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미 기자의 패션人사이트] 정욱준 패션디자이너 (삼성물산 패션부문 상무) | 100년 후 준지를 지금의 디올처럼 만드는 게 목표
김지미 기자
입력 : 2016.05.13 17:28:08
He is
- 1967년 출생
- 1992년 에스모드 서울 졸업
- 1999년 ‘론 커스텀’ 남성복 회사 설립
- 2003년 아시아 <타임>이 뽑은 아시아 최고 디자이너 4인
- 2007년~현재 ‘준지(JUUN.J)’ 남성복으로 파리 컬렉션 참가
- 2009~2011년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 3회 연속 수상
- 2013년 파리의상조합 정회원 선정
- 2011년~현재 ‘준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지난 2007년 남성복 디자이너 정욱준은 당시 40대 초반의 나이로 세계 정상의 무대인 ‘파리 컬렉션’에 첫 도전을 했다. 당시 그의 쇼를 보고 난 현지 언론들은 “클래식의 전환자가 등장했다”(르 피가로), “코리안 신동”(파워블로거 패션윈도우) 등의 용어를 써가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준지(JUUN.J)’라는 남성복 브랜드로 당시 파리에 진출했던 정욱준은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현재까지 파리컬렉션 무대에 서고 있다. 그사이 달라진 건 코리아에서 온 신동이 이제는 패션천재라 불리며 톱클래스 반열에 올랐다는 점이다. 실제 패션 종주국인 서구 유럽에서 그의 위상이 어떤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예가 있다. 그는 올 초 1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피티 워모(PITTI UOMO)’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게스트 디자이너로 선정되어 컬렉션 무대를 펼쳤다. 지금까지 초청된 남성복의 면면을 보면 톰브라운, 트루사르디, 발렌티노, 겐조, 디젤, 제냐 등 현존하는 최고의 브랜드라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준지가 이 대열에 섰다는 건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 남성복이 탄생했으며, 이제 글로벌 시장을 향한 포문을 열었음을 의미한다. ‘피티 워모’에서 준지 무대를 본 한 현지 매체는 “현재 심화된 남성패션계에서 경쟁자를 뛰어넘는 스타일을 선보인다”고 극찬했다.
▶트렌치코트는 영원한 시그니처 아이템
햇살이 좋은 4월 마지막주 어느 날,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준지’ 사무실에서 정욱준 디자이너를 만났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동안 외모지만 최고의 크리에이터답게 눈빛은 날카롭게 빛났다. 지난 1월 ‘피티 워모’에서의 성공적인 컬렉션에 대한 소감부터 물었다. 그는 “지금부터 정확히 10년 전 우연한 기회에 ‘피티 워모’에 초대됐던 라프 시몬스의 패션쇼를 봤습니다. 피렌체란 도시 공간과 완벽하게 어우러진 컬렉션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이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마음이 간절했었나 봅니다”고 말한다. 라프 시몬스는 지난해까지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디자이너를 맡았고 지금은 독립했으며, 최고의 남성복 디자이너로 인정받고 있다.
정욱준하면 ‘트렌치코트’를 빼놓을 수 없다. 클럽모나코, 닉스 등 캐주얼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지난 1999년 본인 브랜드인 ‘론 커스텀’을 론칭했을 때도 핵심 아이템은 ‘트렌치코트’였다. 그는 “트렌치코트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옷이에요. 유럽 사람이면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는 평범한 옷이고 버버리, 아큐아스텀 등 전문 브랜드도 많지만 워낙 좋아하는 옷이라 선택했습니다. 트렌치코트를 해체하고 분해하는 작업 속에서 제 속에 내재해 있던 디자인 DNA를 찾았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제가 만든 트렌치코트가 지극히 한국적, 동양적이라고 하는데 의도하진 않아도 자연스럽게 작품에 배어나오는 것 같습니다”고 전했다. 그는 트렌치코트의 매력에 대해선 “디테일과 실루엣 등 트렌치코트는 그 자체만으로 완벽합니다. 트렌치코트를 입을 때는 남녀 모두 액세서리를 착용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남자들도 가장 단순한 옷을 안에 입고 트렌치코트를 하나만 걸쳤을 때 제일 멋있습니다”고 전했다. ‘준지’는 트렌치코트 하나의 아이템에 집중해 매번 해체하고 분해한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다. 트렌치코트 아랫부분을 떼어내 스커트처럼 만든 그의 독창적 디자인은 현재 디자이너들이 많이 따라하는 아이템이 됐다.
