나눔으로 성장한 오케스트라
어려운 이웃 위로하는 연주 나설 것
세간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는 3년을 못 버틴다는 이야기가 있다. 단장과 지휘자의 알력다툼이나, 단원들 간의 실력 차가 곧 갈등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단원 한 사람의 실력보다 전체적인 조화를 무엇보다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세부 운영을 제외하고 연주와 관련한 전권도 이광식 선생님께 위임해드려 잘 조율해 주고 계십니다. 갈등은 저희와는 먼 이야기죠.(웃음)
인제대 흉부외과 의사이자 다이나믹 오케스트라 단장을 맡고 있는 황윤호 씨의 클래식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나이가 들어 뒤늦게 입문한 클라리넷과 비올라는 이전까지 즐겨하던 골프 등 취미생활을 바꿔 놨다.
혼자 하는 연주보다 함께하는 합주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게 됐다고 밝힌 그는 다이나믹 오케스트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많지만 정기적으로 이렇게 연주회를 연 오케스트라는 흔치 않을 겁니다. 아직까지 저희가 실력도 공력도 부족하다고 판단돼 실천을 못했지만 지역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하는 공연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넓은 연습실이 필요한 만큼 만만치 않은 운영비가 소요된다. 기본적으로 단원들의 회비로 운영되지만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좋은 취지로 설립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대한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이곳(반디기독학교)도 저희에게 좋은 취지로 무료대관을 해주시고 있거든요. 저희도 감사한 마음에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고 소정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황 단장에게 ‘왜 이렇게 오케스트라에 열정을 쏟으시나?’라는 우문을 던졌다.
클래식하면서도 현명한 답변이 돌아왔다.
“단원들 스스로 취미로 시작한 오케스트라인 만큼 각각의 성취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아마추어라도 관객을 만나는 무대에서는 좋은 공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광식, 양욱진 선생님을 비롯해 부산 여러 분들의 나눔으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향후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공연도 기획해 나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