▶성별 등 영역 구분 없는 디자인을 추구
정욱준이 만드는 ‘준지’의 고객 중에는 자유로운 직업을 가진 예술가, 디자이너, 작가 등이 많다. 그중에는 여성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남자옷임에도 여성 고객들이 사가고 ‘준지’ 셔츠들을 박시하게 연출해 입고 다닌다. 그는 이에 대해 “여성들을 의식해서 디자인을 하진 않지만 제 디자인 정체성 중 하나가 ‘젠더리스(성별 구분이 없는)’예요. 이러한 추세는 저뿐만 아니라 시대적인 현상이죠.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동안 남녀로 구분됐던 영역을 침범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저도 동참하고 있습니다”고 설명한다.
‘준지’ 디자인은 동시대적인 것과 맞닿아 있다. 정욱준은 사람들에게 패션을 제안하는 디자이너지만, 거리를 다니며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에게서 역으로 영감을 받기도 한단다. 그는 “디자이너들은 보이지 않는 더듬이가 달려 있는 사람들이죠. 유행이 오면 그게 좋아 보이고, 제가 디자인을 하면 그게 또 유행이 되는 일이 반복됩니다”고 말한다. ‘준지’ 브랜드에 유독 사람들이 선호하는 파워아이템이 많은 것도 디자이너가 늘 깨어있고 시대와 소통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준지는 시그니처가 된 트렌치코트 말고도 그래픽 티셔츠, 최근에는 조거팬츠 등 나날이 파워아이템을 늘려가고 있다.
사람들은 정욱준을 패션천재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는 굉장히 노력하는 수재형이라고 한다. 디자인 작업을 할 때도 스패프들에게 디렉터 역할만 하지 않고 모든 옷의 가봉을 직접 보고 있다. 남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본인 브랜드를 철저하게 책임지겠다는 완벽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후배들을 많이 키우려고 합니다. 젊은 친구들을 가르치고 그들이 적정한 수준에 오면 함께 공존하는 거죠. 그래야 브랜드가 계속해서 살아남고,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 말한다.
‘피티 워모’ 패션쇼 의상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사명감
“어려서부터 옷은 자연스럽게 접했습니다. 부모님이 남대문에서 옷 제조업을 제법 크게 하셨죠. 샘플의상이 나오면 남자옷은 저한테 제일 먼저 입혀보셨는데 신기하게도 제가 좋다는 옷은 잘 팔렸어요. 그리고 재봉틀이나 옷감, 가위 등은 저에게는 무척 친숙한 물건들이었습니다”
정욱준은 옷이 좋았지만 85학번인 그가 대학을 갈 당시만 해도 남자 패션디자이너를 이상하게 보던 시절이었다. 공예과를 선택했지만 평면적 작업이 그의 마음을 끌지는 못했다. 군대에 간 그는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평생 직업으로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했고, 패션디자이너를 택했다. 결심을 한 이상 최고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디자이너로 인정받는 데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정욱준은 “파리컬렉션에 첫 진출했을 때도 그 마음을 갖고 나간 겁니다. 디올이나 지방시도 처음에는 저처럼 시작했겠지요. 100년 ‘준지’가 지금의 디올처럼 되길 바랍니다. 그때 가서는 제가 아니겠지만 ‘준지’가 그 시대를 누리는 친구들에게 최고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겁니다”고 소망을 밝혔다.
‘준지’는 지난 2012년 삼성물산 패션부문과 합류한 이후, 매년 50% 이상씩 폭발적인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단독 매장도 없이 컬렉션 브랜드로 운영되던 준지는 한국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지난 2014년 갤러리아 명품관과 롯데본점(5층)에 첫 단독 매장을 오픈했다. 올해는 국내와 글로벌에서 보다 공격적인 영업망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국내 백화점 2~3개의 추가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며, 해외에서는 현재 입점되어 있는 갤러리 라파예트, 삭스 외에도 다른 백화점과 멀티숍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준지는 2020년 글로벌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다는 목표다.
마지막으로 정욱준에게 럭스멘 남성 독자들을 위해 ‘옷 잘 입는 팁’을 소개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사이즈에 구애받지 마세요”라면서 “옷을 몸에 딱 맞게 입는 사람들이 많은데 요즘은 루즈핏, 오버사이즈가 유행입니다. 저도 코트를 입어도 제 사이즈보다 크게 입습니다. 사이즈의 관념을 깨세요. 옷은 가만히 있을 때보다 움직일 때가 더 멋있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고 조언했다.